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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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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통찰! 天問天答’-끝없는 문답의 연재를 마치며
‘존재의 원인’을 물으며 神· 眞理·삶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기사입력: 2017/09/11 [07:3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담선(談禪)공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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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판에 번역 연재 이어가, 후속 연재 기대
모든 經典은 용어와 표현이 반복되는 듯하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그 내용이 심화되는데 그 심화과정이 용어와 표현의 반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처음 대하는 경전은 지루하지만 그 뜻을 헤아리기 시작하면 반복 용어와 표현도 하나하나 새로워진다.     

‘나는 누구인가?’를 반복해 묻고 답하는 ‘통찰! 天問天答’ 역시 그랬다. 모든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묻는데서 나아가 ‘존재의 원인’을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반복되는 용어와 표현이 아니고서는 그 뜻을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조사(助詞) 하나와 띄워쓰기 하나로 그 의미가 달라졌으며 그 반복 과정에서 비로소 ‘통찰 천문천답’ 연재의 취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통찰! 天問天答’은 156회 연재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동안  ‘통찰 천문천답’은 146회의 큰 주제의 문답 321개가 이루어졌으며 법회록(法會錄) 10회가 연재됐다. 자기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신, 진리, 삶에 대한 이해의 기회가 되었음을 믿는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은 끝이 없을 것이다. 매일종교신문 일본어판에 그동안의 연재를 번역 게재하는 동시에 조만간 談禪공부모임의 후속 연재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에필로그:‘존재의 원인’을 물으며 神· 眞理·삶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동안은 누구든지 예외 없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태어나고 살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련의 모든 일들이, 자기 자신의 뜻이자 의지이자 ‘마음먹기’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의식상태이며, 무의식상태 속에서 능동적 주체라고 여기는 경험의 주체는 꿈속의 배역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자기 자신의 뜻이자 의지이자 마음먹기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지각되어지고 인식되어지는 모든 일과 경험과 더 나아가서는 지각과 인식의 주체조차 자기 자신의 무의식이 그려내는 꿈에 불과하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지각과 인식은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경험은 육신의 감각기관에 의존을 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육신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감각기관에 의존하여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지각과 인식을 하는 일련의 모든 일들을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며 다양하고 수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육신의 죽음과 함께 반드시 ‘끝’이 날 것이며, 그에 따라서 ‘삶’은 무의식이 그려내는 무의미한 ‘꿈’에 불과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를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있으며, 다양한 명예가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선택의 여지가 있으며, 행복 또한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육신과의 동일시로 인한 ‘지금의 나’와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분명한 사실관계가 있기 때문에, ‘깨어남’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살아가는 동안에 해야 할 최우선 순위는 부를 얻고 명예를 얻고 행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깨어나야 하는 것이며, 이러한 ‘깨어남’은 상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각을 하고 있으며, 누구나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의 원인’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의미와 이유는 ‘존재’에게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원인’으로부터 비롯되어지기 때문이며, 반드시 찾아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동일시로 인한 오해 즉 ‘지금의 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존재의 원인’으로서의 ‘더 사실적인 나’가 있으며, 더 사실적인 ‘나’로 자각하며 제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생각을 하며 ‘의문’할 수가 있는 오직 인간정신만의 유일한 ‘숙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살고 조금 더 가지고 조금 더 누림을 추구하는 삶은 반드시 육신의 죽음과 함께 깨어질 것이며, 죽음이라는 가상의 현상에 의해 깨어질 삶은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거듭 말하지만 단지 꿈에 불과할 뿐입니다.       

수천수만 년 동안 인류는 자유와 정의와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추구하며 살아 갈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언제 어느 때고 자유와 정의와 평화와 행복이 온전하게 실현되었던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실현될 수가 없었던 이유는 단언컨대 구속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여겼기 때문이며, 불의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여겼기 때문이며, 분쟁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여겼기 때문이며, 불행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의식상태에서, 즉 무지의 상태에서 추구하는 그 어떤 것 그 어떤 ‘이상향’이라 할지라도, 비록 명분이 분명하고 뚜렷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할지라도,
단언컨대 완전을 지향하는 영원한 미완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유와 정의와 평화와 행복은, 구속이 사라지고 불의가 사라지고 분쟁이 사라지고 불행이 사라져야 성취되는, 조건적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자각’을 통해서 그 실체를 바로 알 때 무조건적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보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단언컨대 자기 자신에게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신에 대한 이해와 진리에 대한 이해와 삶에 대한 이해가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인 ‘나’는 가장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1차적 연재를 마치며 지면을 할애해 주신 매일종교신문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ㅡ진경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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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화평 17/09/11 [08:49] 수정 삭제
  그 동안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접근방식들을 일깨워 주신 진경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히말라야 17/09/12 [19:49] 수정 삭제
  긴 시간동안 나 자신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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