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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노현 법주사 주지-중도의 삶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1/10/31 [08:54]

명법문/ 노현 법주사 주지-중도의 삶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1/10/31 [08:54]

명법문명설교/ 노현 법주사 주지

 

중도(中道)의 삶  

 




부처의 고행상(디트로이트 미술관, 14세기)

구미 도리사에 설치된 ‘팔정도 해설비’.

 

출가 전의 부처님은 한 나라의 왕자로서 물질적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풍족함만으로는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출가를 결행하였습니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될 때까지의 6년간 그 대부분의 시간을 가혹한 고행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쾌락도 고행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시고 중도(中道)를 삶의 지향점으로 세우셨습니다. 중도는 불교의 근본원리로서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사상입니다. 불교의 모든 이론과 실천적 수행은 중도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부처님의 풍족한 생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을 위해서 계절에 따라 옮겨 다니면서 살 수 있게 삼시전(三時殿)의 궁궐을 지어주었습니다. 또한, 미녀들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요즘의 시골청년들은 한국의 부인을 얻지 못해서 부인을 외국에서 데려오는 경우도 있는데 부처님 주위에는 미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많았지만 왕자 주위에는 항상 기름진 음식이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보좌하는 많은 시녀와 종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부처님의 고행생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당시는 고행을 수행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문화 때문에 고행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자마자 자기의 고급스러운 옷을 일반사람에게 벗어주고 서민적인 옷을 입거나 천민보다 더 험한 옷을 입었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때는 풀 옷을 입기도 하고, 시체를 싸고 무덤 사이에 버려진 천이나 걸레를 깨끗하게 빨아 이것으로 옷을 대신하여 입기도 하였습니다.

수행하면서 파리, 모기가 몸의 피를 빨아도 쫓지 않았습니다. 더 혹독한 수행이 필요할 때는 시체와 인골이 굴러다니는 공동묘지에서 노숙하기도 했습니다. 수행하시는 동안 양 치는 아이들이 침을 뱉고 진흙을 던졌지만 일체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귀에 나뭇가지를 쑤셔 박고, 새가 머리에 둥지를 틀었지만 진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풍족한 생활도 해보고 고행도 해 보았지만 둘 다 참된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출가 전의 물질적인 풍족한 삶도 출가 후의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버리고 고락(苦樂) 양면을 떠난 심신의 조화를 얻는 중도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도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 자각하였습니다.

그러면 중도의 가치관에서 벗어난 행동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극단적인 종교관으로 이웃 종교를 미워하고 훼불하는 일부종교인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내 종교가 최고이고 다른 종교는 다 망해야 한다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은 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은 아니며, 잘못하면 반목하고 불신의 사회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남의 눈이야 어찌 되었든지 해외 명품만을 고집하고 명품을 쓰지 않는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사람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명품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있지 겉모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명품 인물이 되기도 하고 볼품없는 인물이 되기도 합니다.  

상식에서 벗어난 과격한 행동이나 언행을 일삼는 사람도 바른 행동은 아닙니다. 운전대를 잡았다 하면 과속을 하고 언행이 과격해지는 사람도 문제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는 스토킹도 문제 있는 사람입니다.

중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즐거움[樂]과 괴로움[苦], 있음[有]과 없음[無], 생함[生]과 멸함[滅], 단견(斷見)과 상견(常見) 등 상대적인 양 극단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쾌락도 벗어나고 고행도 아닌 가장 인간적이고 바른 삶이라고 제시하신 수행법이 팔정도(八正道)입니다. 팔정도는 감각적인 즐거움과 고행 수행을 떠난 중도(中道)의 수행법으로서 고통을 없애기 위한 수행 방법으로서 설해졌습니다.

팔정도의 첫 번째는 정견(正見)으로서 올바른 견해입니다. 불교적으로 보면 이것은 연기법과 사성제를 확실히 꿰뚫어 아는 것입니다. 사성제를 통해 인생의 괴로움 전반에 대한 확실한 통찰이 있어야 진정한 수행이 시작되고 괴로움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정견은 올바른 세계관,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苦樂떠난 中道에 깨달음의 道 있어

부처님제시 바른삶 수행법은 八正道

팔정도-正見․思惟․語․業․命․精進․念․定”


두 번째는 정사유(正思惟)로서 올바른 생각입니다. 탐욕스러운 생각, 노여워하는 생각, 생명체를 해치려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괴로움을 통찰해서 '올바른 견해'가 생긴 사람에게는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각에 의해 말과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생각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정어(正語)로서 올바른 말입니다. 생각이 바르면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삼가게 됩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옵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네 번째는 정업(正業)으로서 올바른 행위입니다. 생각이 바르면 행위도 바르게 됩니다. 살생, 도둑질, 삿된 행위를 삼가는 것입니다. 생명을 천시하고 죽이는 행동, 인색하고 훔치는 행동을 버리고 모든 생명을 살리고 베푸는 바른 행위를 의미합니다.

다섯 번째는 정명(正命)으로서 올바른 생활입니다. 세속인으로서는 직업을 갖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비난받을 만한 직업을 피하는 것이고, 수행자로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 가지고 거짓 없이 청정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기나 도박 직업을 가지면 안 됩니다. 술집이나 고기 파는 식당도 본래는 안 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바른 직업윤리를 가지고 임금을 착취하지 않고 환경오염물질 방출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여섯 번째는 정정진(正精進)으로서 올바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있는 선은 증진시키고 좋은 것은 북돋우며 반대로 이미 있는 악은 줄이는 방향으로의 정진을 정정진이라고 합니다.

일곱 번째는 정념(正念)으로서 올바른 알아차림입니다. 이것은 남방불교에서 주로 수행되고 있는 위빳사나 수행에 해당하며 사념처(四念處)를 닦는 것입니다. 사념처란 몸․느낌․마음․법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여기서 알아차림이란 위의 네 가지 수행 주제에 대해 자신의 개인감정을 넣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증상은 사라집니다.

여덟 번째는 정정(正定)으로서 올바른 집중입니다. 호흡과 같은 어떤 특별한 주제에 마음을 일심으로 집중하는 수행입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키는 것으로써 삼매(三昧)를 얻는 훈련이 정정입니다.

이상과 같이 팔정도를 알아보았습니다. 팔정도는 중도를 실천하는 수행법으로서 우리 불자들이 따르고 지켜나가야 할 것들입니다. 참된 불자라면 생활 속에서 잊지 않고 실천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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