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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이치란 객원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7/04/04 [07:26]
현대세계불교㉕스리랑카의 고대불교교육센터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현대세계불교㉕스리랑카의 고대불교교육센터

이치란 객원논설위원 | 입력 : 2017/04/04 [07:26]
인도원형불교의 전통과 토대
 
불교의 본 고향인 인도불교가 쇠멸한 상황에서, 인도의 원형불교를 그나마 느낄 수 있는 곳은 실론 불교이다. 우선 풍토도 비슷하지만 인종 또한 인도인과 같기 때문에 非인도계 불교도들은 실론 불교와 신할라족을 통해서 인도불교와 인도승려들에 대한 간접경험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 인도에도 불교가 다시 재건되고 있고, 불교성지를 중심으로 불교가 부흥되고 있지만, 순수한 인도의 원형불교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이런 아쉬움을 우리는 실론(스리랑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서구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 의해서 희생양이 되어 불교가 2세기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다가, 중세시대에 실론에서 동남아시아에 이식해 줬던 상좌부 불교를 다시 역수입하는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실론불교가 복원되었다고 할지라도 실론은 인도원형불교의 전통과 토대를 갖고 있었다. 이런 역사적 공백기를 겪으면서도 스리랑카불교가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불교의 정경(正經)이 실론에서 성립했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 실론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아누라다뿌라의 루완웰리사야 대탑 앞에 모인 스리랑카 불자들이 참배하고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전해진 실론불교는 기원후 5세기경이 되면 오히려 불교의 본고장인 인도보다도 불교의 정경(대장경) 연구가 더 심화되어 있었다. 인도본토에서 보다는 실론 섬에서 인도원형불교의 모습을 더 인도답게 간직하고 유포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일련의 사서(史書)들이다. 《디빠왕사Dīpavamsa島史》는 실론 최고(最古)의 편년사시체(編年史詩體)로서 역사문헌이다. ‘섬의 역사’란 뜻으로 《섬의 왕통사(島王統史)》、《주사(洲史)》의 뜻을 갖는다. 기원후 3〜4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서는 역사, 전설뿐 아니고 불교와 빨리어 문학의 초기작품이 실려 있다. 실론에 불교가 전해진 5세기가 경과한 기원후 3〜4세기의 실론불교와 이 시대의 최고 최대 사원인 아누라다뿌라의 마하비하라(大寺=큰절)의 고승들에 대한 자료이다. 이 사서에 따르면, 부처님은 생존 시에 실론 섬에 세 번 방문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인도로부터 부처님 치아사리와 보리수나무가 실론에 오게 된 내용이 실려 있다. 또한 상좌부(上座部)라는 불교부파(佛敎部派)에 대한 기록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지역적으로 확장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불교본래의 모습과 내용은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에 실론에 전해진 인도의 원형 불교인 상좌부는 그대로 존속되고 있었다. 이 원형불교의 승가를 상좌부 또는 장로불교라고 칭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스타비라와다(sthaviravāda)라고하며, 빨리어로는 테라와다(theravāda)라고 부른다. 한역에서는 상좌부(上座部)라고 했다. 기원전후에서 기원후4〜5세기에 이르면 인도불교는 여러 부파가 출현하고 대승불교로 발전해서 불교의 모습이 변화해 가고 있었지만, 상좌부는 인도원형 승가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전통을 지켜가고 있었다. 인도 본토에서도 이 상좌부가 한동안 존속했으나,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실론에서는 이 상좌부 전통을 고수했고, 중세시대에는 동남아에 전파했으며, 현재까지도 살아있는 전통이 되었다. 실론의 사서인 《디빠왕사Dīpavamsa島史》와 쌍벽을 이루는 《마하왕사Mahavamsa 大史》가 있는데, 이 《大史》는 빨리어로 기록된 역사문헌으로서 편년사시체(編年史詩體)로 되어 있다. 기원후 5세기에 성립된 사서로서, 기원전 543년부터 기원후 304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사서를 이어서 《쭐라왕사 Cūḷavaṃsa 小史》가 있는데, 4세기부터 1815년까지의 연대기가 있다.
 
고대실론에서의 상좌부는 3대 지파(支派)가 있었는데, 아누라다 마하비하라(大寺), 아바야기리(무외산사無畏山寺)와 제따와나라마야 사원이다. 아누라다 마하비하라(大寺)는 실론 상좌부의 가장 큰 사원이다. 기원전 247〜207 사이에 데와남삐야 티싸 왕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이 사원은 현재까지도 존재하는데, 기원후 4〜5세기에 학승 붓다고사와 담마팔라에 의해서 더 유명하다. 붓다고사는 각음(覺音) 또는 불음(佛音)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이 분은 인도에서 실론 섬에 와서 경전을 주석한 대학승이다. 그는 많은 저술과 번역을 했지만, 가장 유명한 책은 《위숫디마가=淸淨道論》이다.
 
▲ 붓다고사 스님이 《위숫디마가 淸淨道論》을 저술하여 승단의 최고 지도자에게 헌증 하고 있다.
▲ 《위숫디마가=淸淨道論》을 영역한 나나몰리(1905〜1960) 비구.    


《위숫디마가=淸淨道論》는 지금까지도 상좌부 권에서는 필독서로 읽어야 할 텍스트이다. 스리랑카의 비구들은 빨리 경전을 배우고 익히지만, 이 책은 필수과목으로서 반드시 배우고 학습하는 책이다. 2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빨리어(상좌부 경전어)로 씌어져 있다. 因縁等의論(Nidānādi-kathā), 戒의 解釈(Sīla-niddeso) 등의 내용인데, 상좌부 교리와 철학의 체계를 세우는데 학습해야할 텍스트이다. 중국어와 일본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고, 최근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영역본도 몇 종 되는데, 이 가운데서도 나나몰리(1905〜1960) 비구의 영역본이 유명하다. 이 분은 섬 불교학파로서 냐나티로카 문하에서 출가하여 많은 저술을 남긴 분인데,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BBC에 근무했던 인텔리 비구였다. 하지만, 일찍 죽고 말았지만, 그가 남긴 《위숫디마가=淸淨道論》 영역본은 전 세계 영어권 사람들에게 불교에 입문하여 상좌부 불교철학(심리학)을 접하는데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붓다고사는 인도 출신의 대학승으로서, 아누라다뿌라의 마하비하라(大寺=큰절)에서 이 작업을 하였다. 우리는 이 무렵 중국에서 실론에 온 한 구법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법현스님이 인도에 도달, 고대의 아소카 왕궁의 유적지를 보며 감탄하고 있는 모습.    
▲ 법현스님이 머물렀던 실론의 아누라다 뿌라의 아바야기리(무외산사無畏山寺)의 유적지.  

법현(337〜422)스님은 중국 동진(东晋)의 고승이다. 3세 때부터 절에 들어가 불도를 공부하였고, 20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당시의 중국에는 불교 문헌이 한역된 것이 별로 없었으므로 경률(經律)에도 착오나 누락이 많아서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나이가 60세임에도 불구하고 399년에 장안을 출발, 서역으로 향했다. 처음 인도로 향할 때는 네 명의 다른 승려들과 구도행각 길에 나섰으나, 도반들은 중간에 한 사람 한 사람 낙오했으며, 법현스님은 6년 만에 중인도에 이르러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특히 관심이 많았던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을 구하고, 실론에 이르러서 《오분률》(五分律), 《장아함경》(長阿含經) 등의 불교 서적을 구하고 14년 만인 413년에 남해 항로를 따라 청주(靑州, 지금의 산둥 성)으로 귀국하였다. 법현이 기록한 여행기는 《불국기》(佛國記)라는 제목으로, 신장 파키스탄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에 관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이제 다시 정리해 보면, 5세기를 전후해서 실론의 북부 지역인 아누라다뿌라의 마하비하라(大寺)와 아바야기리(無畏山寺)는 쌍벽을 이루는 불교연구와 수행의 중심 센터였다. 현재까지도 붓다고사의 《위숫디마가=淸淨道論》는 상좌부권에서는 필독서로 비구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불국기》(佛國記) 또는 《법현전》(法顯傳)은 일종의 여행기로서 한문으로 쓴 책이지만, 일찍이 영역되어서 서구에서도 인기리에 읽히고 있다.
보검(해동 세계불교연구원장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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