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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6.25영웅들

원영진 | 기사입력 2017/06/25 [09:59]
그들의 혼을 기리며 통일을 그려본다

살아있는 6.25영웅들

그들의 혼을 기리며 통일을 그려본다

원영진 | 입력 : 2017/06/25 [09:59]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근대국가로 형성된 1,500년부터 현재까지 세계 7번째로 군인 사망자가 많은 참혹한 전쟁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쟁이 휴전된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3년 1개월 동안의 전쟁 피해를 보면 한국군 사망자 13만 8천여 명, 부상자 45만여 명, 실종자까지 60만 9천여 명, 북한군은 사망 부상자 52만, 실종자 80만, 유에 군 사망자 5만 8천, 부상 실종 48만 모두 합쳐 54만 6천여 명, 미군 전사자만 53,686명, 부상9만 2천, 포로 4,439명이나 된다.    

남북한 민간인 피해는 사망 실종, 179만 6천여 명으로 한국 국방부가 보고한 자료다. 경제적 피해는 남한의 경우 일반 공업시설 40%, 북한 74%, 연료공업 89%, 화학 공업 70%로 남북이 폐허로 변했다. 일반 주택과 공공건물이 폐허가 됐다.     

이 참혹힌 전쟁 속에서 자유 민주(自由民主)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순국선열의 영웅들이 있었다. 미 8군 사령관 워커(1889~1950) 장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을 낙동강 방어선(일명 워커라인)에서 목숨을 걸고 막아냈다. 당시 포항, 연천, 대구, 창녕, 마산, 통영을 잇는 낙동강 방어선이 뚫렸으면 북한군이 부산까지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당시 정부는 제주도나 태평양의 제 3국 망명을 검토하고 있었고 육군 본부도 부산에 내려갔었다. 그러나 워커장군은 대구에 미 8군 사령부를 그대로 두면서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스탠드 오어 다이(stand or die) 사느냐 죽느냐 뿐이다. 부하들을 독려하며 방어선을 지켜낸 것이다.    

그는 불독 같은 인상에 항상 철모를 쓰고 지프차에는 뒤에 30mm 기관총을 장착해 언제든지 응사할 준비를 갖추며 낙동강 전선을 쉬지 않고 누비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영웅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도 낙동강 방어선이 지켜짐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1950년 12월 23일 전선을 향하다 반대편에서 오는 한국군 트럭과 충돌하여 영웅은 운명했다.    

아들 샘 워커도 참전 중 비보를 접하고 아버지 워커 영해를 모셨다. 아들도 최연소 대장으로 진급해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워커힐 호텔, 군화 워커 전투화는 기억하지만 ‘워커’ 영웅은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다.     

중공군 대공세가 시작된 1951년 2월 중순경 중공군의 인해전술도 파상공세가 감행됐다. 미국과 프랑스군 5600여명과 중공군 3만여 명이 사흘 밤낮에 걸친 혈투가 양평 지평리에서 이어졌다. 적군은 5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주했다. 아군 피해사망 52명, 부상자 259명에 그쳤다. 중공군의 개미떼 전술은 견고한 방어진지와 백병전으로 물리친 최초의 전투였다.    

인천상륙 작전과 함께 6.25 전쟁의 판세를 역전시킨 2대 전투로도 유명하다. 그로 하여금 유엔군이 다시 북진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 대대를 이긴 ‘몽클라르’ 장군 그는 영웅이었다. 그는 1,2차 세계대전을 격은 3성 장군이었다. 그는 프랑스 전역을 돌며 600여명의 부대원을 모았다. 대대 급은 중령이 지휘해야한다는 프랑스군의 규정에 따라 중장에서 중령으로 계급을 낮추면서 자유 수호를 위해 참전하며 임신 중인 아내에게는 ‘자유(自由)’를 위한 여정은 군인의 성스런 본분이라며 안심시켰다. 그는 중공군이 피리와 나팔소리에 병사들이 불안해하면 수동식 사이렌 소리로 맞불을 놓고 백병전에도 직접 총검으로 돌격했다.    

빨간 수건을 머리에 매고 싸워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원주 전투에서 25명의 소대원이 인민군 1대대를 섬멸해 미군 장성들을 놀라게 했다. 이 위대한 영웅이 1964년 타계하자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장례를 직접 주관하며 눈물로 전송했다.    

수년전 지평리의 프랑스 미국 추모비 제막식에서 민족종단 대표로써 천부경으로 그 영영들을 위로했다. 고인이 되신 파월 한국사령부 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추모사도 함께 했다.     

6.25 전쟁에서 우리 군은 물론 유엔군, 세계인들이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이름 없는 수많은 영웅들이 아낌없이 젊은 피를 바쳐 헌신하고 희생했다.     

우리는 감사해야한다. 영웅들의 희생에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늘 잊지 말아야한다. 또 그들의 숙원이던 자유와 통일을 향해 나가야 한다.     

우사 김규식 선생은 말한다. ‘내가 살아온 생애는 하나부터 열까지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것뿐이었다.’ 우리는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한다.     

조상과 핏줄이 하나인 민족이 왜 통일을 할 수 없겠는가?
6.25 영웅들의 혼을 기리며 통일을 그려본다.
(단군정신선양회장·전 대종교 총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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