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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동 교수의 종교학 강의:주요종교들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1/11/29 [14:28]

류제동 교수의 종교학 강의:주요종교들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1/11/29 [14:28]

종교학강의

주요종교들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류제동(전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DMZ서 지구촌 평화를 기원하는 세계종교지도자들.

 

 

 

세계의 주요 종교들로는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교와 불교, 중국에서 발생한 유교와 도교, 중근동 지방에서 발생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이 주로 꼽힌다. 여기에서 유대교만 제외하면 그 신자 수가 모두 수억에 이르는 거대종교들이다. 유대교 또한 직접적으로 그 신자들은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으나, 인류사에서 지니는 영향력으로 볼 때 다른 종교들에 못지않다. 이들 종교들은 각각 어떠한 특성을 지니며, 그 특성들은 서로 얼마나 비슷하며 또 얼마나 다른가. 그리고 그 특성들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어왔는가.

이들 종교는 개별적으로는 7개라고 하겠지만, 그 발생장소로 분류하면 3개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 다소 공통된 특성을 지닌다.


힌두교․불교- 세상질서에 초연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교와 불교는 둘 다 윤회와 업보를 믿고, 궁극적으로는 윤회를 벗어난 해탈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윤회는 죽지 않고 다시 살 수 있으니 좋은 점도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고통의 쳇바퀴를 돌리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힌두교와 불교는 여타의 종교들에 비해 가장 초탈적이다. 지상에서의 삶에 가장 미련이 없는 종교들이다. 중근동 지방의 유일신교 신자들이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통치되는 질서를 희구한다고 한다면, 힌두교나 불교의 신자들은 그런 세상의 질서에 상당히 초연하다.

막스 베버 같은 유명한 사회학자가 지적하기도 했지만, 인도문화권이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관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적극적인 경제관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전통을 재해석하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그러나 윤회와 업보를 믿는다고 해도 힌두교와 불교는 다소 다르다. 힌두교에서는 카스트제도를 중심으로 차별적 윤리를 중시하지만, 불교에서는 보편적 윤리를 지향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힌두교에서는 사제 계급, 전사 계급, 생산자 계급, 노예 계급으로 나누고 각기 맞는 윤리가 있다. 예컨대, 전사 계급은 싸우는 것이 의무이자 올바른 것이지만,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싸우는 일에 종사하면 안 된다. 생산자 계급이나 노예 계급이 현세에서 사제역할을 하려고 하면 극형을 당할 수도 있다. 언젠가 사제가 되고자 바란다면, 현세에서는 자신의 카스트에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비해 불교에서는 누구에게나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길이 열려 있다. 초기불교에서부터 그 출신이 백정이든 이발사든 가리지 않고 출가의 문호가 열려 있었다. 불교에서는 내생을 기다리지 않고 당장 해탈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대승불교에서는, 재가자라고 하더라도 출가자보다 더 해탈에 가까이 도달할 수 있다는 가르침도 제시된다. 심지어 모든 사람이 있는 그대로 다 부처라는 입장도 나타난다. 절대적인 평등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모택동이 출가수도승과 재가노동자의 무차별을 이야기하며, 선불교의 위대한 스님 혜능을 노동인민의 선구자로 받들기도 한다.


유교․도교- 現世 조화된 질서희구


중국에서 발생한 유교와 도교는, 유교가 보다 현세적이고 내세관이 약하기는 하지만, 둘 다 여타의 세계종교들에 비해 현세 조화된 질서를 희구하는 종교다. 그 질서를 유교는 리(理)에서 찾고, 도교는 도(道)에서 찾는다. ‘리’와 ‘도’라는 글자 자체가 두 종교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이야기해준다. 리가 어떤 질서를 의미한다면, 도 또한 어떤 경로라는 점에서 일종의 질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구체적 인간관계에서의 인(仁)과 예(禮)와 명분을 중시하고, 도교에서는 무명(無名)이라고 하여 이름에 따른 구분을 넘어서는 경지를 추구한다. 유교가 엄격한 상하질서를 세움으로써 사회의 질서를 추구했다면, 도교는 그런 엄격한 구분을 넘어서서 천진난만한 자연스러움에서 세상의 조화를 찾았다고 하겠다.

중근동에서 발생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초월적인 인격적 유일신관을 뚜렷하게 갖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신앙의 선조로 중시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이 뚜렷한 유일신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지상의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신과 대등한 위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예컨대, 중국에서 황제를 천자라고 하고, 도교에서는 도사가 수련을 통해서 신선이 되고 옥황상제도 될 수 있다고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인간은 신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존재인 것이다.

또한 인간은 신에게서 지상을 통치하도록 위임받은 존재라는 점에서 하느님을 제외한 다른 피조물들에 대해서는 가장 우월한 위치를 지닌다. 이것 또한 힌두교나 불교에서 윤회관을 갖고 있어서 여타의 동물들도 전생에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그렇게 차별하지 않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가령 다소의 예외는 있지만, 아브라함을 선조로 하는 종교들의 신자들은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서도 힌두교나 불교, 심지어 유교나 도교의 신자들보다 덜 거북할 수 있다. 유교나 도교에서는 윤회관이 약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세상 만물이 하나의 기(氣)로 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신들은 가장 맑은 기로 되어 있고, 인간은 그 다음이고, 다른 자연계의 존재들은 그 아래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같은 기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기에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사람 삶을 기의 이합집산으로 보거나 윤회 속의 존재로 보게 되는 관점과 달리 사람의 삶을 유일회적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가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런 특성이 부정적으로는 더 호전적으로 나타나고,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더 악착같이 살게 되도록 이끈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유일회적 삶으로 영원한 내세가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해서 윤회적 관점을 유일신교 내에 도입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이 세 유일신교 사이에도 다소의 차이가 있다. 유대교가 유대민족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여겨서 다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이 되게 하는 반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상당히 개방적이다. 오늘날 가장 많은 신자가 있는 종교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라는 사실은, 이 두 종교가 가장 공격적인 선교를 한 데에도 원인이 있지만, 지역과 민족을 넘어서는 개방성도 한 몫 하는 것이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초월적 인격적 유일신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그리스도교가 예수를 하느님의 육화(肉化)라고 하는 반면, 이슬람에서는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를 하느님의 유일한 육화로 보는 점이 오늘날 종교 간의 대화와 만남에 가장 큰 난점이 되고 있기도 하다.

유대교에서나 이슬람에서 아브라함과 무함마드가 하느님의 종으로서 예언자의 한 명일 뿐이고, 불교에서도 붓다는 여러 부처 가운데 한 명이고, 유교와 도교에서 공자나 노자가 여러 성현 가운데 한 명인데 반해, 그리스도교에서는 오직 예수만을 강조한다는 점이 상당히 난점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삼위일체 교리를 좀 더 개방적으로 이해하거나 폐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요컨대, 어느 종교에서나 인간이 중시된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 정도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와 연관하여 현세에서의 처신에 있어서도 다양한 편차가 발생한다. 근대에 이러한 차이는 경제력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했고, 그런 점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제일 우월한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오늘날 환경 파괴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지구를 훼손해왔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모든 존재가 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중국 종교들이나, 윤회의 관점에서 동물과의 연대성을 이야기하는 불교가 더 친환경적이라고 하여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또한 환경문제에서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유일신의 계시를 강조하는 종교들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이고 대립적인 특성을 더 보인다. 이러한 특성이 부정적으로 표출되면 종교 간의 갈등이나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편, 긍정적으로 표출되면 사회정의 구현이나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로 나타난다. 이에 비하면, 중국 종교들이나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들은 비교적 공격적 선교를 하지 않고, 다툼보다는 조화로운 상태를 선호한다. 가

덧붙여, 유일신 전통에서는 신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허점이 많은 존재인가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있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아시아의 종교들은 그러한 철저한 자기 비움 내지 자기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 특성들이 각 종교에 따라 편차를 보이지만, 오늘날 지구촌의 시대에 서로 간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그 특성들은 서로간의 학습을 통해서 뒤섞여지고 변화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그저 어지러운 갈등과 뒤섞임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창조적 지구촌 문화를 건설하는 기반이 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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