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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 質問3

眞鏡 | 기사입력 2018/02/21 [07:09]
「自覚」それ自体で「自分自身」を指しています。

(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 質問3

「自覚」それ自体で「自分自身」を指しています。

眞鏡 | 입력 : 2018/02/21 [07:09]
(질문3)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고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계속 탐구하면 나중에는 그 질문이 ‘항상적 자각’을 가리키며, 그 ‘항상적 자각’은 절대적 실재이자 ‘자유’인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質問3:「私は誰であり、何であるか」という疑問をもって、自分自身に対して探求し続ければ、後には、その質問が「恒常的自覚」を指し、その「恒常的自覚」は絶対的実在であると同時に「自由」である自分自身を指しているのですか。
    

‘자각’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무엇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自覚」それ自体で「自分自身」を指しています。そうでなくて何があり得ますか。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가 해체되지 않고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를 붙들고 있는 것은 제한적이며 그 자체로 속박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무엇이든지 될 수가 있으며, ‘나’는 누구든지 될 수가 있는 ‘자유’인데, ‘누구이며 무엇이다’로 여기며 단정적인 카테고리(틀) 속에 ‘자기’를 가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는 어떤 ‘이상’을 실현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속박상태에서는 자기를 비롯해서 자기가 하는 모든 것이 제한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고 이루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상식입니다.    

「私は誰であり、何である」が解体されずに、「私は誰であり、何である」を握っていることは、制限的であり、それ自体で束縛でしかありません。なぜなら、「私」は何にでもなることができ、「私」は誰にでもなることができる「自由」なのに、「誰であり、何である」と考えて、断定的なカテゴリー(枠)の中に「自己」を閉じ込めているからです。そして、その「状態」ではどのような「理想」を実現するということは、話になりません。なぜなら束縛の状態では、自分をはじめ、自分がするすべてのことが制限的であるためです。したがって、何かをして、成る前に、まず「自分自身」を知ることが常識です。    

(질문) 그렇다면 ‘항상적 자각’은 ‘자유’를 가리키며, 그 자유로 인해 제한 없는 다양성, 즉 무엇이든지 드러날 수가 있는 것입니까?    

(質問)そうであれば、「恒常的自覚」は、「自由」を指し、その自由のために制限のない多様性、即ち、何にでも現れ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か。
    

자기 정의가 없는 비동일시,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는 그 자체로 자유로우며, 그로 인해서 무한히 다양한 것을 창조해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이 부분이 모든 인류가 알고자 했던 ‘창조’의 원리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점진적으로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自己定義がない非同一視、即ち、「私は誰であり、何であるか」は、それ自体で自由であり、それによって無限に多様なものを創造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ありませんか。実は、この部分がすべての人類が知ろうとした「創造」の原理です。この部分は、後で段階的に補足説明を致します。    

따라서 ‘창조’는 ‘자유’의 바탕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창조가 인식되는 모든 곳과 모든 곳을 넘어서까지 결국은 ‘자유’가 있으며, 그 ‘자유’는 단언컨대 ‘스스로’입니다. 그리고 인간 정신이 바로 ‘스스로’이며, 정신으로부터 경계 없이 비롯되어지고 있는 지금의 인류의식이 ‘실제적 창조’의 원리에 쉽게 접근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지 ‘무지’, 즉 충분히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육체와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지금의 나’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したがって、「創造」は、「自由」の土台の上で起こっているのです。だから創造が認識されるすべての場とすべての場を越えてまで、結局は、「自由」があり、その「自由」は、断言しますが「自ら」なのです。そして、人間の精神がまさに「自ら」であり、精神から境界なく由来している今の人類意識が「実際創造」の原理に容易に接近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理由は、単に「無知」、即ち、十分に自由でなかったからです。つまり、肉体との同一性に照らされている「今の私」だけを自分自身と考えて、自らを制限したからです。    

(질문) 그렇다면 ‘진경’님이 말하는 ‘지성의 깨어남’은 결국 ‘자유’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까?    

(質問)そうであれば、眞鏡さんが言う「知性の目覚め」は、結局「自由」を指しているのですか。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대 자유!’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無条件的であり、絶対的な「大自由」まさにそれです。それ以外は何もあ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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