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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같은 벌초·성묘·차례·제사·추모감사기도일이 되길 바라며

신민형 | 기사입력 2017/09/18 [21:43]
하늘소풍길 산책

소풍같은 벌초·성묘·차례·제사·추모감사기도일이 되길 바라며

하늘소풍길 산책

신민형 | 입력 : 2017/09/18 [21:43]


추석날 차례 치르지 않고 여행 떠나는 변명
    

한여름 태양만 내리 쬐던 천주교공원묘지 곳곳에 성묘하는 가족들이 보인다. 청명한 가을날의 소풍모습이다.    

나도 옛날 아버지 따라 나선 조부모 벌초 때의 소풍 기분으로 상쾌한 법화산 숲길 거쳐 이곳에 왔다.     

따지고 보면 천주교 교우를 모신 이 묘지에도 나에게 피를 나눠준 숱한 조상들이 잠들어 계시다. 시조 이래 1200년 37대를 이어온 평산신씨, 수십수백의 배우자 성씨의 묘소들이 있다. 그 이전 수십억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가 피를 나눈 조상이고 형제다.     

어제 조부모님 64주기 기일을 맞아 아내와 며느리가 차려놓은 음식상 앞에서 추모기도를 하면서 65주기부터는 추모기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신들의 영혼을 자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드린다고 했다. 추억을 공유한 부모님 세대 기일만 추모하고 명절 때에나 함께 추모감사기도를 올리겠다고 했다.    

예전처럼 차례상에 지방을 써서 5대조까지의 신위를 모시지 않는 대신 친가·외가, 5대조 이상의 조상들을 모두 추모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더 의미가 있는 추모감사기도가 된다고 자위했다. 변명이다.    

제사 풍속이 사라지듯 훗날 조상을 기리는 의례의식조차 사라질 것을 염두에 둔 선언일 수도 있다. 소풍같은 벌초, 성묘, 차례, 제사, 추모감사기도가 필요하다. 혹여 의무적, 형식적이고 번거로워 짜증까지 생겨날 의식과 절차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천주교 공원묘지서 추억을 공유한 부모님과 장모님을 우선 떠올리며생각 다른 조상들, 형제들을 성묘했다. 이번 추석엔 우리부부 60평생 처음으로 차례 안치르고 처형 부부 있는 멜버른서 체류한다. 솔선수범인가?     

<조부모님 64주기 추모기도문>
- 65주기엔 자손들의 추모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 되시길    

오늘 아침 쾌청한 가을 산 정상엔 모처럼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노부부가 단촐하게 벤치에서 다과를 드는 편안한 모습,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온 젊은 부부들의 평화로운 모습 등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기 아빠의 난감하고 짜증스런 전화통화 소리가 들렸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와 차례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서로 ‘올라오라 내려오라’, ‘이쪽이냐 저쪽이냐’ 등 신경전을 펼치는 것같았습니다. 아기 엄마는 애들과 노닥거리며 딴청을 부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명절 등의 의식절차를 통해 번거롭지만 즐겁고 들떴던 만남을 이루었던 미풍양속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온가족이 한데 어울려 소풍가는 기분으로 성묘하고 벌초하던 시절은 이미 지난 듯 합니다.     

이런 정경을 보며 산 속에서 오늘 저녁 64주기 조부모님 추모기도문을 구상했습니다.     

난생 처음 올 추석 차례와 추모감사기도를 올리지 못하는 내 자신의 변화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집사람과 단둘이 올리는 기도가 편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들 며느리 손주랑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오늘 기도문을 써보았습니다.   

오늘 조부모님 64주기를 핑계삼아 올 추석 감사추모기도까지 함께 합니다.

다음 주엔 처형 부부가 있는 멜버른으로 떠나 우리 부부 60평생 처음으로 추석 차례를 치르지 않고 그곳서 체류합니다.     

부모님 살아계셨다면 감히 생각도 못할 현실적인 의식입니다.     

조부모님 기일 추모기도도 이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나는 “시대 조류를 따르라”는 유서로서만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유지를 새겨 생활하셨듯이 저 역시 아버지의 생활신조를 이어갑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저의 세대에서만 고수하다 사라질 것을 죄스러워하거나 아쉬워 않을 것입니다. 이 모두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니 조부모님, 부모님 영혼이 혹 우리를 굽어 보신다하더라도 모두 섭섭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버지 대에서는 5대 할아버지까지 모시던 설날 추석의 차례였지만 기일 제사는 부모님에게만 올렸듯이 이제 나의 조부모님의 영혼도 자손들로부터 자유롭게 놓아 드려야지요.     

다만 명절 차례 추모기도로 한데 모시는 일은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어나갈 겁니다. 지방을 써서 신위를 모시지 않는 대신 친가·외가, 그리고 5대조 이상의 조상들까지 추모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오히려 더 의미가 있는 추모감사기도가 된다고 자부하겠습니다.    

다음주는 장모님 기일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살아 있을 동안 추억을 함께 공유했던 분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즐거운 추모기도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벌초·성묘·차례 ·제사·추모감사기도일이 앞으로도 나를 비롯해 모두에게 의무적이고 짜증스런 날이 아니라 즐거운 소풍날같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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