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통찰! 天問天答 102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7/03/23 [08:17]
‘항상 지금’ 완전하고 완벽하다

통찰! 天問天答 102

‘항상 지금’ 완전하고 완벽하다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7/03/23 [08:17]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이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하고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가 발전을 해 왔다 할지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 인류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든지, 어떠한 삶을 살든지,
그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아는 것,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은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과 인간정신과 더불어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항상 지금’ 완전하고 완벽하다
 
질문208: 유(有)적인 측면의 성장과 성숙은 ‘완전을 지향하는 영원한 미완성’이라 하셨습니다. 어떤 연유(緣由)입니까?

 
지금 진행되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발전하고 변화하여 진보(進步)되어져 완전과 완성을 향해 나아갔을 때, 최종적으로는 ‘무(無)’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유적인 측면의 ‘시작’은 반드시 유적인 측면의 종지부, ‘끝’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작’되기 이전의, ‘시작’을 유발하는 ‘무(無)’적인 측면의 ‘무엇’은 ‘시작과 끝’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완전(完全)’하다 할 수가 있습니다. 
 
 
질문209: 수행자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완전과 완벽은 꿈에 불과하다고 하시는데, 어떤 연유입니까?
 
항상 지금 모든 것이 진행되어 지고 있습니다. 진행되어 지고 있다는 것은 ‘시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작’이 있었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가능케 하는 알 수 없는 완전함, 즉 ‘시작과 끝’에 의해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무’적인 측면의 완전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완전하고 완벽한 ‘무’적인 측면으로부터 비롯되어 졌으며, 반영(反影) 이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비록 유(有)적인 측면이라 할지라도, 반영이라 할지라도 ‘항상 지금’ 완전하고 완벽하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지금’의 완전과 완벽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달해야 될 설정과 목표는 꿈에 불과 하다는 것입니다.
 
 
질문210: 진경님 이야기대로 ‘항상 지금’이 완전하고 완벽하다면,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겠습니까?
 
본체(本體)와 작용(作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본 이치와 원리를 가리키는 본체는, 모든 것을 허용하고 수용함으로써 드러나게 하고 있으니 유일한 원인(原因)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원인으로 인해 반영되어지고 비추어지고 드러난 모든 것을 작용이라 할 수가 있으며, 유일한 결과(結果)라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지금’은 비록 비추어지고 반영되어진 작용이라 할지라도, 진리의 일체성으로 인해 완벽하고 완전하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결과로 대변되는 어떠한 작용조차도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과에 대해서 판단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즉 모든 과정이 결과로써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