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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포럼 김대식 박사 강연 -종교인이 종교를 배워야 하는 이유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1/12/16 [16:40]

함석헌평화포럼 김대식 박사 강연 -종교인이 종교를 배워야 하는 이유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1/12/16 [16:40]
함석헌평화포럼 김대식 박사 강연

종교인이 종교를 배워야 하는 이유

 

도대체 왜 종교인이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웃종교에 대해서 배워야만 하는가?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근본적 이유는 자신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존 던(John Donne)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No man is an island). 타자와 함께, 타자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게 종교인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달리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를 앞세워 타자의 종교를 폄훼하고 비판하는 것은 세상에 나 하나만 존재한다는 독불장군과 같은 사고방식이 아니던가. 그것은 실상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종교 안에서 갖고 있는 매우 절대적인 배타성에서 기인한다. 같은 종교를 갖고 생활하고 있는 공동체 내부에서 비롯되는 배타성에서 이웃 종교의 배타성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동일한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면 보다 더 돈독한 종교인이 될 거라고 가정할 수 있지만, 정작 내부에서 움직이고 있는 또 다른 배타성을 보면 이웃 종교를 밀어 내는 방식과 사뭇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종교의 배타성, 종교의 강한 정체성은 무리를 짓기 좋아하고 좋은 밥그릇을 차지하기 동물적 근성 그 자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고 볼 수 있다. 알고 보면 종교적 배타성이란 종교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이를 테면 사랑, 자비, 인, 관용, 무위 등 종교가 내세우는 종교의 창시자들의 애초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종교의 조직과 제도,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를 보다 적극적으로 막아내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종교 시장의 확장에 기인하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는 바, 그것이 자신의 종교 내외부의 결속력과 밀접한 역학 관계로 나타나는 현상이 종교적 배타성이다.
따라서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뿐만 아니라 이웃 종교에 대해서 정말 깊이 있게 공부를 해야 한다. 편견 없이 배우면서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행위에서 비롯되는 삶의 형식이 왜 다를 수밖에 없으며, 서로 대화를 통해서 나의 종교적 신앙을 좀 더 풍요롭게 해 나가야 하는지를 숙고해야 한다. 또 그것은 자신의 종교를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으로 무장하면 안 된다. 종교에 대한 공부는 어디까지나 종교의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나 수양, 영성적 훈련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나의 시선이 절대적 시선이 아니라 종교가 갖고 있는 본질적 시각으로 탈바꿈되어 이웃 종교는 고사하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웃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종교적 배타성을 띠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종교 공동체에 대한 우월성이다. 종교에 대한 우월성이 아니라 각기 다른 종교 공동체의 규모, 세력, 전통 등의 묘한 변수가 작용한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종교적 공동체에 대한 열등감이 이웃 종교를 비난하고 비웃는 아이러니한 심리를 갖게 만든다. 따라서 종교 공동체가 작으면 작은 데서, 반면에 크면 크다고 하는 데서 이웃 종교, 혹은 동일한 종교를 갖고 있는 종교 간에도 심각한 배타성을 띠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이것도 종교의 본질과는 다른 것이다. 종교는 우월하거나 열등한 수직적, 수치적 서열을 따질 수 없다. 다만 그 종교 공동체가 얼마나 성숙되어 있는가, 이성적으로 혹은 영성적으로 자신의 종교적 신앙에 입각하여 삶을 얼마나 잘 드러내는가가 종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요즈음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외면당하는 종교의 모습을 보면, 종교적 삶의 현상이 상식 밖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념이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은 차치하더라고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속물적, 종교 병리적 모습은 과히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 종교를 보는 시민들은 어느 종교가 우월한가, 어느 종교에 진정한 구원이 있는가보다는 어느 종교가 보다 더 이성적으로, 감성적으로 성숙되고 그에 따른 영성적 삶을 지향하는가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종교인은 종교를 배워야 하는가? 자신을 알기 위해서이다. 종교를 공부하는 1차적 목표는 선교나 포교를 통해서 종교적 확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다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종교가 자신의 세계 혹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다. 그런 지혜와 식견을 갖추고 싶어도 갖출 수가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는 종교는 세상에서 쓸모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나 죽은 후의 세계만을 꿈꾸게 만드는 종교는 이기적인 종교로 비추어 질 수밖에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에서 타자와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 살만한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생각을 품을 수 없다면 죽은 후의 정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신을 알지 못하면서 끝끝내 자신의 종교적 정보와 아집으로 세상을 좁디좁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이 더 없이 측은하게 느껴지지는 않은가? 종교는 이 세계에 나 혼자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길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세계에 대해서 종교를 낯설게 다가오지 않도록 끊임없는 내면의 쇄신 운동-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 생성, 과정, 운동이다-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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