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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성지를 가다/ <하>3개월간의 열반여행, 바이샬리 대림정사 터 , 쿠시나가르 열반사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1/12/16 [16:20]

인도불교성지를 가다/ <하>3개월간의 열반여행, 바이샬리 대림정사 터 , 쿠시나가르 열반사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1/12/16 [16:20]

인도불교성지를 가다/ <하‧끝>3개월간의 열반여행 


죽음 예견한 붓다 “번뇌 벗고 정진하라” 설파



바이샬리에 있는 대림정사 터.

인도 쿠시나가르에 있는 열반사. 붓다의 열반상이 모셔진 곳이다.

 열반상에 세계 각국의 불자들이 참배하고 있다.

 

붓다는 우수에 찬 눈으로 마지막 여행의 출발점이었던 라즈기르(왕서성)를 둘러본 뒤, 인도 북단 쿠시나가르로 향했으리라. 가는 중에도 그는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쉼 없이 법을 전했다. 붓다는 설법 중 ‘항하(恒河)의 모래’로 자주 비유했던 갠지스강을 건너 계속 북상했다. 삶과 죽음이 뒤엉켜있는 영혼의 도시 바르나시에서 확인한 갠지스강의 모래는 밀가루처럼 고왔고, 시신을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어두운 강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바이샬리에서 자신의 열반 예언


이윽고 바이샬리(구 비야리성) 근교 벨루바 마을에 도착한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우안거(雨安居)에 들어간다. 당시는 엄청난 더위와 습도의 계절이었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붓다는 병이 났으나 오래가지 않아 회복한다. 이때 아난다가 묻는다.

“세존께서 병이 위중해 몸이 야위었을 때 저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아직 승가에 대해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뒤에야 안심이 들었지요.”

아난다는 열반에 들기 전에 교단을 계승할 사람을 지명해 달라는 뜻이었지만, 붓다는 그러한 생각을 경책했다.

“아난다여, 그 기대는 잘못된 것이구나. 나는 내가 이 교단의 지도자라든가, 비구들은 모두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든가 하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이 교단의 후계자를 지명해야 되겠느냐.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교단 안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붓다에게 부여된 생의 불꽃이 거의 소진될 무렵, 등창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악마가 찾아와 “하루빨리 열반에 들라.”고 재촉했다. 붓다는 이렇게 말한다. “악마여, 여래는 스스로 때를 알고 있으니, 물러가라. 지금으로부터 석 달이 지나 나의 본생지 쿠시나가르의 사라쌍수(紗羅雙樹) 사이에서 열반에 들리라.”

앞서 제자에게도 자신의 운명을 알렸다. “아난다야. 내 나이 80에 들어 형상이 썩은 수레와 같으니 이제 더 굳고 강하기를 바랄 수 없다. 아난다야, 너는 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

붓다가 자신의 열반을 예언한 곳이자, 불교사에 중요한 사연을 간직한 바이샬리(Vaishali)로 가는 길. 버스를 타고 반나절이나 달려도 구릉하나 보이지 않는 드넓은 황토색의 대지에는 푸른 밀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간간이 스쳐지나가는 촌락과 늪지에서는 궁핍함이 슬프게 배어나왔다. 곧고 한없이 뻗어나간 길에는 신의 반열에 있는 성우(聖牛)들이 가끔 차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것은 수천 년 전부터 있어왔던 풍경이리라.

인도 비하르주(州)의 주도(州都)인 파트나(Patna) 북쪽 겐지스강 중류에 위치한 바이샬리는 전형적인 빈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불교의 8대 성지 가운데 하나로, 붓다와 기녀(妓女) 암바팔리 여인의 사연이 담긴 곳이고, 붓다가 최초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한 곳이다. 또한 원숭이 떼가 붓다의 발우에다 꿀을 공양한 곳이요, 초기 대승경전인 ‘유마경(維摩經)’의 무대이기도 하다.

암바팔리는 누군가가 망고나무 숲에 버린 아이였다. 그러나 예쁘고 매력이 넘쳐 커서 궁중의 창부가 된다. 그녀는 착한 성품으로 자선활동을 많이 했는데, 이 소문이 마가다국 빔비사리 왕에게까지 알려져 그녀를 찾아간 왕은 암바팔리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결국 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게 된다. 이 무렵 붓다가 바이샬리를 지나며 암바팔리의 망고 숲에 머물게 됐는데, 붓다의 설법을 듣고 감동을 받은 암바팔리가 자기 소유의 망고나무 숲을 승단에 보시한 것이다. 이것이 사원으로도 불리는 암라수원(菴羅樹園)의 유래가 된다. 그녀의 아들은 훗날 스님이 되었는데, 아라한을 이룬 아들의 설법을 듣고 암바팔리는 노년에 비구니가 되었다.

붓다는 성도 후 6년째 되던 해 카필라성에서 아버지 숫도다나왕의 장례식을 치른 후 승단으로 돌아오려는데, 자신을 키워준 이모가 출가를 간청했지만, 전통상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이모가 궁중에서 500명의 여인을 데리고 찾아와 간곡히 사정하자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출가를 허락한다. 이것이 최초 비구니 승단이 탄생한 배경이다. 당시 인도사회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高齡에, 위중한 가운데도 法 전해


유마힐(維摩詰)은 붓다 재세시 큰 부자이면서도 각자(覺者)였다. 그는 사람들을 교화하려고 스스로 병에 걸려 자리에 눕기까지 한 인물이다. 자신의 병든 몸을 소재로 많은 사람을 깨우쳤던 것. 하루는 유마거사가 왜 자신의 병문안을 붓다가 오지 않는가 하고 소문을 냈다. 붓다는 제자들을 보내려 했으나, 10대 제자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이유인즉, 유마거사의 도력이 워낙 높아 혹여 자신들이 봉변을 받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붓다는 할 수 없이 문수보살을 보냈다. ‘유마경’은 바로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불꽃 튀는 법거량(法擧揚)이 담겨 있다.   

바이샬리에는 아쇼카왕의 석주, 원숭이들이 파냈다는 연못, 붓다가 화엄경 입품계품을 설하던 대림정사(大林精舍) 등의 유적이 남아 붓다에 대한 그리움을 낳는다. 대림정사는 기단부분만 겨우 남아 무상한 세월을 읽게 한다. 암라수원 터에는 망고나무 숲은 별로 없지만 벽돌로 쌓은 아쇼카 스투파가 반쯤 허물어진 채 유적지로 지정되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이미 8세기 신라의 승려 혜초가 갔을 때도 암라수원에는 탑만 남아있고, 절은 허물어지고 승려도 없었다고 그의 인도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서 전한다.

몸에는 괴색(壞色) 옷을 걸치고 손에는 발우 하나를 들고 바이샬리를 출발한 붓다는 쿠시나가르를 20㎞ 앞둔 파바 마을에서 대장장이 춘다로부터 ‘수크라 맛따바(돼지고기로 추정)’로 불리는 음식을 공양 받고 또다시 병이 났다. 붉은 피를 쏟으며 심한 병고에 시달렸다.

설사를 계속하면서 스물다섯 차례나 휴식을 취한 붓다는 마침내 쿠시나가르의 히란야바티강을 건너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서 고요히 누웠다. 이때 하늘에서는 만다라(曼茶羅) 꽃이 눈처럼 떨어졌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 붓다는 얼마 후 눈을 감았다. 붓다가 열반에 든 순간, 대지가 크게 진동했다고 경전은 전한다.

붓다가 열반한 곳은 지금 공원으로 조성돼 있고, 그 안에 흰 석회가 칠해진 열반사와 승원 유적지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열반사 안에는 붓다가 임종시 고요히 누워 있던 모습 그대로 AD 5세기경에 조성된 6.1m의 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다른 유적지보다 잘 단장된 너른 경내에는 당시를 재현한 듯 사라쌍수가 우뚝 서 있다. 대부분 힌두교나 이슬람교 신자인 이곳 주민들은 붓다의 존재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불교 유적지를 단순히 동네 공원처럼 여기고 공휴일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산책을 나올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한 무슬림은 ‘4대 성인’으로서 붓다를 기억했다.

붓다의 유해는 열반 7일 후 인근 다비장터에서 불태워졌으며, 몸에서 나온 사리는 8개 왕국에 분배됐다. 붓다의 유해를 화장한 다비장터에 라마브하르 스투파가 세워져 있다.

붓다가 열반을 눈앞에 뒀을 때다. 그는 극도로 피로한 몸이었지만, 제자들에게 의문이 남아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몇 번이고 권한다. 모두 침묵으로 일관할 때 아난다가 “교법이나 승가, 혹은 실천 방법에 대해 조금도 의문이 남아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때 붓다가 짧게 한마디 한다. “모든 현상은 변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붓다의 마지막 말이었다.


하늘에선 만다라 꽃이 눈처럼…


조금 후 붓다는 가만히 눈을 감고 영원한 적정(寂靜)에 들어갔다. 하늘에는 순한 소의 눈망울 같은 별들이 총총 피어나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고통을 참아내고, 등불이 꺼지는 것처럼 마음의 해탈을 이룬 붓다. 인류는 그를 ‘위대한 스승’이라고 부른다. 광활한 영성의 들녘에 취해 고원한 정신세계를 더듬거렸던 기자의 인도 여행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바이샬리‧쿠시나가르(인도)=정성수 논설위원>


<사진설명>

◇붓다의 열반상에 세계 각국의 불자들이 참배하고 있다.

◇인도 쿠시나가르에 있는 열반사. 붓다의 열반상이 모셔진 곳이다.

◇바이샬리에 있는 대림정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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