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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문 없는 수행처' 백담사 무문관 동안거 결제
10명 入房, 3개월간 용맹정진 돌입…조계종 100개 선원도 일제히 입재
기사입력: 2017/12/07 [19:2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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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선원(禪院)이 12월2일 일제히 불기(佛紀) 2561년(2017년) 정유년 동안거(冬安居) 결제에들어갔다. 100여개 선원에서 2,000여명의 스님들이 앞으로 3개월간 수행에 매진한다.    

안거는 부처님 재세(在世)시부터 현재까지 2,600년을 이어오는 전통적인 수행방식이다. 여름과 겨울 각각 3개월씩 스님들이 산문(山門)을 닫고 참선수행을 정진에 정진을 거듭한다.    

‘문 없는 수행처’ 무문관(無門關)이 있는 강원도 인제 백담사도 이날 동안거 결제에 들었다. 무문관에 방부를 들인 스님은 10명. 그 가운데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포함돼 있다. 이들 결제 대중이 첫날 일정인 동안거결제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제3교구본사 신흥사로 향했다. 조실 무산스님과 주지 우송스님이 결제 대중을 반갑게 맞았다. 
▲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이 주지 우송스님의 도움을 받아 동안거결제 법어를 하기 위해 법좌로 향하고 있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도 백담사에서 무문관 수행에 들어가     

무산스님은 “전 원장 스님이 무문관 결제에 든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 다들 부러워 한다”고 덕담했다. 무금(無今)선원 유나 영진스님은 “2년 전 자승스님이 총무원장 임기가 끝나면 무문관에 들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출가본분사를 해결하기 위해 정진하겠다는 스님의 뜻에 기꺼이함께 정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신흥사는 본사 내 향성선원에 방부를 들인 11명의 스님과 백담사 무금선원 무문관 대중 10명, 조계종 기본선원 대중 36명 등 교구내 선원 대중 스님들로 활기가 가득했다. 특히 결제 중에는 누구도 만날 수 없는 무문관 입방 스님들을 미리 만나기 위해 결제 첫날부터 대중공양에 나선 금곡스님, 호산스님, 진각스님, 태원스님, 성화스님, 설도스님 등 10여명의 중앙종회의원들이 신흥사를 찾았다. 
▲ 결제법회에 앞서 조실 무산스님이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 등 백담사 무금선원 무문관 결제대중과 차담(茶談)을 나눴다      

무문관 수행은 선원대중이 함께 정진하는 일반 선원과 달리 가장 힘들고 혹독한 수행과정을 거친다. 자물쇠로 걸어 잠근 방 안에서 3개월간 홀로 수행해야 한다. 외부와의 연결고리는 배식구로 들여주는 하루 한끼 공양물이 전부다. 대중공양을 오더라도 직접 만날 수 없다. 조사록에서 접하는 면벽수행이 무문관 수행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자승스님은 입방 전 휴대폰을 정지시켰다. 일체의 잡념을 끊고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하기 위한 선택이다. 
▲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신흥사에서 열린 동안거 결제법회를 마치고 백담사 무문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자승스님은 이 곳에서 하루 한끼의 공양으로 3개월간 용맹정진을 이어간다.    

외호대중으로 본사를 찾은 낙산사 주지 도후스님은 “이번 결제에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무문관 방부를 들인데 대해 많은 스님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소임을 내려놓자마자 무문관에 든 것이야말로 ‘이것이 출가수행자가 지녀야할 본연의 모습’이라고 한다”고 반색했다.

결제법회는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다. 안거 수행의 단편이다. 선원 결제대중과 외호대중이 안거에 임하는 각오를 다지는 법석으로 조실 스님의 결제법어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 신도들이 참석하는 여느 법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날 무산스님은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의 결제법어를 대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결제 대중을 향해 “모든 시비는 다 놓아 버리고 오직 자기의 본분사(本分事)를 밝히는 이 일을 해야 한 생(生)을 허비하지 않고 값지게 사는 것”이라며 “인생백년이 길다고 해도 참선수행의 한나절 한가로움에 미치지 못한다”고 격려했다.12월2일 시작된 동안거 결제에 따라 선원이 없는 일반 사찰에서도 산문 밖 출입을 자제하고 재가안거, 안거기도 등 각각의 방식으로 안거에 돌입했다.     

무문관 수행 - 독방에서 화두와 씨름 ‘부처되기’

‘이 자리에서 깨치지 못한다면 일어서지 않으리라.’ 겨우 몸 하나 움직일만한 공간, 움막도 좋고 토굴이라도 좋다. 한번 들어갔다 하면, 몇 년이고 바깥세상을 피한다. 아예 출입을 하지 못하게 입구를 막아버리거나 못질을 해버린다. 움막으로, 토굴로 한번 들어가면 몇년이고 면벽(面壁), 하루한끼 일종식 죽기 각오로 정진하는 것이 무문관 수행이다. 선종(禪宗)의 유일한 적자(嫡子)임을 자부하는 한국불교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참을성이 없어지고 도를 구하는 이도 드물어 불법이 쇠퇴하며, 교만과 시비가 넘치게 된다’는 말법(末法)시대, 승가의 수행기풍과 위계질서도 날로 흐트러지고 있다. 그러나 매년 동·하안거에 수천여명의 스님들이 선방에서 정진하고 있는 가운데 ‘무문관’ 수행의 전통이 제방의 선원과 토굴에서 되살아나고 있으니, 불교 중흥의 서광이 아닐 수 없다.               
▲ 3교구 내 선원 결제대중은 조실 무산스님에게 결제법어를 청했다    
   
‘무문관’은 원래 중국 송나라 선승인 무문 혜개(無門慧開)가 지은 책(<선종무문관>이라고도 함) 이름. 깨달음의 절대경지를 ‘무(無)’라고 표현하고, 이 무자(無字) 화두를 참구한 책이다.

조주(趙州)스님에게 한 학인이 “개(狗子)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없다(無)”라고 대답했는데, 이때의 ‘무’란 세상에서 말하는 유(有)에 대한 상대적 ‘무’가 아니라, 유무의 분별을 떠난 절대적 ‘무’를 가리킨다는 뜻에서 책의 제목이 유래했다.

물론 문을 닫고 정진하는 ‘폐문정진법(閉門精進法)’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중국의 조주, 고봉스님 등이 죽기를 각오하고 정진했다는 ‘사관(死關)’도 무문관 수행의 일종이었다. 구한말 경허스님이 동학사에서 폐문 수행하고, 일제시대 효봉스님이 금강산 신계사 선방에서 3년간 두문불출하며 정진한 것도 무문관 수행이라 할 수 있다.  
▲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이 결제대중과 외호대중에게 결제법어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무문관이 하나의 보통명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64년 도봉산 천축사에서 정영스님이 ‘무문관’이라는 참선수행도량을 세우면서부터다.

부처님의 6년 설산 고행을 본받아 1965년부터 79년까지 매회 6년간 현대의 고승들이 밖에서 문을 자물쇠로 걸고 면벽 수행했던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 용맹정진의 상징과도 같았던 천축사 무문관은 1979년 원공스님(천축사 주석)을 끝으로 문을 닫았지만(현재는 출·재가자가 함께 하는 시민선방으로 운영), 1993년 계룡산에서 다시 ‘문없는 문’이 열렸다.

계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갑사 대자암 무문관. 천축사에 처음으로 무문관이라는 수행 기풍을 세운 정영스님이 20여년의 정성으로 조성한 ‘삼매당(三昧堂)’이란 이름의 선원이다. 3층 규모의 웅장한 건물이지만 화장실을 갖춘 아담한 방이 12칸, 수좌들은 빈 몸으로 들어간다. 하루 한끼만 먹는 일종식에 묵언정진은 기본, 의사소통은 필담으로 이뤄진다. 세속 기준으로 보면 형무소의 독방보다 더 처절하다.           
▲ 제3교구본사 신흥사에서 열린 불기 2561년 정유년 동안거 결제법회 모습.    

대자암에 이어 1994년 문을 연 무문관은 제주도 남국선원. 현재 도현스님을 비롯, 7명의 수좌들이 정진중이다. 수행기간은 1년이 기본이나 연장이 가능하다. 수행자의 법랍은 평균 20년 이상으로, 정진력을 검증받지 않고는 입방이 힘들다. 1998년에는 설악산 백담사에도 ‘무금선원’이란 이름으로 무문관이 생겼다. 98년 하안거때부터 3개월 과정으로 문을 열었다.

토굴에서 수행하는 스님들도 적지 않다. 수좌들은 봉정사 지조암, 태백산 도솔암 등 무문관 수행을 하는 토굴과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포함하면, 무문관은 30여곳은 될 것으로 추산한다. 이를 다 합치면 무문관 수행자는 60여명에 달하며, 매년 안거에 드는 2,000여 수좌의 3%에 해당한다.

무문관 수행은 눕지 않고 좌선하는 ‘장좌불와’, 잠자지 않고 참선하는 ‘용맹정진’과 함께 가장 어려운 수행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문관에 방부를 들이려는 수좌들은 줄을 잇고, 무문관을 개설하려는 선원도 늘고 있다. 문경 봉암사와 충주 석종사를 비롯, 비구니선원이 있는 울산 석남사도 무문관을 개설하고 있다.

백담사 주지 일문스님은 “선방수행은 결제기간에 쫓겨 중단되기 쉽지만, 무문관 수행은 정진력이 붙을 때까지 치열하게 몰아붙일 수 있다”며 “중국에도 없는 무문관 수행이 이제 한국의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수좌들은 예나 지금이나 관문을 돌파해야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테지만, 그 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없는 문’을 들어가려는 대발심이 지금 이 순간에도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불교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1964년 도봉산 천축사 주지 정영스님은 선객들이 참선도량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듣고 무문관의 필요성을 절감, 처음으로 천축사에 공식적인 무문관을 개설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6년 고행(苦行)을 본받아 6년 결제에 들어갔는데, 2회차를 마친 후 1979년까지 100여명의 수좌들이 방부를 들였지만, 기한을 제대로 채운 스님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규칙이 엄했기 때문에 보문, 관응, 구암, 제선, 현구, 지효, 경산, 도천, 관묵, 천장, 도영, 석영, 무불, 원공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만이 이름을 남겼을 정도이다.

관응스님 - 천불선원 후학제접, 도천스님 - 40년간 두문불출,
구암스님 - 평생참선 ‘절구통’, 원공스님 - 옷 두벌 22년 만행 

당시 수행 참가자 가운데 현존하는 스님은 몇 분 없고 대부분의 스님들이 이름없는 토굴에서 치열하게 정진하다 입적했다.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직지사 조실로 있다가 2004년 입적한 관응스님은 천축사 6년 면벽수행을 마친 후 당대 최고의 강백이자 선승(禪僧)으로서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직지사 천불선원 조실로 후학들을 제접했다. 역시 조계종 원로의원으로서 2011년 입적한 도천스님은 대둔산 태고사에서 40년간 두문불출하며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백장청규를 몸소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 제3교구본사 신흥사와 백담사의 불기 2561년 정유년 안거 결제대중.

하남 광덕사에 주석하던 구암 스님은 1966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후 제방의 선원에서 참선만 해 온 절구통 수좌로서, 모든 소임을 마다하고 작은 절에서 수행에만 매진했다.

천축사 무문관의 마지막 수행자 원공 스님은 22년간 1년의 절반 이상을 꼬박 ‘만행’(기별도 전하지 않은 채)을 하면서도 단 한차례 차를 타지 않고, 갈아입을 옷 두벌만을 지닌 채 무문관 3층의 한 방을 지켰다. 그가 걸으며 기원한 것은 서로 칼끝을 겨눈 동포의 화해였고 통일이었다. “선승이 어떻게 이 문제에 눈을 돌렸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 땅의 많은 고통이 그로부터 나오는데, 이 땅에서 살면서 민족 화해를 생각하지 않으면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원공스님은 산에 삼을 심는 `농심마니'와 ‘산에 도라지를 심는 사람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도 했고, 북한동포 돕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20년 참구해도 진리의 문 들지 못하는 까닭은?”    

불기2561(2017)년 정유년 동안거 결제를 하루 앞둔 12월1일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결제대중들을 경책하는 법어를 발표했다. 스님은 결제법어에서 “10년, 20년 동안을 참구해도 진리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간절한 한 생각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한 번을 챙겨도 뼈골에 사무치는 화두를 챙겨야만 공부에 진취가 있고 소득이 있는 법”이라는 가르침을 내렸다.    

진제스님은 법어에서 “결제에 임하는 사부대중들은 시간의 신속(迅速)함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것”이라며 “내생이 목전에 곧 닥쳐오는 데 이 귀중한 시간을 시비장단에 허비해 버린다면 또 다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고 경책했다. 이어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영구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불법의 정안을 갖춘 선지식을 만나 올바른 참선지도를 받아 그대로 온전히 실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참학인들이 10년, 20년 동안을 참구해도 진리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간절한 한 생각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러니 모든 반연(攀緣)은 끊고 시비장단은 모두 내려놓고 견성하고 말겠다는 확고한 대신심과 불타는 대용맹심을 내어 간절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하여 번뇌와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혼신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 정유년 동안거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결제법어     

全機大用不思議(전기대용부사의)라  三世佛祖倒三千(삼세불조도삼천)이로다.  有意氣時添意氣(유의기시첨의기)하고 不風流處也風流(불풍류처야풍류)로다.

온전한 기틀과 큰 용(用)은 생각하고 의논하지 못하는지라,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도 삼천 리 밖에 거꾸러짐이로다.  뜻 기운이 있는 때에 뜻 기운을 더하고  풍류가 없는 곳에 또한 풍류가 있게 함이로다.     

금일은 정유년 동안거(冬安居) 결제일이라. 결제에 임하는 사부대중들은 시간의 신속(迅速)함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 구름이 허공중에 두둥실 떠 있다가 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인생도 이와 같이 이 사바세계에 잠시 머물렀다가 구름처럼 가뭇없이 사라짐이라.

사람이 사대육신(四大六身)의 형상을 이루고 있지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일은 나고 죽는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내생이 목전(目前)에 곧 닥쳐오는 데 이 귀중한 시간을 시비장단(是非長短)에 허비해 버린다면 또다시 윤회(輪廻)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모든 시비는 다 놓아 버리고 오직 자기의 본분사(本分事)를 밝히는 이 일을 해야 한 생(生)을 허비하지 않고 값지게 사는 것이다. 인생백년이 길다고 해도 참선수행의 한나절 한가로움에 미치지 못함이라. 
▲ 동안거 결제법문을 하고 있는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고통에서 영구히 벗어날 수 있느냐? 먼저 불법(佛法)의 정안(正眼)을 갖춘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올바른 참선지도를 받아 그대로 온전히 실천해야한다.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이 화두를 일상생활 가운데에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일체처일체시(一切處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해야 할 것이다.

화두를 챙길 때는 아주 분명히 또렷또렷하게 화두를 챙기고 의심을 짓고, 챙기고 의심을 지어가야만 가지가지의 생각이 침범하지 못하고 혼침(昏沈)도 달아나게 된다.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거나 게으른 마음이 있으면 화두는 벌써 십만 팔천리 밖으로 달아나 버리고 과거의 습기(習氣)로 인한 다른 생각이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게 된다. 참학인(參學人)들이 10년, 20년 동안을 참구(參究)해도 진리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간절한 한 생각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반연(攀緣)은 끊고 시비장단(是非長短)은 모두 내려놓고 견성하고 말겠다는 확고한대신심(大信心)과 불타는 대용맹심(大勇猛心)을 내어 간절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하여 번뇌와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혼신의 노력을 쏟아야 함이로다. 한 번을 챙겨도 뼈골에 사무치는 화두를 챙겨야만 공부에 진취(進取)가 있고 소득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정성껏 잡도리하다 보면, 화두가 익어져서 밤낮으로 흐르고 흐르다가 문득 참의심이 발동하게 된다. 그때는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앉아있어도 밤이 지나가는지 낮이 지나가는지 며칠이 지나가는지 몇 달이 지나가는지 모르게 되니, 이것이 일념삼매(一念三昧)인 것이다.

이처럼 일념삼매가 시냇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지속될 때, 홀연히 보는 찰나에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나게 되고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업(業)이 빙소와해(氷消瓦解)되어 몰록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가 그대로 목전(目前)에 드러나게 되리니, 그러면 모든 땅덩어리가 변해서 황금이 되고. 넓은 바닷물이 변해서 감로(甘露)의 제호(醍醐)가 되리라. 이 금덩어리는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고 감로의 제호는 한 번 들이킴으로 인해서 많은 생에 지어온 업장이 당하(當下)에 소멸되니 만 냥의 황금을 허리에 차고서 목마(木馬)를거꾸로 타고 해금강을 산책하며 인간과 천상의 지도자가 되고 모든 불조(佛祖)와 더불어 어깨를나란히 하게 되리라.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로 가장 위대한 도인이라면 중국의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를 꼽을 수 있는데, 그 분의 탁월한 안목(眼目)은 감히 어느 누구도 능가할 사람이 없다 하리니, 달마 대사의 스승이신 반야다라(般若多羅)존자께서 예언 하시기를 "네 밑으로 7대(代)의 아손(兒孫)에 이르러 한 망아지가 출현하여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일 것이다."라했는데, 그 예언이 전해 내려와서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에 이르렀다.

어느 날 육조께서 제자인 남악 회양(南嶽懷讓) 스님에게 은밀하게 부촉(付囑) 하셨다.

"그대 밑에 천하 사람을 밟아버릴 만한 한 망아지가 출현할 것이네. 그리하여 그 밑에 수많은 도인 제자가 나와서 불법이 크게 흥성(興盛)하리라고 반야다라 존자께서 예언하셨으니, 그대만 알고 잘 지도하게."

남악 회양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법을 펴시니, 마(馬)씨 성(姓)을 가진 한 수좌가 와서 신심(信心)을 내어 불철주야 공부를 지어갔다. 그런데 이 수좌는 항상 좌선(坐禪)하는 것만을 고집하여 자리를 뜨는 법이 없었다.


남악 회양 선사께서 하루는 앉는 데 국집(局執)하는 그 병통을 고쳐 줘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좌선중인 마조(馬祖) 스님에게 말을 건네셨다.


"수좌는 좌선하여 무엇 하려는고?"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자 회양 선사께서는 암자 앞에서 벽돌을 하나 집어와서 마조 스님 옆에서 묵묵히 가시기 시작했다. 마조 스님이 한참 정진을 하다가 그것을 보고는 여쭈었다.

"스님, 벽돌은 갈아서 무엇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고자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할진대,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소를 수레에 매서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마조 스님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회양 선사께서 다시 말씀을 계속했다.

"그대는 좌선(坐禪)을 배우는가, 좌불(坐佛)을 배우는가? 앉아서 참선하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면 선(禪)은 앉거나 눕는데 있는 것이 아니니 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앉은 부처를 배운다고 한다면 부처님은 어느 하나의 법이 아니니 자네가 부처님을 잘못 알고 있음이네.

무주법(無住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 하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죽이는 것이고,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선(禪)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네."

마조 스님은 여기에서 크게 뉘우치는 바가 있어서 좌선만을 고집하던 생각을 버리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서 일여(一如)하게 화두를 참구하여 순일(純一)을 이루어서 마침내 크게 깨쳤다.


그 후 남악회양 선사를 모시고 10여 년 동안 시봉하면서 탁마(琢磨)받아 마침내 천하 도인의 기봉(機鋒)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훌륭한 안목(眼目)을 갖추어 출세(出世)하시니 승속을 막론하고 참학인(參學人)들이 무수히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조 선사의 지도하에 84인의 도인 제자가 나왔으니 충분히 수기(授記)를 받을 만한 분이라 하겠다.

마조 선사께서 어느 달 밝은 밤에, 세 제자를 데리고 도량(道場)을 거닐면서 이르셨다. "그대들이 이제까지 수행한 바를 저 밝은 달을 가리켜 한마디씩 일러 보게." 그러자 서당 지장(西堂智藏) 스님이 "바로 공양(供養)하는 때입니다."라고 답했고, 백장 회해(百丈懷海) 스님은 "바로 수행(修行)하는 때입니다." 라고 답했다.그런데 남전 보원(南泉普願)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양팔을 흔들면서 그냥 가버렸다.

마조 선사께서 세 제자의 답처(答處)를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경(經)은 지장(智藏)에게 돌아가고, 선(禪)은 백장(百丈)에게 돌아가는데,남천(南泉)만이 홀로 형상 밖으로 뛰어났구나."하고 남천 스님을 칭찬하셨다.

이 도인 문중에서는 진리의 물음에 한 마디 답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그 답처를 꿰뚫어 상대방의 살림살이를 점검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남전 스님이 양팔을 흔들면서 그냥 가버린 뜻은 어디 있는가? 만일 시회대중(時會大衆) 가운데 이 뜻을 아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산승(山僧)이  이 주장자를 두 손으로 전하리라.

세월이 흐른 후, 마조 선사께서 법상(法床)에 앉아 계시던 차제에 백장 스님이 들어오니, 선사께서 법상 모서리에 걸어 놓은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셨다.

그러자 백장 스님이 여쭙기를, "이를 바로 씁니까, 이를 여의고 씁니까?"하니, 마조 선사께서 그 불자를 원래 걸려 있던 자리에다 도로 걸어 두셨다.

한동안 백장 스님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니 마조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장차 대중을 위해서 어떻게 법을 설하려는고?" 그러자 이번에는 백장 스님이 걸려 있던 불자를 들어 보이니, 마조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이를 바로 씀인가, 여의고 씀인가?" 백장 스님이 아무 말 없이 불자를 도로 제자리에 걸자, 마조 선사께서 "억!" 하고 벽력 같은 '할'을 한번 하셨다. 이 '할'에 백장 스님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사흘 동안 귀가 먹었다가 깨어나서 마조 선사께서 '할'하신 뜻을 깨달았다. 백장 선사는 여기에서 마조 선사의 법(法)을 받아서, 분가(分家)하여 다른 곳에 주(住)하며 법을 펴셨다.

몇 년 세월이 흐른 후에, 황벽(黃檗) 스님이 백장 선사를 방문하여 친견하고 며칠 머물다가 하 직인사를 하였다.


"어디로 가려는가?"
"강서(江西)에 마조 선사를 친견하러 가고자 합니다."
"마조 선사께서는 이미 천화(遷化) 하셨네."
"저는 인연이 없어서 그 위대한 마조 선사를 한 번도 친견하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래도록 마조 선사를 모시고 지도 받으셨으니 저에게 마조 선사의 고준한 법문을 한 마디 설해 주십시오.“

그러자 백장 선사께서는 두 번째 마조 선사를 참예(參詣)하였을 때 불자(拂子)를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시고는 말씀을 덧 붙이셨다.

"내가 그 때 마조 선사께서 '할(喝)'하신 소리에 사흘 동안 귀가 먹었었네."

황벽 스님은 이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는 결에 혀를 쑥 내밀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조 선사의 '일할(一喝)'에 두 분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황벽 선사는  백장 선사의 상수제자(上首弟子)가 되어 법을 이으셨다.

그러면 마조 선사의 이 '일할(一喝)'이 얼마나 위대하길래, 두 분 선사께서 그 아래에서 몰록 깨치셨을까? 이 '일할' 가운데는 비춤[照]도 있고, 씀[用]도 있고, 줌[與]도 있고, 뺏음[奪]도 있고, 죽임[殺]도 있고, 살림[活]도 있다.

마조 선사의 이 '일할'을 좇아서 후손들이 '방(棒)․ 할(喝)'을 썼으니, 새로운 종풍(宗風)을 일으킨 위대한 분은 바로 마조 선사이다. 일러라. 마조 선사의 이 '일할(一喝)'의 낙처(落處)가 어디에 있느냐?

[대중이 아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이르시기를,]蒼天後更添怨苦(창천후갱첨원고)곡(哭)을 한 후에 다시 원한의 괴로움을 더함이로다.

“마음의 경계 없애야 참나 찾을 수 있어      

한국불교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은 "오늘은 겨울한철 동안 수행자의 본분사를 해결하고자 용맹정진의 다짐을 시작하는 날이다.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놈은 무엇인가?"고 했다.

▲ 태고종 종정 혜초스님   

◎정유년 동안거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의 결제법어 전문     

어느덧 정유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겨울한철 동안 수행자의 본분사를 해결하고자 용맹정진의 다짐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놈은 무엇인가?

화엄경에 “누구라도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할진데(若人欲識佛境界),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맑게 할지니라(當淨其意如虛空). 망상과 제취를 멀리 여의어 가지고(遠離妄想及諸趣), 마음자리 향한 바에 모두 걸림이 없게 할지니라(令心所向皆無碍).”고 이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휴 선사도 “미혹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迷心修道) 단지 무명만을 도울 뿐이다(但助無明).”라고 하셨고, 청매선사는 “마음을 반조하지 않으면(心不返照), 경을 보아도 이익이 없다(看經無益). 자성이 공한 줄 알지 못하면(不達性空), 좌선에 이익이 없다(坐禪無益).”라고 하셨습니다. 

우주만상의 근본진리를 알고자 할진데, 걸림 없는 맑은 마음으로 완전히 경계를 없앤다면 마침내 밝은 지혜를 얻어서 참나를 찾을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인의 진정한 행복이니 수행자는 이점을 명심하여 수행에 쉼 없이 매진하기 바랍니다.     

태고의 광명이 법계에 두루 하니(太古明光徧法界 태고광편법계)하나의 등불이 천년의 어둠을 깨뜨린다.(一燈可破千年暗 일등가파천년암)제불보살이 모두 칭찬하고 축하하니(諸佛菩薩共讚祝 제불보살공찬축)육도의 영혼들이 모두 해탈하여 저 언덕에 오르네.(六道含靈登彼岸 육도함영등피안)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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