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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質問11
自分自身に対する関心は、結局「自己愛」から始まっているからです。
기사입력: 2018/04/09 [08:0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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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1) 흔히 ‘나’라고 하는 ‘한 생각’이 사라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고 합니다. 진경님께서 이야기하는 ‘나는 무엇이며, 누구인가?’의 탐구를 통해서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까?    

質問11:よく「私」という「一つの考え」が消えることになり、そのためには修行に邁進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います。眞鏡さんがおっしゃる「私は何であり、誰ですか」の探求を通じてどんな結論に到達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
    

생각의 주인으로서 ‘나’는,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정작 모든 생각을 다 할 수는 있어도,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만큼은 생각으로 생각할 수가 없으며, 생각으로 접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은 ‘나라고 여기는 생각’에 불과하며, 그렇게 여겨질 수가 있는 ‘나’는 바로 ‘육체와의’ 동일시로 비추어지고 있는 ‘지금의 나’라는 것입니다.    

考えの主人として「私」は、考えている者であるので、いざすべてを考えることはできても、考えている「私」程度には考えられず、考えにより接近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だから「私」であると考えるようになると、それは「私であるという考え」に過ぎず、そのように考えることになり得る「私」は、まさに「肉体との「同一視による「今の私」ということです。    

그러니 ‘나’라고 하는 ‘한 생각’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생각이 사라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나 자신’이라고 여기고 있는 생각이 ‘허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즉 ‘동일시로 인한 지금의 나’는, ‘나’에 대한 그릇된 오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부분은 단언컨대 ‘경험적인 측면’으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나는 무엇이며, 누구인가?’가 자연스러우려면, 지금까지 내가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있던 ‘나는 무엇이며, 누구이다’라고 하는 그릇된 동일시를 해체하는 것이 상식적이며 자연스럽다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だから「私」という「一つの考え」が消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は、考えが消えることを言うのではなく、自分自身に対して「私」であると考えている考えが「虚構」であるということに気付くということです。即ち「同一視による今の私」は、「私」に対する誤解であることに気付くということです。だから、この部分は「経験的な側面」から話を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繰り返しますが、「私は何であり、誰ですか」が自然であれば、今まで私が「私」をそのように考えていた「私は何であり、誰である」という誤った同一視を解体することが常識的であり、自然であるといえるのです。    

그러니 해체되고 난 바로 그 자리, 바로 그것! 즉 아무것도 아닌 ‘그것’으로서 ‘나는 누구인가?’는, 바로 그 자체로 ‘깨달음―깨어남―깨어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남’은 상식이며 자연스러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だから、解体されて、私は、まさにその場、まさにそれ!即ち、何でもない「それ」であって、「私は誰なのか」は、まさにそれ自体により「悟り-目覚め-目覚めていること」を指しているのです。だから「目覚め」は常識であり、自然であるといえます。    

(질문) ‘나는 무엇이며 누구이다’는 어떤 영웅호걸이라 할지라도 ‘속박’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質問:「私は何であり、誰である」は、どんな英雄豪傑であっても「束縛」であるということが分かりました。
    

‘자각’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지극한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해방’이 아니라, 모든 속박은 결국 ‘생각의 원천’을 알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각’은 결국 생각의 원천을 가리키고 있으며, 생각의 원천을 가리킨다는 것은, 생각의 주인인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가리키고 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결국 ‘자기 사랑’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自覚」することによって、つまり「自分自身」に至極関心を傾けることにして、すべての「束縛」から解放されるのです。なぜなら「考え」が消えることが「解放」ではなく、すべての束縛は、結局「思考の源泉」を知らないことにより起こることだからです。即ち、「自覚」は、結局、思考の源泉を指しており、思考の源泉を指すことは、思考の主人である「自分自身」への関心を示しており、自分自身に対する関心は、結局「自己愛」から始まっているからです。    

따라서 ‘나는 무엇이며, 누구인가?’는 결국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지극한 관심, 즉 ‘사랑’이라 할 수가 있으며, 결국 인류에게 국한되어 있는 속박은 실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사랑’의 결여일 뿐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したがって、「私は何であり、誰なのか」は、結局は疑問の「答え」を探すことではなく、自分自身に対する限りない関心、即ち、「愛」と言え、結局は人類に限られている束縛は、実体があるものではなく、単に「自己愛」の欠如であるに過ぎないと言え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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