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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정조의 효사상⑵ 전통적 ‘효’ 의미
‘효, 즉 부모공경은 만행의 근본’
기사입력: 2018/02/07 [08:3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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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천박물관 소장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4호 효경(孝經)    

‘효, 즉 부모공경은 만행의 근본’
   

효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동양의 성인 공자는 “무릇 효는 덕(德)의 근본이요, 교육이 여기에서 비롯된 바니라”고 하였고, “효는 모든 행동의 근원이요 모든 착함의 첫 머리이다”라 하였다. 그래서 『효경』에서는 ‘효, 즉 부모공경은 만행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전한다.

퇴계도 ‘효, 백행지원(孝, 百行之源)’이라고 하였고, 율곡은 ‘효위백행지수 정가지도, 이효경위선(孝爲百行之首 正家之道, 以孝敬爲先)’이라 하였다. 다시 말을 하면 효를 백행의 근원이요, 우두머리(首)이며, 효경이야말로 첫째가는 행동규범임을 분명히 하였다.

효의 개념을 두고 ‘효’자에 대해 『설문해자』에서는 효의 비(匕)가 생략된 부분에 자(子)가 종속되어졌으며, 자(子)가 노(老)를 받들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孝’자는 자녀가 부모를 받들어 섬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일흔 이상의 늙은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회의문자이다. ‘孝’와 관련된 문자들을 살펴보면    

‘耆’는 늙은이 기(예순이나 일흔 이상의 늙은이)
‘耄’는 늙은이 모(칠,팔십세 된 늙은이),
‘耈’은 늙은이 구(늙은이의 검은 얼굴, 검버섯 난 얼굴)
‘耋’늙은이 질(팔십세 헉은 칠십세가 됨)
‘考’는 상고할 고(장수하다)

    
요약해보면 ‘孝’자는 글자의 뜻이 혈연 속에서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의무적 도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조선조 정조시대도 신료는 물론 군주까지도 효의 새로운 문화를 향해 제각기 이단과 사학의 추구를 불사할 만큼 정조시대의 사상의 변화 양상은 확연했다.

효사상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존재란 인간의 특수성을 배경으로 해서 생겨난 사상이다. 따라서 효는 어제와 오늘을 연결해서 내일로 이어가는 윤리이고 가치관이며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도덕이다. ‘친친이애인(親親而愛人)’이란 말처럼 ‘가까운 이를 가깝게 사랑하고 바로 그 사랑을 미뤄 널리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실천윤리인 효의 본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논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식이 어버이를, 아랫사람이 연장자를 잘 받드는데서 유래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효’자의 구성을 보면, 耂(老)와 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당초의 효 개념은 어버이와 친자지간에 형성되는 원초적인 관계로부터 발생하여 그 관계를 유지발전하기 위하여 규율하는 일종의 질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후한서』에도 효를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 하였고, 또한 ‘중선지초야(衆善之初也)’라 하여 모든 행실의 기초로 삼았다. 공자는 효에 대하여 ‘부효덕지본야 교지소요생야(夫孝德之本也 敎之所繇生也)’라 하였다. 그것은 무릇 효가 덕의 근본이 되며 덕생 함양의 중심을 효도에 두었던 것으로, 인간의 모든 덕이 인심을 기르기 위하여서는 인간의 본성의 발로이기도 한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에 기본을 두고 효순을 주입하는 데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자는 효도의 개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논어』,「위정」편에 보면, 맹의자가 효도에 대하여 여쭈자, 공자는 “어기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번지가 스승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갈 때에 살아서 섬기고 장사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처음과 끝을 갖춘 것이다. 사람이 그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비록 한이 없으나 분수를 지키는 문제는 한도가 있으니 충분히 할 수 있으나 하지 못하는 것과 할 수 없으면서 결국하는 것은 모두 불효가 되는 것이니 예로써 하는 것은 전부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번지에게 말하기를 “맹손씨가 나에게 효도를 묻기에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여 주었다.” 번지가 또 물었다.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공자는 답변하기를 “부모는 생전에 예를 다하여 모시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지내며, 제사를 지낼 때는 예를 어기지 않고 예를 다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주자는 말하였다. “살아서 섬기고, 죽어서 장사지내며,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일의 처음과 끝을 모두 갖춘 것이다. 예는 곧 이치를 알맞게 갖춘 것이니 사람이 부모를 섬기는 일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로 일관하고 구차하게 그 부모를 높이지 아니하는 것이 지극한 섬김”이라고 하였다.

『성경』에 자식은 성인이 되기까지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같은 의식은 자식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자식은 누구나 아버지가 권위를 가지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효경』에서는 “어머니는 애정이 앞서지만, 아버지는 위엄(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애정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비록 한정이 없는 일이지만 분수를 지켜서 가능한 범위에서 효를 해야 하는 것이지 너무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불효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효를 하려면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에는 그 즐거움을 다하여 드리며, 병환에 계시면 그 걱정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그 슬픔을 다하여 제사를 받들 때는 그 엄숙함을 다 할 것이니 위의 다섯 가지를 다 갖춘 연후에야 능히 부모를 잘 섬긴다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효자는 공경과 봉양과 양호와 상⦁제례까지 다 극진히 하여야만 효를 다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공경을 다 한다고 하는 것은 극진히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즐겁게 봉양을 한다고 하는 것은 얼굴의 표정을 유쾌하도록 온화하게 한다는 것이며, 사람이 상례에는 애도의 정을 다 해야 하며 제례에는 엄숙함을 다 하여야 하는 바, 이는 부모를 섬김에 처음부터 끝까지 극진히 다 하지 못하는 것이 없어야 효도를 다 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효경』에 보면, “가정에서 부모를 섬기고 효양을 다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국가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중간지점의 봉사로 보고 효와 충을 다 하게 되면, 끝으로 입신 행도하여 올바른 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끝을 삼았다”고 하였다.

효도는 가정에서 부모를 섬기고, 모셔서 봉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에 봉사하고 이바지하는 것이 중간지점의 할 일로 보고, 나머지 마지막으로 효도와 충성 두 가지를 겸전하여 입신출세하여 완전한 사람으로 의의 있는 생활을 보낼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몸을 삼가고 행실을 바르게 하여야 하며, 정의와 인도를 행함에 있어서 내 몸을 욕되게 하지 말며 부모의 마음을 손상치 말아야 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용기를 내어 물의를 일으키거나, 부모에게 욕보이게 하는 것은 자식이 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체통을 잃고 위신을 지키지 못한다면 자식의 도리가 아니다. 이 점에 대하여 퇴계의 어머니도 자식에게 가훈을 통하여 말하기를 “글공부나 한다고 글이나 잘 외우고 짓는 것만으로 일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보다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행실을 삼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글공부나 잘하여서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출세한다고 하드라도 인간다운 자식이라면 효도를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국가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이바지할 것인가를 알아야 하며, 법을 지키고 의무를 다하여 후세까지 이름[名譽, 名聲]을 날릴 것을 생각하여 절도 있고 끈기 있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꾸준히 노력하여 입신출세를 한다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를 기쁘게 하고, 자기 가문을 빛내고, 또한 조상의 이름을 빛내게 된다.

『서경』,「대아」편에 보면 ‘너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에도 네 조상을 생각하라’고 하였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이 한 사람만을 생각하지 말고, 모든 처신을 함부로 하여서는 안 된다. 인간은 항시 근본을 생각하여야 하는 만큼 함부로 언행을 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자기 가문, 그리고 자기의 조상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이라도 신중히 언행을 하여야 함은 물론 자신과 조상을 모독하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도를 행하여 양명영친(揚名榮親)하는 일이야말로 자식이면 마땅히 하여야 할 효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며 자식으로서 참다운 인간으로서 당연히 취하여야 할 정도(正道)인 것이다.

전통적인 효사상은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윤리적으로 의무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규범화된 도덕률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 해도 현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여 융통성을 잃어버린다면 현실성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 지도층들은 젊은 세대에 대한 도덕교육이 사회질서의 근본임을 인식하고, ‘효’ 사상이 만사의 근본이 되는 덕목임을 가르치되, 효를 오늘날의 가치들과 접목시켜 새롭게 국민의 일상 속에 정착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효의 근본사상이 우리 사회 안에 현대적 가치와 부합하여 확산된다면 사회적으로는 봉사정신으로, 국가적으로는 애국심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세계적인 인류애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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