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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宗敎新聞 日本語版
(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質問12
修行法に代弁される方法も方向というものもありません。
기사입력: 2018/04/16 [06:3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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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2)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으며,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각종의 수행법과 방편들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는 ‘그러한 것들과’ 어떻게 다릅니까?    

質問12:世の中には多くの宗教があり、「悟り」に至るためのいろいろな修行法と手段があります。「私は誰なのか」に対する探求は、「そのようなもの」とどのように違うのですか。
    

아무리 많은 종교와 많은 종파가 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많은 수행법과 방편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와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습니까? ‘나’는 오직 일체로서 ‘하나’이며, 그로 인해서 내가 ‘나’에게 이르는 길이라는 것도 없으며, 수행법으로 대변되는 방법도, 방향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どんなに多くの宗教と多くの宗派があるとしても、それによって多くの修行法と手段があるとしても、「私は何であり、私は誰なのか」に対する探求とどのように比較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私」は、単に一体であって、「一つ」であり、それによって私が「私」に至る道であるということもなく、修行法に代弁される方法も方向というものもありません。    

찾는 ‘나’와 찾는 ‘그것’이 만약에 다르다면, ‘그것’에 이르기 위한 수행법으로써의 방향과 방법과 길이라는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찾는 나’와 ‘찾는 그것’은 바로 하나이자 ‘나’입니다. 즉 ‘찾는 내가 바로 찾는 그것’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찾는 나’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시로 인한 단지 ‘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그렇게 ‘찾는 나’가 존재되어질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아니라, 내가, 즉 ‘나’가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여기고 있는 이유는 ‘지금의 나’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나’에 대해서 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探している「私」と探している「それ」がもし違うとしたら、「それ」に至るための修行法としての方向と方法と道というものがあることもあります。しかし、「探している私」と「探しているそれ」は、まさに一つであり「私」です。即ち、「探している私がまさに探しているそれ」ということです。なぜなら、「探している私」は実在するのではなく、同一視による単に「私」の影にすぎず、そのように「探している私」が存在され得るということは、「自ら」ではなく、私が、即ち「私」が「私」をそのように考えているからであり、そのように考えている理由は、「今の私」だからではなく、「私」自ら「私」に対して忘却しているからです。    

따라서 동일시로 인한 ‘지금의 나’는, ‘나’에게 덧씌워진 동일시, 즉 개념에 불과하며, 개념으로 인해서 ‘생각의 주인’, 즉 ‘나’의 정체성이 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즉 찾는 내가, 바로 찾는 ‘그것’인 것입니다.    

したがって、同一視による「今の私」は、「私」にさらに重ねられた同一視、即ち、概念に過ぎず、概念によって「考えの主人」、即ち「私」の正体性が変わ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即ち、探している私が、まさに探している「それ」なのです。    

(질문) ‘나’를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質問:「私」を正しく見て、正しく知って、正しく理解するために何も必要ないとおっしゃいました。
    

자기가 자기를 바로 알고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자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관심과 사랑이 전부입니다. 어떤 조건도,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만으로, 자기 자신만으로 족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으로서 ‘나’는 모든 ‘시작’을 시작하게 하였기 때문에, ‘끝’나고 나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自分が自分を正しく知ろうとすることは、自分自身に対する関心であり、愛です。だから、そのような関心と愛がすべてです。どんな条件も、どんなものも必要ありません。ただ自分だけで、自分自身だけで足ります。なぜなら、自分自身として「私」は、すべての「始まり」を始めることにしたので、「終わり」の後でも自分自身として残るからです。    

(질문)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質問:「私」はどこにいますか。
    

‘나’를 동일시하여 ‘지금의 나’로 여기고 있다면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그러나 ‘나’를 비동일시하여 자유롭다면,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시간과 공간에 귀속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불어서 모든 것이 ‘나’에게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私」を同一視して「今の私」であると考えているとしたら、まさに「今ここにいる」のです。しかし、「私」を非同一視して自由であれば、どこにもいません。なぜなら、「私」は、時間と空間に帰属されないからです。さらにすべてが「私」から起きて、消えていきます。    

(질문) 진경님, 시간과 공간에 귀속될 수가 없음을 아는 것은 ‘깨어남’ 때문입니까?     

質問:眞鏡さんが時間と空間に帰属されないことを知っているのは、「目覚め」たからですか。
    

비록 잠을 자고 있고,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무의식상태지만 의식작용으로 인해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는 ‘나’로 대변되어지는 경험과 체험의 주체로서 ‘지금의 나’가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꿈속의 ‘지금의 나’는 감각작용에 의존하여 시간적 공간적 지각작용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총체적 의식작용을 아는 것은, 꿈을 깨고, 잠을 깨고 나서야 가능할 일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꿈속에서 지각작용을 통해 인식작용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내고 있는 ‘관념’에 불과하며,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무의식상태라 할지라도 ‘나’는 시간과 공간에 귀속되었던 적이 없는 것입니다.    

眠っていて、眠っている間に、たとえ無意識の状態ですが、意識作用によって夢を見ています。そして、夢の中では、「私」に代弁される経験と体験の主体として「今の私」が登場します。そして、夢の中の「今の私」は、感覚作用に依存して時間的、空間的な知覚作用をすることになります。このような総体的な意識作用を知ることは、夢を覚まして、眠りを覚ましてこそ可能なのです。そうであっても、夢の中で知覚作用を通じて認識作用をしている「今の私」は、「私」の無意識が作り出している「観念」に過ぎず、眠って夢を見る無意識状態であっても、「私」は、時間と空間に帰属したことがない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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