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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손재의 모친상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11/0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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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손재의 모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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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11/02 [15:54]

顔回問仲尼曰: 「孟孫才, 其母死, 哭泣無涕, 中心不戚, 居喪不哀. 無是三者, 以善處喪蓋魯國, 固有無其實而得其名者乎? 回壹怪之.」 仲尼曰: 「夫孟孫氏盡之矣, 進於知矣, 唯簡之而不得, 夫已有所簡矣. 孟孫氏不知所以生, 不知所以死. 不知就先, 不知就後. 若化爲物, 以待其所不知之化已乎. 且方將化, 惡知不化哉?
方將不化, 惡知已化哉? 吾特與汝, 其夢未始覺者邪! 且彼有駭形而無損心, 有旦宅而無耗精. 孟孫氏特覺, 人哭亦哭, 是自其所以乃. 且也相與吾之耳矣, 庸?知吾所謂吾之非吾乎? 且汝夢爲鳥而?乎天, 夢爲魚而沒於淵. 不識今之言者, 其覺者乎? 其夢者乎? 造適不及笑, 獻笑不及排, 安排而去化, 乃入於寥天一.」
 
안회가 중니(공자)에게 물었다.
“맹손재孟孫才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곡읍哭泣만 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례 중에도 우울해하지도 않았고 애통해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 가지 예를 빠트리고도 상례를 잘 치렀다고 노나라에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이처럼 사실이 그렇지 않은데도 소문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까? 저는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중니가 말했다.
“맹손씨는 이미 상례에서 할 도리를 다 했다. 그는 상례를 잘 아는 사람보다 더 앞선 자이다. 다만 간략하게 하려고 했으나 세속의 관습으로 어쩔 수 없이 곡읍의 예를 지켜 상례를 치르는 등 자신의 뜻대로는 할 수 없었지만 세속 사람에 비하면 이미 간략하게 치룬 것이다.
 
맹손씨는 생사의 일을 자연에 맡겼으므로 삶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죽음의 이유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생사가 이미 하나임을 알았기 때문에 구분하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도 알려고 하지 않고 죽고 난 뒤의 모습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무엇이든 되고,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변화를 기다릴 뿐이다. 또한 지금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변화하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을 어떻게 알겠으며, 아직 변화하지 않았다면 변화한 다음의 모습을 어찌 알겠는가? 나와 자네는 생사에 초탈하지 못하고 세속 예법에 속박되어 있는 걸 보면 처음부터 꿈속에 있으면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 맹손씨는 외형의 변화에 놀라는 일은 있어도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게다.
 
변화는 단지 형체의 변동으로 여길 뿐이므로 생사가 그 마음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담고 있는 집을 옮기는 일은 있지만 집에 머물고 있는 마음이 죽는 일은 없다. 맹손씨는 항상 깨어 있어서 세상을 거스르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곡을 하면 그도 따라서 곡을 하였으니 이러한 것이 그가 곡을 한 모습을 보이게 된 까닭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잠깐 동안 서로 함께 하는 것을 ‘나’라고 여길 뿐이니, 수많은 변화 가운데 잠시 머무는 순간일 뿐인데 어찌 나 자신이 말하는 나라고 하는 것이 정말 나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안회야 너는 꿈에 새가 되어 하늘에 오르기도 하고, 물고기가 되어 물속에 잠기기도 하겠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너와 나도 꿈에서 깨어난 것인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니냐?
 
자기 마음에 드는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잠시 흐뭇해하는 것이 어떤 환경에도 마음 쓰지 않고 저절로 우러나오는 웃음에는 미칠 수 없고 이런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도 자연의 조화를 따르는 것보다 못하다. 대자연의 조화에 편히 맡기고 변화를 그대로 따르면 곧 자연과 하나가 되는 그윽한 경지에 들게 된다.”
 
 
孟孫才(맹손재): 노나라 사람. 三桓(삼환)의 후손으로 才(재)는 이름.
哭泣無涕(곡읍무체): 곡읍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음.
壹怪之(일괴지): 오직 이상히 여김. 壹(일)은 오로지.
進於知矣(진어지의): 상례를 아는 사람보다 한 차원 높다.
唯簡之而不得(유간지이부득) 夫已有所簡矣(부이유소간의): 비록 상례를 간소히 치르려 하다가 뜻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세속의 상례보다는 간소히 치렀다고 할만하다.
不知就先(부지취선) 不知就後(부지취후):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을 알려고 하지 아니하고 죽고 난 뒤의 모습도 알려고 하지 않음.
若化爲物(약화위물) 以待其所不知之化已乎(이대기소부지지화이호): 변화를 따라 사물이 되어 아직 알지 못하는 변화를 기다릴 뿐임. 곧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여 무슨 사물이 되든지 그와 일체가 된다는 뜻. 若(약)은 따르다[順(순)].
方將化(방장화) 惡知不化哉(오지불화재) 方將不化(방장불화) 惡知已化哉(악지이화재): 막 변화했을 때 아직 변화하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을 어찌 알 것이며, 아직 변화하지 않았을 때 이미 변화한 이후의 모습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곧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도 죽어서 변화한 이후의 모습도 알 수 없다는 뜻.
其夢未始覺者邪(기몽미시교자야): 아마도 아직 처음부터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임.
彼有駭形而無損心(피유해형이무손심): 저 사람은 몸이 놀라는 일은 있어도 마음이 손상당하는 일은 없음. 죽음을 앞에 두고 겉모습은 마치 놀란듯하지만 마음은 동요하지 않는다는 뜻.
是自其所以乃(시자기소이내): 이것이 바로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임. 상례를 잘 치렀다는 명성을 얻게 된 이유임.
且也相與(차야상여) 吾之耳矣(오지이의): 또한 세상 사람들은 잠시 서로 함께 하는 것을 ‘나’라고 여기는 것일 뿐임. 세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수많은 변화 가운데에 잠시 머무는 형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庸?知吾所謂吾之乎(용거지오소위오지호): 어찌 나 자신이 이른바 나라고 여기는 것임을 알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 자기 자신임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는 뜻.
夢爲鳥而?乎天(몽위조이려호천) 夢爲魚而沒於淵(몽위어이몰어연): 꿈에 새가 되어 하늘에 이르며 꿈에 물고기가 되어 연못에 잠기다.
今之言者(금지언자) 其覺者乎(기교자호) 其夢者乎(기몽자호):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꿈에서 깨어난 것인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造適(조적) 不及笑(불급소): 잠시의 즐거움은 웃음만 못하다. 마음속에서만 흐뭇함을 느끼는 것은 즐거움이 웃음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 외적인 조건은 주관적 행복에 미칠 수 없다.
獻笑(헌소) 不及排(불급배): 드러난 웃음이라도 자연의 推移를 따르는 것보다 못함. 주관적 행복은 천지자연과 하나 된 마음에는 미칠 수 없다.
安排而去化(안배이거화): 자연의 추이를 편안히 받아들여 변화한다는 사실 자체까지도 잊어버림.
入於廖天一(입어료천일) : 고요한 하늘과 일체가 되는 경지에 들어감.
 
 
사람은 자연의 만 가지 변화의 흐름에 따라 하나의 물질인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또 그 변화의 물결을 타고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 태어난 이유를 모르듯이 죽는 이유도 알 수 없다. 태어나기 전의 일을 모르는데 죽은 뒤의 일을 어찌 알 수 있는가? 편안하게 자연에 맡기고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죽음을 슬퍼하고 이별을 가슴아파하는 것이 인간의 정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어떤 바람으로 이끌려고 애를 쓴다. 이러한 바람은 분명 사람의 꿈이다. 보통사람들의 생각으로 본다면 맹손재는 인정머리 없는 못된 아들이다. 그러나 변화의 근본 도리대로 따져 본다면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차라리 ‘번잡한 꾸밈’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다시 한 번 헤아려보게 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꿈에 새도 되고 물고기도 된다는 것은 무엇으로 변화해도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생의 변화도 애석할 것이 없다. 주어진 바에 모두 쾌적하면 쾌적하다는 것도 잊어버리는 까닭에 그저 절로 우러나는 웃음만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맹손은 항상 쾌적하므로 곡을 하더라도 슬퍼하지 않아서 변화와 함께 가며 어떤 흐름에도 편안하여 고요히 하늘과 더불어 하나가 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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