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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도조사와 조롱’의 대상이 된 종교, 종교의 생명인 신뢰를 회복하자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1/11/14 [11:02]

‘신뢰도조사와 조롱’의 대상이 된 종교, 종교의 생명인 신뢰를 회복하자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1/11/14 [11:02]
 화평서신

‘신뢰도조사와 조롱’의 대상이 된 종교,

종교의 생명인 신뢰를 회복하자

 

◈ 사람 사는 세상에서 신뢰(信賴)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굳게 믿고 의지하는 것이 신뢰입니다. 부부, 친구, 직장동료, 사업파트너 등 사람끼리 신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습니까. 상호 신뢰가 있으면 증오와 다툼, 갈등이 생겨날 리 없습니다. 불신으로 인해 야기되는 죄(罪)와 악(惡)의 개념도 사라질 것입니다. 죄와 악을 규정하고 징벌하는 윤리(倫理)와 법(法)이 필요 없습니다. ‘불신사회’에서 벗어나 ‘신뢰사회’로 가는 것이 인간세상의 목표일 것입니다. 종교는 윤리와 법의 상위규범이며 ‘신뢰사회’로 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 우리사회는 불신으로 넘쳐납니다. 사람끼리 서로 속고 속이며 온갖 사건사고가 발생합니다. 정당은 정당끼리 서로를 비난하고 의심하는 정쟁만 일삼아 국민들은 정치를 불신하다 못해 혐오합니다. 노사(勞使), 기업과 소비자, 보수와 진보 등이 대립관계를 이루며 서로 신뢰를 잃었습니다. 신뢰를 못하면 적(適)으로 간주합니다. 더욱이 아군(我軍) 내부에서도 서로 신뢰를 못하고 핵 분열하듯 분열하는 게 현실세상입니다.  

◈ 완벽한 신뢰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비교적 ‘신뢰 있는’ 사람과 집단을 찾게 됩니다. 불신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믿고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차선책(次善策)을 기대하는 게 아닙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고 차악(次惡)이라도 찾자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세상에는 ‘신뢰도 조사’라는 것이 자주 발표됩니다. ‘절대 신뢰’는 불가능하니 여론조사로 신뢰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신뢰란 말 그대로 ‘신뢰’이지 측정 가능한 성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며칠 전 ‘정치인 신뢰도 조사’도 이뤄졌습니다. 우리나라 20~40대가 신뢰하는 인물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83.2%), 방송인 김제동(71.8%), 작가 이외수(65.3%), 영화배우 김여진(47.8%), 박근혜 전 대표(46.5%), 이명박 대통령(24.5%) 순이었다고 합니다. 신뢰는 안 가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흥미로운 조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신뢰는 오랜 시간 축적되며 쌓이는 게 정상입니다. 신뢰가 드라마 시청률이나 인기도조사처럼 시류에 따라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사회의 신뢰는 순간적 느낌과 판단으로 만들어지는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소비자신뢰도 조사는 정치인 신뢰도 조사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조사일 것 같습니다. 소비자 선택의 객관적 판단기준을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10월 말 커피전문점에 대한 신뢰도조사가 발표됐는데  카페베네,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등의 순이었다고 합니다. 기업선호도, 자동차선호도, 라면선호도 등과 같이 참고할만한 선호도조사라고 생각됩니다.

◈ 커피전문점과 같은 판매대(販賣臺)에 종교가 올라 신뢰도조사가 이뤄졌습니다. 불교사회연구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것인데 가톨릭, 불교, 개신교, 원불교, 이슬람 순이었다고 합니다. 자기 종교 지도자에 대한 신뢰도도 신부, 스님, 목사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회·정당 등 정치계의 신뢰도보다는 높지만 대기업보다는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결과였습니다.(3면 포커스 참조) 흥미로운 조사이긴 한데 왠지 거북하고 찜찜한 기분이 듭니다. 대기업보다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라는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신뢰 자체가 생명인 종교가 신뢰도를 측정 당했다는 게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 종교 자체가 신뢰받지 못하고 신뢰도 조사대상이 된 것은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이번 달만 해도 ‘목회자의 여신도 성매매’ ‘스님의 경내 폭행’ ‘신자의 담임목사 살인’ 등의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고 ‘신흥교단과 기성교단의 분쟁’(4면 참조) ‘한기총 개혁안 철회와 교계 해체운동’(7면 참조) 등 정치판 같은 다툼이 여전히 생겨났습니다. 신뢰도 조사대상을 지나쳐 조롱의 대상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수능이 끝난 이튿날, 한 신문의 칼럼은 기독교, 불교를 함께 조롱했습니다. 교회, 절을 막론하고 수능생을 위해 ‘100일 특별기도’를 했는데 ‘우리의 신들은 수능생을 포함한 수백만의 학부모, 목사, 스님의 기도를 동시에 들으시느라 고생이 많으셔서 모처럼 주말휴가를 떠나실 거’라는 내용입니다. ‘나와 우리 절, 교회의 자녀(만)’ 좋은 점수 받아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해달라는 기도와 간절한 기도만큼의 헌금이 전해졌고 교회와 절은 내심 수능이 반갑다는 이야기도 곁들였습니다.

◈ 진실된 종교와 종교인들마저 싸잡아 ‘신뢰도조사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스스로 종교인 인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총체적 ‘불신사회’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집니다. ‘신뢰의 중심에 종교가 있다’는 당위성의 회복이 절실합니다. 나(만), 우리 교파(만), 우리 종교(만)를 위하고, 옳다고 믿는 편향적 행동과 신념에서 이기심이 표출되며 그에 저항하는 ‘불신사회’가 조장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우리 교파부터, 우리 종교부터 회개하고 변해야 ‘세상의 신뢰’가 회복되고, 종교가 ‘신뢰도 조사대상’ 아닌 신뢰사회의 중심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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