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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속도 조절 필요” KDI 경고음

양형모 | 기사입력 2018/06/08 [10:45]
KDI보고서, 2019·20년 15%씩 올리면 고용감소…최저임금 역습에 '알바가뭄'

“최저임금 속도 조절 필요” KDI 경고음

KDI보고서, 2019·20년 15%씩 올리면 고용감소…최저임금 역습에 '알바가뭄'

양형모 | 입력 : 2018/06/08 [10:45]
최저임금 인상의 정책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기 위해 내년과 내후년에 최저임금을 15%씩 올릴 경우 각각 9만6000명, 14만4000명의 고용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는 연구결과를 6월4일 내놨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서다.  

KDI가 추산한 고용감소 규모는 2000∼2004년 최저임금을 실질 기준 60 인상한 헝가리 사례를 다룬 관련 논문을 국내 상황에 적용한 결과다. 또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일자리 안정자금이 집행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추산했다. 이렇게 줄어드는 일자리는 대체로 최저임금 수준으로 고용되기 어려운 저임금 일자리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고 이를 통해 소비, 투자를 선순환시키겠다는 문재인정부의 이른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오히려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다. 이런 역설적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책연구기관이 밝힌 셈이다. 최저임금 속도 조절론을 주장하며 그동안 청와대 경제팀과 각을 세워온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보고서는 최저임금 수준이 급격히 상승하면 고용감소와 함께 저임금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 취업이 어려워지는 등 임금질서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이 내년에도 15% 인상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프랑스 수준에 도달하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속도를 조절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올해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존 국제 연구결과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는 최소 3만6000명에서 최대 8만4000명으로 추정됐다. 그렇지만 정부가 도입한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의 효과, 인구증가 둔화 효과 등을 고려하면 올해 4월까지 고용감소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KDI는 밝혔다. 하지만 세금으로 민간기업의 고용을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은 시장 원리에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높다.

이날 청와대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거듭 해명했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전날 문 대통령의 ‘90% 발언’ 근거로 ‘근로자 외 가구(근로소득자가 아닌 무직자·자영업자 등이 가구주인 가구)’를 제외한 근로소득 가구의 개인별 소득을 분석한 국책연구기관의 자료를 제시했다. 야권 등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의 소득감소 및 고용여건 악화 등을 고려하지 않고, 아전인수 격으로 정부에 유리한 통계를 근거로 삼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애초 대통령이 비근로가구까지 포함해 ‘90% 긍정적 효과’를 말씀하신 게 아니었다”며 “근로가구와 비근로가구를 나누고, 근로가구에서 90% 효과가 있다고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역습’… 10대 취업자 감소율 역대 최대
최저임금 오르자 해고 속출…4월 15~19세 취업자 28.6%↓…청소년 일자리 급감
    
    
“17세 여학생입니다. 3월부터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시급이 현재 7000원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6500원이었다가 두 달이 지나 500원이 오른 7000원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5월12일)

“2018년 최저임금이 오르며 1월까지만 일해 달라고 (해서) 해고됐습니다. 12월15일부터 1월15일까지 일했던 급여가 시급 6470원으로 계산되어 들어왔는데….”(1월19일, 아르바이트 포털 상담게시판 중)10대 청소년 취업자가 2017년 연말부터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청소년층의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6월6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4월 중 15∼19세 취업자는 18만9000명으로 전년 4월 취업자 26만5000명보다 7만6000명 급감했다. 취업자 감소율은 무려 28.6%로, 15∼19세 취업자 통계가 시작된 1982년 7월 이후 가장 큰 수치다. 10대 취업자는 2017년 9월 23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1% 증가한 것을 끝으로 10월부터 꾸준히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취업자 감소 폭이 12.3%를 기록한 이후 1월 13.2%, 2월 15.2%, 3월 10.7%로 10% 이상의 감소율이 이어지다가 4월에 30%에 육박하는 취업자 감소율을 기록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15∼19세 취업자 중 76.7는 임시·일용 근로자로, 이들이 가장 많이 종사한 업종은 도소매·음식숙박업(56.7)이었다. 10대 취업자 다수가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도소매·음식숙박업종에서 임시 일용직으로 근무하며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도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근로권익센터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 4월 발표한 ‘아르바이트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18세 청소년의 약 4명 중 1명은 최저임금 7530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 15∼18세 청소년 중에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의 경우 32.5%가 최저임금 7530원 미만의 시급을 받았다고 응답했고,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은 24.5%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만 19세 이상 성인(20.8%), 만 19세 이상 대학생(16.9%)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송하민 청소년유니온 위원장은“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 수가 많이 줄었고, 고용자가 청소년보다 성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청소년들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었다”며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이나 탈가정 청소년 등의 경우에는 나이를 속이거나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면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포함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증가한 결과로 보인다”며 “청소년 근로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노동연구원 "최저임금 영향, 다각도로 분석해 제출… 靑이 일부만 고른 듯"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청와대 홍장표 경제수석은 6월3일 "(한국노동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노동연구원은 자영업자와 실직자가 빠진 개인별 근로소득뿐 아니라 가구별 근로소득과 연령별 분석 등 다양한 분석 자료를 청와대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는 분석 결과만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5일 정부와 노동연구원 등에 따르면 청와대는 5월25일 대책회의를 갖고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 자료에 대한 추가 분석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날은 '하위 20%(1분위)의 소득이 역대 최고치인 8% 감소했고 양극화 지수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악을 기록했다'는 통계청 자료가 나와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논란이 일던 때였다. 이날 오후 청와대는 통계청에 원자료를 요청해 이에 대한 추가 분석을 노동연구원과 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했다.

이에 노동연구원은 토요일인 5월26일 A선임연구위원에게 통계청의 원자료를 전달하고 분석을 요청했다. A연구위원은 "근로소득 쪽을 집중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분야뿐 아니라 사업소득, 연령별 분석, 종사상 지위 변화 등 방대한 양의 분석 결과를 청와대에 제출했다"며 "일부러 특정 결과를 위해 데이터를 추출해 가공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구 단위로 임금을 보면 양극화가 벌어졌다는 점과 표본의 한계 등도 보고했다"며 "청와대 입장에선 다른 지표가 거의 다 나쁘게 나와 그나마 개선됐다고 말할 수 있는 개인 임금 분포를 앞세워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발언의 배경이 된 자료뿐 아니라 다른 분석 결과도 함께 설명이 되었더라면 오해가 적었을 것"이라고 말했다.A연구위원은 "시간이 촉박해 완성된 보고서로 정리하지 못하고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나온 중간 결과물들을 실시간으로 엑셀 형태로 보냈다"며 "앞으로는 이런 경우보다는 연구자가 완성된 형태로 연구 결과를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5월29일 "하위 20%의 가계소득 감소 등 소득 분배가 악화된 것은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노동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받은 이후인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통계를 보면 고용시장 내 고용된 근로자 임금이 다 늘었고 특히 저임금 근로자 쪽 임금이 크게 늘었다"고 말해 이틀 전과는 다른 인식을 보였다.

최저임금 노동계 우려 불식하고 속도조절 필요     

정부가 6월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을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산입 범위를 확대한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최저임금 대비 정기상여금의 25% 초과분과 복리후생비 7% 초과분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해당 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로 노동계는 ‘개악’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한 법에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은 “정권이 악법 중의 악법을 의결했다”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헌법소원 등은 물론 6월30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여는 등 투쟁 수위를 높인다는 계획이라 이른바 정부와 노동계 간의 ‘사회적 대화’가 경색될 것으로 예상된다.최저임금 개정안에 상여금 포함은 불가피하지만, 숙식비나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까지 포함한 것에 심히 우려된다. 복리후생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보전 수단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탓이다. ‘어떤 임금이든 월 단위로 쪼개 지급하면 최저임금으로 둔갑할 것’이라는 노동계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오죽하면 국회 환노위 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조차 산입 범위 논의 과정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22만원을 올려 주고 (산입 조정으로) 20만원을 깎자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언급했을까. 이 때문에 최저임금 산입 확대 이후 사업주들이 현물로 지급하던 복리후생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등의 ‘꼼수’를 막을 내용이 시행령 등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은 정부 내부에서도 격화했다. KDI가 4일 낸 보고서에서 “최저임금을 연 15%씩 올리면 2020년에는 고용 감소가 14만 4000명”이라고 밝히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에 불을 지폈다. 청와대가 ‘최저임금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주장한 직후의 국책연구소 발표여서 논란은 격화됐다. 결국 청와대 대신 이낙연 국무총리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모든 것이 나빠진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정확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최저임금 인상 부담으로 영세 자영업자 등이 고용을 줄이는 모습이 뚜렷하다. 여기에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도 있어 비정규직의 ‘고용 박탈’은 심화하고 있다. 임금이 오르면 근로소득은 늘지만, 일자리는 위축되는 게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는 저소득층의 소득 증진을 꾀하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란 대선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신호가 요란하다면 공약 실천에 매몰되기보다 다른 방안도 찾아야 한다. 인상속도 조절과 함께 근로장려금(EITC) 지원이나 노령층 기초연금 확대 등을 강화하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론과 짝을 이루는 혁신성장도 가시적 성과를 내야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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