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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승에서의 죽음이 저승에서 삶의 시작”
기사입력: 2018/03/08 [08:0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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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이 높아 진 요즘을 100세 장수시대라고 한다. 얼마 전 세계적인 복음 전도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향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황숙희 권사는 100세에 ‘남는 건 사랑뿐일세’라는 80년 신앙고백서를 썼다. 내가 아는 이요한 목사는 105세인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내 주위에 한영 선배 어머님은 백수연(白壽宴)을 치르고 작년에 돌아가셨다. 며칠 전 그 선배의 장모님을 뵈었다. 그 분은 건강하게 지내시며 노래도 잘 하신다. “권사님 금년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요?” 했더니 “구학년 오반!” 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자랑하듯 대답하신다. 경기도 구리에 사는 친구 효영의 모친도 아흔 다섯이시다. 이렇게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고 보니 그 분들 공통점이 모두 종교인이다. 통계상 평균수명 순위도 종교인이 1위로 정치인, 교수(2위), 법조인, 기업인(4, 5위)을 앞선다.    

그런가 하면 멀쩡하던 친구나 친지가 갑자기 사망하는 것을 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속한 동료 친목회원 중 일곱 명이 세상을 떠났고 회원의 부모님 열 한분이 그랬다.     

나는 89세 어머니가 고향에 계신다. 지난 설에 고향에 갔다. 얼마 전 심하게 앓으신 어머니는 지난해에 비해 너무 달라지셨다. 그 때는 내가 들어서자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는데 이번에는 그다지 반가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자식들 생일이나 돌아가신 조상님들 제삿날은 모두 기억하시지만 시력, 청력, 거동이 불편한 점은 물론 말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다. 이번 명절이 어머니의 마지막일 것 같다고 곁에서 막내 여동생이 말한다. 살아 계시는 동안 건강하셨으면 좋겠는데 걱정이다.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나보다. 살아 온 날에 비해 앞으로 살날이 많지 않은 나는 요즘 들어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인간이 하루하루 산다는 것은 곧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뜻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없지만 그 죽음 후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근사(近死)체험자 즉 순간적으로 심장박동이 멈췄다가 심폐소생술 등으로 회생한 사람이 있다고는 하나 죽어 본 경험자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십대에 스웨덴의 스웨덴보르그가 쓰고 강흥수 목사가 번역한 ‘천국과 지옥’,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등의 책을 탐독한 적이 있다. 사실 그 책을 읽고 나서 신앙생활에 더 관심을 갖게 됐는지 모른다. 스웨덴보르그의 생애 84년 중, 후반 약 30여 년간 육체를 이 세상에 둔 채 영(靈)이 되어 인간이 죽은 후의 세계 즉 영적세계(靈的世界)를 출입해왔다. 그곳에서 몇 백 년 전에 죽은 영들과 어울려 수많은 일을 직접 보고 듣거나, 영들과 사귀어 알게 된 지식을 바탕으로 쓴 책이 위의 것들이다. 이처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영적세계를 전한 사람은 인류역사상 극히 드물다. 그는 영적세계를 알리는데 생애를 바쳤다. 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도 살아 있는 그의 아내를 통해 영계의 실상을 전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영화 ‘사랑과 영혼(Ghost)’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최근 인기를 끈 국산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도 공감이 가는 작품이라고 본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재앙과 불행은 예방하거나 피할 수도 있지만 죽음만은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사람 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그렇다. 막상 자신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일이지만 누구나 이를 피하고 싶어 한다. 장례식장 액자에 언젠가는 내 사진이 걸릴 것이라 생각되기보다 자신과는 무관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막상 죽음 앞에서는 더 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죽음은 솔직히 고통스러울 것 같고 슬퍼지고 겁도 난다.     

누구나 단명과 장수 중 당연히 장수를 원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거나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더 없이 불행하게 산 사람일지라도 죽음만은 피해가고 싶어 한다. 이는 사후(死後)가 어떤지를 모르기 때문이리라. 어느 며느리 이야기가 생각난다. 도저히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면서도 죽음이 두려워 더 살고 싶어 하던 시아버지에게 ‘캄캄한 저승길에서 불빛을 만나시면 그 불을 따라가세요. 먼저 가 계신 어머님을 만나실거예요. 두려워하지 마시고 잘 가세요.’라고 말했더니 곧 돌아가시더란다.     

‘장수가 축복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다. 옛날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한 복으로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고종명=考終命)을 들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장수는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한다.     

죽음에 대하여 비극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꺼내기 힘든 주제이지만 죽음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면 두려움의 폭이 줄어든다. 시인 릴케는 ‘과일이 익듯이 죽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서서히 익어간다’고 했다. 죽음을 준비하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겨우살이 준비를 위해 김장을 하듯 죽음을 대비한다면 마음을 비우고 살아 갈 수 있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다. 종교인이 신앙하는 바와 같이 이승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다. 죽음은 두려워할 종말이 아니라 다시 산다는 희망을 갖고 완전한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졸업이 새로운 시작인 것처럼 이승에서의 죽음이 저승에서 삶의 시작이다. 우리보다 먼저 영계(靈界)에 입문한 사람과 훗날 거기 가서 만나 영원한 삶 누리자. 빌리 그레이엄은 생전에 그의 손자 윌 그레이엄에게 ‘언젠가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것인데, 하늘로 이사를 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요단강 건너가 다시 만나리라 믿지만 이 세상에서는 살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어 슬퍼할 뿐이다.    

‘사라진 요일’을 쓴 소설가 이현수는 죽음 없는 세상에서 꿈과 희망은 의미가 없으며, 자연사하는 것만도 복이라고 한다. 그가 최근 펴낸 책에서 의학의 발달로 인한 수명 연장이 결코 축복일 수만은 아님을 적었다. 이 소설에는 평균 수명이 150세인 라론 증후군 환자 이야기가 펼쳐진다. 라론 증후군은 성장호르몬의 이상으로 당뇨나 암에 걸리지 않으며 성장이 중지되어 죽을 때까지 외모가 늙지 않는 현상을 보인다. 소설에서 김경훈을 통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인간 수명 연장의 폐해, 존엄사에 대해 다루었다. 금년부터 국내에 존엄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어쩌면 반가운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구상에 라론 증후군 환자, 즉 늙지 않고 왜소하며 쉬 죽지 않는 희귀 난치병 환자가 300명 정도 존재한다. 그 중 100여명이 에콰도르에서 산다.     

11년 째 죽음에 대하여 강의해 온 서울대 의대 정현채 교수는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연명치료가 늘어났는데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연명치료를 하는 것은 환자의 고통만 가중시키고 가족들에게 더 큰 아픔만 남긴다며, 삶의 길이를 연장하려는 것보다는 삶을 잘 마무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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