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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세계불교49●방글라데시<1>

이치란 | 기사입력 2018/01/15 [10:18]
방글라데시, 이슬람 속 불교전통 지켜

현대세계불교49●방글라데시<1>

방글라데시, 이슬람 속 불교전통 지켜

이치란 | 입력 : 2018/01/15 [10:18]
부처님께서는 생전에 동 벵갈을 방문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는 13세기 이슬람이 도래하기 전에는 철저한 불교의 나라였다. 이슬람이 침투하면서 많은 불교도와 저층의 힌두교도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밖에 없었다. 힌두교도와는 다르게 불교도들은 아주 고대로부터의 불교혈통이 면면히 계승되고 있었다. 12∼13세기에 이르러서, 불교는 치명타를 당하고 마는데, 지금은 전 인구의 0.7%에 불과하다. 과거 대승밀교의 전통도 강했던 역사와는 다르게 지금은 상좌부 전통을 받아들였고, 전인구 대비 0.7%가운데 그나마 65%는 동남부 치타공 구릉지대에 산재해 있다. 착마 마르마 줌마 바루아 족 등이다. 불교공동체는 치타공과 다카의 도시 지역에 까지 진출해서 강한 결속과 유대에 의해서 불교신앙을 지켜가고 있다.  
▲ 방글라데시 불교 한 고승이 설법하고 있다.     
▲ 소수종교인 불교탄압에 조용한 데모를 하고있는 방글라데시 비구 스님들.     

바루아 성을 가진 불교도들은 주로 치타공 시에 살고 있다. 부처님께서 생전에 이곳을 방문한 바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소카 대왕의 불교 전도단 파견 이후에 비로소 불법이 제대로 전파되었다. 고대 시대에는 이 지역은 인도에 속했다. 특히 팔라왕조 시대에 불교가 널리 퍼졌고, 많은 사원과 탑들이 건립되었다. 팔라 왕조(Pala dynasty)는 750년에서 1174년경까지, 인도 북동부 지역을 지배한 불교 왕조이다. 수도는 파탈리푸트라였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의 인도와 방글라데시 지역이 거의 다 포함되는 광범위한 영역이었다. 당시 수도인 파탈리푸트라는 마가다국의 수도였고 불교의 발상지 같은 도시이다. 지금은 파트나라고 부른다. 많은 불교유적이 이 지역에 산재해 있다.

본래 이 지역은 불교의 산실이었지만, 나중에 대승불교가 흥기한 지역으로 변했다. 날란다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위크라마실라 대학은 너무나 유명하다. 또한 많은 사원이 건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매우 큰 사원가운데 하나가 1931년 발굴되었다. 기원전 3세기에 건립되어서 18세기 때 까지 존속했던 사원으로 밝혀지고 있다. 대체로 인도에서 불교가 이슬람의 침투와 공격으로 12세기에서 13세기경이면 거의가 소멸하지만, 지금의 서 벵갈 지역과 방글라데시 지역에는 불교가 한동안 살아 남아있었다. 현대 인도불교에서 순수한 인도불교의 전통이 희미하게나마 이 지역에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 기원 전 3세기에서 18세기까지 존속했던 마하스탕가르 불교사원 터.    
▲ 8세기에 건립된 소마푸라 마하비하라 사원으로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선정되었다.

현대의 방글라데시 불교는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화려했던 방글라데시의 불교는 참으로 대단했었지만, 현재는 경제난, 소수종교로서의 받는 박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해 있다 그러면서도 불교를 지켜가는 방글라데시의 불교도들을 보노라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고대시대에는 유명한 불교사원대학만도 10여개가 넘을 정도로 불교교육과 학문연구의 센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의 방글라데시 불교는 곤욕을 치루고 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한 고승이 아무 이유 없이 살해되기도 하는 등, 불교는 소수 종교로서 위협을 받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슬람 국가 안에서의 생존은 눈물겨운 일이 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국가 경제 또한 좋지 않는 상황에서 불교도들은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 불교회의 같은 데에 참가해 보면 같은 불교도로서 도움을 주지 못한 안타까움은 정말 답답할 정도이다. 방글라데시는 본래 인도권이지만, 종교 때문에 갈라져 있다. 여기서 긴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동파키스탄이 되었다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방글라데시는 인도 벵갈 주와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던 인도인들이었다.

영국이란 나라는 동양의 질서를 흔들고 모든 틀을 바꿔 놓는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겨 놓았다. 또한 기독교를 뿌리내리게 하는데, 일조를 해서 아시아가 기독교의 전성기를 구가하도록 했고, 불교는 혼란을 겪는 수난의 시대로 만드는데 결정타를 안겼다. 그런가하면, 영어로 불교학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학문의 식민지화를 해서 아시아의 불교학자들은 ‘영어’란 매개를 통하지 않고서는 학자로서의 날개를 달수 없도록 구조가 복잡해졌다.
▲ 불교승려살해를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방글라데시 스님들.  
▲ 방글라데시의 젊은 비구스님들이 한 법회에 참석해서 맨발로 걸어가고 있다    

현대방글라데시 불교는 아주 어려움 속에서 힘겹게 생존하고 있다. 한국불교도 조선시대 박해를 받았는데, 고려시대 너무 흥성하다보니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이에 민중으로부터 신망을 잃었던 것이다. 방글라데시 불교는 본래 인도불교인데, 이슬람의 침입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인도불교내부에서의 부패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너무 잘 나가다 보니, 미래에 닥쳐올 불행을 예견하지 못했고 민중과의 끈끈한 유대보다는 사회와의 단절에 의한 숲속불교 동굴불교화 한데도 한 원인이 없지 않다.     

인도불교가 없었다면 어떻게 중국불교가 존재하며, 한국불교가 존재하겠는가. 그 나라의 경제가 좋지 않다고 해서 사람까지 얕잡아 보는 비종교적인 관점은 갖지 않아야 한다. 방글라데시 불교는 이래저래 힘겨운 시대를 극복해야 하는 시련을 겪고 있다.
보검 이치란 박사·해동세계불교연구원장(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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