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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質問7
真の主権はどのようなことを意味するのでしょうか
기사입력: 2018/03/12 [06:0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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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7) 보통 ‘지금의 나’가 능동적으로 무엇을 결정하거나 선택하는 권리를 주권이라고 알고 있는데, 말씀하시는 참된 주권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요?    

質問7:普通「今の私」が能動的に何かを決定したり、選択する権利を主権だと思っていますが、眞鏡さんがおっしゃる真の主権はどのようなことを意味するのでしょうか。
    

주어진 환경을 바꾸는 것만이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능동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지금의 나’에게 운명이 있다면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능동적이며,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며 바꾸려는 것도 능동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이 모든 것이 능동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은, 모든 일과 모든 것이 ‘하나’의 뜻이자 ‘하나’의 자유의지, 즉 ‘나’의 뜻과 의지이자 내 마음먹기로 인해 비추어져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어나는 모든 일과 드러나는 모든 것이 능동적인 이유는, 내가, 즉 ‘나’가 오직 유일한 능동적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与えられた環境を変えることだけが能動的なものではなく、与えられた環境をそのまま受け入れることも能動的といえます。もし、「今の私」に運命があるとしたら、運命を受け入れることも能動的であり、運命を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ず、抵抗して変えようとすることも能動的であるといえます。このように、すべてのことが能動的に見ることができるのは、すべてのこととすべてのものが「一つ」の意味であり、「一つ」の自由意志、即ち、「私」の志と意志であり、私の心構えによって映し出されて現れているからです。したがって、起こるすべてのことに現れるすべてのことが能動的な理由は、私が、即ち、「私」がただ唯一の能動的な主体であるからです。    

그러나 살아간다고 여기고 있는 ‘지금의 나’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있다면 꿈이 꾸어지고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겪고 있는 모든 일 또한 꿈일 수밖에 없으며, 꿈은 그 자체로 어떤 능동성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꿈을 꾸는 자’는 잠을 자고 있으며, 그로 인해 무의식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참된 주권은 깨어난 ‘스스로’이며, 꿈꾸지 않는, 즉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자기 앎’, 즉 ‘자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しかし、生きていくと考えている「今の私」だけを自分自身と考えているとしたら、夢を見ることになっているのであり、それによって生じているすべてのことが夢でしかなく、夢は、それ自体で何の能動性もありません。なぜなら、「夢見る者」は、眠っており、そのため、無意識の状態だからです。したがって、私の話そうとする真の主権は、目を覚ました「自ら」であり、夢を見ていない自分自身を正しく知る「自己知」、即ち、「自覚」を指しています。    

(주석) : 꾸어지다 - 어떠한 능동성도 없이 무의식상태에서 불현듯 꾸어진다 라는 뜻   

(注釈): 夢を見ることになる ― 如何なる能動性もなく、無意識状態でふと夢を見ることになるという意味

(질문)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質問)生きているこの「生」が夢であることを受け入れるのは難しいです。
    

살아간다고 여기고 있는 동안은 꿈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으며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간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은 ‘나’, 즉 육체와의 동일시로 비추어지고 있는 ‘지금의 나’를 ‘나’라고 여기고 있으며, ‘지금의 나’가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生きていくと考えている間は、夢であることを知ることはできず、受け入れることもできません。なぜなら、生きていくと考えているということは、「私」、即ち、肉体との同一視で映し出されている「今の私」を「私」であると考えており、「今の私」が夢と同じであり、影と同じであることを知らないからです。    

(질문) 꿈은 꾸어지는 것입니까? 꾸는 것입니까?    

(質問)夢は見ることになるのでしょうか。見るのでしょうか。
    

꿈을 꾸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있다면 꿈은 꾸어지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꿈은 그 자체로 어떤 능동성도 없기 때문이며, 능동성이 깨어난 상태에서는, 즉 ‘깨달음―깨어남―깨어 있음’의 상태에서는 어떤 꿈도 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夢を見ることはありません。しかし、「今の私」だけを自分であると考えているとしたら、夢は見ることになっているとみなすことができます。なぜなら、夢は、それ自体で何の能動性もないからであり、能動性が目覚めた状態では、即ち、「悟り-目覚ること-目覚めていること」の状態では、どんな夢も見ないから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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