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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종교 ‘천리교’ 고찰로 본 신종교 의미와 한국의 천리교 유입②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7/05/17 [09:07]
일본 신종교의 흐름-幕末維新期의 천리교와 금광교 이후를 연구대상

일본 신종교 ‘천리교’ 고찰로 본 신종교 의미와 한국의 천리교 유입②

일본 신종교의 흐름-幕末維新期의 천리교와 금광교 이후를 연구대상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7/05/17 [09:07]
<연재순서>    
1. 기성종교보다 못하다는 의미의 ‘신흥종교’, ‘유사종교’,‘사이비종교’로 불리는 신종교
2. 일본 신종교의 흐름-막말유신기의 천리교와 금광교 이후를 연구대상
3. 일본 사회 가장 유력한 행동적인 종교 세력인 40개 신종교
4. 일본 신종교의 국내 유입경로와 천리교
5. 한국 천리교의 분파와 현황, 교리

일본 신종교의 흐름-幕末維新期의 천리교와 금광교 이후를 연구대상    

1950년대 이후 기성종교와 의도적인 관계를 청산하게 된 이후 신종교계에는 한가지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연합운동의 전개가 그것이며, 이에는 신종교내부의 연합과 기성종교와의 연합이라는 두 가지 흐름을 들 수 있다. 종래, 전전의 일본에 있어서 종교단체의 「연합」은 공인종교로서의 신․불․기 삼교단에 한하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신종교의 연합운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치사회적인 제약이 엄격했던 만큼, 신도존승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바탕한 교파신도의 모임에 한하며, 전후의 신교자유가 보장된 사회환경 아래서의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어떻든 신종교 내부의 연합체로서 먼저 교파신도련합회(교파연)이 있다. 이는 1895년 교파신도 각 교단이 연합한 「신도동지회」에서 출발한다. 처음 흑주교를 비롯한 8개 교파의 연합이었는데, 입회와 탈회교단이 생기면서 1901년 신도간화회, 1912년 신도교파련합회로 개칭하였다가, 1932년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 현재 신도수성파․실행교․금광교․흑주교․어악교․출운대사․부상교․신리교․대본교․계교의 11단체가 가맹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간담회와 신도강좌를 국학원대학에 위탁하여 실시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다.

또한 재단법인 신일본종교단체련합회(신종연)가 있다. 1951년 10월 24개 교단이 가맹하여 결성한 이 모임은 명실공히 일본 신종교연맹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에는 같은 해 8월에 결성된 신종교단체련합회에 소속된 입정교성회 등의 6개교단, 일본신종교련합회 설립준비위원회에 소속된 효도교단 등 13개 교단, 신종연설립 때에 참여한 천양교 등 5개교단의 세 부류를 흡수하고 있다. 한 때 가맹교단이 150개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80여개에 이른다. 신종연은 종교협력․신교자유․정교분리․국민개신앙을 주창하며 36개 도도부현에 지부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또한 1961년 산하에 신일본종교청년회연맹(신종연청년회)가 결성되어 학습회와 평화사절단 파견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병합에 의해 성립된 신종연의 명칭에는 신종교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지 않았으며, l960년경까지 이 용어가 쓰여지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신종교에 관련된 신뢰할 만한 책자 증에서 신종교라는 용어가 분명하게 등장한 사례로서는. 1963년에 간행된 ≪전후종교 회상록≫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신종연조사실’이 편찬한 것인데, 거기서 신종교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당시 보다 일반적으로 쓰여지고 있던 ‘신흥종교’라는 말이 폄훼의 뉘앙스를 풍긴다 하여 이를 재고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 신흥종교라는 말이 가장 빈번하게 쓰여진 것은 패전 후, 특히 1950년대와 60년대 무렵이었다. 이 시기에 신흥종교라는 말은 전후의 혼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지칭되어 신문지상을 떠들석하게 했다. 패전 후의 대표적인 신종교 연구서에서는 막말유신기의 천리교와 금광교 이후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사진은 일본 천리교 교회당.      


하지만 연구자들과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신종교라는 말이 널리 쓰여지게 되기까지에는 아직 십여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하여 1970년대 중반에 들이서면, 종전의 학계와 저널리즘이 신종교를 천시하는 눈길로 본 것이 아니냐는, 그리고 이는 부당하다고 하는 논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그에 따라 점차 신흥종교보다는 신종교라는 용어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가령 1978년에서 79년에 걸쳐 대장출판에서 다섯 권짜리 시리즈물 ≪신종교의 세계≫가 간행되었다. 또한 신종교의 연구영역을 개척한 무라가미 시게요시(촌상중양)가 ≪신종교 - 그 행동과 사상≫(평론사)을 간행한 것이 1980년, 그리고 종전까지의 신종교 연구문헌을 총괄적으로 검토한 ≪신종교 연구조사 핸드북≫(정상순효 외, 웅산각출판)이 간행된 것이 1981년의 일인데, 이 무렵부터 신종교라는 말이 가장 유력한 용어로서 학계에 정착 되었다. 이상에서처럼, 신종교라는 용어는 신흥종교라는 말의 대체어로서 등장한 것이므로, 신흥종교라는 말이 지니고 있던 어의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러면 신흥종교라는 말은 언제 어떤 배경을 가지고 나타난 것일까? 이 말이 가장 빈번하게 쓰여진 것은 패전 후, 특히 1950년대와 60년대 무렵이었다. 이 시기에 신흥종교라는 말은 전후의 혼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지칭되어 신문지상을 떠들석하게 했다.

또한 ≪신흥종교해설≫(권학요 편, 백화원, 1952), ≪신흥종교의 해부≫(중농교독 편, 동성출판사, 1954), ≪교화연수2-특집/신흥종교연구≫(조동종 교화연수소 편, 1957), ≪신흥종교 독본≫(신사신보사편, 1959), 다카키 히로오(고목굉부)의 ≪신흥종교≫(강담사, 1958) 및 ≪일본의 신흥종교≫(암파서점, 1959), 사기 아키오(佐木秋夫)의 ≪신흥종교≫(청목서점, 1960) 등은 신흥종교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신흥종교라는 말에 반드시 처음부터 경멸적인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이 말로 지칭되던 현상은, 1945년 이전까지만 해도 ‘유사종교’라는 말로 불리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유사종교란 종교처럼 보이면서도 종교라 하기에는 조금 정도가 낮은 것을 의미했다.(가령 ≪최근의 유사종교운동에 관해≫, 사상연구자료특집 제96호, 1942). 신흥종교란 말은 패전 이전에도 쓰여진 사례가 있는데, 거기서는 가치중립적이거나 혹은 오히려 자긍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쓰여지고 있다.

일본 신종교의 발생시기에 관련하여 학자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은 막말유신기설이다. 가령 무가라미 시게요시의 ≪신종교-그 행동과 사상≫(1980)은 ‘신종교란 본래 상대적으로 성립시기가 새로운 종교를 지칭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막말유신기로부터 현대, 즉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후반에 걸쳐 새롭게 성립, 발전한 종교를 가리켜 신종교라고 부르기로 하겠다.’라고 적고 있다. 이 막발유신기설은 위에서 들은 ≪신종교 연구조사 핸드북≫ 뿐반 아니라, 바이런 에어하트의 ≪일본의 신종교-서양어 연구문헌일람≫(The New Religions of Japan:A Bilbliography of Western- Language Materials, Center for japanese Studies, The University of Michigan, 1983) 및 마츠노 노리타가(松野純孝) 편 ≪신종교사전≫(동경당, 1984)에서도 채용되고 있다. 또한 ≪신흥종교해설≫(권학요편, 1952)이나 ≪일본의 신흥종교≫(고목굉부, 1959) 등, 패전 후의 대표적인 신종교 연구서에서도 막말유신기의 천리교와 금광교 이후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삼국유사문화원장·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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