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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 불교종 상가락쉬타 법사의 보살사상③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8/27 [12:30]
신종교운동(불교)⑥

삼보 불교종 상가락쉬타 법사의 보살사상③

신종교운동(불교)⑥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8/27 [12:30]
▲ 21세기형 대승보살도를 실천하고 있는 삼보 불교종 교주 상가락쉬타 법사.     ©매일종교신문
대승불교에서 보살(Bodhisattva)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술어(terminology)이다. 이 용어의 정의와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대승불교 이념이 머리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삼보불교종의 사실상의 교주인 상가락쉬타 법사가 산티데바의 불후의 명작인《입보살행론(入菩薩行論) Bodhicaryavatara》을 소의경론(所依經論 텍스트)으로 삼을 정도로 신뢰성을 보인 것을 주목해야 한다. 삼보 불교종은 다른 말로 하면 보살교단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을 구현하는 것을 삼보불교종의 실천이념으로 삼을 정도로 보살사상은 중요한 실천덕목이 되고 있다.
▲ 인도 아잔타 석굴 벽화 보살상 5세기.     © 매일종교신문
▲ 아프카니스탄 점토 보살상 7세기.     © 매일종교신문
보디삿트바는 보디+삿트바의 합성어인데, 보디는 ‘깨달음(覺)’이며, 삿트바는 ‘생명(有情)’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보디삿트바의 산스크리트어의 풀이는 보리심(菩提心 bodhicitta)을 일으키는 자를 의미한다. 보리심이란 깨닫겠다는 마음이다. 이 깨닫겠다는 마음은 대자비(大慈悲)와 함께 갖는 마음이다. 또 보리심은 모든 일체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자발적인 발원과 함께이다. 보살은 인간이 일생에서 성취할 수 있는 네 가지 수승한 경지 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에서 수행을 통한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서 오르는 지위를 아라한, 부처, 벽지불(緣覺.獨覺)과 보살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우리는 보살의 지위를 아라한이나 부처나 벽지불보다 하위의 개념에 두지만, 대승불교에서의 보살의 지위는 동등하다고 보는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적인 설명에 의하면 보디삿트바(보살)의 개념은 아라한 부처 벽지불(獨覺)과 동급의 경지이다. 한역(漢譯)에서는 ‘보살’ ‘보리사타’로 음사하고 뜻은 ‘각유정(覺有情)’으로 번역을 했다. 인도불교에서는 보살의 개념이 변천을 보이는데, 초기에는 보살이라면 특히 고오타마 싯다르타(석가부처님)와 관련하여 그의 전생이 보살(보디삿따)이었다고 하는데, 자타카(본생담)이야기를 통해서 전생에 수많은 보살로 몸을 바꾸면서 자기희생과 윤리적인 삶을 반복하며 부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밟아간다.
 
상좌부불교에서는 산스크리트어의 보디삿트바의 상당어구인 보디삿따란 용어를 사용하여 주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인 자타카(본생담) 이야기로 빨리 경전에 포함되어 있다. 부처님은 재세(在世) 시(時)에,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한 보디삿따...운운”하는 내용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좌부에서는 보살이라고 하면, “깨달음을 향한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보살이란 ‘완전히 깨닫게 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자’를 의미하며, 보살은 아직도 생(生) 병(病) 죽음(死)과 슬픔(悲)을 갖고 있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승불교에서의 보살의 이상은 대체로 ‘보살의 길(깨달음)’에 기반하고 있다. 마하야나(Mahāyāna)란 대승(大乘)은 원래 보디삿트바야나(Bodhisattvayāna 菩薩乘)와 동의어였다. 보디삿트바(보살)는 마하삿트바(Mahāsattva)라는 위대한 존재(중생)로서 한역에서는 대사(大士), 고사(高士)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보살은 보살마하살이라는 고상한 존재로서 여래(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자로 지칭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보살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하는 수행자란 말은 너무나 정확한 번역인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보살이 되고 보살서원을 세우기를 격려한다. 이런 보살서원들과 함께, 보살은 6파라미타를 실천하여 모든 존재(일체중생)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서원하는 존재인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하화중생이란 말의 뜻은, 무엇을 많아 알아서 중생들을 교육시키고 지도한다는 의미보다는 중생들을 위해서 다 함께 성불하도록 도와주는 이타적인 행위의 의미가 더 강한 것이다.
 
상좌부의 성문(聲聞 비구), 아라한, 벽지불(獨覺), 부처(佛)까지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자기만을 위해서 수행하는 존재라면, 보살마하살은 일체중생이 다 성불할 수 있도록 발원을 해서 적극적인 이타적인 수행을 하는 존재이다. 여기에 보살의 참뜻이 있는 것이다. 대승불교와 보살마하살이 합성되어서 대승보살(大乘菩薩)로 승화된 수행자(존재)가 되며 그 실천덕목인 6파라미타를 행하는 것을 대승보살의 길로 표현되고 있다.
 
대승불교권인 티베트(몽골 등)나 동아시아(중국 한국 일본) 불교에서 보살과 관련하여 ‘보살십지(菩薩十地)를 내 세운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보살은 10지(地 bhūmis)나 14지(地)를 통과해야한다고 한다. 여기서 부미(bhūmi)는 지(地)로 한역했는데, 단계나 과정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보살로서 10단계나 14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보살은 단순히 한 종류의 보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4대보살 8대보살 25보살까지 등장한다. 4대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이다. 8대보살은 4대보살에 미륵, 허공장(虛空藏), 금강수(金剛手), 제개장(除蓋障) 보살 등을 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4대보살에다가 대세지 무진의 보단화 약왕보살을 추가하기도 한다. 25보살은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보살에다가 다른 보살들을 더 추가하는데, 이런 보살들의 성격과 역할에 따라서 분류가 된다.《금강경》에서는 아상(我相=나라는 생각), 인상(人相=사람이라는 생각), 중생상(衆生相=중생이라는 생각)과 수자상(壽者相=목숨을 갖고 있는 존재)을 갖고 있다면 진정한 보살이 아니라고 했다.
 
대승불교에서는 진정한 보살의 지위에 오르기 위한 보살 52계위(階位)를《화엄경》에서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설하고 있다. 52계위는 십신위(十信位), 십주위(十住位), 십행위(十行位),십회향위(十迴向位), 십지(十地)의 50위(位)와 등각위(等覺位)와 묘각위(妙覺位)를 포함하여 보살 52계위를 제시하고 있다. 진정한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이 52위를 거쳐서 비로소 보살의 지위에 오른다는 말이며, 마지막 묘각위(妙覺位)에 올라야 부처와 동등한 경지에 오른다고 하는 것이다. 등각 묘각의 지위에 오르기 전의 보살10지는 매우 중요한데, 초지보살(初地菩薩)=환희지(歡喜地, 큰 기쁨), 2지보살(二地菩薩)=이구지(離垢地,부정(不淨)으로부터의 자유로움), 3지보살(三地菩薩)=발광지(發光地, 빛남, 인내에 의한), 4지보살(四地菩薩)=염혜지(燄慧地,빛나는 발광인데, 활기), 5지보살(五地菩薩)=난승지(難勝地, 어려운 수행과정을 극복한), 6지보살(六地菩薩)=현전지(現前地, 명백한 초월), 7지보살(七地菩薩)=원행지(遠行地, 남을 돕는 완벽한 방편), 8지보살(八地菩薩)=부동지(不動地, 부동의 대망을 이룸), 9지보살(九地菩薩)=선혜지(善慧地, 분별력), 10지보살(十地菩薩)=법운지(法雲地,근원적 지혜)이다. 적어도 10지 보살의 경지에 올라가면 불. 보살의 지위에 80%는 다가가 있다고 하겠다.
 
시대별로 보살상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서있는 보살상 간다라 2-3세기.     ©매일종교신문
▲ 여러 보살상 중국 6세기.     ©매일종교신문
▲ 벽화보살상 중국 당나라.     ©매일종교신문
▲ 관세음보살상 인도 11-12세기.     ©매일종교신문
▲ 금 옷을 입은 청동관세음보살입상, 스리비자야 스타일 수마트라 인도네시아.     ©매일종교신문

이상에서 여러 보살상을 보지만, 불교사에서 보살불교는 한 때 불교의 큰 물줄기였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 시대이후 부파불교에 이르기까지 승원(僧院) 중심주의가 지배했고, 현재도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상좌부 불교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보살사상 운동이 등장하면서 대승불교운동이 촉발되었고, 대승보살불교는 광범위한 지역과 다수의 대중들에게 호응을 받았고, 큰 영향을 미쳤던 것만은 분명하다. 대승보살불교운동이 재가불자 중심으로 추동되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티베트 불교가 인도 후기 대승불교와 밀교(딴뜨라)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후기 대승불교나 금강승 불교가 재가불자들에 의해서 주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다시 삼보 불교종으로 돌아가면, 상가락쉬타 법사는 이런 대승불교이념과 대승보살정신을 계승해서 현대 영국사회에서 구체화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분이다. 재가불교지도자의 입장이 아닌 적어도 21세기형 프로테스탄트적인 보살승(菩薩僧=승려=법사)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상좌부 비구로 입문했지만, 대승불교 특히 티베트불교(인도후기 대승)를 접하면서 보살이란 이상형을 만나서 그의 불교관이나 승려관은 변화를 보였고, 통불교적인 인식으로 진화해 감을 알 수 있으며, 영국에서 삼보 불교회(宗)로 구체화시켜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해동불교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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