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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길 성서연구 :이스라엘건국과 중동전쟁-‘분리독립’ UN결의 무시한 건국과 아랍국과의 충돌
기사입력: 2012/01/13 [15:1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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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길 성서연구 이스라엘건국과 중동전쟁


‘분리독립’ UN결의 무시한 건국과 아랍국과의 충돌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난 1917년 파리강화 조약에 따라 팔레스티나 지역을 영국이 신탁통치하고 있었다. AD 70년 이래 조국 이스라엘 땅에서 쫓겨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각처에서 정처 없이 떠돌며 국가 없는 민족,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민족으로 핍박과 생명의 위험 속에서도 염원하던 그들의 조상이 살았던 땅에 조국을 건설할 여건이 성숙되기에 이르렀다.

신탁통치를 맡고 있던 영국도 세계 각처의 유대인을 이곳으로 이주시키는데 적극 협조하였다. 1947년 11월 29일 UN안전보장이사회는 팔레스타인 국가와 이스라엘 국가를 분리 독립할 것을 찬성 33표, 반대 13표로 결의하여 통과시키고, 영국은 1948년 2월 1일 유대인 이민을 위한 창구를 개설하고 8월 1일 영국군을 철수했다.

1948년 5월 14일 오후 4시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하티크바(희망)란 제목의 이스라엘 국가가 연주되었다. 수상 벤구리온이 독립헌장의 두루마리를 낭독했다. “우리는 유대인의 역사적이며 본질적인 권리와 UN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이스라엘 국가를 팔레스티나에 세울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건국지도자들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서명했다. 이스라엘정부는 임시국민회의에서 곧 비준되었다. 이 독립 선언 직후 미국과 소련은 이스라엘 건국을 승인했다. 그날 밤 11시 영국 식민지 대표들이 모두 떠났다. 인구 78만 8700명, 전투요원 2만 명 정도의 국가가 건설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분리독립이란 UN결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건국을 선포함으로써 아랍국들과 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제1차 중동전쟁과 2차 중동전쟁

1차 중동전쟁은 1948년 5월 아랍 측의 선전포고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10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아랍 측은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했다. 1956년 7월 26일 이집트의 낫세르 대통령이 아스완댐 건설의 재정확보를 명분으로 스웨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 운하를 봉쇄하고 이스라엘 상선을 나포했다. 이런 조치 후 양국은 산발적인 충돌이 일어났다. 드디어 1956년 10월 26일 2차 중동전쟁이 일어났으나, 전쟁 개시 100시간 만에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를 점령했다. 이때 많은 무기와 포로를 붙잡았고, 아랍 측을 가자지구, 고란고원, 요르단 강 서안에서 완전히 추방했다.

6일간의 제3차 중동전쟁

아랍진영은 두 차례 전쟁에서 모두 패하자 이집트, 시리아 등 아랍 국가들이 소련의 군사지원을 받아 군의 근대화를 서두르자 이스라엘은 안보위협을 절감하고 있었다. 1963년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물 공급계획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갈릴리지역을 공격해 왔으나 이스라엘 측은 다얀 장군의 기습작전으로 승리했다.

이스라엘 군이 1967년 4월 7일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공군기지를 급습하여 전투기들을 파괴하자,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카이로를 방문하여 이집트, 시리아와 긴급회의를 했다. 이스라엘은 이 회담의 내용을 입수하고 6월 5일 오전 7시 46분 이집트 국경을 넘어 카이로 공군기지에서 출격준비중인 전투기 수백 대를 파괴하고 개전 3일 만에 스웨즈운하와 가자지구를 완전 점령했다. 요르단의 후세인 왕이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역을 공격하고, 시리아가 갈릴리 지역을 공격했으나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예루살렘 구 시가지를 완전 탈환함으로써 전쟁은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제4차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 문제

 

 

 

 

 

 

 

 

 

 

 

 

 

 

 

 

 

 

1973년 10월 4일 발생한 제4차 중동전쟁(라마단 전쟁, 욤 키푸르 전쟁)의 한 장면.

 

4차 중동전쟁을 10월 전쟁이라고도 한다. 이집트와 시리아의 선제공격으로 4차 중동전쟁이 시작된다. 아랍진영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반환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소련으로부터 신무기를 도입하여 군사력을 강화했고, 1973년 10월 4일 대속죄일에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시리아는 5개 사단 4만 5000명의 병력과 180대의 탱크, 300대의 전투기를 앞세우고 골란고원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쟁시작 24시간 만에 이들의 전략무기 절반을 파괴하고 격퇴시켰다. 1973년 10월 6일에는 이스라엘이 2개의 탱크부대를 앞세워 이집트를 공격하여 승리한다. 이 결과 소련은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를 초청하여 휴전을 제의하여 휴전에 합의했다. 아랍 측은 네 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패배하여 인근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 등지에 흩어져 난민신세가 되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배경

 

AD 70년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킨 후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을 모두 추방시켰다. 그 후 135년 또다시 유대인들이 로마에 저항했다가 패배한 후 로마에 의해 강제 추방되어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이산(디아스포라)을 하게 됐다. 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온갖 핍박과 설움을 당했다. 그들의 조국 팔레스티나는 로마와 동로마를 뒤이은 이슬람 제국의 아랍인들이 터 잡고 뿌리내려 살고 있었다.

1897년 8월 스위스 바젤에서 전 세계 유대인들이 모여 “제1차 시온주의자 대회”를 개최하고, 이 대회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팔레스타인에 건설한다는 ‘바젤계획’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은 유대인들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이 전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동맹군이 영국과 프랑스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때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고 있던 오스만투르크가 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어 영국으로선 수에즈 운하 통행에 심각한 문제가 됐다. 이때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아랍이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1915년 영국은 당시 이집트의 총독 ‘맥마흔’으로 하여금 아랍과 접촉하도록 하였고, ‘맥마흔’ 총독은 아라비아 ‘메카’의 부족장인 후세인에게 “만약 아랍이 영국을 도와주면 전쟁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독립을 보장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아랍은 영국에 협조하게 된다. 유명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이때를 배경으로 한다.

영국은 또한 미국을 참전시키기 위해 유대인을 이용했다. 유대인의 자금지원을 얻기 위해 1917년 11월 영국 외상 “발포어(Balfour)”가 런던의 명망 있는 유대인 로스차일드(RothShild)에게 서한을 보내 영국을 도와주어 승리하게 되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는 비밀약속을 했다. 이것이 1917년의 발포어선언이다.

그러나 영국은 전쟁이 끝난 후 이런 약속을 저버리고 1920년 4월 ‘산레모’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라크와 요르단과 함께 영국의 신탁통치 아래 편입시켰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한 지역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을 맺는 등 3중의 거짓비밀 조약을 맺은 것이 오늘날 중동분쟁의 단초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아랍은 이들의 약속만 믿고 서로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게 됐다.


PLO창설과 정책, 이스라엘의 정치제도

 

PLO(팔레스타인민족해방기구)는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자기 조상의 땅을 찾으려는 정치운동 단체로 그들의 목표는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국가건설이다. 1969년 2월 창설되었으며, 의장에는 얏세르 아라파트(사진)가 나섰다. 1972년 9월 5일 뮌헨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하여 이스라엘 선수들을 피살한 ‘검은 9월단’도 이 단체 소속이다.
이스라엘의 정치제도
1948년 건국 정신에 기초하여 ‘자유⋅정의⋅평화’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은 종교, 성별에 의한 차별을 받지 않는다. 의회 민주주의 제도에 기초한 입법, 사법, 행정부가 있다. 3권 분립을 기초로 상호견제와 균형을 지향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정당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상징적 존재다. 행정부의 수반은 수상으로 집권당에 의해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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