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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시줏돈의 무게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동국대 경주캠퍼스 등 국내외 19억 기부…부산 도원사 주지 만오스님
기사입력: 2017/08/09 [08:0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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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腎臟)이 나빠 혈액 투석을 해야 하는 만오스님을 만난 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부산 사상구 남서쪽 끝자락 엄궁동 아파트 단지 사이, 가파른 오르막길 중턱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사찰 도원사였다. 엄궁동 산비탈에 있는 도원사에는 만오 스님과 상좌인 도원 스님 둘만 산다. 1980년대 당시 부유한 편이었던 속가(俗家)의 도움으로 지은 도원사는 대지는 100평 정도로 넓지만 대웅전과 거처(요사채)는 거의 처음 그대로 모습이다. 스님의 말처럼 "대웅전 문지방은 닳았고, 문은 삐걱거리고, 단청은 벗겨진" 상태다. 스님은 "기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절 꾸밀 돈 있으면 어려운 이, 어린이들 도와야지"라고 했다.

그 흔한 휴대폰 하나 없이 생활하는 스님의 거처답게 하나뿐인 낡은 요사채는 단출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만큼 오래된 책상, 제대로 갖춰진 다기(茶器) 세트 대신 칠이 벗겨진 머그잔 하나가 세수(歲首) 80세 노스님의 세간살이의 전부였다

몸이 성치 않아 기도 드리는 일밖에 못한다는 만오스님은 3년 전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장시간 동안 콩팥기능이 떨어져 악화되면 투석이나 신장이식까지도 받아야 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병이다. 여든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건장한 청년도 버티기 힘든 만성 질환들, 걱정이 돼 몸 상태를 묻자 스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 농담부터 꺼냈다.

“어릴 때부터 심장병이 있어 몸이 좋지 않았어요. 병원에 가니 얼마전에는 심장이 안 좋다고 하더니 요새는 신장이 나쁘대. 재미있지 않아요? 심장이랑 신장이란 발음 잘 해야 해요. 하하하.” 병이 하나 더해진 셈이지만 스님은 사춘기 소녀처럼 환하게 웃었다.

“말하기 부끄러워 사람들 안 만나려고 하는데 이래 자꾸 멀리서 찾아오니 남사스럽죠. 더 이상 말 안 할거에요.”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를 마다하던 만오 스님은 요즘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을 고사하느라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 상좌 도원스님 말대로 “시줏돈 돈 쓰기 무서워 두부 한 모 사먹지 못하는” 만오스님은 팔순 나이에도 텃밭을 직접 가꾼다.    

케냐 중·고교와 우물건설, 개신교계 굿네이버스까지 "신도들 정성 전하는 다리일 뿐"

"이게 지하 150m를 파서 만든 솔라펌프예요. 지하수가 엄청 많이 있는데 기름을 쓰지 않아도 태양광으로 물을 잘 끌어올린답니다." "잘됐네요. 학교든 절이든 물이 기본이죠. 우물 팔 비용을 따로 냈는데, 아주 잘됐습니다." 지난 1월18일 오후 부산 동아대병원 입원실. 지구촌공생회(이사장 월주 스님) 케냐지부장 탄하 스님은 만오 스님 앞에 사진 10여 장을 펼쳐놓고 한 장씩 설명하고 있었다. 만오 스님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탄하 스님은 이날 오랜만에 귀국한 길에 기부자인 만오 스님을 뵙고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했다. 케냐 남부 인키토 지역엔 만오 스님이 기부한 2억6000만원으로 중·고교가 건설 중이다. 우물은 학생과 주민들의 식수로 쓰기 위해 먼저 팠다.   

▲ 지구촌공생회 케냐지부장 탄하(왼쪽) 스님이 가져온 학교와 우물 공사 사진을 보며 흐뭇해하는 만오 스님. 탄하 스님은 “꼭 건강 회복하셔서 준공식 때는 케냐를 방문해달라”고 했고, 만오 스님은 “크든 작든 아프리카에 학교 하나를 더 세우고 싶다”고 했다.     

올해 하반기 완공 예정인 만오중·고등학교는 여학생들에겐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탄하 스님은 "이 지역엔 아직 조혼(早婚)과 여성 할례 풍습이 남아 있는데, 소녀들이 강제 결혼 후 도망치려 해도 갈 곳이 없다"며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따로 짓고 있다"고 보고했다. 만오 스님은 "어려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학교를 잘 지어달라"고 했다. 만오 스님의 자비행은 대륙과 종교, 인종을 넘어 확산하고 있다. 최근 3~4년 사이 그는 개신교계 국제기구인 굿네이버스에 2억원을 기부해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말라위에 산모들을 위한 보건소를 짓고 있다. 산악인 엄홍길씨가 네팔에 짓는 학교에도 내년까지 3억5000만원을 돕는다. 하나같이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먼저 전화 걸어 기부했다.

그러나 그는 “저는 신도님들 정성을 어려운 이들에게 전하는 다리 역할밖에 한 것 없어요."라고 겸손해 했다.

만오 스님이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발원(發願)한 것은 도원사 생활 초기였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변했지만 당시 산 아래에는 냉장고 하나 들여놓지 못하는 어려운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기도하던 중 '내가 전생(前生)에는 좋은 업(業)을 지어 이렇게 걱정없이 살았는데, 금생에는 무슨 선업(善業)을 지었나' 자문(自問)하게 됐다. 주변 동네 가난한 주민들과 학생들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서 받은 유산이 씨앗이 됐고, 신도들의 시주와 기도비가 들어오면 기부 몫부터 떼어놨다. 자신을 위한 지출은 극도로 줄였다. 걸레·행주가 해져도 기워 쓰면서 새 물건, 좋은 음식은 가난한 이웃과 어린이들에게 돌렸다. 지금도 고액 기부를 빼고도 동남아 청소년과 인근 해동고에 지원하는 장학금 등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이 매달 130만원에 이른다.      
▲ 만오 스님의 기부로 지난 1월4일 완공된‘솔라 펌프’. 태양광 패널이 만든 전기로 시간당 18t의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다. 지구촌공생회 사진    

만오 스님은 오래전부터 신장이 약해 1년에 서너 번씩 입원하곤 한다. 입원실이 없어 하룻밤은 2인실에서 지냈지만 이제 5인실로 옮긴다는 것이다. "몸이 아파서 병원비 쓰는 것만 해도 죄송한 일인데 2인실에 쓸 돈 있으면 아이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줘야죠." 만오 스님은 "(안타까운 사연은) 들으면 듣는 대로 다 돕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된다"며 아쉬워했다.     

“성철 스님은 시주돈 받기를 독화살 피하듯 하라고 했어요”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고 싶어 오래 전부터 장학재단 설립을 알아보다 여의치 않아 3년전 불교 종립학교에 후원금을 전했고, 몰래 하려던 일이 학교 측 요청으로 매스컴을 타면서 그간의 보시행이 알려지게 됐다. 

만오스님이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지난 3년 동안 기부한 금액은 총 11억. 스님은 언제부터였는지 시작도 잊어버릴 만큼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외 빈곤 아동에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만오 스님은 "시줏돈 무서워해야 한다"고 했다. "신도들이 얼마나 어렵게 고생해서 모은 정성인데요. 1000원짜리 무게도 천근만근입니다. 성철 스님은 늘 시줏돈 무서워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사람들이 가난한 사찰에서 보시 많이 했다고 대단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성철스님 살아계실 때 스님 법문을 내가 많이 들었거든요. 스님이 그랬잖아요. 시주돈 받기를 독화살 피하듯 하라고, 그래서 시주금이 무섭고 시주물 쓰는 게 어려워요. 무섭고 어려우니 안쓰고 모았다가 필요한 데 찾아주는 게 제가 할 일이에요. 게다가 나는 몸도 아파서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그저 그 시주돈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끔 해뒀다가 우리 절에 오는 신도들 복 많이 받게 해주십사, 행자 때와 같은 초심의 마음으로 살게 해주십사 기도만 드릴 뿐이에요.”

지금이야 가진 것이라곤 바랑 하나뿐인 출가 수행자이지만, 스님은 ‘부잣집 딸’로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며 10대 사춘기 시절을 보냈을 만큼 불가(佛家)와는 인연도 없었다.    

스무살 무렵 심장병 얻어 절에 들어가 7년 생활 끝에 울산 석남사로 출가

이제 막 청춘을 꽃피우던 스무살 무렵, 쉽게 지치고 자주 피곤해하던 스님은 속가의 어머니 손에 끌려 병원에 갔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1950년대, 약도 병원도 어느 것 하나 충분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날로 절에 들어가 7년을 살았다.

“사찰도 마을만큼 가난했던 때였어요. 돈보다 먹을 것이 중요했던 시절이라 쌀 가마니를 주고 절에 들어가 살았죠. 절에 가면 몸이 좀 괜찮아질까 싶어 들여 보냈던 것인데, 스님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책도 읽다보니 몸이 좀 낫더라구요. 7년을 살고 밖에 나갔다가 ‘아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절에 들어갔지요.”

부처님 인연은 그때 맺었다. 울산 석남사로 가 당시 ‘비구니계 성철’로 불리던 인홍스님을 은사처럼 모셨다. 몸이 좋지 않아 행자생활은 많이 하지 못했다. 그래도 선방에 들어가 할 수 있는 공부는 죄다 했다. 건강이 나빠 포교, 복지에 대한 큰 꿈은 접었지만 작은 사찰이라도 하나 꾸려기도라도 열심히 해보자 생각했단다. 이 지역 저 지역을 다니며 정착한 곳이 1981년 창건한 지금의 도원사다.

“엄궁동이 원래 참 가난했어요. 지금이야 고층 아파트 단지가 마구 들어서있지만 그때만 해도 사하촌에 800세대도 안 살았어요. 처참했죠. 그때부터 였던 것 같아요. 가진 게 많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배고파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뭐라도 생기면 저 사람들 먼저 도와주자 생각한 거에요.”

그렇게 시작한 보시행은 종교, 국가, 인종에 분별이 없이 뻗어갔다. 개신교계 국제구호단체는 물론 아시아 대륙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때마다 돈을 보냈다. 스님을 모시는 하나뿐인 상좌 도원스님이 “좋아하시는 두부 한 모 절 돈으로 사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런 스님을 보며 신도들은 닳은 문지방, 낡은 단청을 볼 때마다 “돈 좀 쓰시라” 잔소리를 늘어놨다.

“시주돈 무게가 얼만지 아십니까?” “시주돈으로 받은 1000원 짜리 지폐 한장을 저울에 달면 그 무게가 얼마입니까?” 연이어 질문하는 스님의 표정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 무게가 어찌 달아 집니까. 보살님들이 1000원, 1만원을 보시하면서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주세요’ ‘아들딸들 시험에 붙게 해주세요’ 하지요? 그 기도 값을 어찌 계산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 값을 갚아낼 재간이 없어요. 그러니 시주금이 무섭지 않을 리 없지요.”

남에게 한없이 사무량심(四無量心: 불교의 보살이 가지는 자비희사 네 가지의 자비심)을 아낌없이 베푸는 만오스님이 자신에게만 유독 인색한 까닭이다. 

“단 한번도 내 삶을 후회해 본 적 없습니다. 이번 생에 아픈 몸 받았으니 다음 생에 조금 더 건강한 몸 받아 열심히 복 지을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것도 욕심이지요.”
▲ 스님의 낡은 방 안에 걸려있는 액자. 스님은 이 발원문에 쓰여 있는 “초심으로 평생을 살겠습니다”를 매일 외운다고 했다.    

낡고 오래돼 곰팡이가 핀 스님의 방에는 액자 하나가 걸려있다. “부지런히 기도 정진하겠습니다. 초심(행자)으로 평생을 살겠습니다. 시주돈을 어렵게 여기면서 적절하고 필요한 곳에 보살행을 하겠습니다.” 스님이 매일 외며 기도하는 발원문이란다.

“좋은 게 있으면 남 먼저 주고 낡은 게 있으면 내가 쓰면 됩니다. 세상에 어느 것 하나 부처님 것 아닌 게 없어요. 내 것이 아니니 꼭 필요한 곳, 인연되는 곳에 찾아줄 뿐입니다. 이번 생에 좋은 몸을 받지 못해 부처님 법 공부 많이 못했으니 다음 생에는 좋은 몸 받아서 많이 해야지요.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가 스님이라 생각 안합니다. 80세가 넘어도 여전히 행자이지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말처럼 모든 것을 잃은 후에 찾아온 인연 덕분일까. 노스님의 절개는 서릿발처럼 아직도 꿋꿋했다.    

만오스님은 누구인가

만오 스님은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비구니 선사인 인홍 스님의 상좌로 석남사에서 출가했다. 명훈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6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 1982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부산 용수사 주지를 역임했다.

제방 선원에서 두루 정진한 만오 스님은 성철 스님의 회상에서 수행한 기억을 지금까지도 뼈에 새기며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부산 엄궁동에서 도심 포교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지금까지 37년 동안 도량을 운영하며 사중 산림은 알뜰살뜰하게,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서는 소리 없고 묵직하게 회향을 거듭했다. 지구촌공생회, 생명나눔실천 부산지역본부 등 불교계 단체를 비롯해 초록우산, 굿네이버스 등 국제구호 단체까지 도움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서면 종교를 초월한 자비나눔을 실천했다. 특히, 스님은 2012년 동국대 경주캠퍼스 비구니 학인스님들의 수행관인 사라림 건립을 후원하며 동국대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15년 동국대 관음장학회를 설립하고 장학기금 2억원을 기탁, 매 학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왔다. 2016년에는 동국대 경주캠퍼스가 선(禪)센터를 건립하는 데 필요한 기금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현금 6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2011년부터 선센터 건립기금 모금을 해오던 중 2016년 만오 스님의 6억원 쾌척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건립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다시 선센터 부처님 조성기금 2억원과 장학회 기금 1억원 등 3억원을 전달하면서 지금까지 총 11억원의 기금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회향했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더 이상 참선을 지도하기 어렵습니다. 선센터를 통해 초심자나 다름없는 대학생들에게 참선의 가치가 전달될 수 있다면 그만큼 큰 회향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공덕이 도원사 사부대중 그리고 시방세계 모든 존재로 회향되기를 바랍니다.”

신도들에 따르면 염불소리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도원 스님. 비록 신장이 악화되면서 4년 전부터 법문을 중단했지만 정성스런 보시금의 회향에 담긴 스님의 자비심은 무언의 법문으로 가뭄 끝 장맛비가 되어 시방세계에 관세음의 청정수를 뿌리고 있었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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