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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북한內 통일교…평화자동차는 과연 北핵개발에 일조했을까
在美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를 통해 살펴본 통일교의 북한 내 활동상
기사입력: 2017/10/03 [11:3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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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4일 CBS 기독교방송의 노컷뉴스가 “北 미사일 제조, 통일교 연루 의혹…평화자동차가 둔갑했다”는 꽤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일련의 단독보도 기사를 시리즈로 내보냈다. 북한의 핵무기가 9월3일 제6차 핵실험, 그리고 연이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이제 실전 배치단계까지 이르렀다는 민감한 시기에 이 기사는 세인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만했다.

이와 관련,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통일교)측에서는 9월21일 ‘자랑스러운 통일교인들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반박, 해명에 나섰다.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이어 북한에서 통일교의 활동을 살펴본 개신교 최재영 목사(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북한 사역단체 ‘NK비전 2020’ 대표)의 방북기(訪北記)를 2016년 게재된 ‘통일뉴스’에서 인용, 자세히 보도한다. 이를 통해 객관적 사실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자동차, 북핵 개발에 일조’라는 CBS 보도에 대해 통일교측서 반박·항의      

CBS 노컷뉴스의 보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론의 기본도 제대로 지키지 않을 만큼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 기사의 출처는 ‘일본 언론’에서 출발하여 ‘익명의 통일교 핵심 관계자의 폭로’를 근거로 삼고 있다. 

먼저 ‘일본 언론’이라면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걸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아무런 언급이 없다. 안타깝게도 일본 언론 대다수는 통일교에 대해 아직도 비판적이다. 지난 80, 90년대에 무려 4,000명 이상의 일본 내 통일교인들이 일본 기독교 목사 등에게 강제납치, 세뇌시킨 후 개종시키는 반(反)문명적인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입을 꼭 다물었던 사이비 일본 언론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언론들은 아직도 ‘독도는 일본땅, 위안부 할머니=매춘부’ 등 극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필시 그런 영향권의 ‘일본 언론’을 근거로 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익명의 통일교 관계자의 폭로’도 잘 들어보면 ‘미사일 부품제작에 쓰였다는 CNC밀링머신에 대한 단한마디 언급도 없이‘ 횡설수설하고 있다. 게다가 평화자동차 근무자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지어진 평화자동차 공장이 미사일 부품 제작에 이용됐다는 것은 통일교 지도부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말도 금시초문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최종 책임자인 박상권(朴商權) 평화자동차 명예회장이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익명의 통일교 관계자'의 일방적인 의견이기에 이를 좀 더 보완하는 신중한 노력과 과정이 필요했었다. 그런데 CBS의 보도 태도는 출처불명의 ‘일본 언론’과 익명의 ‘통일교 핵심(?) 관계자’의 단순 의혹기사를 마치 기정사실인 양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고, 박상권 회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해명하라고 둔갑을 시도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정말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대북 경제협력의 모델인 평화자동차와 그 모체인 통일교는 ‘북핵 개발에 일조한 매국노 종교적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CBS 노컷뉴스의 보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론 보도의 기본도 제대로 지키지 않을 만큼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 기사의 출처는 ‘일본 언론’에서 출발하여 ‘익명의 통일교 핵심 관계자의 폭로’를 근거로 삼고 있다.
▲ CBS 기독교방송의 통일교 북핵개발 관련기사 캡쳐  

그러나 평화자동차의 한 핵심 관계자의 이야기는 이와 전혀 다르다. “컴퓨터에 의해 금속의 절삭 천공 등 정밀가공 대량생산에 쓰이는 ‘CNC밀링머신’은 여러 완성차 회사에 동시 납품하는 하청공장에서나 필요한 제품이다. 평화자동차 남포공장은 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초창기 시절처럼 자동차부품을 100% 해외에서 수입해서 조립만 하는 공장이다. 따라서 가공에 필요한 저가의 단순한 공작기계조차도 전혀 갖추고 있지를 않는데 ‘CNC밀링머신’ 같은 고가의 고급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데,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이처럼 평화자동차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평화자동차는 수입부품을 조립·완성하는 공장이기에 CNC밀링머신이 필요없다.‘면서 ”CNC 밀링머신은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이번 기사는 다분히 모략적이다“고 말했다.

위키 백과사전에도 “‘평화자동차’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동차 생산 및 판매 기업이다. 주식의 70%를 대한민국의 평화자동차(통일교)가, 30%를 조선민흥총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피아트에서 라이선스 받은 소형차, 중국에서 라이선스 받은 픽업트럭과 SUV를 ‘조립’ 판매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작’ 판매가 아니란 뜻이다.

그리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류권 진입 실험시기인 2017년과 평화자동차가 2001년 생산을 시작하여 철수한 2013년과 그 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박상권 회장도 최근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평화)자동차를 넘겨준 지가 몇 년 됐는데요”라고 했다. 이같은 논리라면 마치 2016년 개성공단 철수시 두고 온 기계 장비들을 만일 북한이 핵개발을 위해 사용했다면, 한국 정부의 북핵 개발 일조로 치부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이다.
▲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 남포시 평화자동차를 방문한 노무현대통령

거기에다 평화자동차가 가지고 있다는 가공의 ‘CNC밀링머신’이 어떻게 북한 핵개발에 쓰였는지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지 묻고 싶다. 실제 북한의 ICBM 제작에 쓰이는 기계장비들은 세계 유수 지역에서 비밀리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장비들이 평화자동차에 있는지 확인도 안 되고, 거기에 실제 사용됐는지 구체적 증거도 없이 ‘CNC밀링머신’을 문제 삼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리고 그 정도 기계라면 가까운 중국에서 얼마든지 들여와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왜 하필 평화자동차를 타깃으로 삼았는지 그 저의가 참으로 궁금해진다. 

통일교 관계자의 폭로 핵심 내용인 “평화자동차가 둔갑해서 군수관계를 운영한다? 박상권 사장은 북한사람이다. 이중간첩이다?”란 말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일방적이고 주관적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박상권 회장은 자타 공히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공헌도를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왠 북한사람? 왠 이중간첩 타령? 이란 극보수, 수구꼴통 발언이란 말인가?

만일 박상권 회장을 ‘북한의 이중간첩’으로 본다면, 이는 결국 문선명(文鮮明) 총재의 일생에 걸친 통일운동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결코 ‘통일교 핵심관계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식구라면 결코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이어 박 회장의 진의(眞意)와 명예를 실추시켜 결국 통일교를 무너뜨리려(?)는 ‘악의’가 담겨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전직 평화자동차 임원들은 박상권 회장이 대북관계에 있어 지극히 치밀하고 신중한 행보를 해왔다고 입을 모은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북사업은 언행 하나, 행위 하나에 일순간 무너지는 살얼음판이기에, 매사 답답하리만큼 신중하고 인내를 요한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이러한 현실인데도 북한의 핵개발에 일조하는 부품기계 장비를 평화자동차를 통해 운영했다니 그리고 박상권 회장이 이중간첩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문선명 총재는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란 말처럼 일평생 조국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그런 가운데 1991년 김일성(金日成) 주석과의 만남을 통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남북교류의 일환으로 ‘평화자동차’ 사업을 남북 합영(合營) 방식으로 시작했다. 이후 평화자동차는 어려운 국내외적 난관을 뚫고 남북 간 구체적 교류관계를 만든 대표적 모델로 성장했다. 
▲ 1991년 11월30일~12월7일 방북한 문선명 총재 내외가 김일성 주석과 기념 촬영한 모습    

그리고 평화자동차는 문총재의 경제원칙 중 빼놓을 수 없는 ‘기술 평준화’의 시금석이었다. 문 총재는 미래의 ‘인류 한가족 공동체’를 위해선 반드시 선진국과 후진국 그리고 남과 북의 빈부격차를 줄여야 하며, 그 일환으로 ‘기술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대표적인 일상 필수품인 자동차 기술이 전무(全無)한 북한에 이를 전수하고자 자동차사업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문 총재는 이미 경남 창원에 운영 중이던 통일중공업의 원천기술이 밑바탕이 되었으며, 이 기술을 북한에 전수하여 남북통일에 기여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애석하게도 창원의 통일중공업은 강성노조 등으로 인한 경영악화,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으로 주인이 바뀌었으며 북한의 평화자동차는 시대적 여러 변수로 인해 철수했지만, 문 총재의 ‘남북한 교류’와 ‘기술 평준화’란 참뜻은 여러모로 후세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

CBS 노컷뉴스는 금번 ‘아니면 말고’ 식의 ‘평화자동차 북핵 개발 지원 의혹’ 보도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특히 CBS 노컷뉴스가 터뜨린 9월14일 전날인 13일은 일평생 평화와 통일의 가시밭길을 걸으셨던 문선명 총재의 ‘성화(聖和: 별세) 5주기’가 되는 날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아프다. 흔히 사람이 죽으면 이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게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다. 그런데 애도는커녕 또다시 추악한 이단사냥의 주구가 된 CBS의 행태를 접하다니… 더 이상 이럴 수는 없다.

거기에 문 총재의 치열한 세계평화와 남북통일 운동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당했던 일본 통일교인들의 헌금문제를 재탕, 삼탕 시리즈로 문제화시키는 만행을 벌이고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차차 논하겠다.  CBS가 짓밟은 문총재의 세계평화를 위한 일생은 이미 국내 한 유명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도 화제가 될 만큼 이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 작가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힘의 논리에 의해 정보를 얻으면 언젠가는 큰일을 당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는데, CBS가 이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힘 있는 기성 기독교의 시각에서 재단된 통일교의 왜곡된 정보가 대중들에게 많이 전해졌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혹시 그간 문총재의 지난 80, 90년대 세계 냉전종식을 위한 진실을 CBS가 왜곡하고 폄하했던 흑(黑)역사를 감추고 싶은 것일까? 왜 기독교언론 CBS가 또다시 추악한 언론적폐가 되기를 자청하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그동안 기독교 언론 CBS는 문선명 총재와 통일교에 무수한 돌팔매를 던져왔으며, 지금도 또 던질 준비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뀔수록 기독교의 민낯이 뜨거워질 것이다. 금번 보도 또한 아직도 CBS가 대한민국 종교와 언론의 적폐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부질(?)없는 부탁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다. 이제야말로 불행한 과거를 잊고, 문선명 총재와 통일교를 정상적인 종교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기독교의 참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오늘도 드높아지는 ‘개독교’라는 말을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지난 9월13일 문선명 총재 성화 5주기를 CBS와 함께 애도를 드린다.    
 
在美 최재영 목사의 訪北記를 통해 살펴본 통일교의 북한 내 활동상      

필자(최재영 목사)는 통일교가 북에 진출 후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며 포교와 선교를 하는지 직접 통일교 관련기관을 참관하며 알아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통일교가 북에 뿌리내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잘 알려진 대로 지금부터 25년 전인 지난 1991년 11~12월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의 첫 만남 이후 적극적으로 기업과 종교부분의 사업들에서 꾸준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 결과, 북측 당국도 통일교에 대해서는 국가차원에서의 각종 배려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필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북측과 통일교가 공생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기까지 하다. 필자는 이 글에서 통일교가 북에서 운영하는 기업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종교기관에 더 중점을 두었다.

우선 대부분의 한국교회와 기성 종교들로부터 줄곧 이단종교로 비판받아온 통일교는 그 공식명칭의 변천사도 굴곡이 많았다. 통일교가 태동한 이후 지금까지 어떻게 공식명칭을 변경해 왔는지, 그것을 인지해야 북측에 세워진 통일교에 대한 이해가 쉬울 것으로 생각되어 우선 명칭 연혁부터 알아보고자 한다. 

‘통일교’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간판을 바꾸다  

1954년 문선명 총재에 의해 창설된 통일교는 교단명칭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로 출범해 활동해 왔다. 그러다가 1996년 7~8월에 문 총재가 미국 워싱톤D.C에서 ‘세계평화가정연합’을 창설했는데, 그 이듬해인 1997년 4월8일 기존의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와 ‘세계평화가정연합’을 하나로 통합해 그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으로 바꾸고 공식적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그 이후 2009년 7월17일부터 공식적으로 ‘통일교’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사용되다가 2013년 1월7일 문 총재 사후(死後) 그의 부인 한학자(韓鶴子) 총재가 ‘통일교’라는 공식명칭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통합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명칭으로 또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국내외 모든 통일교 산하의 공식 교회들과 교단 간판들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ㅇㅇ교회’ 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ㅇㅇ본부’로 교체되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명칭이 변경될 때마다 북측에 있는 통일교 기관도 동일하게 변경되었다.   이처럼 통일교가 교단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바꾼 이유는 사회적 의미의 건전한 ‘참된 가정’이 아니라 설립자 문선명 총재의 이상(하나님의 뜻)과 관계성이 있는 가정을 모토로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통일교의 독특한 합동결혼식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진행한 것이며 ‘통일교’란 옛 이름 대신 현재는 ‘가정교회’라는 간판으로 전부 바꿔 달았다. 필자의 이번 방북기(訪北記)에는 북한 전역에 500개 정도로 흩어져 있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 소속의 공식교회인 ‘가정교회(처소교회)’의 명칭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 산하의 가정연합교회는 그냥 ‘통일교 교회’라고 지칭한다.
▲ 통일교 교회가 입주한 ‘세계평화센터’의 웅장한 모습. 실제로 평화센터는 종교적 목적으로 건축됐다.   

북에 진출한 통일교의 선교현장을 가다      

필자가 방북 중에 관료들을 통해 우연히 들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북측에서는 통일교라는 종교를 진짜 정통 기독교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기독교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북측 인민들이나 관리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그 이후 북한이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을 때 통일교 측에서 보건, 복지, 식량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고 통일교가 여러 가지 대북(對北)사업을 통해 북한 경제에 큰 기여를 하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통일교를 ‘참된 기독교’, ‘고마운 기독교’, ‘행동으로 실천하는 기독교’로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문선명 총재의 뜻에 따라 통일교가 운영하는 평화자동차 회사마저 북측에 양도하는 바람에 통일교에 대해 더욱 호감도를 가지고 있으며 차후에는 문 총재의 유지(遺志)에 따라 보통강호텔마저 북측에 양도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어 그 일이 성사되면 신뢰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통일교가 직영 또는 간접경영(합작경영) 등의 형식으로 경영하는 기업들이라고 해도 그 최종 목적이 결국은 종교적 목적 실현을 염두에 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또한  통일교의 대북기업들도 통일교 전체의 근간이 되는 문선명 총재의 ‘원리강론’을 통해 실현되는 지상천국의 건설에 있다. 북한에서 운영되는 통일교 기업들은 결국 통일교 교세확장과 포교를 위한 지원세력임을 부인할 수 없으며 궁극적 최종목적은 북한 주민들에게 ‘원리강론’ 교리를 가르쳐 신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통일교 기업들과 종교를 결코 분리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북에서는 이미 통일교 포교의 전초기지가 굳건히 세워져 있는데 그 첫째가 바로 평양에 세워진 통일교 공식교회당인 ‘평양 가정연합교회’이다. 그뿐 아니라 그 예배당이 입주해 있는 초현대식 빌딩인 ‘평양세계평화센터’가 있고 또한 평안북도 정주에 ‘문선명 총재 생가 코스’와 ‘세계평화공원’ 등이 있다. 이 전초기지들은 이미 북한 영토 내에서 선교활동을 위한 중추적인 베이스 역할을 왕성하게 감당하고 있다. 알려진 대로 평양 한복판에 세워진 평화센터는 그 규모가 엄청나며 준공식과 더불어 그 건물 3층에 입주한 통일교의 공식교회당이 현판식을 마치고 운영 중에 있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국내외 통일교 신자들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문 총재 생가와 인근에 조성중인 정주세계평화공원이 조성되고 있는데 필자는 이곳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돌아봤다. 우선 북에서 활동하는 통일교 종교기관들을 다룬 후에 통일교 관련 단체와 기업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가 직접 방문한 곳들은 통일교가 직영하는 대표적인 특급호텔인 보통강호텔과 1급호텔인 안산관호텔, 호텔부설 고급식당인 안산관 그리고 남포의 평화자동차공장, 평양시내의 평화자동차 전시장과 주유소 등이며 이 기업들이 현재 어떻게 활동하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비록 통일교가 국내외 기성교회들로부터 이단종교로 비판받는 상황이지만, 종교의 순기능과 역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 남북의 평화통일 조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이 될 경우에는 종교적인 측면을 떠나 통일 지향적 관점에서 올바로 평가될 것이다.     

1. 북한 선교의 전초기지, ‘평양세계평화센터’    

북한은 기본적으로 특성상 남한교회나 서방세계의 교회들이 주도해서 교회를 지으려고 할 경우, 그동안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교가 요구하는 부분들은 북측이 거의 다 수용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돈과 권력과 유능한 인적자원들을 동원한 통일교의 협상능력은 결국 뜻을 이루는 것을 결과를 통해 흔하게 볼 수 있다. 통일교는 특급호텔인 보통강호텔을 확보하고, 인근에 고급펜션식의 안산관호텔과 안산관식당 그리고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는 인근의 엄청난 부지를 확보해 사용 중에 있을 뿐 아니라 보통강호텔 바로 코앞에 통일교의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는 ‘평양세계평화센터(이하 평화센터)’를 10년에 걸쳐 건설한 것이다. 통일교 산하 ‘평화그룹’은 지금부터 10여년 전인 2007년 8월5일 행정구역상으로 ‘평양시 평촌구역 안산동’ 9,075평 부지에 건평 4659㎡(1,409평), 연건평 9062㎡(2,741평), 지하 1층, 지상 5층의 총 6층 규모의 평화센터를 준공했다. 1층에는 회의장과 연회장 겸용의 다목적 홀을 갖췄고 3층에는 대규모 통일교 예배당이 입주해 있다.

그밖에도 강의실과 회의실, 숙박시설을 골고루 갖춘 복합문화 컨벤션센터의 형식을 띤 건물이지만, 결국 평화센터라는 이름의 통일교 교회당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이날 준공식 행사를 기해 통일교 본부측에서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평양 가정연합교회를 봉헌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까지 했다.     
▲ 통일교 소유의 안산관 식당이 자리잡은 호수에서 세계평화센터와 보통강호텔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한 최재영 목사. 사진에 보이는 모든 지역이 통일교 소유이다. 사진= 최재영    

평화센터가 설립된 구체적인 과정을 보면 통일교측이 북측의 ‘아태평화위원회’에 최초로 건축을 제안해 계약을 성사시킨 후 1997년 7월 착공을 시작해 10년만인 2007년 8월에 완공했다. 그러나 착공 이후에는 뜻하지 않게 김일성 주석 조문파동 여파와 남북관계의 경색,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공사가 10년간 지연된 것이다.

필자는 “남측의 건축기술로 이런 건물을 짓는 것인데 길게 걸려봐야 1년 내지 2년이면 완공할 텐데 무슨 이유로 10년이나 걸렸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당시 평화센터 박상권 이사장이 준공식 후 식사 자리에서 “세계평화센터는 10년을 맞이한 오늘을 고비로 본격적인 남북 간의 사회, 문화, 학술 교류시대를 여는 산실이 될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듯이 공사가 진행되는 10년 동안 말 못할 어려움과 고충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이 평화센터가 완공되기까지에는 당시 대북사업에 진력하고 있던 평화자동차그룹의 집념과 의지의 결실이다. 평화자동차그룹은 평양 인근 남포에서 자동차 조립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평화자동차가 평화센터를 발주한 것으로 되어 있어 평화자동차의 대표가 평화센터의 이사장을 맡게 된 것이다. 이 평화센터를 완공하면 자신들이 운영하는 보통강호텔-안산관호텔-안산관 등을 하나로 연계해 운영하려던 계획이었고 실제로 현재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초현대식 국제 컨벤션센터로 건축된 평화센터의 건물 내부는 800석 규모의 대형 연회장을 2개나 갖추고 있으며 각종 회의실, 강의실, 연회장, 동시통역실, 숙박시설 등을 구비했다.

남북의 각 기관과 시민단체가 평양에서 문화, 학술, 종교 교류 행사를 개최할 때 누구든지 이용하도록 지원한다는 취지이며, 아울러 통일교 측에서 남북의 가교 역할을 하거나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또한 평화센터 내부의 각종 시설들은 이산가족 상봉 시에 북측 화상상봉 장소로도 제공되며 세계적인 과학자 등을 초빙해 전문 인력도 양성하거나 평양시민들을 위한 외국어 교육 및 컴퓨터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필자가 직접 평화센터를 살펴보니 철골과 고급유리로만 지어진 매우 고급스러운 초현대식 건물이라서 도대체 이 멋진 건물을 어떤 회사에서 건축했는가를 알아보니 바로 통일교 계열 건설회사인 주식회사 평화토건이었다. 평화자동차 회사 계열의 대북 건설회사로서 2000년 1월 설립해서 주택, 토목, 플랜트, 공항, 항만시설 등의 건설을 담당해왔는데, 자신들의 순수 기술과 인력으로 평화센터를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는 남측 기술자들이 평양에 가서 직접 건설한 최초의 복합건물이며 동시에 남측 법인이 북측 영토에서 건물을 완공한 후에도 운영권까지 맡게 된 것으로서 남북 교류 역사상 처음 있는 사례로 기록되었다.
▲ 2007년 8월5일 남측 통일교 신도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세계평화센터 준공식 장면   

10년 전 평화센터 준공식에 참석한 인원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남측 통일교에서 활약 중인 평신도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준공식 일정에 맞춰 2007년 8월 4~7일 3박4일 일정으로 방북했는데 전국에서 모범적으로 활동하는 통일교 산하 세계일보의 전국 조사위원들과 세계평화대사협의회 회장단, 통일교에서 창당한 평화통일가정당 당원 등 총150여명이 함께 방북단을 꾸려 참석한 것이다. 방북단이 평양에 도착한 8월4일은 준공식 전날이었는데, 이날 밤 보통강호텔 대연회장에서 통일교 주최 환영만찬이 있었고 북측에서는 리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오전 10시에 열린 준공식은 남측을 포함해 모두 200여명이 참석했으며 박상권 평화센터 이사장이 환영연설을 했고 북측에서는 전날 만찬에 참석했던 리종혁 부위원장이 다시 나와서 축하 연설을 했다.

준공식 행사를 마치고 남측 방문단 전원은 오후 시간을 이용해 왕복 다섯 시간이 소요되는 문선명 총재의 생가가 있는 평북 정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특히 이날 준공식이 끝나고 지하 1층부터 꼭대기 5층까지 건물 전체를 둘러보는 순서를 가졌는데 남측 대표단이 3층에 올라가보니 3층 전체가 대규모 예배당으로 꾸며져 있고 교회입구에는 ‘평양 가정연합교회’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제단에는 통일교 심볼 마크가 새겨진 설교 강대상이 놓여있는 등 기존 통일교 교회당 내부와 동일했다고 한다. 또한 건물 5층에 올라가보니 고급 주상복합형 펜트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숙소들과 부속실 등이 호화롭게 구비되어있어 구경하는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 할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건물의 겉모양은 전체적으로 종합문화센터의 성격이지만 알고 보면 이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통일교 교회당이었던 것이다. 특히, 북측 당국은 건물 명칭이야 무엇이든 사실상 통일교의 예배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건물의 건축을 허락하기까지 꽤나 많은 고심을 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승인과 통일교의 전방위 로비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돌아보면 1991년에 성사된 문 총재와 김 주석의 절묘한 외나무다리 만남이, ‘세계평화센터’ 준공을 통해 결실을 맺었고 결국 그 건물 3층에 통일교회당을 세우면서 대북 선교는 본격화된 것이다.

2. ‘통일교인들의 성지’ 문선명 총재의 생가와 ‘정주세계평화공원’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 이곳은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 총재가 태어난 곳이다. 그 후 행정개편으로 지금은 평안북도 정주시 덕언면 원봉리로 주소가 바뀌었는데 북한 당국과 통일교 측은 문 총재가 태어난 생가(生家)를 복원해 방문객을 맞이하는 프로젝트를 세워 이미 성지화(聖地化)했으며 생가 주변은 약 30만평 규모로 ‘세계평화공원(이하 평화공원)’을 조성 중이었다. 고향 마을에 거액을 투자해 평화공원을 조성한 목적은 문 총재를 홍보하고 국내외 신자들과 방문자들에게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하는데 있으며 생가를 거점으로 직접적으로 북한 인민들에게 선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목적도 있다. 문 총재가 1991년 11월30일~12월7일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단독회담을 갖고 남북교류 합의서에 서명한 이후 통일교는 본격적으로 북한에 진출하게 됐는데, 당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의 방북은 김달현 부총리의 중간역할로 김정일 비서의 승인 하에 은밀하게 이뤄졌으며 문 총재의 방북 일정은 모두 김정일 비서의 특별 배려였다.

또한, 김 주석은 “문 총재의 생가를 잘 보존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때부터 생가를 복원해 통일교 성지로 만들고 인근에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종합공원을 개발하는 사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당시 회담을 마친 문 총재는 일행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평북 정주를 방문해 자신이 태어난 생가를 방문했고 생존해 있던 혈육들과 일가친척들을 48년 만에 상봉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만난 혈육은 73세의 친누나, 64세의 친여동생을 비롯해 69세의 형수와 49세의 조카 등이다. 문 총재 자신이 이산가족이다 보니 이때부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도 통일교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정주에 평화공원을 조성키로 북측과 합의한 후 귀국한 문 총재는 평화공원 조성 부지 30만평을 구입해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정주세계평화공원은 명실상부한 국내외 통일교 신자들의 종교적, 사상적 성향이 깃든 곳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으며 평북 정주시는 생가복원과 평화공원 조성이 결정되면서부터 격동을 맞이하게 됐다. 시(市) 당국 차원에서 생가를 복원하고 관리하는 일과 평화공원 조성사업에 앞장서면서 관광수입도 생기게 된 것이다. 문 총재의 고향 정주가 종교적 성지가 되는데 있어서 정주시가 앞장서게 된 것이다.  1998년 정주에 있는 생가 인근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통일교의 대북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 1991년 12월 평북 정주의 생가와 고향마을을 찾은 문선명 총재 내외가 고향에 사는 가족과 일가친척들을 만나 기념 촬영을 했다.    

평화공원 조성과는 별도로 이미 문 총재의 생가는 김일성-문선명 회담 직후 북측 당국에 의해 즉시 복원되었다. 문 총재의 방북 이듬해인 1992년에 이미 정주시 차원에서 생가는 깨끗이 단장돼 있었고 진입도로도 새롭게 개설되었다. 최근까지 3차에 걸쳐 생가 주변이 정리됐는데 농경지 정리 작업과 진입로 확장공사를 하는 한편 생가 앞에는 관광객들과 방문자들을 위한 임시 매점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2003년 4월에는 통일부에 승인을 받은 평화항공여행사에 의해 평양과 백두산 관광을 비롯해 기타 여러 관광코스가 개설돼 있었는데, 그 중에는 문 총재의 생가도 포함됐다. 그 후 9월 들어 분단 이후 최초로 민간인들의 평양관광이 시작되면서 통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차원에서 대규모 참가했다. 북측 고려항공이 제공한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한 최초 관광단 114명은 모두 세계일보 조사국에서 모집한 인원들이며 직책은 조사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해 통일교에 헌신하는 평신도들임이 확인됐다.

그 후 2005년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4박5일 일정의 평양관광이 진행됐고 2003년 이후, 약5,000여 명의 관광객이 이 항공사를 통해 방북해 문 총재의 생가를 방문했으며 그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해외 신자들은 꾸준히 생가와 평화공원 조성터를 방문했다.  이처럼 북한에서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통일교의 전략과 계획은 정교하게 하나씩 실현되고 있으며 그들의 자금과 재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문 총재가 그처럼 자신의 생가를 성지화하고 인근지역을 성역화하기 위해 공을 들인 이유는 ‘재림 메시아’로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 기업과 공장들을 설립했고 이를 발판으로 재원을 마련해 교세를 확장하려던 것이다. 그 결과 생가는 이미 성역화 작업을 완료했고 그 인근은 세계평화공원이라는 명칭이 붙어 국내외 통일교 성지순례단이 찾는 코스가 되었다. 그러나 필자가 ‘정주 세계평화공원’ 조성 공사에 대한 진척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박상권 평화센터 이사장과 잠시 만나 확인해 보았으나 사실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필자와 박 이사장은 2013년 평양에서 개최된 전승절 기념행사를 마치고 전승기념관 정문 밖 입구에서 잠시 만날 기회가 생겨, 알아본 결과 30만평의 부지가 조성된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공사는 시작하지 않은 상태이며 공원 부지에 남녀 화장실만 각각 하나씩 세운 상태라고 답변해주었다.   

3. 북에 설립된 최초의 통일교 공식교회당 ‘평양 가정연합교회’   

통일교는 왜 북한 영토 안에 자신들의 교회당을 세웠을까? 위에서 밝혔듯이 통일교의 첫 교회당은 이미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7년 8월에 보통강호텔 앞 평화센터 3층에 세워져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통일교 교회가 평양에 세워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문 총재가 김 주석과 단독회담을 하는 날, 협상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성사됐다. 평양에 통일교 목사의 파견을 요청한 문 총재의 요구를 김 주석이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다. 그 결과, 당시 일본인 출신 통일교 목사가 형식적이나마 평양에 체류하며 통일교 선교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통일교는 분단 이후 최초로 북에 선교사를 공식적으로 파송한 종교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됐으며, 반면 북측도 분단 이후 최초로 해외 선교사를 공식적으로 수용한 첫 사례가 됐다.

평화센터는 매주 일요일이 되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게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통일교회식 예배를 드린다. 몇 년 전까지도 평화자동차 사장을 지낸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회장은 일요일이 되면 평양 봉수교회나 칠골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세운 통일교 가정연합교회에 출석했으며 박 이사장은 기업을 운영하는 경제인이며 경영자 신분이지만, 종교에도 관여한다. 평화센터 건물을 시공하기 전해인 1996년 2월에는 나흘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통일교 산하 기관인 한국종교인협의회는 종파와 종교를 초월한 초종교인들의 협의체 모임인데 박 이사장은 경영인이 아닌 통일교 종교인의 신분으로 종교 활동을 해왔는데 이처럼 통일교 조직은 기업과 종교의 경계선을 구분하기 힘들다.

통일교가 평양에 교회당의 문을 연 시기는 2007년 8월5일이다. 이날은 평양 세계평화센터가 준공식을 하면서 정식 개관하는 날이었는데 이 건물 3층에 교회 간판을 달고 봉헌식을 거행한 것이다. 통일교 본부는 이날을 기념해 자체 홈페이지에 “지난 (2007년) 8월, 평양에 가정연합교회를 봉헌했다. 북한은 마지막 가인국(구약성경의 가인을 지칭)으로서 참부모님(문선명 총재 내외)의 세계 노정의 마지막 깃발을 꽂을 곳입니다”라는 공지사항을 알리며 평양에 교회가 세워진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평양에 자신들의 교회를 세운 사실을 문선명 총재 내외와 통일교 수뇌부가 직접 언급한 사례가 있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 거행된 이른바 ‘천일국 7년 9월1일, 천부주의 선포 18돌 기념식’이라는 통일교 행사에서 이 사실이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이 행사는 2007년 9월1일 오전 5시부터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Kodiak Island)이라는 섬 지역에서 열렸는데 이날 행사 진행은 양창식 회장이 맡았고 황선조, 임도순, 유정옥, 송광석, 김형태 , 김명대 회장 등 통일교의 주요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모두 통일교 ‘국제지도자회의 및 피스킹 컵 낚시대회’에 참석한 주요 간부들이었는데 당시 참석인원이 150여명이었다. 이날 행사가 진행되던 저녁 6시경에 황선조 회장의 보고 순서가 있었는데 전날 문 총재의 특별 지시로 마련된 특별 보고였다. 이 자리에서 황 회장은 평양에 설립한 자신들의 교회에 관해 “평양교회를 세운 것은 교류가 아니고, 영적인 기반을 가진 하나님 사상의 정복이라고 볼 수 있다. 땅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말씀의 씨가 16년 동안 성장을 하여 교회로 안착을 하였다. 말씀, 축복, 심정문화가 있는 역사적인 대사건이었다.”고 언급했다.  통일교측은 세계평화센터가 남북의 평화통일을 선도하는데 활용될 건물이라고 선전을 해왔으나 결국 그 건물 3층에는 통일교 예배당을 세우고 선교전략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평화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결국 그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통일교 교회당이다. 북측 당국도 타 기독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그런지 통일교 교회당 존재여부를 공개적으로 알리기를 꺼려하는 눈치였으며 북측에서 활동하는 통일교의 가장 핵심 인물인 박상권 이사장 역시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통일교의 교세 확장과 남북통일의 상관관계

북한 당국은 지금도 남측이나 해외의 기업 및 교회 또는 선교단체에서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북측 영토에 교회당을 짓는 것을 거부한다. 북측은 교회당 건립비용으로 차라리 문화센터나 사회복지센터 쪽으로 건축해 줄 것을 요청한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외국인들은 공식적으로는 중국 영토에서 교회를 건축할 수 없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건축을 하기 위해 협상할 때에는 사전에 계약조항을 통해 건물 용도를 분명히 명시해야한다.

일반건물이나 사회복지센터로 짓는다고 계약했으면서도 완공 후에는 계약내용과 달리 예배를 드리거나 종교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애초부터 예배를 드리려는 목적이었다면 계약할 때부터 종교 시설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통일교 측은 중국에서의 포교를 위해 일반 건물로 건축 승인을 받은 후에 완공을 마치고 실제로 종교 활동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고초를 겪은 사례가 있다. 편법을 사용한 결과 중국 당국으로부터 거액을 압수당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통일교는 중국에서의 실패를 발판삼아 북한에서는 치밀하게 전략을 짠 결과 실제로 교회당이 세워진 것이다.

통일교의 모든 사회활동과 기업운영 등은 철저하게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겠지만 정치, 경제, 문화, 언론, 학술, 스포츠 등 통일교의 다양한 활동 목적은 단 한 가지, ‘통일교 왕국의 건설’에 있다. 그 동안 한반도에서 통일교 왕국을 건설하려는 문 총재의 꿈은 단 한 차례도 포기된 적이 없다. 그가 통일교 왕국을 한반도에 건설해야 하는 이유는 통일교의 핵심 교리서인 ‘원리강론’에 잘 기록돼 있다. 통일교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외곽조직들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 이런 다양한 조직 활동에도 불구하고, 문 총재의 핵심적인 교리가 담긴 원리강론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있으며 이런 여러 조직들을 통해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통일교 간부들의 대북사업은 아래와 같이 초지일관(初志一貫)하며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는 참부모님(문선명 총재 내외를 지칭)의 섭리적 측면에서 본 통일원리 때문에 대북사업을 펼친다. 공산주의는 역사를 지배와 피지배 계급 간의 갈등으로 보지만 우리는 선과 악의 갈등으로 본다. 북한을 변증법적 철학에 기초한 유물사관과 주체사관으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선한 방향으로 돌려세우는 것이 역사 속에 구원을 실현하는 한 방법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대북사업을 통한 통일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필자가 다뤘던 통일교의 기관들은 대북선교 차원에서 설립된 종교적인 기관들이며 문 총재의 원리강론의 내용을 충실히 수행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특히 세계평화운동과 남북통일운동, 가정회복운동 등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수십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건축한 평화센터는 매 층이 1,000평 남짓 되는 매우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준공 이후 지금까지 공익을 위해 크게 활용되지 못한 채 통일교만의 행사 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현재 평양에 상주하는 통일교 직원들과 신자들 위주의 모임과 행사 집회를 치르는 건물용도 위주로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교는 25년 전 김일성 주석과 문선명 총재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자신들의 노선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리강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신자들은 “남북 분단은 가인의 세력과 아벨의 세력의 만남이고 악의 세력과 선의 세력과의 만남”으로 굳게 믿고 있으며 아직도 이 교리를 신봉하고 있다.
▲ 준공식 당시 ‘세계평화센터’ 1층 로비에 마련된 사진전. 김일성 주석이 문선명 총재를 반갑게 영접하는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통일교의 북한 진출 사업들은 통일교의 종교적 목적 실현을 염두에 둔 하나의 과정이며, 교리내용의 변화가 아닌 선교형식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나 해외 한인교회들은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북에 대한 잘못되고 왜곡된 인식과 오류투성이의 대북자료와 정보를 바탕으로 선교정책을 세우고 있다. 고도로 압축된 통일교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대북사역 전략과 비교해 볼 때,기존 한국교회의 대북사역 전략과 노력은 매우 낭만적이고 고비용 저효율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아직도 허상을 잡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방북해 통일교 기관들을 참관한 시기는 김정은(金正恩)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한지 2년도 채 안 되는 시기였다. 집권 2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평양시내는 엄청나게 발전했고 변모하고 있었으며 역동적이었다. 그동안 내가 북을 다녀 온 후 많은 사람들에게 평양의 발전상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은 이들이 나에게 “평양만 발전하면 뭐하냐?”고 힐난하듯 비난했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평양이라는 도시는 매우 중요하다. 평양이 변하고, 평양이 발전돼야, 북측의 다른 지역도 모두 다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평양이 짧은 기간에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지방 도시들도 많은 변화의 움직임이 목격되었다. 이런 발전과 변화의 한 복판에는 그동안 통일교와 그 기업들이 한 몫을 했다.     

◆통일교 대북사업의 산 증인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회장
     
잘 알려진 대로 평화자동차 박상권 명예회장은 대북기업인 평화자동차 그룹의 대표이자 거기 딸린 계열사들의 총책임자였다. 아울러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통일교의 대북사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사업가이자 통일교를 믿고 전파하는 종교인으로 대외에 알려지고 각인된 인물이다. 박상권 회장은 미국 국적의 한인(韓人)이면서 평양시 명예시민증을 소유하고 있는 각별한 신분을 지니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미국-북한-남한 이 세 나라를 트라이앵글로 교차왕래하거나 바쁘게 남북을 셔틀왕래하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대북사업상 무려 215차례 이상 방북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2011년 8월25일은 미국 국적의 김진경 평양과학기술대 총장이 평양시 명예시민증을 처음으로 받았으며 그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는 미국국적 신분으로는 박상권 회장이 최초로 평양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2012년 12월1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거행된 박 회장의 명예시민증 수여식에는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평양시장)이 직접 수여를 했고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도 참석해 축하해 줄 정도로 그의 위상은 높았다.

또한, 그는 과거 국방위 제1위원장 시절의 김정은 위원장을 두 차례 만난 유일한 한인이다. 물론 두 차례 만남 모두 약 2분가량도 채 넘지 못한 짤막한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의 의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남한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며, 대북사업뿐 아니라 중국이나 해외를 비롯해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특수한 통일교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뒤늦게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사례에 해당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 2011년 12월24일 주석궁 빈소 조문과는 별도로 박상권 회장과 문형진 통일교세계회장이 김일성광장에 마련된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소에 조문하기 위해 조화를 운반하고 있다.     

박상권 회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12월 평양 태양궁전에 마련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빈소를 조문할 때였으며 당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도 조문을 위해 평양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이날 박 회장은 단독조문이 아니라 통일교세계회장 직함을 갖고 있는 미국 국적의 문형진 회장(문선명 총재의 7남)을 수행하는 통일교 핵심지도부의 단체조문 형식이었다.

문형진 회장은 문 총재 타계 이후 상징적·공식적으로 문 총재의 통일교 후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빈소 입구에서 조문행렬에 줄을 서서 순서대로 대기하던 통일교 조문단 일행은 자신들의 차례가 되자 상주였던 김정은 위원장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며 상견례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이때 박 회장은 슬픔에 빠진 김 위원장에게 악수와 더불어 위로 섞인 조의를 한 마디 살짝 건넸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눈인사보다는 낫지만 일대일 단독 면담이 아닌 잠시 인사 한마디 건넨 정도였다. 당시 김 위원장은 자국 내 각계각층 조문객들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방문한 조문객들을 며칠간 밤낮없이 맞이한 상황이라 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여건이 안됐고 또 실제로 빈소에서 상주와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영상물을 확인하며 박 회장은 “강성대국을 만들기 위해 기업인으로서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말을 건넸고 김 위원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감사합니다”라고만 답변했다. 그후 박 회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두 번째로 만난 것은 2년이 지난 7.27전승절 60돌 경축 주간이 마무리 될 무렵이던 2013년 7월30일 오전이었다. 필자는 박 회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우선 그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자 한다.  

◆김정은 위원장과 박상권 회장과의 깜짝 만남

필자는 2013년 평양에서 거행된 ‘7.27전승절 60돌’ 기념 행사주간에 맞춰 방북했다. 남측 입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로는 ‘6.25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식 행사주간이라고 보면 된다. 7월27일 당일 오전은 김일성광장에서의 군사퍼레이드와 군중집회를 비롯해 오후에는 전승기념관 개관행사와 야간축포행사 등 각종 행사들이 밤늦도록 진행됐으며 초청장을 받은 필자는 이 모든 행사를 참관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6월30일 낮 오전 11경에 전승기념관 정문 안쪽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수백 명의 해외동포 대표단이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는 일정이 잡혔다.

각국에서 평양을 찾아 온 수백 명의 해외동포 대표단원들은 이날 아침 촬영 현장에 도착해 몇 시간 전부터 촬영 준비에 임했다. 이때 박상권 회장을 비롯한 미국 대표단에 속한 필자도 그 기념촬영 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해외동포들과의 단체촬영을 위해 철제 스탠드 맨 앞줄 한복판 좌석에 앉아 있었으며 단체촬영을 모두 마친 김 위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 곧 퇴장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맨 앞줄 우측에 도열해 있던 박상권 회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앞으로 불러내는 포즈를 취했다. 이에 박 회장이 김 위원장을 향해 다가오고 김 위원장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그에게 성큼 성큼 가까이 다가가서 두 사람이 중간에서 만나게 됐다. 김 위원장은 머쓱해 있는 박 회장에게 반갑게 악수를 청하고 귀속 말도 주고받으며 카메라맨들 앞에서 가볍게 포옹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장내에 있던 해외동포 대표단은 일제히 김 위원장을 향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소리를 내보냈는데 이때 김 위원장은 박수소리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정상적인 목소리로 전달하기가 힘들다고 느꼈는지 자신의 몸을 박 회장의 몸에 밀착하고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는데 아마 간단한 덕담과 인사말을 주고받는 듯 보였다.
▲ 전승절 60돌(정전협정 60주년) 행사 참가를 위해 방북한 해외동포 대표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이 평화자동차 박상권 회장만을 지목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 하는 장면.   

북측 카메라맨들은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하며 김 위원장이 악수하는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일제히 민첩하게 움직이며 정신없이 찍어댔으며 2분도 채 안된 짧은 이벤트성 만남이었 지만 그 장면은 외신을 통해 전세계의 신문과 방송으로 보도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 위원장과 박 회장의 깜짝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그 자리에 함께 배석했던 당시 김양건 노동당 비서였다. 업무상 평소 박 회장과 친분이 있던 김양건 비서가 여러가지를 배려해 김 위원장과의 상봉을 성사시킨 것이다. 필자가 볼 때 김정은 위원장과 박상권 회장의 깜짝 만남은 통일교와 북한 최고지도부와의 밀월과 협력관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동안 통일교가 보여줬던 통일노력과 사업성과들을 각별히 기억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박상권 회장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은 어떤 의미?

박상권 회장은 전승기념관 정문 앞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단독으로 촬영한 기념사진을 김양건 비서 측으로부터 건네받기 위해 7.27 기념행사 주간이 다 끝난 후에도 평양에 계속 머물며 사진이 현상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서울 귀환에 앞서 드디어 8월2일에 김양건 비서와 2시간 동안 접견을 했으며, 그 자리에서 단체사진은 물론 자신과 김정은 위원장과 단 둘이만 찍은 단독사진 등을 전달받고 서울로 돌아왔다. 박 회장은 자신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남측의 각종 언론에 알렸으며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을 통해 당시 상황을 직접 말했다.

박 회장은 “(전승절 행사기간) 약 12일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행사가 열 가지가 있었는데요. 저는 조금 빨리 오려고 했는데, (북측 당국자가) 이틀 더 있다 가라고 해서 더 있었는데, 30일 아침에 가보니까 사진촬영을 단체로 해주는 시간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가서 섰는데, 선 자리에서 저를 본 김양건 부장과 김정은 제1비서가 저에게 손짓을 하면서 다가왔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쪽에 쫒아가서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그러려니 했는데, 기념사진을 지시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사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데, 두 사람이 찍게 됐고, 그리고 떠나고 나서, 간부들 다 만나고 축하받고, 그러고 나왔습니다”고 말했다.
▲ 사진 인화 기간을 단축해 김양건 비서로부터 단독촬영 사진을 건네받은 박상권 회장의 모습    

필자가 판단하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해외동포들과 단체사진을 찍은 뒤 다시 박상권 회장만을 앞으로 불러내 단독 사진을 찍어 준 이벤트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볼 때 지난 선대(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시절부터 대를 이어 20년 넘도록 큰 무리 없이 왕성한 대북 사업을 해 온 통일교의 공로를 치하한 것이며 박 회장이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최초로 평양시 명예시민증도 받을 만큼 북한 최고지도부의 신뢰를 얻은 것에 대한 격려 차원이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이런 통일교의 여러 가지 공로를 감안해 전세계 해외동포 대표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박상권 회장의 활동을 인정한 것이었다.    

◆박상권 회장과 최재영 목사의 대화

필자(최재영 목사)는 김정은 위원장과 해외동포 대표단과의 단체기념 촬영 행사가 무사히 끝나자 평화자동차 박상권 명예회장을 잠시 만나 통일교 사업에 대한 궁금한 이야기들을 전반적으로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필자는 김 위원장이 퇴장하고 기념촬영 행사가 모두 끝나자 박 회장을 따라 나와 전승기념관 정문 우측에 있는 나무 그늘 밑에서 20분간 단독으로 대화를 나누며 최근의 통일교 사업 움직임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박 회장은 방금 전 김정은 위원장과의 깜짝 만남 때문에 그런지 얼굴이 매우 상기된 표정이었고, 필자와의 대화 도중에도 우리 앞에 왔다 갔다 하는 동포들로부터 축하 인사말을 여기저기서 받느라 바빴다.     

최 목사: 방금 김정은 제1위원장(이하 김 위원장)과 무슨 대화를 나누셨나요?

박 회장: 김정은 위원장님이 ‘박 사장님은 참 뿌리 깊은 분이십니다. 장군님 시절부터 오랫동안 한결같이 우리 조선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조국통일을 위해 힘을 합쳐 많은 일을 같이 합시다’라고 간단히 말씀해주셨고 저는 ‘그동안 여러 가지로 저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최 목사: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고향인 평북 정주에 조성하고 있는 세계평화공원 사업은 지금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있습니까? 국내외 통일교 신자들이 성지 순례하듯 거기를 방문하면 북측 당국도 나름대로 큰 관광수입이 생길 것이고 통일교 측도 홍보나 선교가 잘 돼서 좋을 텐데요?

박 회장: 아, 그거는요. 언론과 일반인들이 우리들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것이 많아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우리들은 사업상 평양시내 이외에 그 어떤 곳도 사업을 벌려놓으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주에 계획한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현재 아무 것도 진척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공원부지 입구에 임시 화장실만 달랑 두 개 지어놓은 상태입니다.

최 목사: 아, 그렇습니까? 뜻밖입니다. 저는 이미 평화공원 조성사업이 모두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그리고 박 회장님은 제가 알기로 지난번에 평화자동차  대표직에서 아주 물러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는 평화자동차와 어떤 관계에 있으십니까?

박 회장: 현재 평화자동차에서의 제 공식직함은 명예회장입니다. 제가 지금 완전히 빠지면 아직 평화자동차는 잘 안돌아갑니다. 그래도 아직은 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현재 평화자동차는 북측에 운영권과 지분을 완전히 넘긴 상태이고 기술이전이나 경영방식 등 모든 것을 북측 스스로 큰 무리 없이 잘 운영을 하는 상황입니다.

최 목사: 남북 합작으로 세운 평화자동차는 분단 상황에서 지금까지 화합과 협력이라는 상징성이 컸는데 왜 하필 한참 돈을 버는 시기에 갑자기 회사지분을 북측에 넘겼는지 궁금합니다.

박 회장: 그것은 원래 시작할 때부터 북을 도와주라는 문선명 총재님의 의도이셨고 이제 평화자동차는 합작기업이 아닌 단독기업으로서 자체적으로 사업할만한 환경이 충분히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최 목사: 그러면 이제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박 회장: 지금 보통강호텔과 안산관호텔이 우리 소유인데 거기에 안산관이라는 고급 식당이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그 식당을 크게 확장해서 식당 좌석수도 대규모로 늘리고 메뉴도 새로 개발해서 새롭게 음식사업을 크게 시작할 계획입니다. 평화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보통강호텔 운영권도 북측에 넘기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러나 안산관은 앞으로도 저희가 계속 운영할 계획입니다.

최 목사: 그리고 조금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원산, 금강산, 마식령 등을 둘러보고 오셨다고 하셨는데 지금 그곳은 어떤 상황이고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박 회장: 먼저 마식령스키장 건설은 공사 규모로 볼 때 거의 10년이 소요되는 대규모 공사로 보이더군요.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지시로 올해 안에 반드시 완공한다(2013년말 개장)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몇 만 명의 군인들과 노동자들이 동원돼 불철주야 작업을 했습니다.

최 목사: 혹시 박 회장님 측에서도 사업적으로 마식령스키장 건설과  연관이 있습니까?

박 회장: 저희와 마식령스키장 사업과는 전혀 연관이 없고 마식령사업 자체가 감히 우리 대북사업이 끼어 들수 있는 케이스가 아닙니다. 이번에 북측이 군사비행장을 민영화하면서까지 관광특구에 힘을 쏟고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백두산에 있는 삼지연비행장, 칠보산에 있는 어랑비행장, 원산에 있는 갈마비행장 등 세 곳의 군사비행장이 민간용으로 바뀌면서 이제 북녘은 개성시대와 금강산시대를 넘어 이젠 백두산시대와 칠보산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 김정은 위원장과의 단체기념촬영을 위해 해외동포 대표단을 운송하는 버스가 전승기념관 정문 앞에 대기한 모습.     

비록 짧은 시간의 대화였지만 박 회장은 매우 자신감 넘치고 진솔해 보였다. 나의 예민한 질문에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으며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언급할 때는 존칭과 예의를 갖췄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눈 후에 필자에게 생긴 의문점 중에 하나는 정주에 조성되는 세계평화공원 문제였다. 아직도 화장실만 달랑 한두 개 지었다는 것은 이해가 안됐다.

지금까지 통일교의 대북사업 추진 전략을 들여다보면 외부에서는 모르게 은밀하게 진행됐는데 이는 기존 한국교회를 의식해서 전략상 연막작전을 펴왔던 것이다. 통일교는 자신들의 대북 프로젝트를 모두 성사시킨 다음에 그제에서야 외부에 공개하는 형식을 취해왔기 때문에 박 회장의 이번 발언도 좀 더 연구와 검증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 도중에 우리 일행들을 태우려고 정문 앞에 여러 대의 대형버스들이 도착하자 북측 안내원들이 여기저기서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담당한 동포들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북한 당국이 박상권 회장에게 명예 평양시민증을 수여한 참뜻   

박상권 회장의 평양시 명예시민증에 ‘002’라고 적힌 일련번호와 함께 ‘조국과 민족의 융성번영을 위하여 특출한 공헌을 한 박상권 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시 명예시민임을 증명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남측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북한 인민보안부가 직접 발급한 이 시민증에 대해 박 회장은 “북이 명예시민증을 준 것은 지금까지 내가 그들에게 보여준 신뢰를 인정한 것이며 앞으로 좀 더 자유롭게, 적극적으로 북에서 사업하라고 승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가 명예시민증을 받은 이유는 또 있다. 박상권 회장이 2012년 11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 운영권과 지분을 북측에 넘기는 대신 이제부터는 남북 합작 형태가 아닌 통일교만의 단독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북측 당국에 접수한 것이다.
▲ 2012년 12월18일 박상권 회장에게 수여된 명예 평양시민증서  

박 회장은 “평화자동차가 5년 전부터 흑자가 났는데 회사가 잘 되고 이익이 날 때 운영권을 넘겨줘야 북측 당국도 좋아할 것 아닙니까? 현재 북한에 ‘외국인투자법’이 있지만, 그동안 불안함 때문에 외국인이 북에 100% 투자해 단독으로 경영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단독 경영방식으로 북에서 사업에 성공해 외국 투자자들에게 북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와 본보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박 회장의 새로운 사업구상과 대북 신뢰도와 충성도를 높이 평가해 그가 요구한 단독 사업 요청을 승인하는 차원에서 평양시 명예시민증을 수여한 것이다.

이어 그는 “현재 북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들은 자국 내 경쟁에서 밀려난 기업이 대부분인데 북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남측의 성공한 기업들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면 일본과 미국의 큰 기업들도 북에 진출할 것이고 뒤따라 중국의 성공한 기업들도 북에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남측의 중견기업 200개 정도만 북에 진출해 투자사업을 하면 남북이 서로 싸울 일이 전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북측도 책임있는 행동을 할 것이고 핵문제를 포함한 근본적인 갈등도 해결돼 통일이 앞당겨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이 평양시민증을 받은 것은 통일교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워놓은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을 북측에 양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의 수고와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였으며 앞으로는 남북 합작 형태가 아닌 단독사업을 추진하려는 그에게 격려와 함께 승인을 해준다는 의미였다.

유통, 관광, 요식사업 등으로 제2의 도약을 꿈꾸는 통일교의 대북사업

박상권 회장은 전승기념관(戰勝記念館) 정문 앞에서 필자와 대화를 나눌 당시 나이를 묻자 “이제 환갑이 다 됐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통일교 대북사업의 산 증인이자 핵심 리더로서 대북사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은 학구적인 열정도 넘쳐 대북사업의 바쁜 와중에도 고려대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틈틈이 공부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지금까지 성남일화 구단주, 금강산국제그룹 대표, 미국 트루월드그룹 회장직 등을 두루 거친 후 남북이 합작해 투자한 평화자동차총회사의 대표를 맡아 착공식부터 준공식 그리고 그 후 흑자경영이 되어 북한이 자립할 때까지 평화자동차를 이끌어왔다.  북한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통일교는 대북 경영을 모두 박 회장에게 일임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자유롭게 북을 드나들며 북한 고위층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때로는 남북 간에 메신저 역할도 담당해왔다. 문선명 총재의 생존 시에는 문 총재 생일이면 북한 최고지도자가 보내는 생일선물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반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일이 되면 통일교의 선물을 북한 최고지도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조문(弔問)정국이 발생하면 양측을 왕래하며 조문사절의 역할도 담당해왔다.

박 회장은 필자와의 대화 말미에 “이제 우리는 평양에서 새로운 글로벌기업을 시작할 포부와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만 짤막하게 알려주었으며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했으나 아직은 밝힐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며 말문을 닫았다. 평화자동차의 지분과 보통강호텔 운영권을 북측에 넘긴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는 했지만 모든 대북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산업이 아닌 다른 분야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전승기념관 정문 앞에서의 단체사진 촬영 행사장에는 김정은 위원장뿐 아니라 장성택을 비롯해 김양건, 김기남, 양형섭, 박봉주, 최태복 등 북한 지도부 실세들이 거의 다 모여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고 단독 촬영이 끝난 후에는 장성택이 다가와 박상권 회장에게 축하의 인사말을 간단히 건네는 것을 필자가 눈앞에서 목격했다. 당시 장성택 부위원장은 문선명 총재가 타계했을 때 평양에 마련된 빈소에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조화와 조의문을 직접 들고 조문을 왔을 정도로 관계가 깊었다.

그러나 박 회장은 그동안 대북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장성택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주로 접촉했던 인사는 김양건 노동당 비서였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장성택은 처형되고 김양건은 교통사고로 갑자기 타계했기 때문에 박 회장으로서는 대북 사업상 고위 인맥 형성에 큰 변화가 생겼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회장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언급했듯이 요식업, 유통, 관광, 숙박 등과 연계된 관련회사를 조만간 설립할 것으로 보였는데 조만간 평양시민들이나 북한 인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마트를 건립해 유통사업에 주력할 것으로 운을 뗐다. 필자가 보기에 평양시민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조달하는 유통업을 해 볼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듯했다. 또한 그는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역점사업으로 강조한 관광사업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국제사회가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는 상황에서도 관광분야만큼은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이기 때문에 외화수입 사업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을 한 듯 했다. 이제 박근혜 정부 하에서 개성공단도 일방적으로 중단되고 사실상의 남북 경협사업이 모두 중단된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통일교의 박상권 회장. 그는 지금도 대북사업을 통해서 타계한 통일교 창설자 문선명 총재의 유지(遺志)를 몸소 실천하려는 종교적 기업인으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는 야심찬 인물로 보였다.

필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북측에 상주하거나 자주 방문한다고 해서 북한 최고지도자를 쉽게 만나거나 접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상권 회장은 앞으로도 통일교의 교세확장과 사업을 위해 계속해서 북한 최고지도자를 자주 만나고 싶어 할 것으로 보였다.

필자가 문 총재 타계 직후에 몇 차례 방북해 간간히 참관했던 통일교 기업들에 관한 참관한 이야기들로서 지난 25년 동안 추진된 통일교의 대북투자 사업진출과 민간교역 사업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사실상 대북 투자의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왔던 통일교가 2012년을 기점으로 전환기를 맞이해 2013년부터 새로운 대북사업을 모색하며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 자구책을 마련하며 새로운 대북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통일교는 현재 평양시내에 ‘이마트(E-mart)’와 비슷한 형태의 대형 유통사업에 진출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런 조직적인 유통업에 투자할 경우 통일교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이전 보다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여졌다.     

◆북한에 진출한 통일교 기업들
      
1991년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이후 시작된 양측의 핫라인은 최근까지 작동되고 있으며,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주선하며 남북 간의 화해정국을 이끌어나갈 때도 문 총재의 역할이 컸었다. 그 후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문 총재 측의 핫라인 역할이 일정부분 작용했는데, 이런 밀착관계는 지금까지 유효하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갑작스럽게 타계하자 문 총재는 남측의 국가보안법을 벗어나면서까지 자신의 최측근인 박보희 당시 세계일보 사장을 평양에 조문사절로 보내는 등 북한 최고지도자와의 의리를 보여주며 특별한 협력관계임을 보여줬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후에도 북한 당국과 밀착관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던 문 총재는 2011년 12월 김 위원장이 갑자기 타계하자 후계자인 문형진 통일교세계회장 일행을 조문사절로 보내 금수산태양궁전 빈소와 김일성광장에 마련된 조문소를 방문토록 해 조문하게 하는 등 의리를 지켜왔다.

이처럼 남북관계의 변화와 상관없이 서로 꾸준한 신뢰관계를 보여주던 양측은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일정 중에는 남포에 있는 평화자동차공장을 직접 참관하도록 함으로서 역대 남한 정권들과 통일교와의 협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2년 9월에는 문 총재가 타계하자 이번엔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신 명의의 조화와 조의문을 장성택 부위원장을 통해 평양 조문소로 보냈고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문 총재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기까지 했다.
▲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태형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서기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화(타계)한 문선명 총재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는 의식이 열렸다. 문 총재에게 수여된 ‘조국통일상장’.  
                    
분명한 것은 북측 최고지도부와 통일교 최고지도부와의 관계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이상으로 매우 깊고 신뢰도가 높다는 것이다. 원래 문 총재와 김 주석과의 협의서 체결 당시에 금강산관광개발, 원산항개발, 두만강경제특구개발에 합의했으나 그 후에 실행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 금강산국제그룹을 통해 대북교류에 본격적으로 나선 통일교는 평화자동차 공장 건설과 통일교 예배당이 들어선 종교시설물인 세계평화센터 설립, 금강산 쾌속선 사업 등을 단계별로 추진해 왔다. 평화자동차에 딸린 계열사들 중에는 ‘새기술연구소(자동차연구소)’와 ‘평화자동차 전시장’, ‘평화자동차 부품상점’ 그리고 ‘평화연료공급소(주유소)’ 등이 있고 ‘평화항공여행사’를 통해서는 ‘평양골프관광’, ‘아리랑공연관광사업’, ‘정주세계평화공원’과 ‘문선명 총재 생가 순례관광’ 등을 연계해 왔다. 또한 평화토건을 통한 건설사업, ‘보통강호텔’과 ‘안산관 호텔’, ‘안산관 식당’ 등을 통한 숙박업과 요식업을 연계하고 있었으며 평화무역을 통해 각종 남북 민간교역을 주도해 왔다.

1. 보통강호텔

필자는 방북 중에 여러 차례 보통강호텔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1층 로비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함께 찍은 대형 사진 두 개가 각각 걸려 있고 호텔 내부는 대부분 고급스런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로비에 성탄절 트리가 설치돼 있는데, 서구사회의 트리와 마찬가지로 네온사인과 장식품들이 매우 화려하다. 로비에 있는 ‘은방울 커피점’의 커피는 매우 향긋해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커피점 옆에는 평양 고려링크사의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사용하려는 투숙객들과 해외고객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호텔 건물 밖을 나가면 호텔과 세계평화센터 중간에 화단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에 통신기지국의 대형 접시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1973년 완공됐다는 10층 규모의 보통강호텔은 평양시내 대동강지류인 보통강변에 바로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 ‘보통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며 사람들에게 특급호텔로 불린다. 행정구역상으로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동’에 위치해 있으며 객실 수는 총163실이다. 1등실(14개), 2등실(56개), 3등실(93개)등 약 170여개의 다양한 객실을 갖추고 있으며 건축면적은 29,805㎡로 알려져 있다. 보통강호텔을 건축할 당시 김일성 주석이 무려 아홉 차례나 건축 현장에 현지 지도를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건축했으며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건축자재들을 운반해 건축했다고 한다.

그동안 통일교의 대북투자 사업은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를 통해 대부분 이뤄졌으며 이 호텔을 북한 당국으로부터 최초로 사들인 회사가 바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이다. 그런 연유 때문에 1993년 11월부터 통일교가 이 호텔을 인수해 경영을 맡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호텔들은 모두 국영인데 반해 이 호텔만큼은 통일교 법인에서 운영해온 것이 특이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통일교의 대북 투자액은 당시 현대그룹에 비교하면 아주 미약했다. 현대그룹이 6억9,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에 비해 통일교는 7,000만 달러 수준이었다.
▲ 보통강가에서 바라본 보통강호텔 전경    

2. 안산관호텔과 안산관

통일교의 대북사업은 김일성 주석-문선명 총재 회담시 남북합의서 체결이후 오랜 시간 일관성 있게 추진돼 온 것이 그 특징인데, 심지어 남북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문민정부 시절에도 평양시내 보통강호텔 인수와 펜션식의 안산관호텔 운영에 착수할 정도였다. 필자가 방문한 안산관호텔은 보통강 강물과는 별도로 인근의 아름다운 호숫가에 조성되어 있으며 이 호텔과는 별도로 호숫가에 자리 잡은 둥근형태의 안산관이라는 고급식당도 운영하고 있었다.

안산관은 국내외 많은 미식가들이 찾고 있었는데 필자도 이곳에서 단고기(개고기) 코스요리를 비롯해 각종 고급음식들을 자주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통일교측은 보통강호텔-안산관호텔-안산관을 하나로 연계해 운영해 왔던 것이며 특히, 두 호텔의 투숙객들과 안산관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 일본인 요리사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온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정성껏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 호숫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펜션식 건물인 안산관호텔과 고급식당인 안산관(정면의 둥근건물). 멀리 우측에 ‘보통강호텔’이 희미하게 보인다.    

평양에 있는 외국 대사관들은 이 보통강호텔과 안산관을 연회장소로 선호했고, 평양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이 두 호텔 객실을 장기 임차해 사무실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안산관호텔의 외형은 호숫가 둘레를 따라 마치 펜션주택이 늘어서 있는 구조로 세워진 호텔이어서 위압감이 없이 편안한 가정집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호텔 객실보다는 야영지의 별장같은 느낌을 주어 고객들에게 명성을 얻고 있다. 보통강호텔 음식점과 안산관에서는 실내에서 만드는 ‘휘발유조개구이’를 비롯해 각종 다양한 요리들을 제공하고 있어 필자는 지금까지도 그 맛들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다. 또한 안산관호텔 손님들도 보통강호텔 1층에서 운영되고 있는 고려링크를 찾아가 유심카드를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어 필자도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이 호텔의 고려링크를 통해 인터넷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동안 통일교측은 호텔객실과 식당 등에서 발생하는 수익금과 임대료만으로도 웬만한 투자 경비는 회수했고 흑자 경영으로 돌아섰으나 대북제재 조치와 남북관계의 경색 등으로 현재는 현상 유지만 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통강호텔과 마찬가지로 안산관호텔과  안산관은 북한 화폐가 아닌 엔화나 유로화, 미화만 받고 있다. 박상권 회장이 2013년 7월에 필자와 잠시 대화를 나눌 때 했던 말에 따르면, 앞으로 통일교측은 안산관의 좌석수를 늘리고 대규모로 확장해 음식점 사업을 크게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무렵부터 안산관이 ‘원형식당’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새롭게 영업을 개시한 것으로 보아 통일교의 운영권과 관련이 깊어진 것으로 보였다. 

3. 평화자동차     

필자는 평양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평화자동차 남포공장을 참관한 적이 있다. 방문했던 시기가 2013년 봄이었기 때문에 이미 통일교가 북측에 운영권과 지분을 모두 넘긴 뒤였다. 남포항에서  2㎞ 거리에 있는 ‘청년도로’ 바로 앞에 위치한 정문 입구에 도착하니 공장 총책임자인 양정만 지배인이 미리 나와 따뜻하게 영접해 주었고,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공장 내부시설을 모두 둘러볼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양 지배인의 배려로 공장 내부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방문해 사업현황에 대한 브리핑도 청취하며 여러 가지 질의응답도 할 수 있었다. 이 공장의 총 부지가 무려 모두 33만평이나 된다고 해서 필자가 놀랐으며 부지 주변이 농지와 야산으로 조성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부지 확장이 더 가능하다고 했다. 공장 건물은 크게 자동차 종합생산 건물동과 수리와 개조를 담당하는 건물동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공장 시설들은 규모가 방대했고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은 매우 여유있는 모습으로 각자의 맡겨진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공장을 건설하던 초창기에는 7,000평이나 되는 공장 내부 설비 등을 갖추기 위해 통일교에서 710억원 정도를 투입했으며 그 결과 연간 1만대의 조립 생산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행정구역으로는 평안남도 남포시 항구동에 위치해 있으며 건립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33만평 대지를 지정해 주었다고 한다.  필자가 공장부지 전체를 두루 둘러보니 공장 정문과 경비실을 비롯해 자동차 생산라인 과정을 담당하는 ‘제1공장(자동차 조립 건물동)’과 함께 정비와 수리를 담당하는 ‘수리정비 공장동’ 외에 변전급수건물과 연유공급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울타리를 따라 자동차연구실, 제관장, 도서실, 보위대, 식당건물, 운수건물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평화자동차 본사는 남북 양쪽에 모두 개설돼 있고 남측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북측에는 평양시 축전동에 있다.     원래 평화자동차총회사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공장 부지를 제공받은 1997년 2월27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해 1998년 1월7일 출범했으며 2년 만인 2000년 2월3일 제1단계 착공식을 거행해 2002년 4월6일 공장 건설 공사를 모두 마치고 마침내 준공식을 가졌다.

준공식과 함께 본격적인 자동차 조립생산 가동에 돌입했는데 당시 남북경협 역사상 제조업 분야로는 최대 규모였다. 잘 알려진 대로 ‘평화자동차회사’가 70% 지분을 갖고 북측의 기계공업전문회사인 ‘조선련봉총회사’가 30% 지분을 갖는 남북 합영회사로 출범했다.

필자는 남측 통일교와 합작을 했던 북측 파트너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통일교를 담당한 북측 부서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평화위)였으며 이때 김용순 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공장이 세워지고 자동차가 생산되기 까지 많은 역할과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현재 북한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통일교를 전담하는 부서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고 한다.

필자는 북측 파트너였던 조선련봉총회사 리정철 총사장이나 량문범 부총사장과 신경림 총부사장 등이 평소 평화자동차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리 총사장은 잘 안 나타나고 실제로 북측 회사를 대표하는 인물은 신경림 총부사장이라고 했다. 그는 고령이지만 엘리트 출신으로서 매우 개방적이면서도 사상이 투철하고 남측 관계자들과의 대인관계도 매우 좋은 인물이다. 또한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인이라고 평가해 주었다. 
▲ 2007년 10월4일 노무현 대통령이 통일교가 설립한 남포의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양정만  지배인의 설명을 듣고 있다.

평화자동차 내부 시설 공사가 한창이던 2000년에는 남측 기술자 10여명 정도가 직접 이곳에 상주하며 기술지원을 했으며, 그 동안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초창기에는 350명 정도였고 그 이후 자동차 생산이 한창일 때는 500명 정도가 출근해 일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 공장 기숙사에 거주하거나 또는 남포나 평양에 살면서 매일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필자가 보고 느낀 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행정적인 일을 보는 노동자들 모두가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성실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공장 자체적으로 청년돌격대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루 노동 시간은 일괄적으로 모두 8시간이며 임금은 자체적인 인센티브가 있으며 대부분 자발적으로 일을 하거나 배우려는 모습들이라서 노사 간의 문제는 아무런 불상사가 없다고 한다. 한 가지 독특한 것은 남측에서 주도했던 회사이지만 이곳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북측 주민들이다보니 매주 금요일에 되면 ‘총화시간’을 갖고 있었다.

남측 보수집단에서는 북한 사회 전반에서 시행되고 있는 총화시간을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자아비판’시간이거나 이웃과 동료를 고발하는 ‘몰인정한 상호비판’ 시간이라고 왜곡하고 있으나 실상은 현실적으로 매우 필요하고 건전한 모임이다. 이곳 평화자동차 공장의 경우 노동자로서의 자기반성과 발전적인 제안 그리고 공장을 잘 운영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노동자들끼리의 화합 등 모두가 다 잘 살기 위한 목적으로 총화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모임으로 비쳐졌다.  
▲ 평화자동차 준공식 장면. 우측에서 일곱번째부터 좌측방향으로 박상권 사장, 김용순 비서, 박보희 회장 등이 보인다    

필자가 볼 때 비록 이 공장은 남북 합작회사이지만 북한의 기간산업을 남측의 통일교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통일교의 대북사업은 통일교와 박경윤 회장이 이끄는 기업이 공동 주주로 참여한 금강산국제그룹을 통해 벌여왔으나 평화자동차총회사만큼은 박경윤 회장이 일체 관여하지 않고 통일교만의 고유한 대북사업이었다. 그래서 이 평화자동차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가 단독으로 북한에 여러 기업들이 진출한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공장 안의 거대한 벽면에 부착된 게시판에는 자동차생산 연혁이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공장 완공 후에는 이탈리아 피아트사 제품인 2500㏄급 대형차 ‘알파로미오’와 소형차 ‘시에나’를 조립해 생산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후 평화자동차만의 고유 모델을 생산해 출시한 연혁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준공식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환갑인 2002년 2월16일에 맞춰 제1호 완성차를 내놓는다는 계획이 마침내 성공해 준공식 행사 단상에는 제1호 완성차 모델을 올려놓고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또한 알파로미오와 시에나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일본을 비롯한 제3국에서 중고차를 들여와 수리한 다음 북측 자국민들에게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일제차량을 좌측으로 옮기는 등 여러 가지 수리를 마친 후 고객들에게 판매했으며 일반 차량들을 정비해주는 사업을 병행하며 오늘날의 평화자동차로 성장시켰다고 한다.
▲ 평화자동차 남포공장 생산라인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술회의를 하는 모습     

초창기부터 ‘휘파람’, ‘휘파람2’, ‘뻐꾸기’, ‘뻐꾸기2’, ‘뻐꾸기3’,‘뻐꾸기4WD’, ‘준마’, ‘삼천리’ 등 8개 차종을 생산 및 판매했는데 특히,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부품을 수입해 제작한 1600cc 승용차 ‘휘파람’은 지금도 평양 시내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중국 서광자동차 모델을 들여와 생산한 스포츠 유틸리티(SUV) 차량 ‘뻐꾸기’도 많이 생산했는지 평양시내에 많이 운행되고 있었다.     

그 이후 북한 고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삼천리’미니버스를 비롯해 지금은 트럭까지 생산하고 있었으며 필자가 방문하기 전 해(2012년)는 평화자동차의 총생산량이 1500대 정도였다고 한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북측에 지분을 양도한 이후 현재 명예회장으로 남아 있고 자동차 생산과 판매 등 모든 운영권과 지분을 북한 당국에 넘겨주어 북측 회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 남포공장 내부 현황판에는 2002~2010년, 2011~2013년까지 생산된 차량 종류를 게시하고 있다  

4. 평화자동차 전시장

필자가 방문할 당시의 평화자동차 전시장은 통일교가 손을 뗀 직후인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었다. 평양시 광복동 대로변에 자리 잡은 이곳 전시장은 오히려 성황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해 생산되는 평화자동차 1,600대 가량을 판매하기 위한 고객 유치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일하는 봉사원들 모두가 매우 친절했다. 이곳은 전시장에 비치된 자동차 모델 외에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미리 타 볼 수 있는 ‘시험운전용 자동차 전시공간’을 비롯해 부품가게와 커피점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준마’라는 차량을 제외하면 ‘휘파람’, ‘창전’, ‘쌍마’, ‘삼천리’ 등 각종 승용차와 승합차, 스포츠 유틸리티차량 등 대부분이 수동 5단 변속기 자동차들이었고 소형화물차 ‘뻐꾸기3’ 등 여러 대의 트럭을 포함해 모두 25개 차종이 전시되어 있었다.
▲ 평양시내에 자리잡은 평화자동차 전시장 외부(상)와 내부(하) 모습.     

최신 신차들이 전시된 이곳은 여러 단체나 기관에서 한번에 10대 이상 주문하기도하고 또는 한 두 대씩 주문하기도 한다. 때로는 중동이나 러시아에서 해외 근로자로 파견돼 달러를 보유한 본인이나 가족들이 개인적으로 한 대씩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소위 신흥 부유층들도 방문해 원하는 자동차 모델을 서슴없이 구입한다고 한다. 또한 사업상 북한에 장기 체류하거나 상시 방문하는 해외동포 사업가들도 차량을 구입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가장 큰 고객층은 국가기관이나 기업소라고 한다. 그 다음 고객들은 외국공관인데 현재 북한 주재 대사관들과 유럽이나 중국 등 여러 나라의 무역관계 회사들이 실제로 다양한 자동차 구입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로 인해 요즘은 수요와 공급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북한 사회는 자동차가 많지 않다 보니 장거리 이동할 때나 수하물을 운반할 경우 마땅한 운송수단이 없어 소형버스인 ‘삼천리’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이처럼 평화자동차에서 지난 10년간 만든 다양한 종류의 차량들이 현재 북한 전역에 운행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현재 자동차가 2만대 운행된다고 할 경우 다섯 대 중에 한 대는 평화자동차가 만든 차량’이라고 한다. 차량 가격은 미화로 대략 10,000~15,000달러였으며 이는 남측 차량가격의 60~70%정도에 불과한 가격이다. 평화자동차의 상업광고도 부쩍 늘었는데 공장이 있는 남포시 지역은 물론 아스팔트로 만든 국도와 대로변 그리고 평양시내 대로변 등에 평화자동차 광고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특히 옥외 광고판들도 자주 보였는데 광고모델로는 유도영웅 계순희 선수와 ‘휘파람’을 부른 인기가수 전혜영이 자동차 이름 ‘휘파람’ 때문에 전속모델로 출연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자동차 판매 수익금을 보면 2008년에는 가동 6년 만에 50만 달러의 수익금을 냈고, 2010년에는 5.24 대북조치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63만 달러, 2011년은 79만 달러, 2012년에는 8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점차적으로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5. 평화자동차 부품상점

평화자동차 부품점은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흥 2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200평 규모의 공간에 각종 자동차 부품들과 액세서리들을 판매하고 있다. 2007년 4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이 부품점은 자동차를 꾸미려는 서방세계의 매니아들처럼 이곳 평양의 운전자들도 자주 찾아와 구입해 자신의 차량을 개성 있게 꾸미기도 한다. 특히 부품이 필요한 운전자들은 이곳을 직접 찾아와 부품을 구입한 후 자기 손으로 직접 정비나 수리를 한다고 했다. 평양은 남측이나 서방세계처럼 화려한 액세서리를 꾸미고 다니거나 요란스러운 자동차 매니아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액세서리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것으로 보아 북한에도 새로운 자동차 문화가 유입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곳 평화자동차(平和自動車)의 부품상점 말고도 평양시내에 북한과 중국이 합작한 이른바 평양자동차(平壤自動車)라는 이름의 전시장과 부품상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 평화자동차 부속품 상점 건물 모습     

필자가 확인해보니 평양자동차가 태동된 배경이 따로 있었다. 통일교 관계자는 평화자동차그룹이 북에서 자동차 사업을 접은 이유에 대해 “애초부터 우리는 북측에 양도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북측이 자립할 때가 되고 이윤추구가 극대화될 무렵이 되면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자연스럽게 양도할 계획이었다”라며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만 자동차 사업을 접은 가장 큰 이유는 통일교 측에서 볼 때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문 총재의 죽음을 기점으로 그 동안의 수익성을 평가한 결과, 크게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2009년부터 중국의 자동차회사가 북에 진출하면서 평화자동차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은 이유도 있다.
▲ 평양시내에 주차된 평화자동차 ‘뻐꾸기’    

 중국이 북에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면서 북한 당국자들도 평화자동차 남포공장을 중국측 회사와 합병을 하든지 아니면 아주 넘기려는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통일교는 그동안 현상 유지만 했을 뿐 평화자동차의 발전과 사세 확장을 위해 더 큰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이런 모습을 눈여겨보며 사업 평가를 해왔고 결국 통일교측에 사업 포기를 권유했던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북한은 중국 단동의 ‘중조변경무역유한공사’와 함께 평양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설립했고 2011년부터 ‘평양자동차’라는 상표로 버스와 화물차를 생산하고 있다. 이에 평양자동차는 2013년 3월에 평양시내에 대형 전시장을 갖춘 자동차 부품상점도 만들었고 남포가 아닌 평양에 종합자동차 조립생산 단지도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6. 평화연료공급소(연유공급소)
      
평화자동차는 대북기업 최초로 평양시내와 남포에 주유소 사업을 시작했는데 평양시내는 평천구역, 광복구역, 서성구역 등 3개 구역과 남포시를 포함해 모두 4곳에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주유소를 ‘연료공급소’나 ‘연유공급소’라고 부르며 주차장을 ‘차마당’이라고 부르는데 필자가 방문한 곳은 보통강변 인근에 있는 평화자동차가 운영하는 연유공급소였다. 매우 친절한 여성 1명과 남성 1명이 유니폼을 입고 주유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북한에선 주유용 기름이 값비싼 원료라서 직원들이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유원들을 채용할 때는 매우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인물 위주로 엄선한다고 했다. 연유공급소는 정부가 직영하지만 자동차 소유자들이 증가하면서 돈이 벌리는 사업이 되다보니 최근 신흥 부자들도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고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요즘은 평화자동차들이 평양거리를 부쩍 누비고 다니기 때문에 도로 정체현상이 생기는 지역이 있는가하면 주차공간 문제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또한 필자가 직접 확인한 바로는 김일성광장과 평양역을 잇는 큰 대로 곳곳에는 CC카메라가 많이 설치돼 있었고 평양역 광장에는 주차비를 징수하는 여성들이 상시 근무하며 운전자들로부터 주차비를 징수하고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기도 했다. 
▲ 평화자동차가 직영하는 연유공급소(주유소) 전경    

이러한 상황에서 운전자들이 주유를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주유소를 방문해야 하는데 북에서는 남측이나 해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주유문화가 있었다. 우선 ‘기름딱지’를 받는 주유소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딱지는 일종의 ‘주유 쿠폰’과 같았다. 이 딱지를 주유소에서 구입해 소지하고 다니다가 본인이 주유할 때 현금대신 주유원에게 건네주면 된다. 주로 유로화나 미화로 판매되고 있었는데 1장에 10유로짜리도 있고 장거리 운전자들을 위해 300유로짜리도 판매한다. 또한 장거리 운전자들은 비상 상황을 대비해 석유통에 따로 담아서 차량에 실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시골이나 지방에는 주유소가 많지 않아 연료가 떨어지면 바로 채워 넣기 위해서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북사업을 계획하던 남측 정유회사들이 북한에서 주유소 사업을 계획하던 중 갑자기 5.15 대북 제재조치가 발표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발 빠른 중국기업들이 북에 주유소를 설립하기 위해 평양에 진출했다. 주유소 사업에 진출하는 중국기업은 민간기업 2개사와 국영기업 2개사였는데 북중(北中) 합작회사인 ‘중투신융국제투자관리유한공사’(이하 중투신융)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중투신융은 2003년에 설립한 국제투자 전문회사로 북중 교류, 해외투자, 금융, 지하자원 개발 등을 하는 기업이다. 과거 북한 당국은 인도와 이집트 등에서 원유를 수입해 왔으며 최근에는 중국이 해마다 원유 50만톤을 북한에 수출하고 있으며, 무상 또는 장기 차관 형식으로 50만톤 정도를 원조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알아보니 평양시내에는 평화자동차 주유소 외에도 일반 주유소가 30여 개 더 있는데 중국기업 4개사는 1차로 평양에 주유소 14개를 더 세우고 2차로 전국에 220개를 더 세울 계획이며 북측과 중국측 기업 4개사가 50%씩 이윤을 나누기로 했다고 한다. 석유는 중국산보다 러시아산을 공급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러시아의 대북 수출량 가운데는 석유가 55%를 차지하기 때문이며 러시아산 석유가 중국산보다 저렴하고 질이 좋아 북측 인민들이 선호한다. 또한 중국에 밀리지 않으려는 러시아 회사들도 북한에 주유소 체인망을 설립하고 있다.  또한 북한에는 외화만 있으면 누구든지 자동차 외에도 개인소유의 오토바이나 써비차(영업용 차량)에 언제든지 연료를 넣을 수 있다고 하며 거래되고 있는 휘발유 가격은 대략 1kg(1.4리터)에 중국돈으로 9위안 정도에 팔리고 있다. 연유공급소 외에도 시중에서 주민들끼리 서로 거래하는 기름은 대부분 러시아산이며 당국에서도 묵인하고 있다고 한다. 평화연료공급소를 비롯해 모든 연유공급소에서는 주로 휘발유(연유)와 디젤유를 판매하고 있다.  

요즘은 평양시내에 택시들도 무척 늘어났고 승용차도 많아졌는데 특히 평양 시민들이 유선전화나 휴대전화로 택시를 부르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주유소가 드문 북한에서는 운전 도중에 연료가 떨어지면 교통보안원이 해결한다고 한다. 교통보안원은 경찰청에 해당하는 인민보안부 소속인데 이들은 교통 위반으로 적발된 차량으로부터 벌금 대신에 일정량의 자동차 연료를 빼내기 때문에 항상 석유를 보유하고 있어 비상시에 공급이 가능하다. 아무튼 우려가 되는 것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진출해 주유소 사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에 통일 이후에는 우리들의 미래 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해보았다.   

7. 평화무역     

2005년 5월 설립된 평화무역은 평화자동차 회사 계열의 대북 무역회사로서 대표이사는  박상권 회장이다. 자동차부품, 완성차(CBU) 등 자동차 관련 품목 뿐 아니라 다양한 대북지원물자, 건축자재 등을 취급해 왔다. 특히 그동안 다양한 북한산 제품 등을 국내외로 수출하거나 수입하기도 하며 거래되는 무역 품목들을 운반하고 수송하는 업무를 담당해 왔다. 대북 사업이다 보니 주로 중국 단둥(丹東)에 설립한 지사가 가장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해왔으며 북한 신의주를 통해 평양까지 각종 물류사업을 전개해 왔다. 평화무역 지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둥지사는 ‘단동평화무역유한공사’라는 법인으로 등록돼 있으며 현재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다.     

8. 평화토건  

평화토건은 평화자동차회사의 계열사로서 2000년 1월에 설립된 건설회사이다. 대북 사업을 위한 건설 전문기업으로 발족한 이 회사는 2000년 2월 시작된 평화자동차 남포공장 건설을 필두로 2008년에는 평양시내 중심가 보통강호텔 앞 부지에 세계평화센터 빌딩을 10년간에 걸쳐 건설하기도 했다. 평화토건에 의해 평화센터 내부 3층에 통일교 예배당이 세워져 있으며 남측 법인회사가 북측에서 공사를 한 것은 최초이며 완공 후에도 건물 운영권을 소유하는 것도 남북 역사상 최초로 있는 일이다. 이처럼 그동안 왕성하게 대북 건설사업을 추진해 온 평화토건은 현재 활동이 소강상태에 있다.    

9. 평화항공여행사

평화항공여행사는 2003년 4월11일 설립한 대북 전문 관광회사로서 평화자동차 대표를 역임한 박상권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평화자동차 계열사였다. 이미 일본의 계열회사를 통해 1993년부터 평양, 백두산, 금강산 관광을 실시했으며 2003년에 국내 최초로 평양관광과 백두산 관광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여행사 주관으로 중국 선양(瀋陽)에서 ‘세계여자프로권투대회’를 개최하면서 스포츠 이벤트 분야를 새롭게 시작했다. 이후 2005년 3월에는 선양세계여자프로권투대회, 6월에는 평양세계여자프로권투대회를 열었고 8월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평양골프장에서 2005년 ‘평화자동차배 KLPGA 평양오픈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등 남북의 스포츠 외교까지 그 영역을 확대했다. 평화항공여행사의 운영은 통일교가 대북교류사업 차원에서 전개한 관광사업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북 선교활동 차원에서 오랜 기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추진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와 해외동포 2,000명이 평양을 관광한다는 프로젝트를 세워 남측 통일부를 상대로 ‘남북경제협력사업자’ 신청을 제출해 승인을 받았는데 이는 금강산관광총회사와 평양관광사업 계약서를 체결한 평화항공여행사가 아태평화위 명의의 확인서를 발급받아 통일부에 사업 승인을 신청했다. 관광코스는 평양, 남포, 묘향산, 백두산 관광은 물론 평북 정주에 있는 문선명 총재의 생가와 인근의 세계평화공원 조성지 등이 포함됐는데 기존의 방북 관광비용보다 저렴한 비용을 책정해 고객들에게 인기상품으로 각광받았으며 실제로 2003~2005년 3년간 약 5,000여명의 관광객이 평화항공여행사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 관광상품을 이용한 고객들 대부분은 통일교 신자들 위주였는데 이는 통일교 신자들이 북한 인민들을 직·간접으로 접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대북 선교활동이 시작된 것으로는 해석된다. 또한 통일교의 일반신자들이 문선명 총재의 평북 정주 생가와 인근에 조성 중인 정주세계평화공원을 방문하는 일정은 통일교 창시자인 문 총재에 대한 평신도 교육과 홍보 측면에 큰 기여를 해왔다.       

10. 금강산국제그룹

금강산국제그룹은 통일교 박보희 회장과 금강산그룹 박경윤 회장이 공동 주주로 참여해 세운 통일교의 대북사업 창구이다. 이 금강산국제그룹에서 평화자동차총회사 설립을 주도한 것이다. 통일교가 1987년 5월15일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을 출범시키며, 승공운동에서 남북평화통일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해 1991년 4월에는 문선명 총재 내외가 소련을 방문,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회담을 가져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었고 그해 11~12월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열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때 대북사업의 초보자였던 통일교가 도움을 받기 위해 두드린 대북 창구는 당시 유일하게 북한과 외부 세계를 연결해주던 박경윤 금강산그룹 회장이었다.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는 4·19의거를 계기로 1961년 5월1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이라는 산하기관을 만들었는데, 1988년부터 북한을 드나든 박경윤 회장이 조평통과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그리고 통일교는 박경윤 회장을 통해 조평통의 전금철 부위원장을 접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된 것이며 그러던 중 통전부는 1994년 5월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창구로 기존의 조평통과는 무관하게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평화위)’라는 기관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를 계기로 조평통은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통일교의 대북사업 파트너도 조평통에서 아태평화위로 변경된 것이며 금강산그룹은 통일교와 아태평화위를 연계하고 중개하는 그룹이 되어 결국 금강산국제그룹의 지분을 통일교와 아태평화위가 각 40%, 박경윤씨가 20%의 지분 구조를 갖는 회사로 재편성된 것이다. 과거의 통일교 입장에서는 가장 큰 적(敵)으로 여겼던 공산당 단체(통전부)와 ‘동침’ 관계에 들어간 것이다. 이로써 금강산국제그룹 회장 직함은 박경윤 회장과 박보희 회장이 공동으로 맡게 되었다. 이에 대해 박경윤 회장은 “박보희씨가 나를 찾아와 금강산그룹의 공동회장직을 달라고 요청해서 수락했다”고 해명하면서 자신과 금강산국제그룹은 통일교와 별개의 기업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동안 일심동체로 통일교와 합작으로 사업했던 기업이기 때문에 통일교와 무관한 회사라고 보기 힘들다.
▲ 2011년 2월16일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이 김양건 회장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1991년 12월6일 문 총재와 김 주석의 회담에서 논의한 경제교류는 크게 금강산 개발과 자동차 사업이다. 금강산 개발은 금강산국제그룹이 북측 전문가들을 참여시키고 홍콩의 세계적인 개발조사 전문회사에 용역을 의뢰, 약 2년에 걸친 작업 끝에 금강산 개발에 대한 계획서와 타당성 조사 보고서를 내놓았으며 김일성 주석이 타계하기 직전인 1994년 박경윤 회장과 박보희 회장이 김 주석을 찾아가 비준을 받은 것이다. 금강산국제그룹은 금강산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오염되지 않은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취지 아래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플랜을 세웠는데 초기 단계에서 연간 50만명, 최종 완료 시점에는 연간 3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로 계획을 수립했다. 초기에는 금강산 지역을 개발하고 후속 단계에서는 원산 방향의 해안지대를 따라 북쪽 방향으로 지경을 넓혀가기로 했다.

1994년 1월27일자로 김일성 주석의 친필 서명까지 받아낸 ‘금강산 관광개발 타당성 조사’를 통해 금강산국제그룹은 북한 정무원으로부터 50년 동안 금강산 관광개발 예정지 안에 있는 토지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냈다.

그런데 1998년 느닷없이 현대그룹측이 아태평화위 김용순 위원장으로부터 전격적으로 서명을 받아내 금강산 개발권을 확보했다. 북한에서는 김 주석이 서명한 사업은 소위 ‘불가침’으로 통하는 것이 관례인데 금강산국제그룹의 지분을 소유한 주주이기도 한 아태평화위가 현대그룹과 계약을 맺고 금강산 개발권을 넘겨준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금강산 개발권을 현대그룹에 넘겨준 이유와 결과에 대해 북한 당국은 적절한 해명이 없었고 박경윤 회장과 박보희 회장 측도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지만 통일교측은 이 문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자동차 등 다른 대북사업을 위해 금강산 개발권 문제를 덮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김정일의 90년産 산삼 선물과 김정은이 한학자 총재에 보낸 풍산개 한 쌍

문선명 총재 서거이후 가정연합(통일교)은 한학자 총재를 중심으로 12,000쌍 국제합동결혼식 등 여러 가지 대규모 행사들을 거뜬히 치러내는 등 한 총재의 지도 아래 흔들림 없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까지 각인된 ‘사이비 정치집단’ 또는 ‘이단 종교기업’이라는 오명을 벗고자 한국사회와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생활종교’ 또는 ‘국민종교’로의 변모를 모색하고 있으며 북측과는 문 총재의 죽음으로 인한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새로운 대북사업을 모색 중에 있다. 한학자 총재는 2015년 5월 국내 최초로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자신의 대북관과 대북사업에 대한 생각을 아래와 같이 내비쳤다.

“나는 평생 위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나라를 위한다면 못할 게 없죠. (방북)시기를 보고 있어요. 되도록이면 양쪽(남북한 정부) 면을 세워 줘야 하잖아요. 북한에서는 (우리에게) 지극정성이에요. 문 총재님과 김일성 주석과의 관계는 굉장히 끈끈했어요. 김정일, 김정은 위원장이 다 (통일교에 대한 김일성의) 유지(遺志)를 받들었어요.”

특히 자신은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이미 초청장을 받아놓은 상태라고 언급했으며 한 총재의 대북관은 아직 통일교 창시자로서의 시각에서 북을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2009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문선명 총재의 90회 생일잔치에 박상권 회장을 통해 90년산 산삼 선물을 전달하고 있는 장면.  
    
2013년 2월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박상권 회장을 통해 풍산개 암수 두 마리를 한학자 총재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는데, 이 풍산개들은 통일교 성지로 알려진 경기도 가평 천정궁박물관에 전달됐다. 통일교 절기 중에 하나인 ‘천일국 기원절’ 경축식 오찬 자리에서 한 총재에게 직접 전달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에 앞서 문선명 총재의 90세 생일이던 2009년 1월30일에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90년이 된 산삼 전달식이 가평 천주청평수련원에서 있었다. 당시 문 총재의 90세 생일잔치 자리에는 1,000여 명의 축하객이 참석했는데 박상권 회장이 북한에서 들고 온 선물 보따리에는 90년, 80년, 60년 된 산삼 세 뿌리와 함께 축하의 글을 자수로 새긴 리본과 더불어 장미꽃 90송이와 백합 90송이를 담은 화병과 화환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문 총재의 90회 생일뿐만 아니고 매년 생일 때마다 선물을 보내왔다.

이처럼 양측의 최고지도자는 대를 이어 서로 끈끈한 우정과 의리를 나누며 밀착관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자주적인 남북통일을 이루기 전까지는 기독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들이 자국에 유입되거나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는 북한이 종교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나 미국에서 유입된 종교들을 통해 자칫 인민들이 잘못된 사대주의에 물들거나 그 동안 지켜왔던 반일·반미(反日反美) 정신이 쇠퇴해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종교 때문에 통일지향적인 민족정신과 자주정신을 갉아먹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며 선교를 빌미로 북한 영토에 지하교회를 조직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거나 체제를 전복하려한다는 기독교에 대한 인식 때문에 북한은 쉽사리 남한이나 미국 교회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통일교만큼은 예외로 대해주었던 것이다. 이제 통일교(가정연합)는 남과 북 모두에 교두보를 확보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통일교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사회 각 분야를 향해 전면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평화자동차그룹의 박상권 회장이 통일부에 남북 경제협력사업자 승인 취소를 신청(2012년)함으로써 이제 통일교는 평화자동차와의 인연을 모두 끊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제 평화자동차에 투자했던 통일그룹은 자동차 사업을 접는 대신, 유통업이나 다른 사업계획으로 전환하며 기존에 자신들의 대북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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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 진실 17/10/03 [18:57] 수정 삭제
  기독교인들이 착하게 살더라도 천당에 가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천당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천당에 가는 유일한 방법은 천사가 길을 안내하는 것인데 단 한 명의 천사만 지구로 보내서 천당으로 가는 지도를 전해주면 되는 쉬운 일도 안하는 하나님이 수많은 천사들을 동원해서 70억의 인구를 일일이 천당이나 지옥으로 안내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겠는가?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과학자들도 반론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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