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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해수관음 신앙과 한국 용신앙의 융합

장정태 | 기사입력 2015/02/24 [11:12]
토템적 성격의 용신앙과 불교의 관음을 결합시킨 해수관음 신앙

불교의 해수관음 신앙과 한국 용신앙의 융합

토템적 성격의 용신앙과 불교의 관음을 결합시킨 해수관음 신앙

장정태 | 입력 : 2015/02/24 [11:12]
동해안에서 남해안,서해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인도의 토착신앙인 나가(naga)가 용으로 번역되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나가(naga)가 불교적인 용의 한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용신앙은 전적으로 인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중국 고유의 토테미즘 신앙을 통해 신앙되고 있었다. 당시 중국사회는 용을 토템으로 하는 민족과 봉황을 토템으로 하는 민족이 있었다. 이들 신앙을 하던 상고시대를 지나 다스림의 시대에 중국제왕들은 자신들의 사회적인 권위를 정당화 하기 위해 용과 밀접한 관련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스스로 용을 자처하고 자신과 관련된 많은 것들에 용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하게 된다. 용안,용상 등 개인 권위를 위해 사용되던 용신앙은 우물에 살고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이미지를 통해 물을 지배하는 신격화 된다. 농경문화에서는 가뭄이 들었을때는 비를 부르는 신으로 기원하는 민간신앙과 혼합되었다.
 
▲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해수관음상     © 매일종교신문

한국에서 용신을 보이는 곳은 주로 해안지방이다. 농경문화가 받아들였던 용의 이미지는 가정의 행복, 장수복록, 다남, 무병 등을 기원하는 용왕제(굿)으로 신앙된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불교가 전래되면서 삼국시대 불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면서 용왕보다는 부처, 보살에게 비는 기원의 형식이 바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민중들은 자신들이 신앙하던 토템적 성격의 용신앙과 불교의 관음을 결합시켜 해수관음이라는 신앙형태로 발전시켰다. 용신앙과 해수관음신앙은 한반도의 동해안에서 남해안, 서해안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게 된다.
 
한반도에 전래된 불교와 토착신앙적 용신앙의 융합으로 볼 수 있다.
 
해수관음신앙- 대자대비를 서원으로 하는 보살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불하여 현세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험을 얻고자 하는 신앙형태이다. 관세음보살은 광세음보살·관세음자재보살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 부른다.
 
관음보살은 특히 대자대비를 서원으로 하는 보살이다. 이 보살에 대해서는 방대한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 속에 거의 들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널리 나타나 있다.
 
우리 나라의 관음신앙은 주로 ≪화엄경≫·≪법화경≫·≪아미타경≫·≪능엄경≫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다. 모든 경전에 나타나 있는 관세음보살의 공통점은 세상을 구하고 생명 있는 자들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절대적 자비심인 무연대비(인연이 없어도 자비를 베풀음)를 중생에게 베풀어서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권능을 실행하는 힘이 관세음보살이라고 경전에서는 묘사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법화경≫ 「보문품」의하면, 어떤 장소에서 어떤 고난을 받는 중생이든다 구제해 주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에 간직하고 염불하면 큰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모든 악귀도 괴롭힐 수 없다. 착고와 칼과 쇠줄로 그 몸을 매고 놓아도 끊기고 부서지고 해, 곧 이에서 벗어난다고 기술되고 있다.
 
그 외 관음신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큰물에 빠졌을 지라도 그 명호를 부르면 곧 얕은 곳을 얻을것이며 흑풍이 불어서 그 배가 표류하여 멀리 나찰의 나라에 떨어지게 되었을지라도, 만일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이 모든 사람들이 다 나찰의 환난을 벗어나게 되리라, 관세음보살이 모든 4중과 하늘 용인 비인 등을 불쌍히 생각하고 이 영락을 받을지니라. 곧 이때 관세음보살이 모든 4중과 하늘 용인 비인들을 불쌍히 생각, 무진의보살이 관세음보살이란 명호가 붙여진 이유를 묻자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무향백천만억 중생이 있어 온갖 고뇌 받는다 해도, 관세음을 부른다면 고뇌에 풀려나게 된다.
 
만일 사람이 해를 입게될 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저 가지고 있는 칼과 막대기가 곧 조각조각 부셔져서 벗어나게 되리라, 혹은 3천대천 국토중에 가득한 야차 나찰이 와서 사람을 괴롭히고자 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을 들으면 이 모든 악한 귀신이 능히 악한 눈으로 보지도 못하거늘 하물며 더욱 해를 입히겠느냐, 관음력을 염하면 물결에도 빠지지 아니하며, 혹은 수미산 봉우리에서 사람에게 밀려 떨어질지라도 저 관음력을 염하면 해와 같이 허공에 머물게 된다는 믿음은 한국인의 소원성취를 이뤄주는 일호 신앙대상이 되었다.
 
우리 나라에 관음신앙이 전래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뿌리를 내린시기는 대략 6세기 말경의 삼국시대로 보인다. 부여 군수리사지에서 출토된 금동관음보살입상이 6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또, 제나라 육과의 ≪관세음응험기≫에 의하면, 백제 승려 발정이 502∼519년 사이에 중국으로 유학가서 30여 년을 머무르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월주지방의 관음도량을 참배하였다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측 사료에도 595년 백제의 장인을 시켜 관음상을 조각하였다는 기록과 백제 승려 일라가 583년에 일본으로 가서 일본의 쇼토쿠(聖德)태자와 관세음보살에 관해서 문답하였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또한, 일본 백제사의 본존이 관음상인 것도 백제에 관음신앙이 성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관음신앙이 성행한 지역으로는 동해의 낙산사, 남해의 보리암, 서해의 보문사는 우리나라의 3대 관음도량인 동시에 <보타락가>의 대표적인 신앙처이다. 이들이 위치한 곳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각 면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하고있는 어부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신적인 존재이다. 바다에 연해있는 이들 사찰의 관음은 여느 지역에서 부르는 관음과 다르게 해수관음으로 불리고 있다. 그 외 다르게 불리는 이름으로는 관세자재보살·연화수보살·대륜보살·정취보살·만월보살·수월보살·군다리보살이라고도 하며, 또 시무외자·대비성자·구세대사라고도 한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를 근원으로...세간의 모든 중생들의 소리를 관찰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한국에서의 용신앙-중국의 용 신앙이 전래되기 이전부터 존재한 독자적인 신앙
 
한반도의 용신앙의 기원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한국의 용신앙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거나, 중국의 용신앙과 같은 기원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한반도에도 독자적인 용 신앙이 중국의 용 신앙이 전래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는 견해이다.
 
우리 조상들은 용이 인간과 가까운 곳에 있다고 믿었다. 바다나 큰 강은 물론 집안의 우물이나 작은 개천 큰 바위아래, 치성을 드리는 샘터에도 용이 있다고 생각했다. 높은 산, 깊은 계곡에 작은 물가에도 깊은 바다와 연관지어져 있다는 생각은 강원도 태백산 해발 1470m에 위치한 망경사에서 용정과 용왕각을 짓고 용신에게 제사지내고 있다.
 
▲ 한국화가 김영태의 정월 대보름 용알뜨기. 민간에서 전해지는 용과 관련된 풍습과 전설으로 대표적인 풍습으로 정월 보름 날 첫 닭이 울 때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풍속이다.     © 매일종교신문

민간에서 전해지는 용과 관련된 풍습과 전설으로 대표적인 풍습으로 용알뜨기가 있다. 정월 보름 날 첫 닭이 울 때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풍속이다. 정월 첫 진일(辰日)이나 설날 아침에 하기도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황해도와 평안도 풍속에 보름 전날밤 닭이 울때를 기다려 집집마다 바가지를 가지고 서로 앞을 다투어 정화수를 길어온다. 이것을 노룡란이라 한다. 맨 먼저 깉는 사람이 그 해의 농사를 제일 잘 짓는다 하였는데, 지금은 이것을 복물, 수복를 뜬다하고, 혹은 용알을 떠온다고 한다. 정월 열 나흘날 밤에는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서 우물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물을 먼저 긷는 사람이 물을 뜰 때 용의 알을 뜰 확률이 가장 높아진다. 용알을 건져 간 집은 운수대통하고 풍년이 든다고 한다.
 
특히 바다에는 용왕이 주재하고 있으며 강이나 하천에는 용신이 각각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 신은 하늘과 물 물속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조화를 일으켜 구름과 비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조화무쌍한 영물로 생각되어왔다. 민간에서 용은 풍농·풍어를 관장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숭배되었다. 농가에서는 한발이 심한 5월에서 7월 사이 우물에 용왕제를 지내는 풍속이 있었다. 어촌에서는 출어하기 전 무당을 통해 용신제를 지내고 있다. 특히 무속)에서는 사해용왕신·용궁칠성신·용궁대신·천룡신등 많은 다른 이름으로 용신을 신앙하고 있다. 강화도 마니산에 오르는 길목에 단군과 관련 단체에서도 오래전부터 첨성단을 찾는 무속인들의 편의를 위해 물이 흐르는곳에 사해용궁이라는 전각을 짓고 기도객을 맞고 있다. 용의 출현은 길조이든 흉조이든 미래를 암시해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옛날 제나라의 왕이 한 화가에게 어떤것을 그리기가 제일 어려우냐고 물었다. 화가는 개와 말을 그리기가 제일 어렵다고 했다. 왕은 다시 어떤것을 그리기가 제일 쉬우냐고 물었다. 화가는 귀신이 제일 쉽다고 했다. 왜냐하면 개와 말은 모든 대상들이다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기 어렵고, 귀신은 본 사람이 없어 마음대로 그릴 수 있어 쉽다는 것이다.
 
용은 귀신과 같이 본 사람이 없는 사상속의 동물이다. 그러나 귀신과 다르게 그리는 하나의 약속이 있다. 그 약속에 의해 그려지는 용의 모습은 기린·봉황·거북과 아울러서 사영(四靈)에 참예하며, 비늘가진 동물 삼백육십 종류 중에는 용이 어른이라고 한다.
 
용은 조물주의 단독 창조물이 아니고 자연현상과 인간의 마음이 융합함으로써 태어난 환상적인 또 하나의 창조물로, 어느 특수한 종교의 독점물도 아니고 다양한 종교적 신앙행위뿐 아니라 민속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다같이 받아들인 영물이므로 위대한 존재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와같이 사람들의 인간적인 약속에 의해 생성된 용은 이렇듯 가상의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뿐 아니라 인도,중국,일본 등 아시아 전역에서 신앙되고 있다. 용은 우리말로 ‘미리’, ‘미르’, ‘므르(수)’라고 한다. 천지조화, 상서, 풍운조화 등 변화의 신이기도 하다. 신적존재로써 뿐 아니라 황제나 왕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동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상상속 허구의 동물인 용을 실존의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현대인들은 과학적 실증적 사고속에서 용은 상상의 동물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듯 가상공간과 현실사이를 넘나드는 용과 관련 전반적으로 고찰하기로 하였다.
 
다양한 용설화를 전해주고 있는『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용은 계룡,적룡,해룡,황룡,어룡,청룡,교룡으로 매우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용들의 공통점은 비를 부르는 농경문화와 관련 발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옛날 의상 법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대비진신이 이 바닷가 굴 안에 거주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름을 낙산이라 하였다.” 동해안 끝에 관음의 주처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의상이 창건한 부속사 설화에서 선묘낭자가 용으로 현신하여 불사를 방해하는 일부 승려들을 내쫓았다는 전설은 불교의 관음신앙과 용신앙의 대표적 결합이다. 종교적 권위경쟁에서 불교가 우위를 점했다는 증거로 사용된다. 불교포교를 방해하는 승려집단을 힘으로 제압했다는 전설은 양 종교의 우열경쟁이 아니라 서로가 융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 「미륵선화 미시랑 진자사조」에 나타난다. 진지왕 때에 흥륜사의 스님 진자에게 미륵선화 미시랑이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제 이름은 미시(未尸)요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으므로 성은 무엇인지 모릅니다.
 
여기서 ‘미시’는 ‘미리’ 또는 ‘미르’를 말한다. 이두에서의 ‘시’는 ‘리’ 음으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시’는 ‘미리’로 읽을 수 있는데 이 ‘미리’는 을 가리키는 우리 나라 토착어이다. 그러므로 ‘미시랑’은 재래의 용신과 관계된다는 단서를 지니게 된다. 이 미시랑은 화랑으로서 미륵불의 화신이 된 것이다. 흥륜사의 스님인 진자는 항상 당주인 미륵상 앞에 나아가 발원서言 기도한 결과 미시랑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대성이시어 화랑으로 화신하여 이 세상에 나타나 내가 항상 당신을 가까이 하여 시중하게 하소서.” 하였다. 그 간곡한 정성과 지극한 기원의 심정이 나날이 두터워지더니 어느 날 밤 꿈에 한 스님이 이르기를 “네가 웅천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를 볼 수 있으리라.” 하였다.
 
이 설화를 통하여 불교가 신라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의 용신과 불교의 미륵신앙이 접목되었다는 견해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실로 화랑 미시랑은 하생한 미륵불인 동시에 호국의 용신적 존재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속에서 죽은 망령의 위패를 좋은 곳으로 보낼 때 사용하는 용왕선은 용선 또는 석가여래 대기선이라고도 불리는 종이배인데, 절에서 지내는 해운제, 마을의 동제당의 당굿, 어촌의 풍어제, 무굿의 오기굿 등에서 제단과 굿 단에 장식되고 있는 바, 이 용왕선은 제단이나 굿단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내세에로 보내는 의식상의 운반기능을 지니고 있다. 이는 토착신앙과 불교의 신앙적 융화의 한 형태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한반도에 불교유입이후 용은 관음신앙이 불교와 무속의 직접적 융합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의 용 인식으로는『관자』의 「형세해」에서 “용은 물에 사는 동물의 신이니 물에 있으면 신의 능력이 생기고, 물이 없으면 신의 능력이 사라진다”고 하여 용의 초월적인 신성과 물과의 관련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순자』「권학편」에서는 “물이 모이면 못이 되고 여기에 이무기와 용이 산다”고 했고, 『회남자』「천문훈」에서는 “이무기와 용은 물에 살고 호랑이와 표범은 산에 사는 것이 자연의 이법이니라”고 하여 용과 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문헌이나 설화에서 용의 거주처가 주로 강·바다·내·샘·우물·연못 등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신으로서의 그 기능적 성격을 가늠케 한다. 용신앙에 대해서는 三品彰英이 이미 前揭<탈해전설>(1931) 및 <ヨソト神小考>(「朝鮮學報」10, 1956: 『增補日鮮神話傳說の硏究』1971)에서 脫解神話의 기반으로서의 신라사회의 龍神信仰의 존재 및 그것과 穀靈信仰과의 결합문제가 논의된 바 있지만, 1960년대 이후의 연구성과로는 권상노,『韓國古代信仰의 一臠 ‘미리’(龍)信仰과 ‘미륵’(彌勒)信仰에 對하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1963.松田健의 <古代韓族の龍蛇崇拜と王權>(『朝鮮學報』57,1970:『古代傳承と宮中祭祀』,1974)등이 있는데, 전자는 지명·설화등을 통하여 용신앙의 중요성을 밝히려는 한편 나아가서 그것이 미륵신앙으로 발전되었음을 논한 것이며, 후자는 용신신앙이 신라왕권의 신성화·정당화의 신앙적 기반이 되었음을 논한 것이다.
 
해수관음이란 토착신앙과 불교의 독특한 신앙 탄생
 
한국 고대의 민간신앙 가운데 대표적인 신앙형태인 용신앙과 불교의 관음신앙(해수관음)을 개괄해 보았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 바다를 연해 살아온 해변주민들은 바다가 삶의 터전이면서 두려운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곳을 지배하는 신성한 대상을 향해 자연신적 신앙을 신앙했다. 불교 전래이후 관음신앙과 융합후 해수관음이란 토착신앙과 불교의 독특한 신앙을 탄생시켰다. 사찰내 산신각, 칠성각과 함께 용왕전이란 별도의 전각을 통해 지금도 신앙되고 있다. 불교와 용 신앙의 융합관계는 특정종교와 신앙으로 발전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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