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朝三暮四와 老馬之智(어리석은 원숭이와 늙은 말의 지혜)

원영진 | 기사입력 2016/07/28 [07:23]
삶의 지혜는 자기의 고집된 관념을 내려놓는데 있다

朝三暮四와 老馬之智(어리석은 원숭이와 늙은 말의 지혜)

삶의 지혜는 자기의 고집된 관념을 내려놓는데 있다

원영진 | 입력 : 2016/07/28 [07:23]
‘조삼모사(朝三暮四)와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이야기가 있다.
 
어리석은 원숭이와 늙은 말의 지혜를 생각한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고 악을 쓴다. 나만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방을 탓하고 지적하고 모든 문제가 갈등과 대립으로 양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장자의 글에 조삼모사라는 말이 있다. 원숭이를 키우는 저공(狙公)이 하루는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말한다.
 
“앞으로는 아침에 세 공기, 저녁에는 네 공기씩 주기로 하겠다.” 그 말에 원숭이들이 일제히 성을 냈다. 그래서 저공이 “그러면 아침에 네 공기 저녁에 세 공기를 주겠다.”하고 말하자 원숭이들이 금방 화를 풀고 기뻐했다고 한다.
 
사실 주는 것은 아침에 많이 주나 저녁에 많이 주나 아무차이가 없는데 어떤 때는 기뻐하고 어떤 때는 성을 내는 것이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관념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른 것의 구별을 세우지 않고 일체를 자연의 조화 즉 천륜(天倫)에 맡긴다고 했다. 이 진리를 양행(兩行)이라고 했다. 자기의 주장만이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무시하는 오직 내 것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관념에 빠져 한평생을 헤어나지 못하는 우물 안에 개구리 사고가 우리 사회에 의외로 많이 있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재산을 모두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일생까지 모두 바치고 한 평생을 허망하게 사는 이를 본다.
 
자기가 하늘같이 추종하는 교주는 감옥에 가서 법의 심판을 받고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데도 오히려 이유를 들어 감싸고 죄를 덮는 무지를 본다. 자기가 생각하는 무지한 관념에 빠진 어리석음이다. 변화할 줄 모르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파괴되어 간다.
 
분명히 북한 공산주의가 망하고 있고 수백만 우리 자손들이 굶주림 속에 죽었음에도 북한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주사파와 좌파 주의자들, 끝까지 그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북으로 자진 귀향하는 어리석은 무지를 우리는 보았다.
 
우리의 뇌가 한번 인식을 잘못하면 그 인식의 수정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관념이 변하지 않고 고집으로 집착하여 스스로 좌절되고 결과적으로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 명재상 관중(管仲)의 이야기가 있다.
 
제나라 병사들이 혹한 추위에 길을 잃고 방황했다. 관중이 나섰다. 늙은 말의 지혜를 얻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늙은 말이 길을 인도할 것이다. 앞장서는 말이 봄에 왔던 길을 찾아 갔기 때문이다.
 
무사히 군사들은 회군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산길에서 식수가 떨어져 군사들이 갈증에 시달렸다. 이번엔 습봉이 나섰다.
 
개미는 겨울철에 산 남쪽 양지에 집을 짓고 산다. 흙 쌓인 개미집 땅 속에 반드시 물이 있기 때문이다. 군사들이 개미집을 파고 물을 얻는다. 그래서 갈증을 해소 할 수 있었다.
 
삶의 지혜는 자기의 고집된 관념을 내려놓는데 있다.
원숭이의 조삼모사와 인간의 긴 갈등과 무엇이 다를까!
 
어차피 아침에 세 공기나 저녁에 네 공기나 먹는 양은 같은데 꼭 아침에 네 공기 먹기를 바라는 원숭이의 생각이나 자기 관념에 빠져서 평생을 헤매는 어리석은 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스스로 지혜를 구하는 관중이나 습몽처럼 삶의 지혜를 얻어야한다.
 
성인의 말씀 속에 지혜를 얻고 자연 속에 함께 하는 삶……. 물질의 풍요함처럼 우리 마음의 풍요를 찾자. (단군정신선양회장·전 대종교 총전교)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