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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편집국 | 기사입력 2013/06/20 [15:56]
오펜하이머는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원폭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오펜하이머는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편집국 | 입력 : 2013/06/20 [15:56]
 
 
 ‘원폭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과학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이면서 동시에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어떤 문이 지옥의 문인지 혹은 천국의 문인지에 대한 설명서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 열쇠를 버리고 천국의 문에 들어갈 방법을 없애 버려야 할까? 아니면 그 열쇠를 사용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열심히 토론하고 씨름해야 할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사람마다 소신이 다르겠지만, 내 생각엔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라는 가치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고 본다.”
 

 
 꾸밈없는 성격에 유쾌한 언행으로도 유명한 20세기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우리 앞에 던진 명제다. 위대한 과학의 성취와, 그 못지않은 위험성을 압축한 이 말은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 하시네요>에 등장하는데, 그건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핵심주제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미국 로스앨러모스연구기자에 모인 과학자들은 핵반응을 통해 인류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자칫 어마어마한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때문에 연구소와 정치권에서는 계속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과,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했고,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오펜하이머다. 그런 오펜하이머는 최상의 과학자이자 시인의 두 모습을 지녔다. 실제 삶도 영광과 몰락이 함께 하는 드라마다. 그가 로스앨러모스에서 발휘한 리더십은 핵물리학의 큰 성과로 나타났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오히려 스파이로 몰렸고 공개적인 모욕을 당했다. <아메리칸 프로메터우스>는 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까지 과연 어떠한 일이 있었으며, 자신의 인생의 최대 성과가 살인무기로 쓰인다는 우려 속에서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를 밝혀낸다. 인물 평전이지만, 불화를 겪었던 시대와의 긴장감도 선명하다.


 
 여기에서 다시 파인만 이야기다. 아다시피 파인만도 원폭 개발에 참여했다. 그러나 넘버 원 즉 개발의 총 책임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타고난 성격도 좋았다. 파인만은 스스로 얽매임 없이 자유로이 생각하고 행동했으며, 학생들에게도 학점이나 취직 걱정을 떠나서 뭐든지 각자에게 제일 흥미로운 영역을 파고들라고 강조했다. 그가 남미의 타악기 연주를 즐기던 아마추어로도 유명했고, 유머감각도 으뜸이었다. 자신이 학계의 권위자였음에도 태생적으로 권위를 거부하고 독자적 사고를 추구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하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은 분명한 천재, 그러나 굴곡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모순적 캐릭터다. 과학 그리고 과학자라는 게 중립의 영역이기는커녕, 세상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오펜하이머야말로 그 상징임을 보여준다. 어릴 적 모습부터 그렇다. 그는 양복지 안감 수입상으로 돈을 번 유대인 아버지와 독일계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초·중·고교 시절 1등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으나 다른 아이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은 사회성 부족의 외톨이였다.


 
 아인슈타인이 인류의 과학사를 바꾼 물리학 천재라면, 오펜하이머는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릴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한 르네상스 맨이다. 사망 1년 전 프린스턴대학이 그에게 수여한 명예박사 학위기록에는 “물리학자로서 철학자, 마술가(馬術家)이며, 뱃사람이자 언어학자이고, 요리인이자 좋은 와인과 시의 애호가”라고 돼있다. 팔방미인, 그러나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으로 천국의 문과 지옥의 문을 간수하는 열쇠를 함께 쥐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그린, 1천 쪽이 훌쩍 넘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시사 주간지 ‘더 네이션’의 객원 편집자로 활동 중인 저널리스트 카이 버드와 미국 터프츠대학 역사학 교수인 마틴 셔윈이 6년에 걸친 현지답사와 관련자 100여명 인터뷰, FBI 문서 1만여 건 열람 등을 통해 재구성한 오펜하이머 일대기이다. 단편적 사실의 나열이 아닌,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과정을 총체적이고 유기적으로 담아 천재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구성했고, 이를 통해 논란 속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우리는 병 속에 든 두 마리의 전갈과 같다. 서로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러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단히 끔찍한 무기를 만들었고 이는 세상을 한순간에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것을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는 과연 과학이 인간에게 유익하기만 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파인만 식의 고뇌를 그 역시 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호리호리한 몸집의 그는 1930년대 중반서부터 갑작스레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괴팅겐에서 은사인 막스 보른이 추방되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다. 이후 그는 추방된 유대인 물리학자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고 스페인 내전(1936~1939년)에 참전한 사람들도 후원하게 된다. 노조운동, 특히 교직원 노동조합 참여는 주변에 반(反)나치즘·반파시즘 운동을 하는 좌익계 인사들이 모여들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 책에는 그가 1930년대부터 자유주의 성향의 공산당 동조자였다는 대목도 보인다.


 
 여기에 약혼녀였던 진 태트록의 공산당원 경력, 1940년 공산당원의 아내였던 키티 해리슨과의 결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을 휩쓴 매카시 선풍에 오펜하이머를 휘말리게 하는 크고 작은 원인이 된다. 이런 모순에 찬 정치적 성향에다가 그 스스로가 몸살을 앓는 스타일이다. 엄청난 인명을 죽게 한 죄책감·악몽이 그를 옥죄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이 터진 직후 그는 신경쇠약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FBI 정보원이 상부에 보고했을 정도다.
 

 하지만 세상은 달리 돌아갔다. 처음에 원폭투하가 성공하자 ‘손에 피를 묻힌’ 과학자 의 마음의 병을 알 리 없는 세상은 마냥 열광했다. 오펜하이머도 인간인지라 그걸 즐겼다. “그는 과학자·정치가로 탈바꿈했고, 심지어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파이프를 피우고 중절모를 쓰는 등 조금은 가식적인”(538쪽) 모습을 연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찬양 중 가장 멋진 게 ‘사이언티픽 먼슬리’ 기사다. 그를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로 치켜세웠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다시 올림푸스 산으로 돌격해 인간을 위해 제우스의 벼락을 가지고 돌아왔다.”


 
 책 제목도 여기에서 따왔는데, 표면적 발언과 달리 오펜하이머는 “워싱턴의 장성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동시에 인류의 구세주가 되고 싶어했다”(641쪽)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만은 안 됐다. 오펜하이머는 MIT대 강연에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이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등 ‘자폭성’ 폭탄 발언을 했다. “사실상 패배한 적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그는 애초부터 핵무기 확신범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워싱턴이 입이 거칠고, 말썽을 일으키는 주범 오펜하이머를 놔둘 리 없었다. 1954년 공산당 동조혐의와 수소폭탄 제조반대 발언을 빌미 삼아 법무부와 반미활동조사위가 조사를 벌였다.  위대한 과학자이자, 과학 행정가의 대추락이었다. 이는 63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그에게 페르미상을 주며 복권하기 전까지 시간이 오래 갔다. 상처도 컸다. 그런데 궁금하다. 오펜하이머의 진짜 모습은 뭐였을까? 저자는 두둔도 비판도 배제한 채 그는 태생적으로 명석함과 불안감 그리고 금욕주의와 혼란스러움을 함께 가졌다는 입장이다.  2006년 퓰리처상을 받은 이 책은 한국독자들에게는 분량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냉전사나 과학사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유효한 저술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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