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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한국불교와 민간신앙의 혼합현상
“한국사회는 단일종교를 가져보지 않은 다종교 국가”
기사입력: 2018/06/07 [19:4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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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는 한국정토학회 학술대회에서 ‘한국불교와 민속신앙’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장정태 논설위원이 발표한 논문 ‘한국불교와 민간신앙의 혼합현상’을 요약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모든 종교는 기복적 요소 있다‘는 주장에 공감했으며 총평자인 동국대 총장 보광스님은 장 박사의 발표내용을 호평하는 동시에 삼국유사 연구에 대해 ’전생에 일연스님 시봉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편집자 주)

▲ 지난 3일 개최한 한국정토학회의 ‘한국불교와 민속신앙 세미나’에서는 장정태 박사의 ‘불교와 민간신앙의 혼합현상’ 등 논문 6편이 발표됐다.     
 
신크레티즘(syncretism)이란 종교혼합,습합 제설혼효,종교적융합,종교융합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한글 표기시 연구자에 따라 용어 선택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제민 신부는 『다의 발견』(우리신학연구소,2009)에서 일관되게 신크레티즘이라고 영어식 한글 표기를 하고 있다. 본 논문은 다양한 연구자들의 표기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가급적이면 본 논문을 접하는 연구자들의 혼란을 최소화 하기위해 syncretism을 함께 표기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방법은 학술발표에 적합유무를 떠나 용어가 주는 선입견에 대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습합이란 용어에 대한 왜색논쟁에 휩싸인 경험이 있는 본 연구자의 자구책 임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학술용어로 부적합하다는 주장에 좌절을 할 때 크게 위안이 된 것은 노자 41장에 나온 “상사는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중사는 도를 들으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으며, 하사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웃지 않으면, 족히 써 도라 하지 못한다.”지금 내가 올바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나의 잘못과 함께 하근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란 생각으로 살았다. 인문학에 관한 일본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종교연구에서 습합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삼교회통,신불습합(義江彰夫저 『神佛習合』,岩波新書,453)이 그것이다.  

▲ 신라시대 혼합사상을 원효는 대승기신론에서 화쟁사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신라시대 혼합사상을 대승기신론에서 화쟁사상으로 설명하는 원효

 

학계의 부정적인 주장에도 습합(혼합)은 종교간의 만남, 종교와 문화의 만남을 서술하는 중립적이거나 긍적적인 함축을 담은 학술용어로 사용하고 발전시킨 학자들 역시 존재한다.

우리와 같이 다종교사회는 종교간 갈등이 잠복되어 있다. 이와같은 사회에서 혼합주의는 종교간 공존의 모범으로 중요성을 지닐 수 있다. 혼합현상은 교리적 논리나 정치적 의도에 의해 형성되기보다는 종교의 기초를 이루는 물질적 현실성에 기반을 두고 일어나는 현상이다....전통적인 마을신이 있던 자리에 모셔진 성인의 유골, 동일한 의례 안에 존재하는 다른 요소들, 교통의 요지에 다른 신들이 함께 모셔질 수 밖에 없는 사정 등의 혼합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마을신앙에 행해지던 당산,당산나무가 위치해 있던 마을 어귀에는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는 주제의 논문으로 관서대학에서 주최한 제2회 동아시아종교연구포럼‘ 전쟁과 종교연구’ 에서 「마을 지킴이 신앙 당산신앙」을 주제발표 했다.

오순절 교회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순복음 교회와 무교의 혼합을 지적하고 있다. 하비콕스는 ‘일부 한국의 목사들은 질병의 원인이 생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고 죽은 친척이나 또 조상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한국 오순절 교회가 예배속에 한국 무속의 귀신들림을 흡수함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고 지적하였다. 한국인들이 전통적인 유교,불교,도교,무교에 존재하는 유사한 요소들을 통해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일어난 혼합현상이 기독교 성공에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고 정대위는 주장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혼합주의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최치원을 비롯하여 김시습이 삼교의 융화를 지향하였고, 휴정은 '삼가귀감(三家龜鑑)'을 저술해 상이하게 이해되었던 삼교의 공통분모를 모색한 것은 어떠한 종파나 이질적인 사상체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적 심성이 면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아울러 원효의 원융회통(圓融會通), 의천의 선교합일(禪敎合一),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 율곡의 이기지묘(理氣之妙) 등은 서로 상반된 상대를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면서 화합과 평화를 지향한 선각자들의 노력을 가늠하게 한다.

 

마을지킴이 당산 터에는 교회, 조왕신앙은 새벽기도, 안택고사는 목사의 신방으로 습합

 

‘하나’의 종교-그리스도교 또는 이슬람-에 익숙한 유럽과는 달리 한국사회는 처음부터 다종교사회이다. 유럽이 단일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하나의 사회를 강조한 데 반해. 한국은 여러 종교가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유럽이 사회의 통합을 위해 하나의 종교를 필요로 하고 그 때문에 다양한 종교를 관용할 수 없었던 데 반해. 한국은 사회의 통합을 위해 하나의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종교간 만남과 교환이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그 만남 위에서 삶이 펼쳐졌다.

한국사회에서 종교적 혼합현상으로 다종교사회인 것은 단순히 여러 종교가 공존한다는 현상을 넘어 한 종교 안에서 여러 종교가 서로 만나고 있다는 데서 가장 잘 드러난다. 다른 종교와 혼합되지 아니한 ‘순수한’종교란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다.....한국의 종교다원현상은 지리적인 의미를 넘어 인간학적인 의미로도 이해된다. 이 사회에 사는 인간들(의 삶)이 종교다원적으로 형성되었다는 말이다. 한 인간 안에서 여러 종교가 만나고 있다. 이것은 유럽인에게는 불가능하다. 유럽에서는 한 인간은 그리스도인이든지 아니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인이 동시에 이슬람교도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불교신도이면서 동시에 무속인일 수 있다. 무속 현업자(현직 무속인)이면서 불교신자가 가능하다. 기독교 신앙인 동시에 무속에 의지하며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종교적 이중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어떤 특정한 신념 유형을 유지하게 될 때 그 유형에 입각해서 여러 종교 전통의 사상 내용들을 수용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혼합사상 내지, 혼합종교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 3대 신념 유형간의 삼각관계가 습합현상의 규범을 이루고 있다.

 

한국인은 단일종교를 경험하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단일종교를 가져보지 않은 다종교 국가이며 다원주의적 씬크레티즘사회다. 국내학계의 경우 습합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습합은 일본에서 사용된 용어라는 이중적 의식도 일부있다. 종교혼합 현상은 이전 종교가 지녔던 공간과 시간에 새로운 종교가 겹쳐지며 발생한다. 종교에서 이와같은 현상은 새로운 종교의 모습으로 변화라는 긍정적 논의도 있다. 특정종교를 신앙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로 개종 이후 내면에는 기존의 신앙을 간직한채 새로 신앙하게되는 종교현상도 보인다. 실례로 한국 기독교인 가운데 목사들의 신방을 요청하면서 안방에서 주로 기도를 요청하는 현상은 기존의 안택기도의 훈습이다. 새로 건축하면서 목사를 초청하여 기도를 청하는 경우 기존의 터 다지기라는 지경신앙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땅이 가지고 있는 기를 눌러주는 기도형으로 혼합주의라고 할 수 있다.

 

윤이흠은 다종교 사회속의 한국 종교현상을 “한국인은 인간관계에서는 유교적이며, 인생관은 불교적이며, 행동철학은 기독교적 사랑이며, 운명관은 무속적이다.”라고 한국인의 내면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단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혼합현상을 기독교 측에서는 새벽기도, 산기도, 제사에서 찾을 수 있다. 개신교의 평양대부흥회는 주기철 목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신앙활동이다. 기도원, 수련원 등이 주로 산에 위치해 있다. 특히 서울 평창동 문수봉을 중심으로 하는 개신교 목사, 전도사들의 기도행렬은 우리 전통적 산악숭배 신앙을 받아들인 것이다. 제사의 경우 진설이 아니고 추도식,추모예배 형식을 변질되었다. 위패를 설치시 신위란 문구를 삭제한다. 천주교에서 망자를 떠나보내며 자신이 다니던 성당을 찾는 의식은 마지막으로 교우들과 작별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노제에서 망자의 추억이 담긴곳을 찾는것과 유사하다. 지금까지의 예시는 일부 행위에 불과하거나 혹은 서양의 경우 교회소유 공원묘지에 안장되고 있으므로 성당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경우 선산, 납골 등 다양한 방법이 있으므로 성당을 찾는 것이 번거로운 의식일 수 있다. 그럼에도 성당을 찾는 것은 노제의 변형이다. 다수의 종교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절충적 변형을 보이는 것과 같이 불교에서도 민간신앙과 불교가 만나 새로운 민속불교(불교민속)를 만드는 절충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불교가 붓다에 의해 네팔에서 창교된 이후 전법을 통해 많은 민족과 국가에 포교되었다. 포교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종교,신앙과 혼합의 형식을 통해 또 다른 지역으로 전도되었다. 수 차례 지역과 국가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유형의 불교가 되고 있다. 이와같은 혼합현상은 결국 본래 불교의 모습과 혼합된 종교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한국불교의 모습 역시 한반도에 전래되면서 불교 본래의 모습과 민간신앙적 요소가 혼재한 불교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한편으로는 민간신앙 역시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과 함께 불교와 혼합된 새로운 민간신앙의 모습 재발견되었다. 본 논문에서 연구자는 의도적으로 ‘한국불교와 민간신앙의 혼합현상’을 표제어로 선택했다. 한국불교 현상속에 내재되어 있으면서 우리 스스로 외면하거나 피하고 싶었던 주제다. 우리가 피하고 외면하는 동안 불교와 민간신앙의 경계는 얕아졌다. 어느 순간 그들은 함께 한 공간에서 신앙되고 있었다.

종교에서 순수성을 규정하기 어렵다.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규정되었을 뿐이다. 특히 종교적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형태가 교조의 가르침대로 행하고 있다는 신념이 강하다. 신자(도)들의 믿음을 이끌어주는 성직자들에 의해 이와같은 믿음은 확신이 되었다. 그런 집단일수록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해소시키는 능력보다 ‘기도의 응답’,‘성불 보았다(민간신앙)’,‘기도가 잘 되는곳’으로 신도(자)들을 인도하고 있다. ‘한국불교와 민간신앙’은 미신으로 분류되던 신앙과 불교가 혼합된채 존재 하고있는 현태적 현상을 논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말하는 미신은 없다. 유무형의 힘을 가진 집단에서 보기에 불편한 믿음이 있을 뿐이다. 그 믿음을 기복신앙으로 구분하고 경멸할 뿐 이다. 대다수 종교는 기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만 나의 믿음은 예외라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본 논문에서 주장하고자 한 것은 불교와 민간신앙 특히 불교에서 수용을 현장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그 모습은 늘 변화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유형으로 변하는지 그것은 지속적 관찰이 필요하다. 그 첫 모습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인의 신앙은 혼합과 병행 신앙이다

개별적 한국인의 신앙형태는 신크레티즘적 요소와 함께 병행 신앙적 모습도 일부 보인다. 병행은 여러 가지 일을 함께 어울러서 조화롭게 진행하여 이루어는 것으로 병진과 같은 뜻 (『예기』, 「예운편」)이다, 양도(兩道)가 어울러가나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원불교 사전) 나란히 같이 감,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아울러서 행하는것이라고 정의한다. 하나의 종교만 신앙하지 않고 두 세 개 종교가 편의에 의해 신앙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여자의 경우 시댁식구와 조화를 위해 일시적으로 다른 종교에 몸담는 일, 직장상사. 동료의 권유 등 사회생활상 필요에 의해 자신의 신앙과 또 다른 신앙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와같은 모습을 병행신앙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의 사례를 살펴보면 자신의 신앙과 다른 믿음의 남자와 사랑하여 결혼하게 되는 자매에게 가족의 화목을 위해 시댁의 믿음을 인정하면서 지금 당장 신앙생활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잘 지켜나가 자녀들만은 꼭 믿음을 찾아 주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위안을 준다. 일부 천주교 신자를 배우자로 만나는 불교집안 사람들을 살펴보면 어느 순간 모두 천주교 신자가 되는 예를 볼 수 있다. 신크리티즘과 병행의 신앙형태가 한국인의 종교생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삼국문화유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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