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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가 불러내는 영혼과 원혼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11/07 [10:49]
한국 유령, 한국 귀신 이야기(2)

영매가 불러내는 영혼과 원혼들

한국 유령, 한국 귀신 이야기(2)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11/07 [10:49]

▲ 한국의 영매, 신 내림을 받은 점술가들이 섬기며 불러내는 영혼인 관운장. 사진은 서울 동묘사당에 모셔진 관우상.     ©

‘성 기체(星 氣體)’, 즉 정상적인 육체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어쩌면 죽은 뒤에도 생존할 수 있는 그 무엇의 가능성을 인정하려했던 ‘초 자연’의 저자 라이얼 왓슨은 영혼 또는 귀신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영매의 역할은 부정하면서도 유체이탈의 가능성은 믿으려 했다. 성 기체가 존재한다면 육체를 자유로이 떠나 돌아다닐 수 있는 유체이탈이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매가 과거에서 누군가를 불러낼 때 몇 십억 또는 백억이나 되는 죽은 사람 가운데 하필이면 나폴레옹,톨스토이,쇼팽,클레오파트라,알렉산더 대왕 등등이 등장하는지 의심스럽다 했다. 이들은 서양 영매들이 곧잘 불러내는 존재들로 사실 그들의 영혼이 영매들에게 쉽게 불려 다닐 정도로 허약한 것인지도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한국의 영매, 사주팔자를 보는 점술가가 아닌, 신 내림을 받은 점술가들도 곧잘 섬기며 불러내는 영혼들이 있다. 남이장군,선덕여왕에서 박정희까지. 역사적으로 불운했던 인물들이 그 명단을 채우고 있다. 물론 관운장이라는 중국의 영웅도 곧잘 불려 나온다. 아니 한국 역사상의 인물보다 관운장 쪽이 더 비중 있게 모셔지고 있을 것이다.
 
삼국지의 촉나라 무대였던 중국 사천성에는 관운장을 모시는 큰 사당이 있다. 한국 무속인들 가운데 정기적으로 이곳을 들러 참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속인들이 아니라도 영혼을 눈으로 확인하고 이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개나 고양이에게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지만 사람 가운데도 그런 능력이 있음을 암시하는 이야기들도 많다.
 
이문열의 소설 ‘아가’에는 반편이(모자라는 사람) 주인공 당편이가 ‘해질녘 산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그날 제사 드는 집에 찾아오는 귀신을 보고 마을로 내려온다.’는 장면이 있다. 귀신을 볼 수 있어 그야말로 제사든 집을 귀신같이 찾아내 제삿밥을 얻어먹으니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동서양 어디서나 좀 모자라는 사람들, 이른바 ‘바보’들에게는 보통사람에 비해 신비의 세계가 보다 잘 보인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편이 역시 그런 바보에 속하는 반편이일 것이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방방곡곡마다에 서려있는 귀신이나 유령이야기는 ‘당편이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 많다.
‘전설 따라 삼천리’쪽으로 가면 그보다 더 다양해진다.
 
유령이야기라면 현대 서울 한복판에서도 나온다.
대학가의 ‘육법전서 귀신’은 아주 그럴듯하게 각색돼 있다.
사법고시 준비로 괴로운 인생을 보내다 드디어 자살한 어느 법대생이 죽은 후 밤이면 자신이 기거하던 기숙사 창문 밖에 서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애처롭게 지켜본다는 것이다.
 
늦은 밤 어느 구멍가게에서 우유와 빵을 시켜놓고 맛있게 먹고 간 노인이 뒤에 알고 보니 몇 년 전 죽은 이웃집 할아버지였고, 그날이 바로 제삿날이더라는 이야기는 현대판 ‘전설의 고향’이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후손들의 정성이 흡족치 못해 구멍가게에서 우유와 빵을 사 부족함을 채웠는지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이야 조상제사 모시기를 우습게 알고 있으니까.
 
18세기 조선시대 이서구(李書九)라는 학자는 ‘춘산채지가(春山採芝歌)’라는 예언서를 남겼는데, 여기에 “미신타파 한다 하고 천지신명 무시하네. 저의 부모 몰랐으니 남의 부모 어이 알리. 저희 선영(先塋) 다 버리고 남의 조상 어이 알리…. 혈기 믿는 저 사람아 허화난동(虛火亂動)조심하고 척신난동(斥神亂動)되었으니 척신 받아 넘어간다.”등의 구절이 있다.
 
조상신 또는 귀신을 우습게 알고 배척까지 하는 이 시대상을 정말 생생히 담고 있어 놀라움을 주는 예언서가 아닐 수 없다. 문명개명이 과연 귀신을 배척하는 길로 나가는 것일까? 글쎄다.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미국인 현각 스님은 그의 책에 지리산에서 경험했던 이 땅의 원혼에 관해 쓰고 있다.
 
-나는 전남 구례 천은사 위 상선암 옆 토굴에서 백일기도를 했다…. 전기도 수도도 없고, 나무를 때서 난방을 해야 하는 곳에서 1백일 동안 솔잎가루와 약간의 과일을 먹으면서 매일 1천3백배를 드리며 신묘장구대다라니 염불수행을 했다.
 
기도를 시작하고 이틀가량 지났을까. 마음은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는데 목탁을 두드리면서 염불에 몰두해 기도할 때 어느 순간 갑자기 어떤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환경이 바뀌어서 들리는 환청 같은 것으로만 생각했다. 물론 환청은 환청이었다. 소리에 놀라 방문을 열어보면 지나가는 바람소리밖에 없었으니까.

날이 갈수록 소리는 계속되었을 뿐 아니라 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것은, 내가 목탁을 치고 염불할 때만 특히 한밤중 염불 때면 유난히 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흘, 나흘이 지나자 그 소리들은 점점 명확해졌다. 울음소리, 비명소리들이었다.
 
나는 그 소리들이 들릴 때마다 목탁 치는 것을 멈추고 바깥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그저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만 ‘휘잉’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염불을 하면 여지없이 그 비명소리 외침, 울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일단 어둠이 내리면 방안에 촛불 하나 켜 놓고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들리는 소리 때문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가 쭈뼛쭈뼛 곤두섰다. 그렇게 정확하게 3주일이 지나 기도 22일째 되는 날이었다. 한 순간에 그 소리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뒤 현각 스님은 화엄사 스님으로부터 지리산에서 있었던 6.25의 동족상잔의 역사를 들었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은 누군가 열심히 염불을 해 주면 그들의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는 소리도 들었다. 말하자면 현각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지리산 원혼들의 영가천도를 해 준 셈이라고나 할까.

영가(靈駕)란 불교에서 중음신(中陰神)의 상태로 있을 때의 영혼을 말하는데 이생에서 명(命)을 마치고 떠난 영혼이 다음생의 생명을 받기 이전까지의 상태로 이 기간에 영혼은 새 몸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새 몸 받을 곳으로 가기도 한다. 대개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어 영혼들로 하여금 좋은 세계로 가도록 재를 올려주는데 49재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몇몇 억울한 원혼들은 오랫동안 중음 속을 헤매기도 한다. 현각 스님의 경우가 바로 그 영혼들의 영가를 천도해 준 것이다.

그런 원혼들이 지리산에만 있는 것일까? 굴곡 많은 역사를 지닌 이 땅 곳곳에 아직 그런 원혼들이 헤매고 있는 것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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