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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문화의 장점을 살리자

운영자 | 기사입력 2013/06/20 [16:00]
전국 축제 무려 1,600여개

축제문화의 장점을 살리자

전국 축제 무려 1,600여개

운영자 | 입력 : 2013/06/20 [16:00]
 
 
축제문화의 장점을 살리자 







 
우리나라엔 1천6백개의 지역축제가 있다. 또한 한국이 월드컵을 성공적인 축제로 승화시킨 것은 축제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성에 근거한다.







한국문화는 앞에서 주기부리형(主氣副理形: 氣가 主가 되고 理가 副가 되는 문화를 말한다)문화라고 말했다. 이 주기형(主氣形)문화를 총체적으로 말하면 축제를 통해 문화를 운영하는 경향이 강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의 축제적 특성이 가지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면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 일등국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지구상에는 장점만 가진 민족과 문화도 없고, 단점만 가진 민족과 문화도 없다. 또한 바로 한 때는 장점이던 것이 단점이 되고, 한 때는 단점이던 것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 단지 자신의 특징과 장점을 살릴 때 문화가 융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축제문화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전쟁과 경쟁의 시대에서 축제와 예술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는 대중적으로 ‘여성시대’라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 바로 여성적 이미지가 이제 세계를 이끌어 가는 시대이다. 한국이야말로 여기에 여러모로 성공적으로 적응할 요소를 가지고 있다. 축제는 신체적인 의사소통을 매우 중시하며 궁극적으로 기(氣)의 커뮤니케이션을 목표하고 있다.


지구촌을 열광과 환희와 탄식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월드컵,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한-일 월드컵은 글로벌한 축제였다. 한국이 이 지구촌 축제를 잘 이끌어간 것도 다 오랜 축제문화의 전통으로 축적된 노하우가 우리의 유전인자 속에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88년 서울올림픽도 우린 잘 치른 경험도 있었다. 월드컵은 운동경기 이상의 것이다. 월드컵은 신체적 표현 이상의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가 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온 국력을 동원하고 마치 대리전 같은 성격을 띄우는 것은 바로 월드컵의 상징성 때문이다.


월드컵은 현대의 국력이다. 월드컵은 그 나라의 성격이고 역사이다. 월드컵은 따라서 국가이고 동시에 국민이다. 월드컵은 각 국의 삶 그 자체, 삶의 전부인 것이다. 월드컵을 통해서 각 국은 사실상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발가벗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월드컵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심성을 드러내놓는다. 선수와 응원하는 관중들의 경쟁과 광란을 통해 마치 원시-미개인들은 보는 기분에 실망감보다는 오히려 잃어버린 인간의 본성을 되찾는 것 같은 신선함마저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보디페인팅을 시작하였다. 원초적 표현의 시기인 셈이다. 그래서 또 다시 우리는 2022년 월드컵 유치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산업화라는 기계문명 속에서 살아남은, 어떠한 문화보다도 더 원시적인(primitive)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은 월드컵 기간 중에 언어를 신체로 대치해 버렸다. 바벨탑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매우 예언적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막다른 골목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인간을 비추고 있는 것이 축제이고 시적(詩的) 상징이다. 월드컵은 바로 인간의 신체가 벌이는 최대의 시적 상상이다. 월드컵 기간 중에 우리 국민은 모두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잊어버린 신화를 되찾았다. 우리에게 이러한 힘이 있었던가? 오늘의 우리를, 우리의 몸(신체)을 있게 한 우리의 조상들은 누구인가? 그렇게 반문하면서 신화를 회복하는 셈이다.






축제의 이름만도 1천6백 개




 
축제는 종교적인 행사에서 그 기원을 찾지만 종교를 떠나서 일상생활 속에서 축제를 끊임없이 즐겨온 민족이 우리이다. 농업사회 때 만들어진 각종 축제는 오늘날 다시 많은 변형을 만들어내고 향토문화제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진 채 다음세대로 전해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축제라고 거명되는 것은 1천5백90종에 이르고 이를 지역단위로 분류하면 향토문화축제 3백29종, 예술제 29종에 이른다. 축제는 시기별(세시놀이, 연중행사, 별신제) 지역별(강릉단오제, 은산별신제, 하회별신굿놀이) 목적별(치병굿, 진오귀굿, 풍농굿, 풍어제) 등 여러 기준에 의해 분류될 수 있다.


물론 축제는 단순히 문화의 「내용물의 집합」이 아니라 「내재적인 통합의 원리(law)」가 있다. 이런 축제의 통합(統合)에 관한 한 엄청난 노하우(Know How)를 가진 게 우리 민족이다. 이것은 원천적으로 많은, 잡다한, 다양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 틀을 우리민족이 가지고 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또 여기엔 지리적 조건(온대, 사계절, 삼한사온)과 체질적 특성(북방민족의 강인한 체질), 그리고 오랜 역사를 통해서 부단한 국제문화와의 접촉,수용이 이루어진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다사다난(多事多難)한 민족이었다.


우리 역사의 진행은 확실히 역사발전의 법칙―즉 역사발전의 언어―을 수립했다기보다는 다분히 정감(감정)에 의존하는, 축제적(연극적) 진행을 하였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래서 역사에서 부단히 침략을 받거나 사대가 아니면 때로는 식민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원초적 생명력을 회복하고 그 생존력을 잃지 않게 하는 축제문화인 것이다. 이 말은 우리 민족이 역사적 언어를 가지지 않았다기보다는 그러한 언어가 부차적인,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들러리에 불과하거나 단지 도구적으로 쓰이고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 역사의 원동력은 우리의 경우 언어라기보다는 신체였다. 대화보다는 사회의 운동(혁명)을 통해서 역사발전을 이룩했다고 본다면 지나친 단순화, 비약일까?


한국인에게는 축제로 시작해서 축제로 끝나는, 즉 축제적 순환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완결된다. 예컨대 제국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인류의 역사사회적 모든 언어는 장식에 불과하다. 한국인은 오직 축제에 참가했을 뿐인 것이다. 축제가 끝나면 모든 것은 원점에서 새로 시작된다. 모든 문명은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서 출발하여 옷을 어떻게 벗느냐의 문제로 끝을 맺는다. 옷을 입는 것이 이(理)라면 옷을 벗는 것은 기(氣)이다. 한국인은 옷을 완전히 벗는 것(이것은 최고의 자연스러움이지만)의 의미를 안다. 그 순수함은 어떠한 옷이라도 소화하는 능력과 통한다.


한국인은 옷을 완전히 벗을 줄 아는 춤꾼이다. 무당이다. 그래서 신(神)들과 통한다. 종국에서는 정(精),기(氣),신(神)이 하나(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임을 아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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