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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권력과 불화는 작가 숙명…분단이 대하소설 쓰게 해”
은관문화훈장 받은 원로 소설가 조정래…문학사 큰 획 『태백산맥』 1,500만부 팔려
기사입력: 2017/12/06 [08:3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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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치열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부패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민중에 대한 신뢰를 담아낸 소설들로 한국 현대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조정래(趙廷來·75) 작가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대표적인 대하(大河)장편 소설가 조정래는 11월21일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반백년 간 ‘글 감옥’에 갇혀 살며 그릇된 역사와 오만한 권력을 향해 글로, 말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그인지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는 훈장이 꽤 낯설면서도 반가운 모양이다. 그는 “국가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을 인정해준 것 같아 참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은관문화훈장)의 또다른 목적이 미래를 향한 격려의 뜻도 있는 만큼 더 열심히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엄혹한 시절에도 불의한 정권 비판…군사정권과 대척점…늘 감시대상 올라      

권력과의 불화가 작가의 숙명이라고 하지만 조정래는 특히 심했다.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대하 장편소설 『태백산맥』 연재(1983∼1989)를 시작하면서, 그는 늘 군사정권의 요주의·감시 대상이었다. 조 작가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우익단체들의 고발로 1994∼2005년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다. 조 작가는 “이번 수훈으로 정치적 올가미와 오해에서 해방된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 누적 판매부수가 1,500만부 이상인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가 집필 중인 ‘천년의 질문’(가제) 원고지를 잠시 덮고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조 작가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1월 초에는 출판사가 『태백산맥』 발간 30주년 기념회를 연 날이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는 또 “대통령은 국민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며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文 정부, 촛불혁명 정부…권력위임 받아… 국민 우선의 나라다운 나라 만들어야     
   
문재인정부에 대한 평가와 덕담을 부탁했더니 노(老) 작가는 “문재인정부는 이미 준비돼 있기에 그런 충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현 정부는 1700만명이 혹독한 추위를 뚫고 2개월에 걸쳐 이룬 위대한 촛불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라고 규정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포항 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주일 뒤로 연기한 것을 언급하며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게 바로 제대로 된 국가이고 정부”라고 강조했다.

조 작가가 지금 천착하고 있는 화두(話頭)는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이다.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데 왜 동서고금의 권력자들은 한결같이 민초(民草)를 기만하고 농락하고 착취했는지를 파헤쳐볼 참이다.  
                
전(全) 3권 분량으로 2018년 7월부터 연재할 예정인 소설 제목은 ‘천년의 질문’으로 정했다. 그는 “1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묻습니다. 국가는 도대체 내게 뭐지? 모든 국가에 해당하는 문제인데, 질문은 했지만, 답은 없다는 게 또 문제”라며 “소설 속에 답을 담았으니 나오면 읽어보라”고 권했다.       

교육 현실 다룬 ‘불꽃도 꽃이다’ 큰 울림…‘천년의 질문’ 내년 7월부터 연재 예정 
     
부당하고 불의한 권력은 그에게 ‘종북(從北)몰이’는 물론 경제적 피해까지 줬다고 했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다룬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전2권)를 내놓은 2016년 8월의 일이다. ‘풀꽃도 꽃이다’는 영어 사교육과 학교폭력 등 우리나라 다층적인 ‘교육병’은 물론 교육의 본질과 방향을 다시 일깨우는 수작이라는 입소문에 발간 3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조 작가는 “책이 35만부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며 “TV에서 연일 새로운 사건이 터지니 책 판매가 뚝 떨어지더라”고 전했다. 그는 “100만부 팔렸어야 할 책이 40만부에서 그쳤으니 박근혜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나인 셈”이라며 “그래도 역사가 발전하고 국법이 바로 섰으니 이 피해를 달게 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고 활짝 웃었다. 
    
이야기 주제는 자연스럽게 교육 현실로 흘러갔다. 웃음기가 사라진 그는 “우리는 교육문제를 이야기할 때 ‘어쩔 수 없다’는 전제를 깔려고 하는데, 그러면 절대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단언했다. 

살벌한 경쟁만 강요하는 사회는 몰락…먼저 교육·재벌개혁 않으면 미래없어     

조 작가는 “제가 볼 때 우리 사회에 가장 급한 게 재벌개혁과 교육개혁”이라며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안 보인다”고 분석했다. 

“인생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투쟁적으로, 상대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식의 경쟁은 아닙니다. 경쟁에도 사랑과 배려, 포용이 필요합니다. 선의의 경쟁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입시경쟁은 살벌한 적의(敵意)밖에 없어요. 우리가 자신 외 다른 사람을 모두 적으로 돌려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살벌한 경쟁만 강요하는 사회는 몰락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눈에 적의로 가득한 입시경쟁의 결과는 스산하고 참혹했다. “공부 잘하는 자가 자랑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 못하는 자가 수치심을 느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망신을 당할 이유가 하나도 없죠. 우리 사회는 이같은 인격살인을 강요하면서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의사가 수련의를 폭행하고 대학교수가 조교에게 똥까지 먹이는 이 나라를 과연 21세기 문명국가라고 부를 수 있느냐”며 “(이런 문제의 시작인) 교육제도부터 시작해 사회체제 전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학은 인간다운 삶 위해 기여해야…소설은 인물과의 싸움

문학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1970년 등단부터 시작된 그의 47년 문학역정에서 ‘태백산맥’을 빼놓을 수는 없다. ‘태백산맥’이 쌓고 있는 기록과 명성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누적판매 부수 1500만여부, 문학평론가들이 뽑은 ‘80년대 최대 문제작’(1989년), 독자가 뽑은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1996년), ‘21세기에 남을 10대 작품’(1999년), ‘네티즌이 뽑은 노벨문학상 후보’(2005년), 국제 전문가집단이 뽑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2008년) 등이 그 증좌이다.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은 ‘태백산맥’에 관해 “조정래는 큰일을 하나 했다. 그것은 ‘토지’나 ‘장길산’을 많이 뛰어넘고 있다”고 극찬한 바 있다. ‘태백산맥’(전10권·1989)뿐 아니라 ‘아리랑’(전12권·1995), ‘한강’(전10권·2002) 등 굵직한 일련의 대하소설로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조 작가는 “분단조국이 대하소설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들었다”고 토로한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을 때 소설은 필연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분단은 영토뿐 아니라 의식까지 반만 생각하게 합니다. 또 민족, 국가, 역사의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박근혜의 국정 교과서가 퇴출당한 것도 어찌 보면 국민을, 역사를 애꾸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말도 많고 일러줄 진실도 많은데 대하소설을 써야겠어요, 안 써야겠어요?” 태백산맥의 매력 중 하나는 김현 평론가가 언급했던 대로 200자 원고지 1만6500장 속에 제각기 생동하는 인물 270명을 눌러 담은 것이다. 조정래는 “‘아리랑’, ‘한강’까지 합치면 등장 인물이 1200명인데, 이름이 한 명도 겹치지 않을 만큼 각 인물이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려고 노력했다”며 “미술은 선과 색, 음악이 선율과의 싸움이라면 소설은 인물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밀리언셀러’ 작가이지만 조 작가는 늘 아내 김초혜 시인에게 꿀리는 느낌이다. 그는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는 한용운, ‘고이 접어 나빌레라’는 조지훈,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는 서정주를 떠올리는 것처럼, 시인이 단어를 뽑아 문장을 만들어버리면 그 사람의 것이 된다”며 “그런데 소설가들은 백날 써도 한 문장도 남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어김없이 작품관과 ‘황홀한 글 감옥’의 뜻도 물었다. 그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며 “이 정신에 따라 이 땅에 태어난 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왕성한 집필 활동…생각보다 잘 쓸때 기쁨은 부처의 열반 경지

조 작가는 “지금도 새로운 단어를 찾고, 새로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 국어사전을 매일 들춘다”며 “이런 꾸준한 노력과 축적된 생각들이 있어야만 머릿속에서 영감이라는 게 불꽃처럼 튀어 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을 읽는 사람은 누워서도, 졸면서도 읽을 수 있지만 모든 작가는 똑바로 앉아 온정신을 집중하지 않고서는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다”며 “이런 점에서 작가에게 의자는 형틀이요, 글 쓰는 것은 감옥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글쓰기가 고통만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쓸 때가 있어요. 이런 기쁨이 바로 황홀이고 석가모니의 열반인 것이겠죠.”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큰 어른’ 조정래 작가에게 아이들과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사회가 너무 왜곡돼 있고 병들어 있고 부끄러운 게 많아 기성세대로서 정말 미안하다”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힘든 게 여러분 잘못이 아니고 사회를 제대로 이끌어오지 못한 어른들 잘못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 지치고 외롭고 서글프고 고달파서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과 자기를 비교하지 않고 내 능력과 적성에 맞는, 그래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고 살아볼 만해요. 제발 필요 없는 욕심부리지 말고, 남과 자기를 비교하지 말고, ‘나는 하나의 우주’라는 자긍심을 갖고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펼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조정래 “잊혀진 아버지 문학세계 알려 감격”

전남 고흥에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문학관 개관 

“가족문학관 짓자는 발의가 나왔을 때 ‘우리 아버지가 되살아났구나’하는 생각을 했고 불효한 회한이 없어지는 고마움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소설가 조정래와 그의 아버지인 시조시인 조종현, 아내인 김초혜 시인의 문학 세계를 함께 조명한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11월30일 전남 고흥군 두원면에서 열린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조정래 작가는 “이 문학관은 영원성을 가진 문학의 집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이 집을 지어준 고흥군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고 감격에 젖었다.

고흥군 출신인 조종현(1906~1989, 본명 조용제(趙龍濟), 종현은 법명) 시인은 13세 때 불가(佛家)에 귀의, 1932년 혼인하고 대처승의 길을 걸었다. ‘나도 푯말되어 살고싶다’ 등이 1970년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는 등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활동했다. 4남 4녀를 두었는데, 조정래 작가가 차남이다. 조 작가의 아내 김초혜 시인은 20세인 196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대표작 ‘사랑꽃’ 연작이 역시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 소설가 조정래, 시인 김초혜 부부가 11월30일 전남 고흥군에서 문을 연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흥군은 2015년 ‘조종현 전집’ 발간을 계기로 학술대회와 문학제를 열었고 본격적으로 문학관 건립을 추진했다. 895㎡에 세워진 가족문학관은 총 전시면적 456.67㎡에 조종현 문학실, 조정래 문학실, 김초혜 문학실로 이뤄졌다. 작가들의 육필원고와 관련 기사, 단행본 등 1,274점이 전시됐다.

개관식에는 조정래 작가와 김초혜 시인, 유재영·김영재 시조시인, 조종현 선생의 법제자 활안스님 등이 참석했다. 전시를 둘러 본 김훈 작가는 “조종현 선생의 문학세계는 인간의 생명의 아름다움과 힘에 대한 확신, 예찬이고 그 인간의 아름다운 생명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 약탈 구조, 착취,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었다”며 “장편 ‘태백산맥’의 씨앗이 여기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은 그의 자부되는 김초혜 선생의 시에도 면면히 계승돼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백산맥 문학관’(전남 보성), ‘아리랑문학관’(전북 김제)에 이어 자신과 관련된 세 번째 문학관을 열게 된 조정래 작가는 과도한 문학관 난립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의식하는 듯했다. 그는 2019년 장편소설 ‘천년의 질문’을 출간한 후부터 매월 마지막 주, 세 문학관에 이틀씩 머물며 독자를 만나겠다고 밝혔다. 김초혜 시인은 “나 본인에 대한 문학관에 대해서는 거듭 거절했으나 아버님이 일구신 시조문학의 뜻을 기리는 고흥군의 뜻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조정래, ‘아리랑’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한강’까지      

매년 10월이 되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2017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는 '남겨진 나날'의 저자이면서 영국의 소설가 겸 시나리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石黒一雄). 하지만 노벨문학상 발표 전에 그보다 화제가 된 이들이 있다. 일본의 경우,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한국의 경우, 고은(高銀) 시인이 주로 노벨 문학상의 후보로 회자된다. 고은의 '만인보'를 비롯한 여타 시들은 위대한 저작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와야 한다면, 조정래가 고은보다 먼저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정래, 태생부터 작가가 되기까지    

조정래는 1943년 8월17일, 아직까지 일제강점기의 끝자락에서 전남도 순천군 쌍암면 죽학리 선암사(仙巖寺)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암사 부주지였던 아버지 조종현이 선암사 소유의 논과 밭을 소작인들에게 분배해준 일로 주지와 충돌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조정래 가족은 선암사를 떠나 순천으로 이사한다.

조종현의 행동은 1948년 일어난 여순(麗順)사건 이후 모략에 휘말리는 등 갖은 고초의 빌미가 됐고, 이런 유년 시절의 다사다난했던 기억은 그의 소설의 토대가 되었다. (태백산맥에는 법일 스님이 지주의 착취로 가난한 소작인들을 편들다가 좌익으로 몰려 고초를 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순천 남초등학교 입학한 시기의 다음 해인 1950년 순천을 떠나 논산으로 이사한 조정래는 승주, 순천, 논산 등지를 떠돈다. 당시 이사 간 곳에서 나름의 텃세가 심하였고, 이에 맞서면서 독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자란 것으로 보인다.  

1951년 1.4 후퇴 당시 느닷없이 집에 들이닥친 미군들에 의해 아버지가 폭행당하고 이에 어린 조정래는 꽤나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충격은 야뇨증으로 나타나는데 ‘태백산맥’에도 이런 조정래의 경험이 묻어 나오기도 한다. 6.25 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벌교상고의 국어교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벌교로 돌아온다. 이 시기에 조정래는 최초의 자작 문집을 만들고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글에 대한 소질을 보인다. 그는 벌교 세습 봉건지주와 일제의 수탈, 여순사건, 한국 전쟁과 같은 한국 근·현대사의 수난과 고난의 땅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사유하기 시작한다. 
▲ 고등학생 시절, 역도부였던 조정래.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이후 1956년 광주로 이사해 서중학교에 입학했고, 1959년 상경해 보성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농촌 사회활동에 이바지하고자 이과 계열에 뜻을 뒀지만, 3학년으로 진급한 후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국문과로 목표를 바꾼 그는 1962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다.

대학시절 국문과 동기인 시인 김초혜와 1967년 결혼한 후,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에 1970년 <현대문학>에 ‘누명’과 ‘선생님 기행’을 추천받아 문단에 등단한다. 동구 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서 근무하던 1970년에 <현대문학> 6월호에 ‘누명’이 추천되어 등단하였으며, 12월 호에 '선생님 기행'이 추천 완료되었다.   

1971년에 <현대문학>에 중편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신동아>에 단편 '빙판'을 발표하였으며, 연좌제를 비판한 내용의 단편 '어떤 전설'(<현대문학> 1971년), 베트남전쟁을 비판한 중편 '청산댁'(<현대문학> 1972년)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1972년에 중경고등학교로 전근하였으나, 정부를 비판한 작품으로 보수주의자인 학교 교장과의 마찰을 빚게 되고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악법인 유신헌법이 만들어져 민주주의가 억압받은 10월 유신 이후 교직을 그만두었다. 1973년 <월간문학> 편집장이 되었고(~1975년), 1974년 중편 ‘황토’를 발표하였다. 1976년 '허깨비 춤', '방황하는 얼굴', '검은 뿌리', '비틀거리는 혼' 등의 단편과, 장편 '대장경'을 민족문학 대계(大系)의 일환으로 완성한다. 그리고 포켓용 문예 월간지 <소설 문예>를 1977년 인수, 10월호부터 발간하게 되는데(~1977.10) 이때 연재를 맡은 집필진 가운데에는 친일 연구로 유명한 임종국도 있었다.

1977년에는 민예사 대표를 맡았으며, '어떤 솔거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그때까지의 소설은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 된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쓴 것이었지만, 1980년 5월 광주민중들이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민중운동인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직후의 광주를 방문하여 계엄군들의 참혹한 폭행과 살인 현장, 그 이후의 상황들을 직접 본 후 그때까지의 원칙을 바꾸게 되었고 이것은 후에 ‘태백산맥’의 집필로 이어지게 되었다.  조정래의 초기 소설로는 토속적인 공간을 소설로 재구성한 『청산댁』, 현실의 비리와 삶의 모순을 고발하는 『폭력교사』, 『비탈진 음지』, 『천동설 시대』, 『이방지대』 등이 있으며, 197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의 문제를 소설적 주제로 삼은 『한, 그 그늘의 자리』, 『유형의 땅』, 『인간의 계단』, 『박토의 혼』 등을 발표했다. 그밖에도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인간 연습』, 『사람의 탈』,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등을 출간했다.  
▲ 조정래 소설가와 김초혜 시인   

◆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 –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먼저, 대중에게 조정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은 단연 ‘태백산맥’일 것이다. 그는 ‘태백산맥’뿐 아니라 대하역사소설을 세 편이나 집필했다. 총 32권에 달하는 이 대하역사소설 3부작의 한국문학사 불후의 명작이다. ‘태백산맥’으로 시작된 대하역사소설 집필은 1980년대 이후를 제외한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담아냈다. 그 속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가 가진 체제 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한다. 이 가운데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것은 ‘아리랑’.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까지의 근대사를 다루는 ‘아리랑’은 한민족이 겪은 수난과 설움, 그리고 항일투쟁의 지난(至難)함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슬픔을 집요하고 빼어나게 다루었고, 굴곡진 이민사를 다루고 있다. ‘아리랑’은 한국일보 연재소설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개했는데, 신문 연재를 통해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피로써 써 내려간 조정래는 지금까지 문학에서 박제되어 있던 ‘역사’에 새로운 생명의 힘을 불어넣었다.  ‘아리랑’의 줄거리는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김제군 죽산면에 사는 감골댁의 아들 방영근은 빚20원 때문에 하와이에 역부(役夫)로 팔려간다. 그즈음 일본인 하시모토와 쓰지무라는 한반도에 진출하여 죽산면 일대의 땅을 몽땅 차지하려는 야욕을 가진다. 여기에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민족을 배반하고 친일(親日)을 선택하는 백종두와 장덕풍 같은 이들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송수익과 신세호, 승려 공허 같은 이는 개화사상을 지녔으며, 외세에 대항하여 의병항쟁에 나선다. 항쟁 도중에 송수익이 부상을 입자 공허의 도움으로 암자에서 치료를 받게 되지만, 송수익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진다. 의병이 해산되자 지삼출과 손판석은 일본군의 포로가 될 뻔한 위기를 겪고 나서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이민을 떠난다. 감골댁의 가족도 만주로 떠나는데, 그녀의 두 딸(보름이와 수국이)은 지주의 아들과 일본 앞잡이들의 성추행으로 고통의 삶을 이어간다. 하와이로 팔려 갔던 방영근은 노예처럼 살아가다가 악독 농장주에 대항하여 한인회를 결성하고 훗날을 모색한다.          
▲ 최근 뮤지컬로 만들어진 '아리랑'    
 
양치성은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신분을 숨기고 송수익의 행방을 추적하며, 도중에 수국이를 겁주어 데리고 산다. 만주에서 일본 토벌대의 조선인 살육이 처절하게 벌어지고, 일본인 앞잡이 양치성 때문에 수국이의 어머니인 감골댁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삼일운동이 일어나고, 정 부잣집 셋째 정도규는 사회주의에 앞장서 소작 투쟁에 앞장서며, 여기에 연해주 빨치산 이광민, 윤철훈, 윤선숙 등이 가담한다. 하시모토는 죽산면 땅의 반 이상을 거머쥔 상태로, 그는 공산주의자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송수익은 무정부 투쟁을 계획했으나 주장록이 배반하는 바람에 관동군에게 붙잡힌다. 징역 15년,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받아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송수익의 아들인 송가원과 송중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다.  

공허는 보름이의 아들이며 혈청 단원인 오삼봉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던 중에 총알에 맞아 숨을 거둔다. 그때쯤 20만 명에 이르는 한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다. 또한 동북 항일연군 소탕령이 떨어져, 조선독립군이 수없이 숨을 거둔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에 몸 바쳐 전쟁터에 나갔지만 결과는 참담한 희생뿐이다. 포로가 되어 강제징용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생체실험을 당하여 목숨을 잃는다. 사력(死力)을 다하던 일본이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패망하자, 이번엔 중국인들이 만주에 살던 한인들을 죽이겠다고 달려든다. 해방되긴 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인들에게 닥친 것은 넓고 넓은 만주로의 유랑 길이다.   ‘아리랑’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장대한 서사적 구조, 민족사의 구체성을 발바닥 글쓰기로 담아낸 점, 민족 생존의 싸움에서 어떤 패배도 치욕이 아니며 싸우지 않음이야말로 불명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을 들어 '광복 50주년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음미되어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없다'라고 십수 년 전에 평가했었다.  

시인 신경림은 '개성적 인물 창조, 탁월한 묘사, 광범위한 자료 조사로 식민지 시대의 새로운 민족사를 창조해 내고 있다. 작가는 위의 세 가지 요소를 마술적으로 조화시켜 우리를 식민지 시대의 굴욕과 열등감에서 해방시키는 동시에, 주인공들의 다채로운 삶과 애증을 통해 진한 문학적 감동에 사로잡히게 한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세운 90년대의 걸작이다'라고 극찬했다.   ‘아리랑’에 이어 해방 이후를 다루는 ‘태백산맥’은 1983년 6월부터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했다. 1985년 <한국문학>의 주간을 맡은 조정래는 ‘태백산맥’의 연재 집필을 위해 안양의 성 나자로 마을에 매달 10일씩 칩거했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총 6년에 걸쳐 완결한 ‘태백산맥’은 이념의 금기 시대를 깊숙이 파고들고 통찰하면서 분단 문학의 최고봉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있는 자들은 자기들만 사람인 줄 알지. 더러 그렇지 않은 우등생도 있지만 말야, 난 그 단순한 자만을 고맙게 생각하네. 거기에 우리가 설 자리가 있고, 그게 그들 스스로가 빠져나갈 함정이니까.“ - ‘태백산맥’ 염상진의 말 중에서

‘태백산맥’의 줄거리는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이후 한반도에서는 좌파와 우파 간의 사상 대립이 심각해진다. 이는 전라남도 보성군의 벌교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숯장수 염서방의 아들인 염상진과 동조자들에 의해 점령되어 민중들을 착취하던 지역 유지들이 민중들의 증오 속에서 처형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들의 패주로 염상진의 동생이자 건달패인 염상구와 청년단원들이 되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좌파 인사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이상을 갖고 공산주의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이지숙은 야학 교사로 일하며 구연동화 수업으로써 계급투쟁 의식을 고취시키고, 남로당 보성군당 위원장 염상진과 그의 동조자 하대치, 안창민 등은 계엄군 사령관 심재모 중위와 대립하면서 명석한 머리와 냉정한 성격으로 빨치산 운동을 지도한다. 얼마 후에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염상진은 해방구(공산주의 혁명세력이 국가권력의 지배를 배제하고 그 세력을 확립한 지역) 주민들의 몰이해와 추위, 빨치산의 도움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면서도 협조하지 않는 일부 인민군 부대의 이기주의 등 열악한 환경에서도 빨치산 투쟁을 지도하지만, 토벌대에게 포위당하고 동지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살한다. 그리고 그의 무덤 앞에서 동지들은 염상진의 공산주의 혁명 의지를 계승할 것을 다짐한다.  
▲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태백산맥’  
   
‘태백산맥’은 당시 누적 판매부수 350만부(현재 800만 부를 넘었음)를 돌파하면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다. (밀리언셀러를 넘어 이제는 스테디셀러로, 아니 위대한 고전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조정래는 새벽마다 걸려오는 협박 전화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그 기간은 무려 10년간 지속된다. ‘태백산맥’ 4부를 쓰던 1989년에는 경찰과 검찰에서 내사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으며, 출판사 사무실로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다. ‘태백산맥’은 1989년 10월에 단행본이 나오는 것으로 완성됐다. 1992년 대검찰청에서는 ‘태백산맥’의 이념적 문제에 관해 이미 350만부 이상 팔린 책을 법으로 문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에 문제 삼지 않겠다"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교양으로 읽는 것은 허용하나 대학생이나 노동자가 읽으면 이적 표현물 탐독죄에 의거 법적 조치를 취한다"라는 모순적인 단서조항을 달았다. 대개 일반이라고 하면 대학생이거나 노동자이니 말이다.

대검찰청에서 이런 형용모순을 이해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어쨌든 사람들이 ‘태백산맥’을 읽는 것을 사실상 묵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사 발표 이후에도 끊임없는 반공단체들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하게 된다. 이는 500 여건이 넘기도 했다.(사법 역사상 가장 많은 고발장이었다는 풍문이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도 명예훼손죄로 고발을 하기도 했다. 1994년 6월 경찰 수사가 다시 진행되고 조정래는 경찰에 불려가 수사를 받기도 했다.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태도로 인해 수사 거부를 했고, 그해에 임권택 감독에 의해 ‘태백산맥’은 영화화가 됐다.  검찰로 송치된 ‘태백산맥’의 이적 혐의는 1998년까지 지리멸렬한 법적 쟁점을 낳았다. 검찰은 500여 개의 혐의 사실을 120여 개로 간추리고, 그 혐의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조정래에게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서 객관적 자료란 국회 증언록이나 해당관청의 발간물 등 국가기록물 미 국가의 납본필증을 내준 서적 등을 의미한다. 만약 조정래가 이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유죄 혐의가 될 수 있음도 함께 통보했다.

조정래는 5월15일부터 ‘한강’을 집필하던 중이었으나, 부득이하게 집필을 중단하고, 17권의 객관적 자료인 책을 찾아 검찰에 제출했다. 그리고 7년 후인 2005년 5월 ‘태백산맥’은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이런 ‘태백산맥’과 관련한 고발과 수사 과정은 문학을 법으로 옭아매려 한 비민주적 행태와 민주주의 퇴행 기미 중 하나란 질의에 대해 조정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는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완성품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당시 이명박 정권 시절)이고 그는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는 점에서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나아가 지식인은 이런 현상에 대해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하역사소설 마지막 장인 ‘한강’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후 2001년부터 총10권으로 발간했다. 1959년 이후 4.19혁명부터 광주 민주화운동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독재의 군홧발과 민주화의 돌팔매가 맞선 시대에서 급속한 경제성장 논리와 불공정 분배의 그늘 아래에서 기득권 세력이 분단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가운데 민중 차원의 통일 염원의 불꽃이 장렬하게 사그라지는 것을 장대하게 그리고 있다. 간략한 줄거리는 분단의 고통에 신음하는 월북자의 아들 유일민과 유일표, 출세 지향의 정치인 강기수, 가난을 등에 지고 입신양명을 좇는 법조인 이규백과 김선오, 몰락한 집안의 독립투사 허진과 주먹계의 새로운 신화를 꿈꾸는 서동철, 그리고 서울에서 한몫 잡아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려는 불가촉천민 나삼득과 천두만 등의 다양한 군부독재 시대의 인간 군상들에 대해 다룬다.      

천두만은 새끼줄을 따라 걸으며 기지개를 켰다. 안개가 끼어 한강은 흐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했다. 이 산동네에 사는 유일한 맛이 있다면 아침마다 한강을 한눈에 바라보는 거였다. 그는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기차로 처음 한강을 건널 때의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는 했다. “그려, 기연시 성공얼 혀야제. 당당허니 고향에 내래가게 돈 많이 벌어야제.” - ‘한강’ 천두만의 말 중에서

문학 평론가 권영민은 ‘한강’에 대해 "이 소설은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앞세운 조정래 문학의 거대한 산맥과 이어지며 그 절정에 해당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그는 ‘태백산맥’이 우리 민족의 이념적 갈등과 분열, 대립을 그려냈다면, ‘한강’은 우리 민족의 현실과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아리랑’이 민족사의 고통과 극복을 그려냈다면, ‘한강’은 민족적 삶의 진정한 모습을 전체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의욕을 담고 있다"라고 평했다.  나아가 권영민은  조정래의 3부작에 대해  ‘태백산맥’의 이념과 ‘아리랑’의 역사를 넘어서서 ‘한강’을 통해 민족 현실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 많은 ‘아리랑’ 눈물고개를 넘어, 피맺힌 ‘태백산맥’을 포복한 뒤 드디어 악다구니 같은 삶의 현장 ‘한강’에 이르렀다 이것은. 세계 어느 작가도 도전하지 못했던 웅장한 역사 문학의 승리이다.” - 문학평론가 임헌영 

조정래는 ‘한강’에서 연좌제 및 해외 근로자 파견, 베트남전쟁 파병 등 시대상을 생동감 넘치고, 세심하고 그려낸다. 나아가 조정래가 밝혔듯 망원경적 총체성과 현미경적 구체성을 구사하며 ‘한강’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개발 독재의 열매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고통의 결과라는 것이다.

조정래가 보기에 1960년부터 1980년에 이르는 '격랑 시대'는 분단 상황과 경제개발이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절대 모순으로 작동하던 시기였다. 오늘날 경제 성취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아래에서는 수많은 '우리'들이 고통스러운 몸부림으로 서로 뒤엉키며 거대한 기둥들이 되어 떠받쳐 왔다. 그 기둥들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 '거대한 인간의 탑'이다. 그래서 ‘한강’은 '숨김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 대하소설 삼부작은 순차적 시간에 따라  집필되지 않았다.  쓰인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태백산맥’ - ‘아리랑’ - ‘한강’의 순서이다. 이런 집필 순서는 편의나 우연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아리랑’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20년간의 글쓰기를 마치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작가가 장년기의 거의 전부를 바쳐 쓴 세 편의 대하소설은 200자 원고지 5만1500장 분량으로, 쌓아놓은 원고지의 높이가 그의 키 3배를 넘는다.    

조정래가 ‘태백산맥’을 먼저 집필한 이유는 분단 후의 이념 문제가 그가 보기에는 현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만든 원인이자 이 질곡을 해소하는 열쇠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태백산맥’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염상진의 뜻을 잇는 이는 전형적인 농민이자 하층민인 하대치이다. 하대치의 입으로 말하는 뜻을 잇겠다는 마지막 장면은 그런 의도로 정해진 것이다. 여기에 ‘아리랑’과 ‘한강’을 앞뒤로 연결해 3부작을 완성한 것이다.    

‘진정한 작가란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정권하고도 불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돼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나 진보성을 띤 정치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직시하고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    

‘아리랑’이 ‘태백산맥’의 전사(前史)였듯, ‘한강’은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발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리랑’이 20세기 중반 나라를 잃고 헤매던 민족의 수난과 그것을 되찾기 위해 투쟁했던 피의 역사를 복원했다면, ‘태백산맥’은 해방 공간에서 6.25 한국전쟁 휴전기에 이르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분단의 이념의 발생에 대해 복기했다. ‘한강’에 이르러서에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며 폐허 속에서 민족사의 헐벗은 딸과 아들들이 나라의 기틀을 복구하는 이야기다. 이 신랄하고도 감동적인, 그리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자화상 속에서 한국 근현대사 대하소설 3부작은 완성됐고, ‘한강’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        

조정래의 문학관과 작가론 그리고 논란과 평가       

‘진정한 작가란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정권과도 불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돼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로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정치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나 진보성을 띤 정치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직시하고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조정래

조정래는 문학과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조정래의 문학관과 작가론     

조정래는 젊은 시절, '조진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입만 열면 민족과 역사, 진실 나아가 통일을 얘기하는 진지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조진지'가 아니라 진세가 된 이유는 지(摯)자의 한자가 어려워 지(摯)를 세(勢)로 잘못 읽는 경우가 많다는 데 착안해 살짝 비꼰 것이다.  그만큼 조정래는 문학과 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렇게 그가 '진지'하게 문학에 임하지 않았다면, 대하역사소설 3부작은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그는 20년에 걸쳐 총 32권을 완결하는 기염을 보여줬다. 열성적인 취재와 사전 조사를 통해 집념과 근성으로 집필해 낸 것이다. 그는 주색잡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하루 쓸 원고지 분량을 정해놓고 그 일정표에 따라 작품에만 몰두한다. 컴퓨터가 아닌 육필로 글을 작성하기에 온몸에 직업병을 달고 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문학을 집필하고,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다.      

“내 반골 기질은 가난에서 싹텄다. 문학이 왜 필요한가의 출발점도 거기다. 때로 피로가 쌓여 도망가 버리고 싶을 때, 소리 지르고 머리칼을 쥐어뜯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글이 안 될 때, 내가 술이나 농땡이로 도망치지 않고 책상 앞으로 더 다가앉는 건 어린 시절 나 자신에게 다짐한 게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한번 살다 간다. 한번 살기 때문에 적당히 살 수는 없다. 너는 글 쓰는 놈이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부지런히 글 쓰는 것, 글로써 가난한 자와 가난한 자들의 위에 서 있는 자들을 가려내 그 모순을 고발하는 것, 그게 너의 본분이다.’”     

그러나 이런 조정래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그것은 그의 스승에 관한 것이다. 조정래의 스승은 미당(未堂) 서정주로 알려져 있다. 서정주의 제자들 중에 그의 친일행각과 친군부 행위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스승이기에 묵인한 이들도 숱했다.

조정래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서정주 생전에 스승에게 그 부분에 대해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1985년 조정래는 <한국문학>이라는 문학지를 맡고 있었다. 광복 40주년을 맞아 8월 호에 '친일 문인'을 다루는 특집기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친일 전력이 있는 문인 가운데 생존자들을 찾아 그들의 행적을 지면을 빌려 이야기하고 사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서정주는 자신의 은사인 동시에 김초혜 시인과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본 이었다. 그만큼 각별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불편했음을 더 말해서 무엇할까. 
▲ 황순원과 서정주     

그러나 고심 끝에 그는 서정주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조정래는 서정주에게 간곡히 말한다.  글 마지막에 잘못했다는 한 마디만 하시면 선생님께서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서정주는 조정래의 말에 불같이 화를 낸다. 네가 내 제자로서 그럴 수 있냐고 말이다. 조정래는 이에 대해 추후 회고하며, 그냥 쫓아내지 않고 조정래 앞에서 자신의 행적을 변명하는 장광설을 두 시간 동안이나 펼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정주는 친일행위를 사과할 기회를 잃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조정래는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충분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었겠지만,  최소한 문학가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었을지는 모른다. 이 점에 대해서 조정래는 아직까지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 지난 정권들이 문학을 법으로 옭아매려 한 것에 대해 조정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민주주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완성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민주주의 일보 후퇴가 이보 전진을 낳을 수 있고, 이 선택은 결국 '국민'이 한 것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MB정권 시절) 최근 소설의 경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사적 이야기에만 집착한 나머지 문학이 사회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야기의 기초를 이루는 '뼈대'가 약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 미시 담론은 80년대 거대 담론의 반동으로 나온 것이나, 80년대 소설의 사회 역사의식을 많은 부분 상실했다. 이것은 순수와 참여라고 말한다면,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데, 지나치게 구분하려는 경향성이 점점 짙어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문단의 권력화 경향도 경계해야 하며, 배타성과 폐쇄성을 바탕으로 지난 40여 년간 권력을 누려왔지만, 이제는  젊은 비평가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기에 이런 배타성과 폐쇄성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이 문학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건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라디오와 영화, TV가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TV가 발명됐을 때 사람들은 '영화의 소멸'을 성급히 예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TV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보고, 라디오도 듣는다. 인터넷에 대해 한마디 하자.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는데, 한 인간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정보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중요한 건 넘쳐나는 엄청난 정보량이 아니다. 인간의 가치 실현을 위한 고민의 확보가 훨씬 중요하다.“        

◆논란과 비판, 그리고 평가 

조정래는 수많은 대하소설과 방대한 양의 저술을 했다. 인간사가 모두 그렇듯,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다. 조정래는 그의 대하역사소설 작품 내 여성 캐릭터에 대한 몰이해 및 대상화로 인해 수많은 여성주의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나아가 그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비판이 있다. 뿐만 아니라 ‘태백산맥’과 ‘아리랑’ 등에서 역사적 허구나 근거없는 묘사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조정래가 자신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적당한 뒷배경을 설정하고 그것을 그럴듯한 진실로  포장했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조정래 소설에는 반일 (反日) 감정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또한 ‘아리랑’에서 최익현을 비롯한 유림들에 대한 지나치게 부정적 묘사도 나타나 있다. 

그런 앞선 두 논란은 모두 '문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은 역사서도 아니고, 누군가의 입맛에 고려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특히 '소설'은 허구를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이다. 이것은 역사대하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여성 캐릭터에 대한 몰이해와 대상화 또한 남성 작가로의 어쩔 수 없이 가지는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조정래 작가가 설정한 시대 배경의 한계라는 점도 숙지하고 있어야 올바른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조정래의 최근 작품들      

대하역사소설 3부작을 완결한 후에도 여전히 조정래는 꾸준히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한강’ 집필을 끝낸 후 경제민주화와 자본주의의 민낯을 다룬 ‘허수아비춤’을 발표했고, 이어 중국에 대해 작가 자신의 견해를 닮은 소설인 ‘정글만리’ 그리고 대한민국의 교육에 다루고 있는 ‘풀꽃도 꽃이다’까지 다양하다.  인세로만 100억원  이상 번 조정래는 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글감옥'에 갇혀서 노역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조정래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자, 인간으로서의 운명, 그리고 수인(囚人)으로서의 천형(天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집필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문학'을 통해 던질 것이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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