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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교양인을 위한 삼국유사 강의②수로부인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3/26 [14:28]
“설화 속 ‘용’ ‘신물’은 정체불명의 남자”

일반교양인을 위한 삼국유사 강의②수로부인

“설화 속 ‘용’ ‘신물’은 정체불명의 남자”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3/26 [14:28]
삼국유사는 철학은 물론 국문학,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국문학계는 이곳에서 전해주고 있는 향가 14수에 주목 다른 분야보다 먼저 연구를 시작 국문학 관련 서적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학풍은 단일분야의 연구가 아닌 여러 분야가 함께 연구하는 경향으로 변하고 있다.
 
이번에 우리가 공부하게 되는 수로부인에는 두 편의 향가가 전해지고 있다.
 
수로부인은 처용부인, 도화녀와 함께 신라 삼대미인으로 일찍부터 뭇 사내들의 마음을 독차지 하고 있다. 남편이 잠시 외출한 시간 역신과 함께 누워있다 들킨 처용부인, 전후 생을 통해 진한 사랑을 나눈 도화녀, 수로부인은 그들과 다르다 그녀의 빼어난 미모는 지나던 노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바다 용왕님 귀에도 들어가 납치를 당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를 끝까지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江陵)[지금의 명주(溟州)이다.] 태수로 임명되어 가던 중, 바닷가에 이르러 점심을 먹을 때였다. 주변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는데, 높이 천 길이나 되는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 삼척 임원항 부근 언덕위에 동해바다를 배경삼아 있는 수로부인 헌화공원의 수로부인상.     ©

공의 부인 수로가 그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꽃을 꺾어 바칠 사람 그 누구 없소?”
옆에서 모시는 사람이 말하였다.
“사람의 발자취가 이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모두들 할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그런데 옆에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있었는데,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고 노래까지 지어서 바쳤다. 그 노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노인은 한편의 시를 지어 보인다.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니,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시가 아름다운 것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하는 말이다. 그것도 암소를 잡고 가던 노인이 얼마전까지 농촌에서 소는 귀한 재산목록이다. 특히 암소는 숫 소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새끼를 분양받는 조건으로 소를 키워주기도 하고 학자금 마련하기 위해 내다 파는 재산이다. 한때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등록금 납부기간이 되면 지방에 우시장 소 가격은 폭락했다. 예전에는 지방에 땅 사는 시기가 봄이다. 지난겨울 농한기에 도박으로 땅을 잃은 농부들의 땅이 급매물로 나오는 시기가 이때다. 그런데 귀한 암소를 놓고 꺾으러 올라간다. 단 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전제되어있다. 수로부인의 미모에 빠져 젊은이들조차 감히 오르지 못하는 험한 곳이라고 하는 그곳에 오를 결심을 하지만 “꽃을 꺾어 당신께 바치는 모습에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간절하게 원하는 꽃을 꺾어 바치겠다. 그러나 혹 나의 몰골에 부담을 가지는 것은 아닌지 마지막 또 한 번 다짐을 하고 오른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멋진 장면이다. 남자에게 있어 사랑의 고백은 쉽지 않은 행동이다. 그런 마음을 잘 묘사한 노래가 있다.
 
송창식의 <맨 처음 고백>
 
말을 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 한번 먹는데/ 하루 이틀 사흘/ 돌아서서 말할까/ 마주서서 말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일주일 이주일/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 화를 내면 어쩌나/ 가버리면 어쩌나/ 눈치만 살피다가/ 한 달 두 달 세달/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화를 내면 어쩌나/ 가버리면 어쩌나/ 눈치만 살피다가/ 한 달 두 달 세달/ 눈치만 살피다가/ 한 달 두 달 세달
 
사내들이 퍽 용감한 듯하다 송창식의 노래처럼 수없이 고민을 하다 결행을 한다.
수로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상대에 대한 섬세함까지 포함되어 있다. 수로부인가 이성으로 본다면 얼굴에 홍조가 띄고 가슴은 뛰었을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이런 수로부인의 모습을 시인 서정주는 한편의 시를 내놓고 있다.
 
수로부인은 얼마나 이뻤는가?

徐 廷 柱
 
그네가 봄날에 나그네길을 가고 있노라면,
천지의 수컷들을 모조리 뇌새(惱殺)하는
그 미(美)의 서기(瑞氣)는
하늘 한복판 깊숙이까지 뻗쳐,
거기서 노는 젊은 신선들은 물론,
솔 그늘에 바둑 두던 늙은 신선까지가
그 인력(引力)에 끌려 땅위로 불거져 나와
끌고 온 검은 소나 뭐니
다 어디다 놓아 두어 뻐리고
철쭉꽃이나 한 가지 꺾어 들고 덤비며
청을 다해 노래 노래 부르고 있었네.
또 그네가 만일
바닷가의 어느 정자에서
도시락이나 먹고 앉었을라치면,
쇠붙이를 빨아들이는 자석 같은 그 미의 인력은
천 길 바다 속까지 뚫고 가 뻗쳐,
징글 징글한 용왕이란 놈 까지가
큰 쇠기둥 끌려 나오듯
해면으로 이끌려 나와
이판사판 그네를 들쳐업고
물 속으로 깊이 깊이 깊이
잠겨버리기라도 해야만 했었네.
 
그리하여
그네를 잃은 모든 산야의 남정네들은
저마마 큰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나와서
바다에 잠긴 그 아름다움 기어코 다시 뺏어내려고
해안선이란 해안선은 모조리 난타(亂打)해 대며
갖은 폭력의 데모를 다 벌이고 있었네.
― 《삼국유사》제2권, ‘수로부인’ 조.
 
이어령은 수로부인을 통해 ‘육체를 정복하는 영웅들의 떠들썩한 사랑도 그렇다고 수녀처럼 속세의 욕정을 버린 사원 속 같은 영혼만의 사랑(아웃사이더의 성자)도 아닌, 현실 속에서 잘 조화된 사랑을 발견하다. 현세 속에서 육체와 정신을 다같이 고양시킨 신선같은 사랑(인사이더로서의 성자)입니다.
그러나 수로부인은 대단히 정숙한 여인같지않다 심정적으로는 말이다. 우리 역사 속에 신라, 고려의 남녀 간 윤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쌍화점을 보면
 
(가게)
쌍화점(만두가게)에 쌍화(만두) 사러 가니
회회아비(서역인)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말씀이 이 가게밖에 나고 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가게 점원 네 말이라 하리라(생략)
 
(사찰)
삼장사에 공양하러가니
그 절 사주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말씀이 이 절 밖에 나도 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만 동자승 네 말이라 하리라(생략)
 
(우물가 용)
두레우물에 물을 길러 가니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말씀이 이 우물 밖에 나고 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만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생략)
 
(술집)
술 팔 집에 술을 사러 가니
그 집 아비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말씀이 이 집 밖에 나고 들면
디로러거디러
조그만 술 바가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생략)
 
만두가게에서는 외국인과 만나고 절에서는 주지스님, 우물가에서는 용, 술 사러가서는 그 집 주인과 한눈을 팔면서 모든 소문의 근원을 점원, 동자승, 두레박, 술 바가지 탓으로 돌리고 있다.
 
다시 이틀 동안 길을 가다가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의 용이 나타나 부인을 납치해서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정공은 넘어져 바닥에 쓰러졌으며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러자 또 어떤 한 노인이 말하였다.
“옛 사람들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 하였습니다. 지금 바다 속 짐승이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무서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이 지역 내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막대기로 언덕을 친다면 부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부른 「해가(海歌)」는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빼앗아 간 죄 그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바치지 않는다면
그물을 넣어 사로잡아 구워 먹으리라.
(水路夫人)
 
옛날 설화에 ‘용’이니 ‘신물’이니 하는것은 정체불명의 남자를 말한다. 결국 다른 남성들에게 납치당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남편은 부인이 다녀온 바다속이 궁금했고 그녀는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 “칠보로 꾸민 궁전의 음식이 달고 기름지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다녀온 그녀의 옷에는 ‘이 세상에서 맡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납치당한 부인을 놓고 남편은 ‘넘어져 바닥에 쓰러졌으며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런 모습을 본 한 노인이 여론을 통해 용의 부당함을 소리 소문을 낸다면 용도 여론에 때문에 부인을 순순히 내놓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일연은 여러 사람의 말은 마침내 인심을 움직인다는 중구삭금(衆口鑠金)을 말하고 싶은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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