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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공주 능암사, 서천 춘장대에서 수륙대재 봉행
9월17일 신도 등 100여명 참여 속에 주지 청담 등 스님 9人이 함께 봉행
기사입력: 2017/10/08 [09:3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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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水陸齋)는 불교에서 영혼 천도(遷度)를 위하여 행하는 종교의식.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돼 있다. 불교에서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靈魂)과 아귀(餓鬼)들을 달래며 위로하기 위하여 불법(佛法)을 강설(講說)하고 음식을 베푸는 종교의식이다.

이 의식은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불교에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무제는 유주무주(有住無住:떠도는 넋)의 고혼(孤魂)들을 널리 구제함이 제일가는 공덕이라 생각하고, 승려들과 상의한 후 스스로 의식문(儀式文)을 만들었다. 그 의식문에 따라 505년에 금산사(金山寺)에서 재를 베푼 것이 그 시초이다.

그 뒤 당(唐)나라에서는 이 의식이 유명계(幽冥界)를 이익 되게 한다고 하여 크게 융성하였다. 송(宋)나라 때에는 희령 연간(熙寧年間)에 동천(東川)이 『수륙문(水陸文)』 3권을 다시 지어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수륙재가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때 갈양사에 개설된 수륙도량이 최초                 

우리나라에서 수륙재가 행하여진 것은 고려 때부터이다. 광종 때에 때때로 성대히 열린 바 있는데, 970년(광종 21년)에 갈양사(葛陽寺)에서 개설된 수륙도량이 그 최초의 예이다.

선종 때에는 태사국사(太史局事)로 있던 최사겸(崔士謙)이 수륙재의 의식절차를 적어놓은 「수륙의문(水陸儀文)」을 송나라에서 구해 온 것을 계기로 보제사(普濟寺)에 수륙당(水陸堂)을 새로 세움으로써 수륙재를 더욱 성대히 격식에 맞게 하였다. 
▲ 능암사 주지 청담 스님을 비롯해 총 9인의 스님들이 수륙대재를 장엄허게 봉행했다.      
 
또한, 고려 승려 일연(一然)의 제자 혼구(混丘)가 「신편수륙의문(新編水陸儀文)」을 찬술함으로써 수륙재 의식은 더욱 널리 성하게 되었다. 이 의식은 충목왕 때까지 계속 열렸음을 『고려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비록 억불(抑佛: 불교를 억압)정책에 의하여 불교의식이 유교의식으로 많이 바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태조 이성계는 진관사(津寬寺)를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하여 크게 재의를 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1395년(태조 4년)에는 견암사(見巖寺)와 석왕사(釋王寺) 관음굴(觀音窟) 등에서 고려 왕(王)씨의 영혼을 달래는 수륙재를 베풀었다. 그 이후 배불(排佛: 불교를 배척)정책에 따른 불교의식의 유교화정책은 수륙재를 국행(國行)으로 거행하는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을 벌이게 되나 오랜 전통으로 계속되어 오던 수륙재를 쉽게 폐지시키지는 못하였다.

억불(抑佛)로 이름 높은 태종 이방원도 국행수륙재 폐지의 상소문을 받았으나 대대로 거행하여 온 유풍(遺風)을 쉽게 폐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국행을 고집하였다. 처음에는 매년 2월15일에 거행되었으나 1415년(태종 15년)부터는 1월15일로 변경하여 실시하였다. 이 수륙재는 대체로 1515년(중종 10)경까지 크게 변동됨이 없이 계속되었다.

왕실이 직접 그 시주가 되어 때때로 수륙재를 열게 됨에 따라 유생(儒生)들의 시비와 비난을 받았으나, 1606년(선조 39) 6월에 창의문 밖에서 있었던 수륙재나 1433년(세종 15)에 효령대군이 시주가 된 한강에서의 행한 수륙재 때에는 양반·평민 등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길을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종 때에 이르러서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수륙재가 국행으로 거행되는 것이 금지되었고, 민간을 통해서만 전승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수륙재의 봉행과 의식 절차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 산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미래조계종 능암사(주지 청담스님)에서는 9월17일 충남 서천 춘장대에 위치한 관음 해동사 앞바닷가에서 능암사 신도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륙대재를 장엄하게 봉행하였다. 이날 수륙재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무려 5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 능암사 신도들의 간절한 기도 발원 속에 수륙대재는 장엄하게 진행됐다.     

서천 춘장대에서 열린 수륙재는 능암사 주지 청담 스님 등 총 9인(人)이 함께 장엄하게 봉행하였다. 이날 수륙재 봉행을 주도한 청담 스님은 “선망 조상님들과 유주무주 고혼들을 위로하며 지구촌의 평화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소망을 갖고 봉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구촌에는 지금도 곳곳에서 전쟁과 갈등으로 불안과 공포가 가득차 있으며, 한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수륙재를 봉행하는 것도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내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국민 모두가 자강의식을 갖고 대처해야 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애국영혼들을 위로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데 그 참된 의의가 있다.

이날 거행된 수륙대재 의식은 크게 재전(齋前)의식과 재후(齋後)의식으로 나뉘어진다. 특히 능암사 신도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장어를 재단 앞 바닷가에서 방생을 하고 선망 조상들과 무주고혼들을 위한 천도재를 봉행하였다.

구체적으로 수륙재 재전의식은 ▲타종과 법고(시방법계에 수륙도량을 개설하게 됐음을 알리는 절차) ▲시련(신중의 옹호로 성현과 영가를 맞이하여 수륙도량으로 모셔 오는 절차) ▲대령(법회에 운집한 사부대중의 선망조상님과 시방법계에 떠도는 무주고혼을 청하여 생사가 본래 공하다는 법을 설하고 마련한 자리에 편안히 모시는 절차) ▲신중작법(불법수호를 서원한 104위의 신중님을 소청하여 수륙도량의 모든 마구니를 물리치고 청정한 도량을 유지하여 재회齋會가 원만회향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절차) ▲괘불이운(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장면을 도상화한 괘불을 이운하여 수륙도량의 중심인 상단에 모시는 절차) ▲영산작법(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의 영산법회를 찬탄하며 삼보에 귀의하는 절차) ▲쇄수결계(수륙재를 설행하게 된 연유를 밝힌 설회인유, 도량을 정화하여 단을 설치하고 수륙도량의 경계를 정하는 엄정팔방, 오분향을 사루어 시방법계를 통합하는 주향통서, 오분향을 시방법계의 성현과 중생에게 공양하는 주향공향의 재차를 설행하는 절차)의식 등으로 거행됐다.

이어 오공을 올리고 재후의식으로 ▲사자단작법(사자님을 소청하여 공양을 올린 후 성현의 세계에서부터 지옥세계의 중생에 이르기까지 수륙도량을 개설하게 되었음을 알리도록 당부하고 보내는 절차) ▲오로단작법(오방을 수호하는 오제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영가가 소청을 받고 수륙도량에 올 때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기원하는 절차) ▲소청상위(법보화 삼신을 증명으로 모시고, 시방법계의 삼보님을 소청하여 중생구호를 위한 가피를 기원하며 모시는 절차) ▲소청중위(삼장보살을 증명으로 모시고, 천선과 지기와 명부관료를 소청하여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구호할 것을 기원하며 모시는 절차) ▲소청하위(능암사 수륙재 설행의 대상인 6·25 한국전쟁 등의 격전지에서 산화한 영령들과 시방법계의 무주고혼을 소청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을 설행하고 하단에 모시는 절차) ▲상위진공(상위로 모신 삼보님에게 공양하는 절차) ▲중위진공(중위로 모신 천선지기와 명부관료에게 공양하는 절차) ▲하위시곡(하위로 모신 영가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절차) ▲장엄염불(진리를 찬탄하는 사구게를 염송하여 보리도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절차 ▲봉송회향(소청한 삼위를 보내드리는 절차)의 순으로 진행됐다.  
               
수륙재의 절차마다 예술적 성격 띠고 있어      

오늘날까지 전래되고 있는 수륙재의 의문(儀文)은 『범음집(梵音集)』 속에 포함된 「수륙재의문」, 『천지명양수륙재의문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文刪補集)』, 백파(白坡)의 『작법귀감(作法龜鑑)』에 수록된 「수륙재의문」, 『석문의범(釋門儀範)』 중 「수륙재의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문의범』에서의 의식절차는 앞의 세 가지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그 취지는 대체로 동일하다. 이 『석문의범』에서는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라 하였는데, 그 뜻은 모든 영혼을 평등하게 천도를 받게 한다는 뜻이다. 수륙재의 각 절차 속에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 깊은 뜻이 있다.

① 먼저 재를 여는 취지를 밝히고, ② 영혼이 불보살로부터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게 하며, ③명부사자를 맞이하기 위한 분향(焚香)의식을 행한다. ④ 명부사자를 초청하여 공양하고 축원을 봉송한다. ⑤ 다시 재단(齋壇)이 청정하게 오방신(五方神)에게 공양하며, ⑥ 명부사자를 대접해서 보내고 의식도량을 청정하게 한 다음 불법승 삼보(三寶)에게 공양드린다. ⑦이렇게 한 다음에 호법제선신중(護法諸善神衆)인 천(天)·팔부신장(八部神將)·용왕 등을 청하며 공양을 드린 후 비로소 불교의 정법(正法)신앙인 삼보를 의식도량에 청하여 공양하고 불단(佛壇)에 모시게 된다. ⑧이때 천도의 대상인 영혼을 청하게 되는데, 우선 불보살 앞에 나아가기 전에 조욕의식(藻浴儀式)을 행한다. 먼저 몸을 청결히 하고 다시 법의 뜻을 지닌 새옷을 갈아입는 의식을 행한 다음, 비로소 불보살에게 고혼의 공양을 올림으로써 불보살의 가호를 받아 구제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구제받은 유주무주의 고혼은 불법에 귀의하여 다보여래(多寶如來) 등 5여래의 성호를 선양하게 된다는 것이다. ⑨이후 고혼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이 펼쳐지는데, 이때의 음식은 모두가 법식(法食)으로 변하게 된다. ⑩ 마지막으로 참회와 사홍서원(四弘誓願)이 펼쳐지는데, 이 때 고혼은 올바른 불제자가 되어 비로소 구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진행절차는 모두 끝난다.                      
▲ 유주무주 고혼들의 길을 안내하는 관음무를 추고 있다.    

수륙재의 진행방법을 살펴보면, 매우 예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잘 다듬어지고 시적(詩的)인 내용을 지닌 의식문 뿐만 아니라, 그 의식문(儀式文)은 범패라고 하는 불교음악으로 창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반주악기로서 태징·목탁·요령·북 등이 따르게 되고, 의식의 중요한 부분에 이르면 불교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의식무용이 곁들이게 된다.

설단(設壇)의 양식을 살펴보면, 이 수륙의식이 불보살 이외에 다신교적인 신앙의 대상을 의식도량에 끌어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러 신앙의 대상을 의식도량에 끌어들여서 궁극적으로는 불보살의 신앙으로 통섭되고 만다는 밀교적인 지혜가 작용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수륙재의 수륙은 여러 신선이 흐르는 물에서 음식을 취하고, 귀신이 깨끗한 땅에서 음식을 취한다는 뜻에서 따온 말이므로 청정한 사찰 또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행하여도 무방하다.

그러나 오늘날 수륙재를 모두 강변이나 해변가에서 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음은 수륙의 ‘수(水)’자만의 뜻을 취하여 방생재(放生齋:동물을 살려주는 의식)와 혼동하고 있는 데서 온 오류이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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