광고

방한한 교황에 비친 우리 정치·사회와 교회의 모습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8/14 [12:35]
종교를 이용한 진영간 ‘땅따먹기’ 싸움

방한한 교황에 비친 우리 정치·사회와 교회의 모습

종교를 이용한 진영간 ‘땅따먹기’ 싸움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8/14 [12:35]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프란치스코 효과’가 한국 천주교계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서 거론됐다. 대통령이 직접 공항영접에 나섰고 기념주화 발행, 경호비상대책에서부터 어떤 경차를 타고 어디에서 묵으며 누구와 만나는가, 어떤 관련서적과 종교용품이 많이 팔렸는가, 관광홍보효과는 어느정도인가 등등 시시콜콜한 것들마저 주요뉴스로 장식되었다. 여타 종교뉴스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묻히는 듯했다.

교황은 검소하고 소탈한 행보를 그대로 걷는 일정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들은 이에 더한 의미를 주어 보도하기에 바빴다. 교황의 대중적 인기를 부각시켜 일반독자의 눈길을 끌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갈등을 줄이고 평화를 지향하는 교황인데 교황의 방한을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펼치는 기회로 삼아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내란선동죄로 9년형을 받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선처 호소 광고가 그 하나이다. 이들 광고에는 구속자 가족이 교황에게 강복기도를 받는 사진과 함께 "이석기 의원과 구속자들이 무죄석방되도록 국민여러분, 함께 해주십시오"라는 문구가 함께 실렸다. 바티칸 방문객들에게 축복하는 알현식에 끼어들어 사진을 찍고 이것을 마치 교황이 이석기 의원과 구속자들을 위해 기도한 듯 왜곡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4개종단 지도자들이 교항방한에 맞춰 염수경 추기경의 주도로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냈는데 이 역시 “교단의 의견이 아니라 개인의 탄원일 뿐”이라는 교계의 해명이 있었으며 많은 국민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 이석기 의원의 선처를 호소하는 신문광고     ©

교황방한에 맞춰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벌인 정쟁의 모습 또한 가관이다. 시복식 시간에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지자 언론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교착 국면에 빠진 대치 정국의 물꼬를 트는 계기”라는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여당은 “세월호 특별법 투쟁의 계기로 삼으려는 등 교황의 방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경계하는 한편 야당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전향적 돌파구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심지어 “교황 방한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한 새누리당의 전향적 결단을 거듭 촉구한다”는 압박까지 했다. 여당이라고 교황방한을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이용하려는 의도는 없었을까. 결국 교황의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고 그 권위에 의존하려는 또 다른 사대주의적 발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연 ‘양떼 속의 목자’를 자처해 칭송을 받고 있는 교황이 이러한 정쟁의 중심에 서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할까. 교황을 빙자해 아전인수식으로 자기 진영과 이익을 고집하는 것에 오히려 분노하지는 않을까. 교황이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윤리적,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바란다”고 위로한 바 있는데 이것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문제도 그렇다. 만약 교황의 방한으로 점점 더 우리사회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면 “괜히 한국에 왔다”고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본래의 방한 목적인 '아시아 청년대회'와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식'의 의미가 희석될 것임이 분명하다.
 
방한한 교황에 비친 우리 정치·사회의 모습뿐 아니라 교회의 모습도 다를 바 없다. 가톨릭과 한 뿌리인 개신교 일각에서는 교황 방한 앞두고 ‘개신교‧가톨릭 일치운동’ 반대 집회를 여는가 하면 ‘교황과 로마 가톨릭은 비성경적, 탈성경적, 반기독교적’이라는 비난을 했다. 심지어 “종교통합운동이 로마 가톨릭 교황청의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의 합동 작전으로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며 사탄을 숭상하는 이교도 집단으로 몰기까지 했으니 온갖 사회갈등을 사랑과 화해로 풀어야할 종교가 ‘일치운동’은커녕 분열운동을 증폭시킨 셈이 되었다.
 
이러한 기독교 분열의 이면에는 최근 몇 년 동안 신도 수가 감소하는 개신교 교회의 우려감도 작용한 듯 하다. 한국 대형 개신교 교회들이 근본주의적이고, 내부적으로 권력·금력 다툼을 보이면서 그 위상이 떨어진 반면 천주교 신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또한 대중적인기가 높은 교황의 방한으로 더욱 천주교 신자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개신교계가 교황과 가톨릭교회를 폄훼하면서 내부결속을 다지는 것이 마치 국내외에서 논란이 되었던 ‘땅밟기 기도’와 닮았다.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망자를 낸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과 같은 종교간 ‘땅 따먹기’ 싸움으로 비친다.
 
공공선이 아닌 자기 진영의 이익을 위해 ‘땅따먹기’ 싸움을 벌이는 정치·사회, 그리고 싸움을 말려야 하는 종교마저 치열하게 ‘땅따먹기’ 싸움에 빠져든 모습이 우리 사회 전반의 자화상이란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답답할 것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신민형 범종교시각 많이 본 기사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