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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137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7/07/27 [07:23]
‘진리’는 증거와 찾아질 필요가 없다

통찰! 天問天答 137

‘진리’는 증거와 찾아질 필요가 없다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7/07/27 [07:23]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理解)를 통해 무지(無知)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은,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비정상적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依支)하고 의존(依存)하며,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와 종교가 발전을 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와 갈등으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와 철학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一部)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밝혀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知性) 인류의 이야기가 될 것이며, 자산(資産)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고 의지하고 의존하고 따르든지,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지, 그러기 이전(以前)에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 깨우치는 것이 상식(常識)중의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상식적 ‘깨달음’과 인간정신과 더불어서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가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談禪모임 眞鏡> 

‘진리’는 증거와 찾아질 필요가 없다  

질문301: 말씀 중에 간혹 ‘진리’는 증거 되어 질 수 없으며, 찾아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찾기 위해 남은여생을 보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 허공을 ‘진리’라고 가정을 한다면, 모든 사물이 하나 예외 없이 ‘허공’으로부터 비워졌을 때, 과연 허공을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가 있을까요?     

갖가지 사물들로 채워져 있으며, 사물과 사물간의 거리감을 입체화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허공’을 인식한다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색깔도 없고 거리감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는, 마치 눈을 감고서 바라보는 것처럼 아무것도 인식할 수가 없으며, 그로인해서 ‘허공’이라는 인식조차 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허공 안에는 다양한 사물들이 있으므로 해서, 감각작용을 통해서 ‘허공’을 인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증거 되어질 수 없으며 찾아질 수 없지만, 드러나고 작용되어지는 모든 것을 통해서 ‘진리’는 이미 스스로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증거 되어질 필요도 없으며, 찾아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사물이라 할지라도 존재되어지려면 ‘허공’이 전제가 되어야 하듯이, 허공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작용되어지려면 ‘진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 ‘진리’를 전제하는 것은 없습니까?    

만약에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진리’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절대적 주체로 인한 성품으로서 단언컨대 ‘대상화’가 될 수 없으며, 그로인해서 어떤 나눔도 분리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미 모든 것은 ‘진리’로 인해서 ‘하나’이며, 이 점이 바로 ‘진리’가 오직 ‘하나’인 이유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로서 ‘진리’이기 때문에 이미 모든 것이 ‘진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육신과의 동일시로 인해서, ‘지금의 나’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대상화 시켜서 분리하고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서 ‘진리’조차 대상화하여, 찾고자 하며 증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진리를 찾고자 하며, ‘누가’ 진리를 증거 하고자 하는지 보세요.    

질문: ‘지금의 나’만을 ‘나 자신’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단언컨대 그것 외에는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무지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자각’외에는 모두 헛되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리’를 찾았으며, 경험했으며 증거 하였다고 말하는 이상, 계속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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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 2017/07/27 [23:39] 수정 | 삭제
  • 수십 년간 수행한 스님들이 이권 때문에 싸우는 것을 보면 불교의 수행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스님들은 자기들끼리는 싸우면서 중생을 교화한다는 대가로 시주를 받는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시주를 그치면 스님들이 이권 싸움을 그치고 오히려 해탈해서 열반에 이를 것이다. 불교의 연기론은 과거(원인)에 의해서 현재(결과)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과거는 어디에서 비롯했는가? 다시 말해서 최초의 과거는 어디에서 연유했는가? 희로애락은 인생의 아름다운 굴곡이다. 굴곡이 없이 밋밋하게 산다면 굳이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희로애락이 없다면 해탈이 무슨 의미(재미)가 있겠는가? 겨울이 있기에 봄의 따뜻함이 기쁘고, 여름이 있기에 가을의 상쾌함이 즐겁지 않겠는가? 생명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으니까 주어진 것들을 그대로 수용하고 만족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껴라. 왜냐하면 큰 것(부와 권력)은 당신 곁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혁명적인 이론으로 우주를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다. 이 책에 반론하면 5천만 원의 상금을 준다고 공시했는데 아무도 반론을 못하고 있다. 이 책에 반론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은 새 이론을 겸허히 수용하고 기자들도 실상을 보도하라! 이 책은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동양철학(이기일원론과 무아연기론)과 서양과학의 원리가 서로 동일함을 증명했다
  • 민화 2017/07/27 [12:06] 수정 | 삭제
  • 그렇다 해도 '진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고, 그 노력을 하려면 '지금의 나'가 없어서는 안되는 것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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