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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하나님이 북한의 문 열고 계신다”…6만7000명 한마음 기도
‘2018 한반도평화와 희망나눔을 위한 기도대성회’…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0주년
기사입력: 2018/05/23 [06:0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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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7000명의 기도와 찬송소리는 다른 모든 소리를 없애버릴 정도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5월1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한 ‘2018 한반도 평화와 희망나눔을 위한 기도대성회’는 세계 최대 교회의 영성이 사랑실천을 넘어 한반도와 세계평화로 향하고 있음을 잘 보여줬다.3일 동안이나 내리던 장대비는 기도대성회 1시간을 앞두고 멈췄다. “부웅~.” 영적 승리를 기대하는 양각나팔이 울리자 붉은색 십자가 깃발을 든 기수가 등장했다. 그 뒤를 따르는 한반도기가 행사의 취지가 뭔지 보여줬다. 참석자들은 복음성가 ‘마지막 날에’ ‘찬송하라 내 영혼아’ 등을 부르며 하나님을 높였다.
▲ 5월18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최 ‘2018 한반도 평화와 희망나눔을 위한 기도대성회’가 열린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전경. 대성회에 참가한 전 세계 50여개국 성도들이 지역‧교회별로 색깔옷을 입은 채 통성 기도하고 있다. 이번 대성회에는 세계 각국 크리스천 리더와 여의도순복음교회 및 지교회 교역자와 성도 등 6만7000여명이 참가했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야훼의 칼, 기드온의 칼’이라 제목의 설교를 통해 인간의 군사력보다 강한 하나님의 능력과 기도의 힘에 의지하자고 권면했다. 조 원로목사는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민족과의 전쟁에서 칼이나 창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승리했다”면서 “세상은 핵무기와 군사력을 강조하지만 성경은 인간적인 힘이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가 전쟁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하나님은 이 땅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주님의 군사로 택하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셨다”며 “기드온이 빈 항아리에 횃불을 넣어 전쟁에 나아갔듯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면 주께서 역사하실 것”이라고 했다.   
▲ 조용기 원로목사가 5월1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한반도 평화와 희망나눔을 위한 기도대성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이영훈 담임목사도 성령충만과 기도,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교회의 60년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며 우리는 이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이 목사는 한반도 복음통일과 나눔 섬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모든 것에 하나님의 때가 있는데, 최근 하나님께서 북한의 문을 열고 계신다”며 “하나님이 여시면 아무도 닫을 자가 없다. 하나님의 때 한반도가 통일이 되도록 기도하면 주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고 선포했다. 세계오순절협회는 세계 성령운동을 주도한 공로로 조 목사와 이 목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 경기장 전광판으로 중계된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의 설교 장면    

◆티셔츠 플래카드로 교회의 개성 표현    

5월18일 오전 9시30분쯤 ‘2018 한반도 평화와 희망나눔을 위한 기도대성회’가 열린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속속 이곳에 도착한 성도들은 교회별로 노랑 빨강 파랑 등 다양한 색깔의 옷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성도들은 야구 응원봉까지 준비해 찬양할 때나 설교 중 은혜를 받았을 때마다 힘차게 치며 예배 분위기를 돋웠다.

경기장 곳곳엔 ‘영등포대교구는 작은 예수의 영성이다’ ‘성령님과 동행한 양천대교구’ ‘성령충만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나가자’ 등의 다양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었다. 구로대교구는 ‘구’자를 문구 맨 처음에 ‘로’자를 맨 마지막에 넣어 ‘구령의 열정, 오직 성령으로’라는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 순복음노원교회는 빨간색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흔들며 찬양과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해외 참가자들, 대회 규모에 “어메이징!”    

기도대성회는 남북 평화통일과 교회부흥을 바라는 국내외 성도들의 간절한 신앙고백으로 채워졌다. 주강사로 나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종교자문 폴라 화이트(뉴데스티니 크리스천센터) 목사와 미국 타임(TIME)지 선정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윌프레도 초코 데 헤수스(뉴라이프커버넌트미니스트리즈) 목사는 인류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로 나아가자고 했다.

화이트 목사는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대사들이 하는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주님께서 대한민국에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도록, 모든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헤수스 목사도 “소망이 없는 이 시대, 진정한 소망은 구원자인 예수께 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세우고 믿음으로 살기 위해 삶의 궤도를 성경적으로 수정하자”고 했다.
▲ 세계 각지에서 온 성도들이 5월1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한반도 평화와 희망나눔을 위한 기도대성회’에서 각국 전통의상을 선보이고 있다.  
  
북미총회 소속 성도들은 성조기 모양의 카우보이모자를 썼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성도들은 전통 의상 ‘부부(bou bou)’를 입고 있었다. 좌석이 부족하자 일부 성도들은 복도에 방석을 깔고 앉아 예배를 드렸다. 해외 참석자들은 수만명의 찬송과 간절한 기도소리에 적잖은 도전을 받았다고 했다. 영국에서 온 다니엘 애드제이(43) 목사는 “인종과 국적은 달라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의 구주를 믿는 신앙의 동료라는 뜨거운 공동체 의식이 느껴졌다”며 “어메이징(놀랍다)!”을 외쳤다. 아프리카 레소토에서 온 리부셍(29․여)씨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다함께 기도하고 또 국가와 통일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너무 감동스럽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사역 중인 고드윈 우게디(26) 선교사는 “그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예배를 인터넷으로 봐 왔는데 현장에서 본 느낌은 그동안 알던 것과 전혀 다르다. 정말 대단한 성회”라고 했다.해외 지도자들은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가 설교를 통해 “교회의 성도가 10만이 20만이 되고, 20만이 30만이 되고, 30만이 40만 됐으며 결국 88만명이 됐다”고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평양조용기심장전문병원 건축기금을 전달했으며, 굿피플과 감사저금통 희망나눔 기금 협약식도 가졌다. 영등포구청에는 희망나눔기금을 전달했다.          

“절대긍정의 믿음 안에서 부흥의 꿈을 키워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0주년 기념 콘퍼런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가 6000여명의 세계교회 지도자들 앞에서 교회 성장의 핵심 원동력 ‘4차원 영성’을 소개했다. 4차원 영성은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주창한 신앙원리로 ‘삶을 변화시키려면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 믿음, 꿈, 말로 4차원의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꿈을 품고 입술로 선포하라”

조 원로목사와 아내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 이영훈 담임목사는 5월17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개최된 ‘교회창립 60주년 기념 콘퍼런스’에서 교회의 신앙 DNA가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과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절대긍정의 신앙에 있다고 강조했다.조 목사는 긍정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암에 걸린 성도가 치유되고 자신의 몸이 회복됐던 간증을 들려주면서 마음속에 좋은 교회의 꿈, 성공적인 목회의 꿈을 품으라고 당부했다. 그는 영어로 행한 설교에서 “하나님은 질병을 치유하시고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는 참 좋으신 분”이라며 “지난 60년간 나는 매일 하나님이 주신 세계 최대의 꿈, 성공적인 목회, 영적 승리의 꿈을 품었으며 그것을 입술로 고백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의 뇌는 긍정과 성공, 치유의 메시지를 입술로 표현할 때 그것을 기억하고 움직인다”면서 “뇌도 기억을 하는데, 하물며 마음에 부서지고 무너지며 병든 이미지를 품어서야 되겠나. 부정적 이미지를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치유와 성공의 새로운 이미지를 품으라”고 조언했다.김 총장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는 말씀을 붙드는 것”이라며 “긍정적 마인드로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며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17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개최된 ‘교회창립 60주년 기념 콘퍼런스’에서 이영훈 담임목사의 제안에 따라 중화권 교회 지도자들이 통성기도를 하고 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부흥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 비결을 소개했다. 그는 “1958년 설립된 교회는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빈민가 주민들에게 ‘예수 믿으면 영혼과 범사가 잘되고 건강해지는 축복이 온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전했다”면서 “체험적 삶과 직결된 메시지는 가난과 절망에 매어있던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줬고 교회개척 3년 만에 100배 성장의 결실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이 목사는 “1961년 교회를 서울 서대문으로 옮기면서 십자가의 5가지 희망, 즉 중생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의 오중복음으로 발전했다”면서 “1973년 여의도로 교회를 이전하면서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은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그는 “우리는 인간적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적이고 긍정적 생각으로 교회부흥의 꿈, 치료의 꿈, 거룩의 꿈을 품어야 한다”면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교회가 부흥되며 지역과 국가가 변화되는 기적을 꿈꾸고 선포하자”고 당부했다. 바울성전에선 제27회 국제교회성장연구원(CGI) 콘퍼런스가, 대성전에선 제30회 아시아방한성회가 열렸다. 대성전에선 교회학교 주관 ‘파워스쿨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는 CGI 아시아리더스서밋 등에 소속된 세계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만찬이 이어졌다. 400여명이 모인 이 자리에선 하임 호센 주한이스라엘 대사, 정세균 국회의장 등이 축사했으며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축시를 낭독했다.   
 
조용기 원로목사 “사람은 희망 없이 못 살아…평생 ‘희망의 신학’ 전파”
지구 120바퀴 돌며 복음전파…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사역 60주년 맞아 회고
    

1958년 5월 서울 대조동 빈민가에서 5명의 성도로 시작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재적(在籍) 성도 수 88만명으로 세계 기독교사(史)에서 유례가 없는 영적 부흥을 이뤘다.대조동-서대문-여의도로 이어진 여의도순복음교회 60년사는 척박한 땅에 성령의 물줄기를 댄 복음의 ‘선각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병 고침의 놀라운 은사를 체험하고 평생 전인구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회창립 60주년과 사역 60주년을 맞아 국민일보, 조선일보 등에 게재된 조용기 원로목사에 대한 인터뷰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서울 대조동 빈민촌에서 성령께 의지해 희망의 복음을 설파하며 교회를 개척한지 60주년이 됐습니다. 그간의 소회는.    

“당시 대조동은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경상도, 전라도에서 못 살고 서울로 올라온 분들이 모여 살았죠. 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병들거나 굶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가정들은 거의 파탄 상태였습니다. 거기에서 교회를 세우고 좋다고 춤추고 노래할 경황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소망을 잃고 살 수는 없잖아요. 소득은 높아졌지만 심령 상태는 그때와 비슷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난 60년 목회는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희망을 만들어주실 것이라는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른 특별한 심정은 없습니다.”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 전파해 왔습니다. 세계최대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60주년이 한국교회사와 세계교회사에 갖는 함의(含意)는 무엇입니까.

“전세계적으로 성령을 받아 뜨겁게 예수를 믿는 사람을 대략 5억명으로 계산합니다. 그 5억명 중 3분의 2는 한국교회가 전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지구를 120바퀴쯤 돌았습니다. 천막 시절부터 세계 선교를 꿈꿨습니다. '한국이 자동차, 비행기는 못 만들어도 복음과 예수를 전하는 일에서는 뒤떨어지지 않는다, 할 수 있다'고 강한 믿음을 가졌어요. 미국인 선교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비웃었습니다. '엉터리 같은 생각 말고, 꿈을 낮춰라'고 해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꿈을 가지고 결국 이뤘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성령의 가르침을 전한다고 하면 이단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어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어떻게 이단이 될 수 있느냐. 남들이 이단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희망이 없으면 못삽니다. 희망이 있으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견딜 수 있어요. 교회가 너무 희망을 저버리고 인내만 강조하며 참으라고만 한다면 사람들은 낙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희망을 갖고 있으면 감옥에 갇히는 것도 좋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말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조 원로목사가 설파한 복음의 핵심은 희망의 신학이었다. 성령의 역사는 생명을 살린다. 죄책감과 정죄의식에서 벗어난 영혼의 구원, 생활의 궁핍에서 벗어난 범사의 구원, 질병에서 벗어난 강건한 구원이었다. 삼박자 구원으로 요약되는 순복음 신앙이 인간의 공허함, 실존적 불안을 치밀하게 파고든 것이다.

-과거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목사님께서 주도하신 성령운동에 대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부흥하는 교회를 보면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추구해 온 영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반세기 만에 오순절신학이 한국적 신학으로 정착된 데 대한 감회는.

“오중복음이라는 것은 조용기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존 웨슬리가 강조한 성령과 성결운동,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순복음은 성경 중심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순복음 교단이 말하는 복음은 결국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인생의 상처를 치료해 주며, 죽어가는 자를 진정으로 살리는 복음입니다. 배가 고파서 교회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을 주는 복음입니다. 구원의 현재성에 대한 교리는 본래 신약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지금 그 어떤 신학자가 저를 이단이라고 욕할 수 있겠습니까?”
▲ 조용기 원로목사는 교회 창립 60주년에 대해 “60년 사역을 뒤돌아보니 좋으신 하나님, 치료자이신 주님께서 늘 함께하셨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 목사는 “삼중축복과 4차원의 영성, 오중복음이 내 신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0년동안 가장 기뻤던 떼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여의도 성전에 입당했을 때입니다. 당시 오일쇼크로 경기가 얼어붙고 건설비가 모자라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공사장에서 철근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곤 했지요. 어느 날 모래밭에서 예배드리는데 한 할머니가 제게 '10분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세요. 봉지에서 뭘 꺼내는데 보니까 숟가락, 젓가락이에요. 할머니는 '내 유일한 재산이자, 최고의 보물이다. 조 목사 설교 듣고 은혜 받고 구원받았다. 공사가 중단되면서 조 목사가 죽어가고 있다. 죽어도, 살아도 같이 하자. 우리 모두 일생일대의 것을 내놓자'고 하셨지요. 그 이후로 헌금뿐 아니라 교인이 갑자기 늘어서 설계를 계속 바꿨어요. 처음엔 3000명 규모로 설계한 것을 5000명, 7000명, 1만명까지 늘렸어요. 그렇게 설계를 계속 바꾸다 보니 예배당이 아름답지는 않아요

1997년 브라질 상파울루성회는 제 목회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브라질 비행장을 빌려서 집회를 열었는데, 참석자가 70만명이 모일 줄 알았는데 자그마치 100만명이 모여들었습니다. 남미 사람들은 인사할 때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인파에 둘러싸이다 보니 도저히 집회장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주최 측에서 생각해낸 게 무대까지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집회를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1991년 러시아 모스크바 성회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컸기 때문에 크렘린궁 앞에서 집회를 앞두고 다들 만류했습니다. 그때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내놓은 사람입니다. 죽는 것이 두려웠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라며 집회장으로 들어갔어요. 강력한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집회를 마치고 나니 험악한 표정의 경찰국 소속 2명이 나에게 접근을 해요. ‘나를 잡으러 왔구나’ 싶었는데 다가오더니 ‘할머니가 즐겨듣던 찬송가가 나오더라. 오늘 목사님 설교를 듣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때 공산주의 국가라 할지라도 총칼이 아닌 예수 소망을 가져야 희망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과테말라 집회에선 대통령이 직접 차를 몰고 공항에 마중을 나와서 '오늘은 대통령이 아니라 교인으로서 모시러 왔다'고 한 적도 있지요. 스웨덴에서 집회할 때는 노골적으로 무시당했어요. 자기들보다 훨씬 못 사는 나라 목사가 설교한다니 그랬겠지요. 그런데 첫날 100명으로 시작해 사흘째는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사람까지 3만명이 모였어요. 세계 선교 다니면서 느낀 것은 가난한 우리에게만 소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잘사는 나라들도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망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제 집회에 세계인들이 모여든 이유이지요."    

­얼마 전 별세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스스로를 비교하신다면?

"견주지 못하지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도와주고 응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돈도 많았고요. 저는 돈도 없고, 못 사는 나라 출신이잖아요. 제 집회에는 그 나라에서도 돈 없는 사람들만 모였습니다. 그래도 전체를 계산해보면 제 집회에 모인 사람 수가 그레이엄 목사님보다 더 많지 않을까요?(웃음)"

조 목사가 강조하는 실존적 성령운동은 ‘현재적 구원’이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영혼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한다. 오순절 신학은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육체와 현재의 삶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효력이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 조용기 원로목사는 “우리는 지혜로운 민족”이라며 “고난을 각오하되 비관하지 말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굳게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이 가까워지고 있지 않습니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났는데, 목사님이 각별히 관심 가졌던 평양조용기심장병원이 어떻게 운영됐으면 하고 바라십니까.

“동남아에 복음을 전하러 나가 보니 참 가난한 사람이 많아요. 병들어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연을 들으면 눈물이 나요. 그래서 힘을 다해 그들을 돕고 싶은데, 돈이 있어야죠. 그래서 기도하고 서울에 돌아와서 폐지수집운동을 시작했어요. 그 돈으로 심장병에 걸린 동남아 아이들을 데려와 수술을 해줬습니다. 지금까지 약5000명 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민족도 돕는데 왜 우리 민족을 돕지 못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더니 어느 날 북(北)에서 '말만 하지 말고 병원 지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평양에 심장병원을 짓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저는 시작할 때 뭐든지 크게 보고 선포합니다. 당시 착공식도 전세기를 빌려 장로님들을 모시고 갔습니다. 장로님들이 ‘북한이 무섭지는 않으냐’며 비행기를 안 타려 해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이곳에 예수님이 타고 계시니 걱정 말라’고요. 평양 비행장에 내리니 아주 성대하게 대접해 줬고 제일 좋은 땅에 병원 건립을 허락해 줬습니다. 북쪽 동포도 병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고통받는 북한 동포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었습니다.

병원 지을 터도 보고 눈물로 주일예배 드리고 돌아와 바로 계획에 착수했지요. 정치적으로 남북이 좋을 땐 자재도 들어가고 원활했지만 어려워지면 멈추다가 지금은 8년째 멈췄습니다. 지금 병원이 70∼80%는 지어졌는데, 결국은 완공될 것입니다. 최근 북측이 이영훈 목사를 통해 다시 지어줬으면 한다는 뜻을 밝혀왔습니다. 저는 병원 이름에서 제 이름을 빼달라고 했습니다. 착공 당시엔 제가 책임지고 일할 때였고, 지금은 은퇴했으니까요. 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습니다. 남북 관계는 어떻게 보십니까.

"신중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북한이 지금 이렇게 나오는 것은 뭔가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이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목사님은 평생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엔 희망 대신 절망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정치의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돼야 합니다. 좌파건 우파건 편 가르지 말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치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실제로 사랑을 베풀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에겐 어떤 희망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꿈을 잃지 마십시오. 긍정적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면 우리 민족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멋진 백성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안 된다'는 말에 귀 기울이면 실제로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저 위에 계시는데 안 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고생은 반드시 따라옵니다. 고난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고난을 각오하고 나가면 미래는 이뤄집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여든 노인이 지내는 게 다 그렇지요. 파킨슨병 때문에 거동이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옷 입고 세수하고 성경 읽고 기도드립니다. 청년 시절부터 해온 일과이지요. 새벽 기도와 관련해선 에피소드가 있어요. 서대문 시절, 한 번은 새벽기도에 갔는데 성도들이 박수 치며 웃어요. 그날따라 늦잠을 잤는데, 강대상에 잠옷을 입고 섰던 겁니다. 저도 성도님들도 열정이 대단하던 시절이지요."

­-목사님께 가장 영향을 끼친 분은 누구입니까.

“미국의 오랄 로버츠 목사님입니다. 그분은 ‘좋으신 하나님’을 늘 강조했어요. 저는 불교 가정에서 태어난 뒤 17세 때 폐병에 걸려 쓰러져 죽는 것을 기정사실로 알았습니다. ‘살 만한 운명이 있으면 살고 안 그러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나를 변화시킨 것은 좋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누님의 친구가 성경을 전했고 읽다 보니 큰 감동이 있었어요. 성경을 읽다 보니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전부 실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몸 찢고 피 흘린 실제적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말씀하시며 병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저에게 어마어마한 현실적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 나를 살릴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고 그때 병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과 찬양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요한삼서 1장2절 말씀입니다. 찬송은 ‘얼마나 아프셨나’(614장)입니다. 제 누님이 지은 곡입니다.”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 지도자는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까.

“한국교회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누구를 꼽을 필요도 없이 한국에 그러한 교회 지도자는 많습니다. 이만한 교회가 이뤄질 때는 그만큼 목회자들의 희생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생명을 다해서 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을 하는 사람 중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님을 꼽고 싶습니다. 그분은 돈도 없고 빈손이었지만 믿음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독교 방송운동을 그분만큼 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살려면 한국의 정신세계를 주도해야 합니다. 구한말 초기 선교사처럼 중·고등학교, 대학교, 병원 등을 할 수 있는 대로 운영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학과 신문사를 세웠던 겁니다. 꿈을 가지고 목숨 걸고 믿음과 진심으로 하면 일이 이뤄집니다. ‘할 수 있다, 해보자’가 제 생애의 모토인데 사람들은 해보지도 않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면 일이 되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기도제목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한국교회 성도들이 미주 유럽 동남아 등 세계를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하며, 그것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용기 원로목사는 17세 때 폐병을 시작으로 신경쇠약, 심장병, 위장병, 중병에 따른 개복수술, 파킨슨병까지 ‘죽음의 골짜기’를 수없이 지나왔다. 그는 평생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께 간청했고 고난 중에서 생명과 치료를 직접 경험했다.팔순의 나이에도 주일 오후 1시면 어김없이 강단에 올라 갈보리 십자가 복음을 전한다.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육적 죽음과 가난을 포함한 환경의 죽음을 극복한 십자가 은총을 총체적으로, 통시적으로 경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영적 거인(巨人)은 오늘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라는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영훈 목사 “南北 하나로 묶을 신앙의 힘 이젠 통일시대 준비하자"    

“우리 이영훈 목사님은 내가 봐도 좋은 후임자입니다. 내 주변엔 후임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참 좋은 일꾼을 주셨습니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5월15일 교회 창립 60주년 기념 ‘복음의 종’ 타종식에서 후임자인 이영훈 목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이 목사는 조 목사의 리더십을 성공적으로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년과 할아버지, 그리고 조용기 목사 

열살 소년이 할아버지 손을 잡고 집앞 서울 서대문 충정로 개척교회를 간 것은 1963년 4월의 일이다. 평양에서 미싱사업을 크게 했던 할아버지는 한국 초기 개신교의 본거지 평양 서문밖교회 장로 출신이었다.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당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했는데, 그 무렵 통증이 더 심해졌다. 6·25 한국전쟁 직전 월남한 소년의 가족은 따로 다니는 교회가 있었지만 거동이 힘들어진 할아버지는 새벽기도 장소를 이제 집 근처로 옮겨야 했다. 손자는 새벽마다 할아버지를 부축해 그 교회를 다녔다.

그 후 석달만에 할아버지의 중대발표가 나온다. "앞으로 우리 가족 모두 이 교회로 옮겨야겠어. 젊은 목사 말씀에 은혜가 너무 충만해." 할아버지가 말한 젊은 목사가 당시 27세였던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그 손자가 조 목사 후임으로 올해 10년째 순복음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영훈 담임목사이다. 열살 소년 이영훈의 눈에 순복음교회는 별천지였다. "당시 장로교는 너무 엄숙해 교회에선 숨소리조차 안 들렸어요. 박수치는 교회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북치며 찬송을 불렀어요. 전혀 다른 세상이었죠." 기존 교회가 상상할 수 없었던 여러 파격적인 예배방식은 순복음교회가 국내는 물론, 세계 최대 교회로 커가는 밑바탕이 됐다. 이영훈 목사는 "사람들이 모두 절망을 말할 때 희망을 외쳤던 교회, 긍정의 신앙이 순복음의 힘"이라고 정리했다. 1958년 다섯 명의 신도로 서울 은평구 대조동 천막에서 시작한 순복음교회는 1961년 충정로를 거쳐 1968년 허허벌판 여의도로 옮긴 뒤 지금에 이른다. 그간 성도는 88만명까지 불어났다. 그리고 올해 60주년을 맞았다. 교회는 5월18일 대규모 창립기념행사도 개최했다. 지독한 빈국(貧國)에서 세계 10대 무역대국이 된 한국의 기적 같은 성장과 궤를 같이해온 여의도순복음교회 60주년 슬로건은 '고난과 영광'이다. 이 교회의 지난 시간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정확한 단어가 있을까.    

◆조용기 목사 후계자로 선출… 10년째 순복음교회 이끌어 

이 목사는 집안 4대가 기독교 신앙인이다. 평양에 선교사가 처음 들어와 교회를 지을 때 이 목사 증조부는 직접 산에서 나무를 베어 교회 건축을 도왔다. 평양미싱협회 이사장을 지낸 조부는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강양욱의 핍박에 못이겨 가족을 이끌고 월남했다. 김일성의 방계혈족인 강양욱은 기독교인이었지만 김일성 주석을 신격화한 인물로, 김일성 생전 내내 부주석을 지냈다. 조부는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고, 이런 시간이 이 목사 신앙의 기초가 됐다. 부친은 조부의 미싱사업을 이어받았다. 이 목사는 목회의 길로 가지 않았다면 자신도 사업가가 됐을 거라고 했다. "멋있게 돈을 벌어 좋은 일에 펑펑 돈을 썼을 겁니다. 진짜 부자는 돈을

잘 쓰는 사람"이라며 웃었다. 이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되기까지 세 차례 투표를 거쳤다. 이런 선출방식은 여전히 세습제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 개신교가 참고할 대목이다. 당시 1차 투표에서 후보에 오른 목사는 총7명. 이들을 상대로 교회 당회를 대표하는 150명 장로가 3명을 뽑았고, 다시 전체 장로 900명이 2차 투표를 했다. 1, 2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한 이 목사는 그 후 1년반 동안 담임목사 서리로 일한 뒤 전체 성도를 대상으로 진행된 찬·반방식의 3차 투표를 통해 2008년 담임목사로 최종 확정됐다. 
▲ 이영훈 담임목사는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고 그 사랑의 실천은 희생·나눔·섬김“이라며 ’우리 민족에겐 절망을 뛰어넘게 하는 ‘부활’이 필요하고, 이는 희생·나눔·섬김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20여년 목회…세번 방북 경험     

조용기 원로목사에 이어 담임을 맡은 이영훈 목사는 사회와의 소통과 나눔에 큰 방점을 찍고 있다. 이 목사는 “북한의 평양에 짓다만 심장병원 공사를 곧 재개한다. 북한에서 지난 10년간 중단됐던 공사를 마무리해달라고 연락이 왔다”며 남북교류와 대북 인도적 지원에도 큰 관심을 표시했다.

미국에서 20여년 목회활동을 했고 방북 경험이 세 번이나 있는 이 목사는 한반도 이슈에 누구보다 민감했다. 그는 또 집권층을 향해 잘된다고 생각할 때 몸을 낮춰 반대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이전 정부와 똑같은 길을 갈 것이라며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교회창립 60주년과 사역 10주년을 맞아 국민일보, 중앙일보, 파이낸셜뉴스에 게재된 이영훈 담임목사에 대한 인터뷰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이영훈 목사의 약력: △64세 △연세대.한세대 신학 학사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대학원 석사 △템플대 대학원 종교철학 박사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 목사 △한세대 신학과 교수 △미국LA나성순복음교회 목사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한국교회총연합회 공동대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남북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특별히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를 통한 중재 필요성도 강조해 왔다. 왜 그랬나.

“저로서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아쉬움이 있었다. 미국과의 연결 고리가 조금 약화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자칫 미국에서 보기에 우리 정부가 미국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할 수 있으니까.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는 기독교 신자가 많다. 그래서 얼마전 미국에 갔을 때도 제가 그분들에게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남북대화 채널을 지지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저뿐 아니라 김장환 목사님(극동방송 이사장), 김진표 의원(더불어민주당 기독신우회 회장) 등도 많은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동령도 기독교 신자가 아닌가.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장로교 신자다. 미국개혁교회 소속인 마블합동교회가 트럼프 가문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년전 기독교 신자가 됐다. 폴라 화이트라는 여자 목사님이 TV에서 설교하는 걸 보고 감동을 받고서 ‘저분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화이트 목사님을 만난 트럼프는 기독교 신자가 됐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두말할 나위 없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3월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여기까지 온 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큰 힘이 됐다. 그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영훈 목사는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중재역할을 잘해서 ‘한미동맹 강화와 북한의 핵 포기’라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목사님은 북한도 여러차례 방문하지 않았나.

“지금껏 세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북한 지도자들은 ‘다른 건 다 괜찮다. 딱 두 가지만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첫째가 자기들의 지존(김정일 부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둘째가 핵 문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만큼 북한은 강경한 입장이었다.”     
▲ 세차례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이영훈 목사   

-그러던 북한이 비핵화를 거론했다.

“그건 큰 변화다. 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대화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핵 보유를 계속 강조함으로써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냈다. 북한은 이번 북·미 대화를 통해 굉장히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취해야 할 스탠스는 뭔가.

“북·미간 어느 쪽에도 소홀하지 않게 그들의 마음을 얻어내야 한다. 한미동맹은 강화하면서, 남북관계는 더 밀접하게 가야 한다. 그 점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 아마도 우리 국민이 ‘이거 너무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게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더 잘 사는 ‘큰 집’이다. ‘작은 집’에 많이 베푼다는 마음으로 지원하면 된다. 우리의 경제력과 북한의 노동력이 합해지면 우리나라에 제2의 전성기가 올 수 있다. 그 도약의 발판이 통일이다. 통일이 돼서 인구 8000만 명에,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5만 달러 수준이 되면 세계 5위권이 가능해진다. 너무 급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늦추어서도 안 된다. 한 계단, 한 계단씩 추진해야 한다.” 

이영훈 목사는 ‘흥부전’ 이야기를 꺼냈다. “형인 놀부가 흥부에게 미리 나눠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저는 우리가 다리가 부러진 제비까지도 돌보았던 흥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베풀고 나누면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한 민족이니까. 북한과 우리 사이에 이념이라는 벽이 있지만, 서로 대화와 교류를 통해 그 벽을 넘어야 한다.”  

북한의 평양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짓다가 중단된 심장병원이 있다. 지난 10년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종교계의 남북교류도 끊어졌다. 병원 공사는 3분의 2가량 진행된 상태였다. 
▲ 평양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짓던 심장병원이 있다. 공사는 3분의 2가량 진행됐다. 사진=여의도순복음교회       

-왜 북한에 심장병원을 짓게 됐나.

“김일성 주석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북한에는 심장전문 병원이 없다.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 주민을 위해 심장병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평양에 조용기심장병원 공사를 시작했다. 3만3000㎡(1만평) 부지에 8층, 260병상 규모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공사가 멈췄다. 북측이 강하게 희망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두번이나 공개석상에서 약속받았다. 공사를 재개하면 6개월 후에 완공할 수 있다.공사가 끝나고 의료 기자재를 투입하면 개원을 할 수 있다. 의료진도 다 준비돼 있다. 세브란스에서 은퇴한 의사 분들을 모셔서 6개월에서 1년 정도 머무르면서 현지 의료진을 교육하면 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면서 북한 선교를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일이다.”    

-일방적인 북한 퍼주기 비판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북한에 아무리 퍼줘도 그 인프라는 대한민국 통일된 체제 속에 들어온다. 먼훗날로 보면 투자다. 투자는 우리가 선점하는 게 낫다. 그러지 않으면 막대한 북한 지하자원을 노리는 중국이 치고 들어온다. 북한을 위해 돕는 건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볼 수 있다.”

-대북활동의 장기목표가 있을 것 같다. 

“인도주의적 길을 열어놔야 북한에 복음 들어가는 게 도움이 된다. 진정한 통일은 사상적 괴리를 좁히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괴리를 무너뜨리는 힘이 신앙이다. 김일성 사상은 상당부분 기독교에서 차용됐다. 북한이 남한과 같이 한민족이라는 걸 체험할 수 있으려면 북한에 기독교가 들어가 신앙으로 벽을 허물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 신앙과 부딪힐 때 무너진다. 복음이 북한에 먼저 들어가 해방 전 있었던 3500개 교회가 재건되면 진정한 통일의 날이 올 수 있다.” 

-지금 전세계 시선이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세번이나 방북 경험이 있으신데,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나. 

“동질성 회복이 우선 필요하다. 김일성 전 주석은 지금도 북한에선 신(神)이다. 완벽히 통제된 사회인데, 평양을 벗어나면 또 다른 세계다. 도로 상태부터 다르다. 지금도 산에 있는 나무를 마구 베어 집에서 불을 땐다. 그들의 가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제 국제사회가 북의 가난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북·미 회담 후 많은 구제·구호물자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평화에 대한 희망은 있다고 본다."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이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한국교회는 짧은 기간 선교 강국으로 급성장했다. 성장 이면엔 끊임없는 분열의 아픔이 있다. 교회 분열부터 극복하고 북한교회 재건을 논의해야 한다. 최근 교계 지도자들을 만났는데, ‘이대로 북한에 들어가면 북한교회도 사분오열된다. 모든 교단이 하나인 캐나다교회처럼 하나 돼 북한에 들어가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너도나도 북한에 가서 깃발을 꽂으려 하면 안 된다. 북한교회를 재건하고 이단의 진출을 막으려면 교계가 하나돼야 한다. 북한구호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지혜롭게 접근해야 한다. 나무 심기와 200개 군에 보건소와 노인요양병원, 장애인 병원을 건립하는 등 피부에 와닿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목사 “순복음 구원신앙 바탕으로 섬김·나눔의 시대적 요청에 응답”    

-교회 창립 60주년이 한국과 세계교회사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하면서 교회 성장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교회는 한국의 발전사와 궤를 같이했다. 일례로 60·70년대 고난의 시대 조 목사님은 긍정의 신학으로 전국민에게 ‘할 수 있다, 해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세계적으로 성령운동을 주도했다. 지난 60년간 교회는 끊임없이 시대적 요청, 부름에 응답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그 자체로 기적이다. 담임목사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다. 신앙은 인간의 이성으로써 이해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측면이 있다. 순복음교회는 긍정적인 신앙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나님 축복으로 나아간 희망의 신앙이 있었다. 기존 장로교회가 준엄한 하나님 목소리를 강조했다면, 조용기 목사님은 위로와 격려의 하나님을 전했다. 구약의 권위보다 신약의 예수님 사랑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런 정신이 교회 정체성이 됐다."

-조 목사가 설파한 오중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서울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아무리 천국 이야기를 해도 의미가 와닿지 않았다. 가난에 굶주린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 천국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조 목사님이 삼중축복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복음은 실제로 그들의 영혼을 잘되게 했다. 범사가 잘되고 육신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처럼 기독교 복음은 하나의 종교적 메시지에 그치지 않는다. 삼중축복은 대조동에서 서대문으로, 다시 여의도로 이전하며 십자가 대속을 통한 5가지 복음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구원의 메시지, 십자가 체험을 통한 성령충만, 신유의 은혜, 범사의 축복, 천국과 재림의 오중복음이다.”

-세계 오순절 은사운동의 흐름은.

“세계 교회의 계열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에큐메니컬 계열인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중심의 복음주의 계열, 또 하나는 오순절 계열이다.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 계열이 각각 6억명씩 되는데, 진보와 보수 양쪽을 아우르는 공통분모인 오순절 계통은 6억명이다. 하버드대 하비콕스 교수는 1995년 저서 『하늘에서 내린 불』에서 21세기 교회는 오순절 교회가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책 11장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2009년 『종교의 미래』에서도 같은 얘기를 했다. 빈슨 사이난 박사도 이에 동조했다. 신학자 홀렌 베거 교수는 20세기말 오순절교회가 2억명 넘는 최대의 기독교 그룹이 된다고 전망했지만 실제론 6억명이 넘었다.”    

이영훈 목사는 연세대 신학과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철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순복음 신학을 꿰뚫는 것은 조 목사의 오중복음(중생·성령·신유·축복·재림) 삼중축복(영적·물질적·육체적 축복), 4차원 영적세계(생각·꿈·믿음·말)를 신학적으로 직접 정립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단 논쟁이 붙었을 때도 국제신학연구원장을 맡아 오해를 풀었다. 이 목사는 또 CGI(국제교회성장연구원) 아시아리더스서밋 등을 통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도 하고 있다.
▲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영훈 목사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기독교 신앙은 어때야 하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른 혼란은 영적 황폐함을 가져온다. 사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여러 가지 갈등을 성령운동의 역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오순절 신앙은 개인의 구원 축복이 사회 구원, 생태계 구원까지 뻗어나간다. 진정한 신앙 신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구체화·실제화돼야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사회 이슈 해결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아는데.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책임 소재를 추궁하거나 누구를 비난하는 일에 앞장서지 않았다. 대신 절망에 빠진 분들을 찾아갔다. 실제로 안산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꿈과 희망을 주고자 장보기 운동을 펼쳤다. 우리 교회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고 교회 내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지난 6년간 2692가구에 총 24억2600만원을 지원했다. 첫째 자녀 출산 시 50만원, 둘째는 100만원, 셋째부턴 200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훗날 한국사회의 거대한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사회가 유지되려면 매년 80만명을 출산해야 하는데 37만명으로 내려앉았다. 이렇게 가다간 대학 중 3분의 1이 문을 닫고 노동력마저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경쟁력이 떨어져 국가 미래가 어두워진다. 정부가 124조원을 쏟아부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이론만 있었지 실제 현장에 투자하지 않은 것이다.”

-낙태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중·고등학교를 중퇴하는 청소년이 매년 7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30만∼40만명이 방황하고 있다는 말이다. 성윤리가 무너지면서 동거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임신한 아기를 책임지지 못하다 보니 낙태하는 경우가 많다. 공식적인 낙태는 17만건이지만 전문가들은 3배 이상 많을 것이라 추정한다. 낙태를 막고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줘도 저출산 문제는 극복된다.”

-젊은이들의 교회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우려스러운 현실에 대한 대안은.

“교회학교의 50∼60%가 무너졌다. 한국교회가 시대 변화에 대해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차세대의 관심을 다시 교회로 돌릴 것인가에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6월 준공되는 비전센터 전체를 차세대 육성을 위해 사용한다. 한국교회는 K팝처럼 청소년에게 매력적인 교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공동운명체가 돼 대책을 개발해야 한다.”

-교계 연합단체가 4개나 돼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떻게든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 두 축으로 가야 한다. 진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보수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기독교연합이 하나로 가야 한다. 정부도 기독교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3개 보수단체는 토를 달지 말고 무조건 하나 돼야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인연을 말씀해 달라.

“4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우리 가족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948년 북한을 탈출했다. 할아버지는 1949년 8월 전라도 광주에서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부 책임자의 부탁을 받고 1950년 1월 제주도로 건너가 교회와 기도처를 세웠다. 거기서 2년간 목회하고 부산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을 도왔다. 우리 가족은 1964년 서울에 와서 서대문 로터리 부근 냉천동 45번지에 살았다. 그때 조 목사님이 41번지에 사셨다.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서대문중앙교회(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해 새벽기도를 새문안교회가 아닌 서대문중앙교회로 나가셨다. 조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시고 ‘젊은 목사가 능력 있고 말씀에 은혜가 넘친다. 우리 가족 모두 교회를 옮기자’고 하셔서 그때부터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젊은 시절 조용기 원로목사는 어땠나.

“내가 10살 때 조 목사님은 총각 목사님이었다. 구슬치기를 하며 놀 때 톡 치며 지나가시곤 했다. 조 목사님이 매년 교회학교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넷째 날 강력한 성령체험을 했다. 그때가 1967년 2월인데, ‘지금부터 평생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은혜받고 지난 55년간 조 목사님 아래서 자랐다. 조 목사님의 신앙과 신학이 뼛속 깊이 스며있다.”

-이 목사에게 조 목사는 어떤 분인가.

“조 목사님의 신학은 ‘성령체험의 역사’와 ‘절대 긍정의 믿음’이라는 두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성령체험의 역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이라면 절대 긍정의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유의지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게 순복음 신앙이다. 성령과 믿음의 역사는 내 신앙 기초다. 조 목사님은 영적 스승이자 영적 아버지 같은 멘토다. 목회 롤모델이다.”
▲ 이영훈 목사는 “오순절 순복음 신앙은 ‘성령체험의 역사’와 ‘절대 긍정의 믿음’이라는 두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두 가지 조화를 통해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용기 원로목사는 영적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멘토, 목회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이영훈 목사는 기독교의 본질을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 사랑의 실천이 바로 희생과 나눔, 그리고 섬김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부활’이 필요하다. 어제의 절망도 뛰어넘고, 내일의 절망도 뛰어넘게 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런 부활은 희생과 나눔, 섬김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제 남북 관계에서도 그런 힘이 필요하다.”  

지난 1월 이영훈 목사는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마틴 루터 킹 목사 50주기 추모예배’ 때 강사로 초청받았다. 해외인사로서는 그가 처음이었다. 이 목사는 “킹 목사가 생전에 링컨기념관 앞에서 연설했다. 흑인과 백인이 손잡고 한자리에서 식사하는 꿈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믿지 않았다. 그런데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와서 그 꿈이 이뤄졌다. 전세계에 자유와 차별이 없기를 바랐던 고인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좌중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박수 말미에 이 목사는 “우리 한국인도 꿈이 있다”고 덧붙였다. 킹 목사가 설교에서 인용했던 이사야 40장3~5절 말씀을 언급했다. “전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국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언젠가 통일이 이루어지는 꿈이 있다.” 그러자 다시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한국의 정치 상황은 어느 때고 편안한 시절이 없었던 것 같다. 이 때문인지 한국 사회는 늘 고단하다. 

“지금 정부에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요즘처럼 어렵고 힘든 때가 없다는 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잘 만들어진 경제지표가 전부가 아니다. 최근 무허가촌, 서울역 쪽방촌으로 집중 심방을 다녔다. 쪽방촌 방은 두세 사람 앉으면 끝인 곳이다. 탈출구도 없어, 불이 나면 방법이 없다. 정부 복지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곳곳이 사각지대다. 정부가 이런 걸 모른 척하고 있다. 빽 없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있는 게 정치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 어떤 해법이 있다고 보나.

”진보·보수, 동서, 노사 갈등과 분열, 부의 양극화 문제는 정말 심각한데, 정치인들은 교묘하게 이를 이용한다. 지금은 완전 좌클릭해서 여론몰이를 하는데, 나중에 역풍이 온다. 계속 보수가 죽을 쑤고 있지만 영원히 좌가 우위일 순 없다. 낮은 이들의 편에 서지 않으면 집권층은 위기에 봉착한다. 지도자들은 잘될 때 반대편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이런 쓴소리를 놓치면 무너진다.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진짜 힘은 다 내려놓을 때 더 강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평소 주장해온 부자들의 사회환원 캠페인과 비슷한 이야기로 들린다.

”미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가 된 건 기부문화 덕분이다. 세계적인 부자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이런 분들은 2010년부터 재산 50% 내놓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측에 건강하실 때 매년 2조원씩 사회를 위해 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 있다. 우리 대기업 총수들이 재산 절반은 아니어도 10분의 1만이라도 사회에 내놓으면 정말 우리나라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 오너들이 이런 제안을 잘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미국에서 이런 게 가능한 건 기독교신앙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섬김, 나눔 정신이 있으니까. 그리고 기부에 대한 사회혜택도 체계화되어 있다. 우리도 그런 구조로 가야 한다. 삼성, 현대차, SK가 본을 보이면 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최태원 회장은 조만간 만날 예정이다. 앞장서서 이런 걸 하시라고 말할 작정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이렇게 나서면 사회로부터 절로 존경을 받게 된다. 재벌해체론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건 부의 편중 때문이다.“  
▲ 이영훈 목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난제들에 대해서도 종종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이영훈 목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난제들에 대해서도 종종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최근 불거진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이것은 시대적 요청이다. 가부장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 그런 권력구조에서 희생됐던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돌파구 없이 맴도는 청년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에서 청년 실업 문제를 놓고 노사가 함께 의논해야 한다. 회사만 애를 써도 안 된다. 노조가 함께 배려해야 한다. 청년을 위한 실업수당도 대폭 좀 늘려주고, 청년 일자리 창출도 많이 해야 한다. ‘귀족 노조’라고 비판받는 기득권층도 있다. 이분들도 자기희생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앞으로 노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청년에 대한 배려는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목사는 ‘스타벅스’를 예로 들었다. “미국의 스타벅스는 굉장히 짧은 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거기에 ‘섬김’의 코드가 있다.”  

-스타벅스에 섬김의 코드라면.

“스타벅스는 모든 종업원과 주식을 나누어 가졌다. 그러니까 회사의 구성원이 모두 주주다. 다시 말해 주인이다. 회사가 수익을 내면 어찌 되겠나. 모두가 배당을 받는다. 그러니 오너만 회사의 주인이 아니다. 직원 모두가 자부심을 갖고, 아주 성실하게 일을 한다. 자신의 회사니까. 뿐만 아니다. 스타벅스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들의 의료보험 비용까지 대주었다. 그건 파격적인 처우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사람들은 부(富)를 ‘나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소유하고, 축적하려고 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다르게 말한다. 이 땅의 부(富)는 하나님께서 영구적으로 쓰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뭔가.

“우리가 할 일은 그 부를 나누는 것이다. 왜 그렇겠나. 하나님께서 나누라고 주신 거니까. 세계적인 부호인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지금 손을 잡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재산 절반 내놓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부자들을 향해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자며 운동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 용감하게 그 말을 꺼내면 좋겠다. 과감하게 절반을 환원하고, 정부는 또 그 환원에 대해 과감한 혜택을 주면 된다.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어떻게 ‘헬조선’을 벗어날 수 있겠나.”  

-미혼모 지원 사업도 추진 중인가.

“그렇다. 우리 사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참 많다. 전국에 미혼모가 3만5000명쯤 된다. 이들이 하루에 5000원 내는 여관방에 살면서 아이를 놔두고 돈벌이를 나간다. 제가 물어봤더니 한 달에 30만원만 있으면 이분들이 돈벌이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 올해는 저희 교회가 나서서 미혼모들을 위한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사실 나라가 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 표만 얻으려 하지 말고,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곳을 도와 달라는 말이다. 대책도 세워주고 돈을 지원해 달라는 이야기다. 늘 아쉽다.”

-어떤 게 아쉬운 건가.

“우리 지도자들 중에 미래를 말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들이 없다는 거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이다. 정치 현안을 놓고 정쟁만 벌인다. 똑같은 이슈인데도 정권이 바뀌면 찬반이 뒤바뀐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기존의 정책들이 부정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상처에 대해 복수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념논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지향적으로 갈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한다.”  

이 목사는 이러한 지향을 ‘영적인 긴장’이라고 표현했다. 살다 보면 영적 긴장 상태를 늦출 때가 있다고 했다.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든지, 아니면 내가 ‘성공’이라고 하는 꼭짓점에 섰다든지 할 때다. 그럴 때 사람들은 초심을 잃는다. 초심을 잃어선 안 된다. 누구나 초심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을 잃게 되고,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재판에 넘겨진다. 그 후임자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가 영적인 긴장을 늦추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

“지도자는 국민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에서 처칠이 비상내각을 구성해 영국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듯이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에는 우리 정치인도 여야를 뛰어넘어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런 준비 없이 통일 시대를 맞이하면 안 된다. 내년이 3·1운동 100년이다. 100년 전에는 좌파와 우파가 따로 없었다. 민족이 하나가 돼서 비폭력 저항운동의 대물결을 이루었다. 그때처럼 정치인들이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작은 어땠나.

“저희 교회는 은평구 대조동의 작은 천막교회에서 시작해 서대문을 거쳐 1973년에 여의도로 옮겼다. 그때만 해도 여의도는 국회의사당을 제외하면 허허벌판이었다. 교회 건너편에는 시범아파트 단지가 하나 있었다. 교통문제도 심각했다. 시내버스가 마포대교만 건넌 뒤에 바로 회차할 정도였다. ‘마포종점’이란 말도 있던 시절이다. 버스가 거기까지만 왔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순복음교회가 여의도에 교회를 설립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떤 선택이었나.

“결과적으로 오늘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있게 한 결정이었다. 순복음교회가 여의도 시대를 열면서 10만 신도, 20만 신도를 돌파하면서 세계 최대 교회가 되는 성장을 이루었다. 돌아보면 여의도 시대를 연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여의도청년장학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정부도 못하는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를 찾아가 봉사하는 일이다. 일종의 섬김이자, 나눔이다.  

“중·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떠도는 청소년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무려 40만명이다. 버려진 아이들이 자라나는 보육원이 있는데 18세가 되면 무조건 이곳에서 나와야 한다. 나올 때 이 아이들에게 정착금 명목으로 정부가 250만원씩 지급한다. 10년 전 액수인데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취업할 때까지 도와줄 집이 필요하다. ‘여의도청년장학관’ 프로젝트는 만 18세가 넘어 보육원을 퇴소하는 청년들이 교육을 마치고 취업할 때까지 주거 걱정을 덜어주는 복지 사업이다. 정부의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세밀하게 돕는 보완 역할을 해 박수를 받고 있다.”  

-교회 창립 60주년기념 슬로건 '고난과 영광'의 대표적 장면을 역사에서 찾아본다면.

“1980년대 초반 간암을 앓던 장로교회 장로님 한 분을 조용기 목사님이 기도해 잠시 회복된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 후 10년간 예장통합 측과 사이비 논쟁을 겪었다. 결국 긴장관계는 완전히 풀렸지만 그 경험은 고난이었고 동시에 영광의 발판이었다. 10년 장로교측 견제로 우리는 신학적 정비를 할 수 있었고, 대형교회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고 본다. 10년 갈등은 결국 영광이 된 셈이다. 고난 중에 내실이 다져진다. 고난은 축복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 

-교회의 향후 10년 비전과 목회자로서 갖고 있는 목사님의 비전은.

개별 성도들의 신앙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를 향한 섬김, 나눔, 희생에 앞장서고 싶다. 사회가 분열과 갈등으로 힘든 상황일 때 교회는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자는 게 우리 비전이다. 그러면 사회는 따뜻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지금은 민생경제가 붕괴돼서 민초들이 너나없이 어려움을 호소한다. 교회마다 사회변화를 위한 운동에 나서야 한다. 초대교회 안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나눔을 실천했기에 그런 거다. 무엇보다 저는 통일시대를 준비해나가고자 한다. 남북을 하나로 묶는 데는 신앙의 힘만한 게 없다. 우리 기독교 신앙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북한 선교를 위해 적극 나서고자 한다.”   

-한국교회와 사회에 부탁하고 싶은 말씀은.

“한국사회가 과거의 어두운 부분, 절망을 너무 많이 이야기한다. 특히 매스컴이 그렇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부터 꿈과 내일을 이야기해야 한다. 꿈과 희망은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만든다. 어두운 과거가 미래를 만드는 게 결코 아니다. 물론 과거에 대한 정리는 필요하다.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꿈과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천막교회에서 세계 최대 교회로… 가난한 서민과 함께한 60년
뜨거운 성령운동 목회로 신도 급증… 年 350억원 구제예산으로 '큰 나눔'


"정말 너무도 가난하고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던 시대였습니다. 저는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천막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었지만 '세계 선교'의 꿈을 꾸었습니다. '안 된다' 생각하면 진짜로 안 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면 됩니다. 희망과 꿈을 잃으면 안 됩니다."(조용기 원로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 최대 교회이지만 '부자 교회'가 아닌 '서민 교회'입니다. 지금도 성도님들은 서민이 대부분입니다. 앞으로도 가장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서 섬기고 돕는 서민 교회로 남을 것입니다."(이영훈 담임목사)  

“더 낮아지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 꿈과 희망을 주는 교회” 다짐

여의도순복음교회가 5월18일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이에 조용기(82) 원로목사와 이영훈(64) 담임목사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 꿈과 희망을 주는 교회'를 다짐했다.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58년 5월18일 서울 은평구 대조동 최자실 전도사(조용기 목사의 장모)의 집 거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조용기 전도사, 최 전도사와 자녀 그리고 밭일을 하다 비를 피해 들어온 주부 등 5명이 사과 상자를 보자기로 덮은 강대상을 놓고 예배를 드렸다. 이어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 지난 60년간 세계 개신교계가 주목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신드롬'의 출발이었다.
▲ 60년 전 서울 대조동에서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던 시절의 여의도순복음교회(오른쪽 큰 사진)와 현재의 교회 전경


당시 개신교계와는 달리 창립 초기부터 방언(方言:성령의 힘으로 말한다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말)과 신유(神癒: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를 강조한 조 목사의 '뜨거운 목회'는 신자 수 급증으로 이어졌다. 창립 후 3년 만에 서대문로터리에서 부흥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교회를 이전했고, 1973년 여의도로 교회를 옮겼다. 당시 여의도는 국회의사당과 시범아파트 외엔 허허벌판이던 시절이다.

교회가 창립하던 1958년 당시 한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80달러. 극빈국(極貧國)이었다. 전쟁의 상흔도 남아 있었다. 조용기 원로목사는 "1958년 당시 서울 불광동 일대는 '산다'고 말하기에 민망한 정도로 가난했다"고 말했다.창립 후 순복음교회가 첫걸음을 내딛던 196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한국 경제가 기지개를 켜던 시점이었다. 전국의 농촌에서 서울로 시민들이 몰려오는 이농(離農)과 도시화가 시작됐다. 1970년대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이 벌어졌고, 전국 각지에 공단(工團)이 조성되면서 수출 드라이브가 걸리며 '한강의 기적'이 시작됐다. 1977년엔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다. 이 시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어렵게 뿌리를 내리는 이들에게 조용기 목사는 '희망'을 설교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잘살아보세'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뭉칠 때 조 목사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설교했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등 기업인들이 세계 시장을 누빌 때 조용기 목사는 지구 120바퀴 거리를 날아 세계 선교에 나섰다.대형 교회의 상징이 되었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큰 교회, 큰 나눔'을 실천하려 노력한다. 선교와 구제 사업에 쓰는 예산만 연간 350억원. 교회가 직접 나서기도 하고, 1999년 설립한 국제 구호 개발 NGO(비정부기구) 굿피플을 통해서도 나눈다. 이영훈 목사는 "초심을 잃지 않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서민 교회, 더 낮아지고 나누는 교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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