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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의 마음을 읽고 ‘自然’으로 살기

편집국 | 기사입력 2013/06/20 [16:03]
자연의 섭리(攝理)에 따른 삶의 이정표 찾아야

老子의 마음을 읽고 ‘自然’으로 살기

자연의 섭리(攝理)에 따른 삶의 이정표 찾아야

편집국 | 입력 : 2013/06/20 [16:03]
 
 
老子의 마음을 읽고 ‘自然’으로 살기 


 
김윤세 '짭잘한 건강이야기'




 
‘한국의 자살률이 OECD 30여 국가 중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천안함 침몰사고 소식’ 등 우울한 뉴스들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면서, 우리는 다시금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라는 명제(命題)를 놓고 역사적으로 수많은 성현(聖賢)들에 의해 적지 않은 가르침이 제시됐는데 그 중 노자의 ‘섭생론(攝生論)’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자연의 섭리(攝理)에 따른 삶의 이정표’로서 그 역할과 기능을 다하고 있다.


‘귀생(貴生)’이라는 장(章)의 이름이 붙은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50장에서는 “섭생을 잘 하는 사람에게는 죽을 땅이 없다(善攝生者 無死地)” 즉 “우주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는 순리적(順理的) 삶을 사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죽을 땅으로 들여보내지 않는다”라는 묘한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 장의 첫 머리에 ‘출생입사(出生入死)’라는 매우 간단한 말 한 마디가 나오는데 참으로 묘한 말이다. ‘출생입사’는 너무나 간명(簡明)하기 때문에 수많은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 그런 해석들을 접하면 노자께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참뜻을 이해하기가 더더욱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 대목에 대해 “태어나서 살다가 들어가서 죽는다”라는 글자대로 해석하면서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견해를 보인다.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자께서 이야기 하려는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필자는 나름대로 오랜 세월 연찬하며 고민한 끝에 아마도 노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뜻이 아닐까라고 결론을 내려 본다. ‘출생입사’의 의미는 ‘출어생지(出於生地)하여 입어사지(入於死地)라’, 즉 “생지(生地)에서 나가서 사지(死地)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해걱하는 것이다.


“생지에서 나가 사지로 들어간다(出生入死). 생지에서 제 명대로 사는 사람들이 열에 셋은 되고(生之徒 十有三), 사지에 들어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비명(非命)에 죽어가는 사람들 또한 열에 셋은 된다(死之徒 十有三). 생지에 있으면서도 오래지 않아 제 발로 사지로 이동해가는 사람들 역시 열에 셋쯤 된다(人之生動之死之者 亦十有三). 대체 왜 그런가(夫何故)? 자신의 삶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 채 그저 살아 있으니까 살고, 살던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以其生生之厚).”


생지에서 사지로 가든, 사지에서 생지로 가든 스스로 자신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 과거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 그 속에서 살아나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깥에 있다가 무너지는 순간 안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그 때 그 사람에게는 그곳이 사지이다. 생지에서 사지로 들어간 것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였던 것이다. 사람들의 죽고 사는 모습들을 보면서 노자는 왜들 저렇게 제 스스로 사지로 들어가느냐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이치에 맞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영위하는 게 아니라 인위적(人爲的)이고, 인공적(人工的)인 삶에 집착하여 되는대로, 살던 대로 살아가기 때문(以其生生之厚)”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해 들려준 이야기로 생각된다. 즉 심플하고 자연스럽게 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살거나 욕심으로 복잡다단하게 사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요, 본질이라는 얘기인 셈이다.


“섭생(攝生)을 정말 잘하는 사람은(蓋聞善攝生者) 육지에 다니면서도 물소에게 받힐 일이 없고 호랑이한테 긁힐 일이 없다(陸行不遇兕虎). 전쟁터에 들어가서도 칼이나 화살에 맞을 일이 없다(入軍不被甲兵). 물소가 받을 곳이 없고(兕無所投其角), 호랑이가 발톱으로 칠 데가 없다(虎無所措其爪). 또 칼이나 활이 파고 들어갈 곳이 없다(兵無所容其刃). 왜 그럴까(夫何故)? 그에게는 죽을 땅이 없고 따라서 그는 죽을 땅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以其無死地).” 제 스스로 사지에 들어간 적이 없는데 죽을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 제 발로 사지를 찾아 들어간다.


노자의 가르침대로 섭생을 잘하는 사람들은, 즉 생명을 잘 경영하는 이들은 스스로 암, 난치병, 괴질을 자초하여 사지(死地)로 갈 일도 없으려니와 설혹 자신의 과오는 아니지만 몹쓸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자연(自然)으로 돌아가서 자연의 법칙에 부합하는 순리적 삶을 영위하면 몸 안의 자연치유능력을 극대화시켜 암, 난치병, 괴질을 자연스럽게 물리치게 된다. 그러기에 순리적인 마음생활과  현명한 섭생으로 활로(活路)를 찾아 사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연으로부터 세상에 나온 인간에게 발생한 중대한 문제의 해법은 반드시 ‘자연’에 있다.


성현(聖賢)들의 가르침 속에는 우리가 정말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비밀들이 숨김없이 공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좀 더 주의 깊게 보고 듣고 또 그걸 통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그냥 흘려버리는 경향 때문에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참된 의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잣대를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첫째 순리적인 것인지의 여부요, 둘째 자연의 법칙에 맞는 것이냐의 여부이다. 생명의 원리와 자연법칙에 맞으면 참된 의학이요, 우리들의 생명을 위한 의학이 틀림없으므로 그것으로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력(自力), 자가(自家), 자연(自然)의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순리와 자연의 ‘참된 의학’의 잣대로 지혜로운 판단과 선택을 하고 ‘참 의료의 묘방(妙方)과 신약(神藥)’을 활용하여 온 정성을 다하여 각종 암, 난치병, 괴질 들을 물리치면 생명의 건강은 자연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생명환경은 공해나 온갖 복잡다단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조건에 의해 적지 않은 위협을 받고 있어서 제 명(命)대로 살기조차 쉽지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진리를 갈구하는 간절한 구도(求道) 자세로 해결책을 찾는다면 자력, 자가, 자연, 또 천연약물, 자연 요법들을 활용해 얼마든지 건강을 회복해 자연수명이 다할 때까지 건강하게 천수(天壽)를 다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다. 건강할 때 섭생(攝生)을 잘하고 생명의 경영 관리를 잘해야 가정의 행복도 보장될 수 있다.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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