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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 質問5

眞鏡 | 기사입력 2018/03/05 [07:16]
「今の私」は、「私」の影に過ぎません。

(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 質問5

「今の私」は、「私」の影に過ぎません。

眞鏡 | 입력 : 2018/03/05 [07:16]
(질문5) 간혹 성자들과 선승들의 가르침에서 ‘나는 없다’, ‘내가 사라졌다’라는 경험적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質問5:たまに聖者と禅僧の教えに「私はない」、「私が消えた」という経験的表現をしています。
    

모든 사람들은 ‘나는 존재한다’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나’는 이 육체이며 육체를 통해서 감각되어지는 모든 인식작용들이 너무나 생동적으로 느껴지고, 그로 인해 더욱더 감각하고 인식하는 ‘나’, 즉 동일성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지금의 나’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며, ‘나는 존재한다’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존재도 ‘존재’에게는 ‘스스로’라는 원초적 생명, 즉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존재’ 이전에 ‘스스로’ 존재하려는 의지, 즉 존재하게 하는 의지가 있으며 모든 존재가 결국은 존재하게 하는 의지, 즉 ‘자유의지’에 의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すべての人たちは、「私は存在する」と考えています。なぜなら「存在する私」は、この肉体であり、肉体を通じて感覚されることになるすべての認識作用があまりにも生動的に感じられ、それによって感覚と認識する「私」、即ち、同一性に照らされている「今の私」をますます自分自身であると考え、「私は存在する」と考えているのです。しかし、どんな存在も「存在」には「自ら」という原初的生命、即ち、「自由意志」がないので、「存在」以前に、「自ら」存在しようとする意志、即ち、存在させる意志があり、すべての存在が結局は存在させる意志、即ち「自由意志」に依存しているのです。    

따라서 ‘존재’한다고 여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존재하게 하는 ‘나 자신’의 반영에 불과하며 ‘나’는 ‘비존재’, 즉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없다’라고도 표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언컨대 경험적 표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경험되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경험의 주체로서 감각작용에 의존하여 인식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나’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したがって、「存在」すると考えている「今の私」は、存在させる「私」の反映に過ぎず、「私」は「非存在」、即ち「私」は存在せず、「私はない」とも表現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しかし、それは、経験的表現で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経験され得ないためです。繰り返しますが、経験の主体としての感覚作用に依存して認識している「今の私」は、「私」の影に過ぎません。    

(질문) 가부좌를 하고 명상수행 중에, 저는 분명 내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質問)結跏趺坐をして瞑想修行中に、私ははっきりと私が消えることを経験しました。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어떻게 내가 할 수가 있습니까? 사라진 ‘나’는 누구이며, 그 경험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私が消える経験をどうやって私が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消えた「私」は誰であり、その経験を目撃して証言する「私」は誰ですか。    

차라리 깊은 잠을 잘 때는 내가 사라졌다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식작용, 즉 육체의 감각기관에 의존하여 인식하고 지각하는 ‘지금의 나’는 ‘잠’으로 인해 감각기관이 제한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인식작용과 지각작용이 멈추었기 때문에 깊은 잠을 잘 때는 내가 ‘나’를 인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どうせなら、深く眠るとき私が消えたということができます。なぜなら、認識作用、即ち、肉体の感覚器官に依存して認識して知覚する「今の私」は、「眠り」により感覚器官が制限を受けており、これによって認識作用と知覚作用が止まるので、深く眠るときは、私が「私」を認識することができないためです。    

다시 말해서, 내가 ‘나’라고 여기고 있고 인식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감각작용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제한적이며, 그로 인해 잠을 잘 때는 어떤 인식도 어떤 지각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잠을 자고 있는 자기를,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알아차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사라지는 경험’은 ‘마음’이 그려내는 환영에 불과하며, 착각에 불과합니다.    

つまり、私が「私」であると考えており、認識している「今の私」は、感覚作用に依存しているため、制限的であり、そのために眠る時は、どんな認識もどんな知覚も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誰が眠っている自分を、眠っている間に気がつくことができますか。だから、「私が消える経験」は、「心」が描き出す幻影に過ぎず、錯覚に過ぎません。    

(질문) ‘지금의 나’는, ‘나’라고 하는 한 생각에 불과하며, 이 생각이 사라져야 하며 이 생각이 끊어져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質問)「今の私」は、「私」という考えに過ぎず、この考えが消えなければならず、この考えをや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学びました。
    

잠을 자면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잠을 자면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眠れば、どんな考えも起こりません。起こらないことさえ知ることができない程です。    

(질문) ‘나’라고 하는 한 생각이 끊어지면 절대적으로 편안하다고 합니다. 진경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質問)「私」であるという考えをやめれば、絶対的に楽であるといいます。
    

깊은 잠을 자면 절대적으로 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편하다는 인식작용과 지각작용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深く眠れば、絶対的に楽です。なぜなら、不便だという認識作用と知覚作用をす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    

(질문) 그렇다면 수행을 통해서 ‘생각’이 사라져야 하며 ‘생각’이 끊어져야 한다는 수행자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質問)修行を通じて「考え」が消え、「考え」をや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修行者の話は、どのように受け入れるべきですか。
    

왜 자기 자신의 평안을 ‘생각’ 탓으로 돌립니까? 어떤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 ‘생각’은 누가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생각’이 스스로 나타날 수가 있으며, 스스로 사라질 수가 있으며, 스스로 끊어질 수가 있습니까? 생각의 주인은 ‘나’입니다. ‘나’는 생각의 주인입니다. 불편하다고 생각되면 생각하지 마세요! 과연 이것을 알아차리는데 ‘수행과 고행’이 필요할까요?    

なぜ、自分自身の平安を「考え」のせいにしますか。どんな考えであっても、その「考え」は誰がしていますか。どのように「考え」が自ら現れることができ、自ら消えることができ、自らやめることができますか。考えの主人は「私」です。「私」は考えの主人です。不便だと思ったら考えないで下さい。果たして、それに気がつくのに「修行と苦行」が必要でしょうか。    

(질문) 저는 항상 많은 생각으로 인해 저의 수행공부가 방해를 받는 것 같습니다.    

(質問)私はいつも多くの考えのために、私の勉強が妨害されることがあります。
    

필요한 생각이 있으면 생각을 하시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시면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생각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으로부터 나는 항상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そのように考えないで下さい。必要な考えがあれば考えて、不必要だと思えば考えないで下さい。「私」は考えの主人であって、自由に考えることができ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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