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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의 출현배경과 특징● 증산의 생애와 사상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7/03/29 [08:19]
“9년이란 짧은 종교적 활동, 해원 상생·사상은 온 누리에”

신종교의 출현배경과 특징● 증산의 생애와 사상

“9년이란 짧은 종교적 활동, 해원 상생·사상은 온 누리에”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7/03/29 [08:19]

“9년이란 짧은 종교적 활동, 해원 상생·사상은 온 누리에
  

1871년 음력 9월19일 모친 권씨가 친정에 가서 있을 때 하루는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어리가 내려와서 몸을 덮으니 온 천하가 광명하여지는 꿈을 꾸었다. 그로부터 태기가 있어 13개월만에 아이를 낳으니 이가 강증산이다. 그가 태어날 무렵 그의 부친이 미몽사몽간의 두 선녀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산모를 간호했다. 그 뒤 이상한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했다.
 
이렇게 태어나 죽음에 이른 증산은 “사람의 죽음의 길이 멀지않고, 문턱 밖이 바로 저승이다. 나는 죽고사는 것을 뜻대로 한다. 나는 금산사로 들어가서 불양답이나 차지할 것이다.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 훗날 나를 보고자 한다면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고 했다.
 
증산은 모악산 금산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예언과 치병을 보였다. 그는 제자들과 더불어 “우리의 일은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다. 남이 잘되면 결국 내가 잘되는 것이다.”라며 아주 쉬우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말을 남기고 있다.
 
모악산(해발 801m) 그 이름에서 어머니가 연상된 전북 완주군과 김제시 경계 있는 진산이다. 이름부터 풍수로 본다면 동양의 음양사상에서 음에 해당한다. 이 산을 중심으로 걸출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 금산사는 백제 견훤이 그의 아들 신검에 의해 유배되었던 장소다. 증산,동학,원불교 등이 태동한 곳이다. 모악산을 중심으로 이처럼 많은 사연이 있는것은 백제 유민들의 천년의 한과도 관련이 있다. 증산의 해월상생 철학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소리였다.
 
모악산에는 크고작은 80여개 사찰이 있었다. 그 가운데 대원사는 진묵대사가 살았던 절이다.
 
진묵대사께서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자손이 없어도 천년동안 향불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전설 때문에 천하명당이라는 소문으로 전국에서 풍수를 공부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찾아가는 답사코스다. 결국 그들에 의해 향은 사라지지 않고 주변에 두 곳 사찰이 있다.
 
1901년 초여름 증산(31세)이 대원사를 방문하여 자신이 머무르는 방에 아무도 근접하지 못하도록 해 줄 것을 금곡 당시 주지스님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49일 동안 먹는 것조차 들여보내지 말 것도 함께 주문한다. 세상이 어지러운 일은 앞선 세상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이라고 생각한다. 득도 후 자기 스스로 말하기를 천하의 살겁을 풀어낼 천하무당이라고 자신했다. 또 후천 5천만년 조화선경의 세계를 열겠다고 했다.
 
증산 강일순은 대원사 찾기 전까지 천하를 널리 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조선 일대를 다녔다. 이후 대원사에서 49일 기도에 들어간 것이다.
 
▲ 증산이 49일 기도에 들어기 득도한 모악산 대원사    
 
7월 초 닷새 49일 되는 날 제자들의 방문을 받는다. 제자들의 간청에 못 이기듯 하면서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세상구원이 천명임을 선포’한다. 대원사 하산 길에서 만나는 새 소리에게 ‘너희들도 후천해원’을 바라느냐하니 많은 짐승들이 말을 못하고 있더라 했다. 해원을 인간뿐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해당된다는 주장이다.
 
증산의 함께 사는 세상, 아름다운 상생의 길이다. 그가 말하는 해원상생은 원수 자체가 없는것 그것이 해원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헤어져 슬프고 미워하는 사람을 가지지마라,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법구경』의 한 귀절이다.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원수를 외 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끔직한 소리를 체험했다면 미움도 사랑도 얼마나 인간을 괴롭히는지 알 것이다. 증산은 그것을 말하고자 한다. 인간에 있어 욕심,악성을 아주 없애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양심,불성,사랑의 마음이 해원이다.
 
시루산(증산)은 자신의 정기를 받은 시루봉을 말하고 훗날 금산사 미륵과도 연관이 있다. 시루에 가득 담긴 떡과 밥으로 모든 백성들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탐관오리에 의해 고통받는 백성을 위해 동학 농민전쟁이 일어났다. 증산 나이 24세때 체험이다.
 
농민군의 패망을 예언하고 있다. 동학농민란은 미륵를 꿈꾸던 사람들의 항거다. 동학은 실패했다. 증산이 활동하던(1901-1909년) 시대에는 사람의 삶이 도탄에 빠질대로 빠져있던 시대였다.
 
사람들의 오늘의 삶은 어렵게 힘들지만 앞으로 오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라는 꿈과 희망, 신념을 심어주면서 치병과 예언을 하고있 다. 사람들이 완전히 믿고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조선시대 가장 낮은 신분에 해원의 세상에는 세상에서 가장 천한신분의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말을 한다. 참혹한 상극의 세계에 후천상생 세상에 표본으로 삼겠다.
자신이 풀어 주어야 할 한 많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대 무당’이라고 자처한다. 천하운행 도수를 뜯어 고치는 천지공사를 자기 스스로 주제하는 것이었다.
 
해원과 상생은 무엇인가, 가장 낮은 대우를 받고 있던 여성에게 했던 것이 해원이라면 이 세상에서 남자들이 누리는 권리를 상생이라고 했다.
 
‘제자의 집을 방문하여 증산을 시중 들던 노비에게 말을 높이는 것 을 본 제자는 그들은 자신의 집에서 부리는 종이라 말을 높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 말에 증산은 저 사람들은 자네의 노비일뿐 나와는 상관이 없다. 더 나아가 제자에게 상대가 누구든지 말을 높이고 인격적 대우를 할 것을 당부한다.
 
1백년전 증산이 제자에게 들려준 이 말은 백년 후 오늘까지 고쳐지지 않는 우리사회 폐습이다. 친구가 남편,부모의 지위가 자신의 지위처럼 착각하고 권력자의 주변사람에게 줄 서는 세태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권력형 비리를 살펴보면 권력자 그 주변에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증산은 앞으로 세계는 적서의 차별,반상의 차별이 없는 해원의 시대다, 천민을 마음으로 우대하여야 척이 풀리고 척이 풀려야 좋은 세상이 온다는 주장이다.

남녀를 놓고도 남자 대장부, 여자 대장부라 표현한다. 여자 대장부라는 명칭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제자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후천세계는 여성들이 상위에 사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앞으로는 남녀의 권리가 동등한 세계가 오고 남편의 죽음을 따라 죽는 것은 지난 일이다.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에게 늙은 홀아비는 늙은 과부에게 시집, 장가 드는 원이 없는 세계를 말하고 있다. 홀로된 여인들의 원한이 하늘세계를 덮고 있다는 것이 증산의 생각이다. 그것을 풀어주는 것 그것은 인간의 도리라고 본 것이다.
 
우리의 일은 “척을 짓지않고 남이 잘되게 하는 것이다.”고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자신들이 하는 공부는 남들이 잘되고 남이 잘되게 하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세태에 참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은 비단 증산의 가르침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흔한 일이다.
 
어머니들이 절에서 기도할 때 가장 먼저 남편,자식이 잘 될 것을 기도한다. 내가 아니라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국태민안 신화연풍’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복을 구하는 형태를 기복신앙이라고 하는데 실제적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가 아니라 가족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라면 그것이 어떻게 기복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를 제외한 모두는 남이다. 남을 위한 기도라면 그것은 아름다운 기도의 모습이다.
 
1910년 득도 이후 증산은 ‘동곡약방’을 개설하고 민중의 삶을 구원하고자 했다. 동곡약방은 사람의 병만 고치는 곳이 아니라 이 나라 천지의 병을 고치는 곳이다. 증산은 이 세상에는 충효예가 끊어져 천하가 병들어 있다. 천지의 은혜을 깨닫고 나라의 은혜와 부모, 스승의 은혜를 알고 실천함으로 무도 병을 고쳐야 한다.
 
제자들에게 진기약품만 찾지 말고 너희들이 천하창생을 구하면 조선은 천하문명국이 되고 세계 으뜸되는 중심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세상은 척지어 상대를 이겨야만 내가 산다는 상극의 세계였다면 앞으로 오는 세계는 척지은 사람과 그것을 풀어 사랑하면서 상생하면서 살아가는 상생의 세상이 온다. 그러면 물질적, 문화적으로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말은 민중에게 희망을 주고 자기 사는 이 땅에서 바로 설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증산 이후 6백만 신도 ‘보천교’, 수많은 종단 탄생으로 이어져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한 걸음 높여놓고 있는 것이다. 증산 사후 그의 제자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찾거나 스스로 지도자를 자처하게 된다 그 가운데 차천자의 보천교는 한때 6백만 신도를 자랑하기도 하다. 보천교는 일제에 의해 1936년 해산되었지만 이후 탄생하는 종단들은 보천교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로 그 세력이 막강했다. 보천교에서 사용하던 건물 일부가 현재 조계사 대웅전 건물이다.
  
증산 강일순이 꿈꾸는 세상은 부귀한 자, 힘과 권력이 있는 자가 아니고 승려,노비,서자,상민,홀아비,광대,빈민,천민,무당,여성 등 오직 가난하고 병들고 무식하고 어리석고 힘없고 가진 것 없어 불의를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는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을 위해 신명을 받쳤다. 증산은 9년이란 짧은 종교적 활동을 했지만 그의 사상은 온 누리에 가득하다.
 
금산-나를 보고자 한다면 금산사 미륵을 보라고 한다. 증산의 용화세계는 해원상생의 세계였다. 금산사 미륵은 시루위에 세워져 있다. 증산은 시루위에 다시 환생한 것이다.
 
어천(증산의 죽음)을 하기 전 제자들을 모아놓고 “내가 지금 떠나려 한다. 내가 죽어도 나를 따르겠느냐 내가 없다고 나를 잘 믿지 않으면 내가 영원히 잊어버리겠다. 나의 모습을 잘 익혀두어라 다음에 내가 올 때 눈이 부시니 나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이다. 예로부터 신선이란 말은 있지만 실재 본 사람은 없지만 오직 너희들은 그 신선을 볼 것이다. 내가 장차 13척의 모습으로 오리라 후천세계는 조화로써 다스릴 것이다.”
 
증산의 용화세계는 미륵의 세계이며 해원상생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금산사 미륵은 시루위에 모셔져 있다. 그렇게 해서 죽음에 이르러 미륵으로 환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를 믿고 마음이 정직한 사람은 하늘도 두려워 한다.”
“사람의 소리가 곧 대중의 소리니라”
“사람을 해롭게 하는 모든 물건을 없애리라.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니라”
 
1909년 음력 6월 24일 39세에 가셨다.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는 조상과 신명을 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산은 시루산 아래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호를 시루라고 지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금산사 미륵은 시루를 딛고 서있다. 그것이 지금도 증산 도인들이 금산사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지명은 원래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하여 ‘시리산’,‘시루산’이라고도 하였다가 한자화하여 증산이 되었다고 한다.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현 전북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신송마을) 시루산 아래 마을에 태어나 호를 시루증(甑)자와 산(山)자를 써 증산이라고 썼다. 금산사 미륵은 1200년 전 신라 진표율사가 미륵불을 친견하고 미륵불을 세우는데 당시 쇠로된 밑 없는 시루(철수미좌)를 놓고 그 위에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진표와 증산은 1100여 년의 시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증산도의 태을주 “훔치 훔치 태을천상원군훔리치야 도래 훔리함리 사바하” 주문은 불교의 구축병마주와 김경수의 ‘태을천상원군’에다 증산의 ‘훔치훔치’가 덧 붙여진 모양이다.
(삼국유사문화원장·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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