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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무 목사의 ‘일상 속 묵상’
잊을 수 없는 악연, 그러나 용서하자! 용서하자! ➁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마 18장 22절)
기사입력: 2018/01/08 [10:4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하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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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을 간지 1년이 지난 뒤, 딸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인 1999년 1월 중순경이었습니다. 호주의 1월은 한국의 한겨울 1월과는 정반대로 무더운 여름철입니다. 저는 매주 딸아이를 주일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서 조금 일찍 교회로 출발합니다. 지금은 호주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딸 그레이스는 그 때가 생각이 날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주일이었습니다.     

교회 주일학교는 매주 지난주에 공부한 성경공과 중에서 성구 한 절씩을 아이들이 암기해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매주 교회로 가는 차 안에서 딸아이에게 성구를 외었는지 확인해 보니, 전혀 외우질 않았던 것입니다. 그 때, 딸아이는 나중에 집에 돌아오면 아빠에게 혼날 일이 생각났던 나머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대디? 한 번만 용서해 줘! 플리즈”
“그래 아빠가 용서 해주는데 약속대로 발바닥은 세 번 맞아야지”    

그런데, 딸 아이 답변이 걸작이었습니다.    

“아빠! 진짜 용서는 다 용서해 주는 거래”
“누가 그렇게 말했는데”, “예수님이.” “아빠! 성경에 다 나와”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18장 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딸아이는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일 아침, 차안에서 아무런 계산 없이 툭 던진 딸아이의 답변은 저에게 실제적인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까마득히 잊었던 20년 전, 딸아이와 있었던 일이 지난 해 12월 마지막 날에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그 때 결코 잊지 못할 사람 ‘악연 중에 악연’이 떠올랐습니다. 재직한 대학을 퇴직하게 만든 교육부차관 출신의 그 총장님보다도 더 용서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호주로 이민을 간지, 갖은 고생 끝에 다시 소명을 회복한 저는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습니다.     

출석한 호주 한인교회 담임 목사님의 추천으로 소속 교단의 국내 신학교에 입학하고자 홀로 귀국을 하였습니다. 입학시험과 면접을 통과하고 드디어 목사후보생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은 해는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연 2000년 3월이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출발이었습니다.    

지금도 입학하던 날이 생생합니다. 당시 신학교 교장이셨던 석 목사님의 입학식 인사말이 생각납니다. 이 신학교는 해외 교민들 중에서 입학한 신학생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이날 석 목사님은 인사말에서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저에 관해서도 몇 마디 하였습니다. ‘멀리 호주에서 온 입학생이 있다’는 내용과 약간의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입학을 한 후, 주중에는 신학교 기숙사에서, 주말에는 경향교회의 배려로 해외교민 신학생들은 선교관에서 숙식을 제공받았습니다. 지금은 신학대학원대학교로 승격한 이 신학교는 석 목사님의 성경적 신학교육의 실천의지에 따라, 모든 재학생에게는 일체의 수업료와 기숙사 비용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신학생들이 신학수련에만 전념하도록 모든 지원을 교단과 경향교회에서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덧 학기말이 이르게 된 시점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입학 전에 한 달 동안 미리, 히브리어와 헬라어 문법을 배우고 시험에 통과했어야만 했는데 그만 과락을 하고만 상태였습니다. 성경원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2학기부터 개설되는 신구약 강독 과목을 수강할 수 없었기에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재시험에도 그만 과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과목들은 과제며, 발표며 다른 학우들보다 월등한 학업 진도를 보였으나, 성경원어는 몇점이 부족하여 또 과락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악연’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구약교수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말이 없었으나, 헬라어를 가르친 신약교수는 매우 기분이 나빴던 모양입니다. 저의 실제 나이와 동갑나기인 이 젊은 교수는 재학생들에게 인격과 실력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난 인기교수였습니다. 어느 날, 호출이 있어서 연구실에 방문해 보니, 그 교수가 왜 기분이 상했었는지 대화 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 전도사님! 호의를 베풀어 재시험까지 치게 했는데 결과가 왜 이렇습니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너무 게으른 것 아닙니까?”  
“교수님! 매일 밤 자습실에서 늦게 공부했는데 결과가 이래서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 외국어 석사학위까지 있다고 들었는데 시험 결과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일부러 게을리 공부한 것 아닙니까?”   
“교수님! 과락하면 2학기 강독 과목을 수강할 수 없는데 일부러 게을리 할 리 있겠습니까?”
“오해이십니다.”    

그 때, 버럭 화를 내며,     

“이 사람이!”, “대학원까지 졸업한 사람이 이런 시험 결과를 누가 이해하겠어!”
“목사 하겠다고 한 사람이 자세가 안됐어! 자세가”  
“교수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듣는 제가 참으로 민망합니다.”
“그만 말씀하시고 진정 좀 하시기 바랍니다.”    

계속된 여러 말을 듣기가 거북하여
“교수님! 다음에 말씀하시고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하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교수와의 면담 이후, 주말에 경향교회 선교관으로 복귀한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멸감에 충격을 받았지만, 이 또한 목회자의 길로 가는 가운데 또 하나의 ‘시험’으로 생각하고 꾹 참아냈습니다. 하지만 결국 첫 학기 종강을 앞두고 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주일 다음날, 월요일 아침에 경향교회 교육전도사로 봉사하는 남녀 신학생들과 함께 매주 동승한 승용차로 학교에 이동하는 중이었습니다. 맨 앞좌석에 앉은 저에게 뒷좌석에 앉은 그 교수의 학생 조교인 여학생의 대화 내용이 들려 왔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학년 중에 대학원까지 졸업한 사람이 있는데”
“글쎄 성경원어 시험 모두를 과락했지 뭐예요!”
“교수님이 재시험 기회까지 줬는데 또 형편없이 시험을 쳤지 뭠니까!”
“젊은 교수라고 반항하는 것도 아니고 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맨 앞좌석에 앉자 있던 저는 듣고 보니, 제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차 안 모두가 “그 사람이 누구야! 누구야!”하는 가운데 숨을 죽이며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저는 비록 학생 조교이기는 하나 목사이자, 신학교수가 학생에 관한 정보를 다른 학생에게 알게 할 정도라면, 이 교수가 이 학교에 있는 한, “학교를 다닐 수 없겠구나!”하고 자퇴를 결심하였습니다.     

학교를 떠날 결심을 한 저는, 주중에 다른 학우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물건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 두었습니다. 주말이 되자, 브라질에서 온 친한 학우의 승용차 트렁크에 미리 정리한 짐들을 옮겨 놓고 경향교회 선교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월요일 시드니행 비행기를 예약했습니다. 이후 주일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예배를 마치고 서울 친척 집에서 하루 밤을 지센 뒤, 다음날 월요일에 비행기를 탔습니다. 결국 눈물을 머금은 채, 호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추천을 해 준 목사님과 가족 모두로부터 끝까지 인내하지 못한 저에게 반갑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지면에 옮길 수 없는 정도로 인생에 있어서 또 한 번의 어려움과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겨우 안정을 되찾은 저는 ‘회복한 소명’을 또다시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귀국하여 다른 신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일부 장학 혜택을 받게 되었으나, 너무나 어려웠던 나머지, 졸업하는 날까지 일부 수업료를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졸업시험과 졸업논문은 통과가 했으나, 졸업이 유예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듣게 된 당시 학장이자, 양의문교회 담임목사이셨던 송 목사님은 교무회의를 통해서 모든 것을 면제해 주시고 졸업을 하게 했습니다.     

이후 저는 강도사, 목사 두 고시를 거쳐서 결국 목사로 임직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만약, 송 목사님과 다른 교수 목사님들의 따뜻한 배려가 없었다면 M.Div. 이후 학문과정인 역사신학 석사과정과 성경강해 석사과정에 진학하여 졸업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해, 마지막 날 밤에 새해가 되면 끝까지 잊지 못했던 악연을 ‘용서하자!, 용서하자!’고 하나님 앞에서 결심한 저는 동갑내기 젊은 교수 목사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분은 결국 그 신학교를 떠났습니다. 이 분이 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소속 교단과 교회는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하였습니다. 또한 학위 취득 후, 신학교 교수로 임용하는 데에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그에게 지원한 모든 기대와 배려를 저버리고 교단과 학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재 경기도 양평 근처에 있는 모 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재학 중인 동기 전도사님에게 전해 듣고 지난 날, 헬라어문법 강의 중에 이 분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앞으로 여러분 모두가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업료와 기타 일체 비용은 교단과 성도님들의 헌금으로 지원되는 혜택입니다. 앞으로 목회자가 되어 그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분이 왜! 그 신학교를 옮기게 되었는지 이유를 잘 압니다. 당시 그 신학교는 지금의 교육부 인가의 정규 신학대학원대학교 과정인 교육기관이 아니었습니다. 교육청 허가의 일반 교육기관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규대학교 교수 임용 기회가 오자마자 그만 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전해 듣게 된 그때도 그랬고, 지난해까지도 그 분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눅 6장 27절)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2018년도 새해부터는 도저히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마 18장 22절) 용서하라고 하신 주님 말씀이 오히려 저 자신도 ‘용서 받지 못할 자가 용서받은 자’라고 더욱 확인시켜 줄 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용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말입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이르기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는 성경 말씀에 힘입어, 그 자신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몫은 그 자신의 것, 저의 몫이 아니기에 오직 주님께 맡기며, 긍휼한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저의 몫이 되었던 것입니다. 새해부터 긍휼한 마음, 용서의 새 마음을 허락하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새해에도 주님 말씀에 순종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 이였습니다. 심히 부패한 인생을 주께서 용서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주께 올려 드립니다. 이 아침에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이 종의 기도를 긍휼히 여기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부르심에 늘 순전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눈을 들게 하시고 ‘빚진 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보혈로 세우신 지상의 모든 교회가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하시고, 주의 종들이 ‘말씀의 사역자’로 굳건히 서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하승무 목사는 한국예수교장로회(OPCK) 기관 목사이자, 시인이다. 현재 한국장로회신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봉사하고 있다.<kpts@kp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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