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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폭로 전후의 고은 시 감상

신민형 | 기사입력 2018/03/04 [19:22]
하늘소풍길 단상

‘미투’ 폭로 전후의 고은 시 감상

하늘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18/03/04 [19:22]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 보았다.
<고은 ‘순간의 꽃’ 중에서>    

법화산 가는 길목의 구성도서관 화장실에 걸린 고은의 싯구다.

변기 앞 옷걸이와 함께 꽂혀 있는데 볼 때마다 뭔가 확 틔우게 하는 것 같아 기왕이면 산책길 용변도 구성도서관에서 보았다.     

산전수전, 삶의 쓴맛과 단맛 모두 겪은 노시인의 경륜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노를 놓쳤기 때문에 오히려 넓은 세상을 보았다’는 말이 얼마나 반짝이는가. 간혹 실수와 실패로 평탄치 않은 곁가지 인생길을 걸음으로써 세상을 보다 더 폭넓게 이해하게 된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나 ‘미투’ 폭로 이후 추잡한 노시인의 행적이 마구 쏟아지는 가운데 변기통에 앉아 똑같은 시를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노시인에게 ‘더러운 욕망’과 ‘순수 깨달음’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러운 욕망이 순수 자연인으로 철저히 위장된 것일까. 그런 위장된 경륜으로 똘돌 뭉친 시인일까. 그래서 그가 내뱉은 싯구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를 선택한 도서관 직원의 안목이 오히려 더 높은 경지에 있어 화장실 문에 꽂아놓은 것은 아닐까.     

종교 경전들의 경구들도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 경구를 작성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경지에서 작성한 것일까. 그리고 그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진리의 말씀’에 이해를 돕기도 한다. 말씀을 승화시킨다. 기상천외의 해석에 무릎을 치기도 한다. 때론 그러한 해석으로 이단, 삼단의 분파가 나타나기도 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각 종교의 경구 해석을 놓고 그를 받아들이는 교주와 신자들의 태도에 따라 ‘더러운 욕망’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순수 깨달음’의 방편이 되기도 한다. 물을 뱀이 먹으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안의 ‘더러운 욕망’은 ‘도덕적 깨달음’에 의해 완전 억제된 것일까. ‘숫컷의 발기=권위적 폭력’의 등식을 벗어난 것일까. 그러한 등식에서 바라본 ‘암컷의 꽃뱀 속성’은 존재하는 것일까. 숫컷의 ‘기사도 정신’과 암컷의 ‘순애보’는 ‘발기폭력’과 ‘꽃뱀 속성’이란 동물적 본능을 도덕과 종교로써 거세시킨 미덕일까.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본능과 가치관은 과연 영원한 것일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우리가 철저히 믿고 있는 본능과 가치관, 종교도 변할 수 있다. 일본 여류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의 말대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비판적으로 고착해버리는 사고‘일는지 모른다.     

고은의 시가 교과서와 서울시청 ‘만인의방’ 등의 흔적에서 사라지더라도 구성도서관 화장실에는 계속 걸려 있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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