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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현대세계불교56●인도불교<2>
보드가야와 달라이 라마
기사입력: 2018/04/13 [14:4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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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라 차크라 법회장으로 향하는 티베트 라마승들.    

현대에 이르러서 보드가야 불교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그 중심에 있다. 달라이 라마는 인도 망명 이후 매년 1월이면 이곳 보드가야에서 설법을 한다. 전 세계에서 달라이 라마의 법문을 경청하기 위해서 모여든다. 인도불교 역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불교사적 큰 물줄기는 단연 티베트 불교의 등장이다. 티베트 고원에는 불교문화가 들어가기 전에는 무속이 지배하고 있었다. 무속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일종의 민속 종교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본교가 바로 토속 종교이다. 본교는 불교와 함께 공존하면서 현재까지도 티베트인의 정서 속에 살아 있다. 겉으로 보면 본교의 사원도 불교 사원과 같은 양상이다. 불교사원과 비슷해서 불교사원인지 본교 사원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 중국 스촨성 암도 지방에 있는 본교 사원 낭의사          

티베트 고원에 문화 종교적 지각변동이 일어 난 것은 불교의 등장 때문이었다. 인도에서 불교가 히말라야 고원을 넘게 된 것은 7〜9세기에 본격화 되었다. 인도불교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6세기였고, 1천여 년이 경과하면서 인도불교는 많은 형태적 변화와 사상적 발달을 이루게 된다. 기원후 5세기에 이르면 인도불교는 힌두교의 강한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런 형식의 불교를 탄트릭(밀교) 불교라고 부른다. 지금은 ‘바즈라야나(金剛乘)‘라고 통칭하지만, 초기에는 탄트릭 즉 밀교로 통용되었다. ’바즈라야나(Vajrayāna)‘라고 하면, 보다 불교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밀교(密敎)는 비밀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문자 언어로 표현된 현교(顯敎)를 초월한 최고심원(最高深遠)한 가르침을 말한다. 중국의 불교에서는 밀종(密宗)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불교에서는 진언종이라고도 한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티베트 불교가 달라이 라마와 함께 워낙 강한 영향력을 발휘함에 따라서 ’밀교‘와 ’금강승‘이라는 두 낱말은 티베트 불교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 달라이 라마 법왕이 보드가야 칼라차크라 법회에서 설법하고 있다.      

금강승, 즉 밀교는 티베트에서 가장 흥하였고, 아직도 티베트의 지배적인 종교 또는 종파이다. 밀교는 힌두교의 영향이 깊게 들어온 불교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 즉 관자재보살, 혹은 천수천안보살의 화신으로 정교일치의 지도자로 깊이 존경한다. 티베트인들은 본래 호전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민족이었다. 중국 북방사(北方史)에서 티베트 족들의 활약과 여러 나라들을 건국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한 전진(前秦, 351년~394년)이란 나라도 티베트족계의 일파인 저족(氐族)의 갈래에서 생겨난 민족이다. 전진은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때 티베트계 저족(氐族)에 의해 건국된 나라이다. 국호는 진(秦)이지만 같은 이름의 나라가 많기 때문에 가장 먼저 건국된 이 나라를 전진이라 구별하여 부른다. 티베트는 중국 쪽에서는 토번이라고 부른다.     

이런 야만성과 전투적인 민족에게 불교는 평화를 가르쳤다. 지금 21세기 티베트인들은 너무 순하고 평화적인 사람들이 되어 있다. 불교가 티베트에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역사적 과정이 있지만, 한정된 지면에 여기서 낱낱이 소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인도 후기 대승불교는 티베트로 고스란히 그대로 전해져서 보존되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의 모습이 지역별로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게 전개되었다. 지금 인도불교는 티베트 불교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당하자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하고, 티베트 불교가 그대로 인도에서 재현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보드가야 불교를 봐야 쉽게 이해가 된다. 인도 보드가야는 지금 불교 백화점과 같은 풍경이다. 불교역사 2천 5백년사에서 각 나라 불교가 보드가야에 다 들어와 있다.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 망명한 후, 1월에는 항상 보드가야에 있는 티베트 사원에 주석하면서 설법회를 열고 있다. 망명 티베트 라마와 티베트인들 그리고 히말라야 산록의 티베트 불교권 나라와 지역에서 수많은 불자들이 이곳 보드가야로 운집한다. 게다가 서구의 불자들도 1월이면 보드가야를 찾는다. 보드가야는 그야말로 달라이 라마가 화제며, 티베트 불교를 이야기하며 티베트 라마승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여기가 티베트인가 할 정도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보드가야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계절적으로도 날씨가 온화해서 세계 각 국의 불교도들과 일반인들이 찾는다. 금년 1월에도 티베트의 칼라차크라(時輪) 법회가 열려서 히말라야 산록의 라마들과 티베트 부탄 라다크 시킴 등 티베트 불교권 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여기에다 동남아 대만 일본 중국 한국에서 불자들이 방문해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대탑사원은 초만원을 이뤄 그야말로 영장(靈場)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했다.    
▲ 영축산 통도사 비로암 주석 원명 지종 대종사인 전 방장께서 보드가야 대탑사원 보리수 금강보좌 상당설법회.    

보드 가야는 우루벨리라고 알려진 네란자나 강둑에 위치하고 있다. 부처님이 입멸한지 2백년 가량 지나서 인도 亞 대륙을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이 처음 이곳을 방문하고 아소카 석주를 세우고 사원을 세워서, 비구들이 거처하게 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기원전 563년에 지금의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해서 29세 때 출가하여 6년 후인 35세인 기원전 534년에 대각을 이루고 부처가 되었는데, 정각을 이룬 장소가 바로 이곳 보드가야 네란자나 강둑 보리수 아래서이다. 이 보리수 아래의 장소를 금강보좌(金剛寶座 Vajrashila)라고 한다. 아소카 대왕은 이 보리수를 의지해서 대탑(大塔) 사원을 건립한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다른 장소에서 거의 6년간 고행을 하다가 이곳 보드 가야의 보리수 아래로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숭고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깨달아서 성도(成道)를 이룬 것이다. 깨달음의 내용은 불교의 교리적이고 철학적인 형이상학의 차원으로 연기법(緣起法)과 중도(中道),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제(四諦 진리란 뜻의 제로 읽음), 삼법인(三法印)인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달았다고 한다. 나중에 불교교리 발달과 사상의 전개가 심원해졌지만, 당대로서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전지(全知)의 경지로서 깨달은 자로 숭앙(崇仰)받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보검 이치란 박사·해동세계불교연구원장(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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