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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이야기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

하승무 | 기사입력 2018/01/17 [09:34]
“부패한 인간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는 존재”

아리랑 이야기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

“부패한 인간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는 존재”

하승무 | 입력 : 2018/01/17 [09:34]

"부패한 인간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는 존재”
    

얼마 전에 ‘한국 성상화(聖像畵, Icon)의 거장’이신 서상환 화백으로부터 아리랑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곡 중에 하나인 ‘아리랑’은 보통 ‘한(恨)의 노래’ 또는 ‘버림받은 한 여인의 슬픔’을 담은 민속 곡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뜻과 의미를 담은 곡이었습니다. 아리랑을 한자로 표기하면 ‘我理朗’이라고 합니다. 제가 좀 더 자료를 살펴보니, 상상 이외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아(我)는 참된 나(眞我)를 알고,
리(理)는 순행(順行)하는 도리에 따라 행하면,
랑(朗) 즉 ‘기쁨’과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이 의미를 정리하면 “자신의 본 모습을 발견하고 이 세상을 살아 갈 때, 자연의 이치(理致)와 세상의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순행하면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한다.”는 의미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399)의 유명한 명언 가운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어로는 ‘그노티 세아우톤’(γνῶθι σεαυτόν)으로 읽습니다. 또 그의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라틴어 Dura lex, sed lex)라는 문구도 매우 유명합니다.     

그의 명언은 모두 다 철학적 사유의 결과입니다. 그는 사유의 세계를 관념화하기 보다는 현실적인 삶에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도시국가인 그리스 아테네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부패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개인윤리마저도 극도로 부패해 갔습니다. 이와 같은 원인을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향하여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당시 시대 현상을 옹호하여 진리를 상대화하고 주관적으로 해석한 소피스트들의 궤변에 맞서서, 국가와 개인이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부패한 기성세대보다는 젊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걸고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절제·용기·경건 등을 가르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철학적 이상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것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입니다. 정치사회적으로 그의 철학적 가르침이 엄청난 파급을 불러오자, 부패한 정치권력과 사람들은 그에게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을 믿지 않는 자’라는 죄명을 씌었습니다. 결국 배심원들은 찬성 40표의 투표 결과로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도주할 기회가 있었으나 기꺼이 독배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 피터 파울 루벤스의 솔로몬의 재판, 1617년  

구약성경 전도서를 보면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바니라”(12장 11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혜자의 말씀’은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의 지혜를 뜻합니다. 반면에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를 교리적으로 구분하면 앞의 것은 ‘일반계시’를, 후자는 성경인 ‘특별계시’를 의미합니다.    

전도서의 기록자로 알려진 솔로몬 대왕은 당대에 어느 국가의 통치자나 학자들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솔로몬의 재판’은 법과 상식을 초월한 판결로 유명합니다. 그런 그가 11절을 통해서 지혜자의 지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회중의 스승의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을 한 가지 더 가르칩니다. ‘지혜자의 말씀’은 ‘채찍’과 같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잘 박힌 ‘못’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혜자의 ‘말씀’ 즉 ‘지식’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이 ‘한 목자’라는 특별계시의 신적 코드를 통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그 분의 말씀에 최종적으로 나아가야함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칩니다. 또한 예레미아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예레미아 17장 9절) 즉 ‘인간의 마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부패한 인간 본성을 우리 자신이 깨달아 이를 수납하지 않고서는 지혜를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 가운데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지난 과거와 오늘날의 세상 지식은 그 어떠한 평온한 상태 또는 그 세계로 가야할 인간 자체의 현재성인 ’아‘와 ’리‘의 방법론 그 자체에 주목해 왔습니다. 참된 나(眞我)를 발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일체의 모든 것을 버리고 정서적·심리적·지적인 측면에서 자유로울 것을 가르칩니다.     

앞에서 아리랑의 의미처럼 아(我)와 리(理)를 깨닫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 로마서 2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범죄한 인간의 실체는 바로 ‘부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패한 물은 스스로를 정화할 수 없습니다. 부패한 인간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남을 먼저 보거나 판단하지 말고 자기자신의 ‘아’의 실체를 먼저 깨달을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진실로 참된 아(我)를 깨달은 자는 ’지혜자의 말씀‘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발 더나가 성경말씀이 가르치는 바, 모든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천국복락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로 나아갈 것을 최종적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영광과 구원이 주님께 영원히 있음을 고백합니다. 구원의 진리를 통해서 주님의 백성이 참된 자아를 깨달케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 가운데로 나아가게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주의 백성들이 늘 진리 가운데 서게 하소서! 말의 투쟁에 앞서지 말게 하시고, 허공을 치는 헛된 것에 유혹되지 말게 하소서! 다만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길’을 묵묵히 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하승무 목사는 한국예수교장로회(OPCK) 기관 목사이자, 시인이다. 현재 한국장로회신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봉사하고 있다.<kpts@kp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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