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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127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7/06/19 [08:10]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정신 차림’만이 참다운 조화와 균형

통찰! 天問天答 127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정신 차림’만이 참다운 조화와 균형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7/06/19 [08:10]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理解)를 통해 무지(無知)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은,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비정상적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依支)하고 의존(依存)하며,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와 종교가 발전을 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와 갈등으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와 철학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一部)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밝혀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知性) 인류의 이야기가 될 것이며, 자산(資産)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고 의지하고 의존하고 따르든지,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지, 그러기 이전(以前)에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 깨우치는 것이 상식(常識)중의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상식적 ‘깨달음’과 인간정신과 더불어서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가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談禪모임 眞鏡>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정신 차림’만이 참다운 조화와 균형    

질문276: 만약에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과거’에 연연할 것이 없으며, 이 ‘현재’에 집착할 것이 없으며,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알게 되면 어떻습니까?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연연하고, 집착하고, 걱정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연연하고 집착하고 걱정하는 나는 ‘나’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모로 보나 과거에 연연하고, 현재에 집착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비상식적입니다.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지금의 나’에 대해서 연민할 수는 있습니다.    

(질문): ‘지금의 나’에 대한 연민을 간혹 말씀하시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어떤 ‘주권’도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질문277: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세상의 균형과 조화(調和)를 위해 일조를 하여야 하며,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균형과 조화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입니다.     

왜냐하면 불균형과 부조화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와 연관된 나누어지고 분리된 상상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즉 ‘정신 차림’, 즉 ‘자각’만이 참다운 조화와 균형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진경님은, 중도(中道)와 중용(中庸)에 대한 견해는 어떻습니까?    

감각기관과 인식작용의 기준점이 될 수가 있는 육체와의 동일성 상태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치우칠 수가 있다는 것은, 나누어지고 분리된 상상의 세계에서만 가능할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일체(一體)에게는 치우침에 대해서, 지키고 유지시켜야할 걱정이 없습니다.  


(질문278): 석가모니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먹기이다’, 즉 ‘일체유심조’는 석가모니 가르침의 핵심이기 이전에 ‘나’의 바른 성품이자, ‘내 성품’의 핵심 이치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불가에서 이야기 하는 공사상(空思想)에 대한 견해는 어떻습니까?    

흔히 불가(佛家)에서 이야기 하는 공사상(空思想)은, 사상의 한 부류(部類)와 분류(分類)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품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즉 공(空)은 생각으로 추측하고 상상하고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공사상’이라는 표현은 적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으로도 접근할 수가 없는 ‘자유’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적절 합니다.    

(질문): ‘자유’는 생각으로 접근할 수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음대로 자유롭게 ‘생각’할 수가 있는 이유는, ‘나’는 ‘자유’로서 바로 ‘생각’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슨 ‘생각’이든지 할 수가 있는 ‘나’는, 정작 상상과 추측, 생각 등으로 ‘생각’되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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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 2017/06/19 [22:30] 수정 | 삭제
  •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는 혁명적인 통일장이론서(제목; 과학의 재발견)가 나왔다. 가상적인 수학으로 현실의 자연을 기술하면 오류가 발생하므로 이 책에는 수학이 없다. 그래서 일반 독자들도 이 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물리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물리학자는 비겁하게 침묵하지 말고 당당하게 반대하거나 찬성하라! 하나의 이론이 완전하면 다른 이론은 공존할 수 없는데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이 공존하는 것은 두 이론에 모두 흠결이 있기 때문이다. 참된 과학이론은 우주의 운행은 물론 탄생까지 모두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의 크기, 장소, 형태와 상관없이 우주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기존의 물리학은 국소적인 상황만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주의 원리를 모르면 바른 가치도 알 수 없으므로 과학이 결여된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다. 이 책의 이론은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이다.
  • 성민화 2017/06/19 [10:25] 수정 | 삭제
  • 늘 연재해 주시는 내용 유익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경님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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