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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난제해석/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가나안 족속 대량 학살
기사입력: 2011/11/29 [15:3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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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난제해석/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가나안 족속 대량 학살


하나님의 가혹한 명령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교리를

어떻게 서로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본 느보산 시야가(Siyagha) 봉우리 정상에 세워놓은 20세기 조형물. 이탈리아 조각가 작품으로 놋뱀과 십자가를 복합한 의미 깊은 작품이다.


성경 가운데 가나안인들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철저히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지성적인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처럼 걸림돌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이교도들이나 불신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비판으로 늘 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나안 족속들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신명기 20:16, 17에 나타나 있다.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족속과 아모리족속과 가나아족속과 브리스족속과 히위족속과 여부스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그러나 다른 성읍들에 대해서는 만일 그들이 화평을 간청하면 그들과 화평을 맺어 모든 주민들을 살려 주고 만일 전쟁을 걸어오더라도 남자 장정만 죽이고 부인과 아이들은 살려 주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다(신 20:10-15). 성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성읍들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도록 가나안 성읍의 주민들을 철저히 진멸하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즉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엄하고 가혹한 명령과, 신약성경이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교리를 어떻게 서로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명령은 결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명령이 아니며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기록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도덕적 암 제거하는 무서운 수술

우선, 전쟁에 참가하는 장정들뿐 아니라 노인과 어린아이, 여인들 할 것 없이 모두 죽임을 당한다고 하는 것은 분명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살육을 감행할 수밖에 없을 지경이 된 가나안 족속들의 도덕적 타락과 부패,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우상숭배와 관영한 죄악의 심각성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당시의 모든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에 심각한 폐해를 주는 암과 같은 것이었다. 암세포에 감염된 몸의 일부 조직을 끊어 내는 수술은 참으로 주저할 만한 무서운 수술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수술이야말로 나머지 건강한 몸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해 도덕적인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감행하시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명령

우리는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진 어떤 개인이나 민족을 벌하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단지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므로 개인이나 국가의 죄악에 대해서 당장 심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가나안 족속들을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명령이었다. 만일 가나안인이 멸절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 의해 멸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실행치 않음으로써 그들은 가나안인들의 죄악과 우상숭배에 물들어 오염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엄히 명령한 것을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후 계속되는 불행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가나안의 여인들은 왜 살육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가나안의 여인들은 타락과 그로 인한 오염의 가장 큰 원인이었기 때문이다(민 31;15, 16). 그러면 아이들은 죽음에서 제외될 수 없었을까? 도덕적으로 몹시 타락하고 심성이 사악한 부모와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흔히 그들의 부모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타락과 반역이 그 아이들에게서도 지속적으로 제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 계획 너무나 크고 광대하다

셋째로 하나님의 계획은 너무나 크고 광대한 것이어서 지각이 제한된 우리 인간들은 그 뜻을 다 헤아릴 수가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에 의해 단 하루 만에 창조된 피조물들이지만, 하나님의 광대한 계획과 뜻이 완전히 성취되기 위해서는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나님은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시며 영원하신 분임에 비해 우리 인간은 지극히 유한한 존재임을 생각할 때 인간의 과학적 철학적 사고로는 하나님의 뜻을 도저히 알 수 없으며, 그의 판단을 측정치 못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롬 11:33).


죽음보다 더 큰 악과 재앙의 방지

넷째로 가나안 어린이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또한 그 어린아이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만일 그 어린아이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 때의 죽음보다 더 큰 악과 재앙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 받지 않은 어린이들은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비성경적인 교리에 매이지 않는 한, 어린이들의 죽음에 대해 지나친 공포감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빈민굴에 태어나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을 구원해 내는 복음을 교회가 전해 줄 수가 없었더라면, 그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의 끔찍한 고통보다는 죽음을 통한 하나님 품 안에서의 안식이 더 나을는지도 모른다.

 

“죄의 삯은 사망"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도 타락한 백성들을 말살한 것이 자비의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왜 그것이 흑사병이나 기근에 의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야 했는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종의 영적인 훈련을 시키시고자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도덕적 타락과 죄악을 얼마나 증오하시는가 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면서 깊이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기 전에 그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멸절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께로부터 들었는데 그것은 가나안 족속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그들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그들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지 않게 하지 위해서(신 20:18) 그들을 멸절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하나님 앞에 죄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가 하는 것과 성경과 역사의 교훈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것이다.


심판에 항거하는 것도 죄

다음으로 말할 것은 이러한 것이다. 즉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거룩성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러한 명령에 대해서 언제나 풀 수 없는 난점을 발견하지만, 반대로 죄를 두려워하고 죄는 마땅히 그에 따르는 엄중한 벌을 초래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그에 항거하는 것 또한 죄가 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자비롭고 고상한 목적을 위해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 흔히 불신자들 중에는 신명기 20:10-15이나 민수기 31:21-35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가나안 족속의 여자들을 부도덕한 동기에서 죽이지 않고 살려 두는 기록이 나온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하여 어떤 불신자는 하나님께서는 전쟁 약탈물 중에서 많은 처녀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도 분명한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도록 방치하신 것 아닌가? 하고 대놓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 질문자가 질문 가운데 내포하고 있는 뜻은 이 여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도덕한 목적을 위해 남겨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 질문자가 너무도 분명한 어떤 목적이라는 말을 한 것은 바로 부도덕한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읽고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하려 하는 순수한 독자들에게는 전혀 이런 상상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성경 기사 가운데는 처녀들이 어떤 암시적인 목적을 위해서 남겨졌다고 하는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마음이 악하고 불순한 사람이 그 상황을 비약시켜서 자기 스스로 그릇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불신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민수기 31장은 오히려 그런 종류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얼마나 엄히 경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민수기 25:1-9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모압의 딸들과 부정을 행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켜 그들이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또 민수기 31장에서도 부정한 죄를 범한 모든 여자들은 다 죽음을 당했음을 볼 수 있다(민 31:17). 그리고 민수기 31:18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 아이들만 살려 두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 여자 아이들을 그들의 타락한 환경으로부터 건져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줌으로써 그 여자 아이들이 올바른 종교를 알게 되고 순결한 여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자비로운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들은 부도덕한 목적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지기는커녕 자비롭고 고상한 목적을 위해 맡겨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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