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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천도교 2대 교조 해월 120주기
36년간 피신…강원 원주, 영월 등에 '최보따리 선생' 해월 최시형의 발자취
기사입력: 2018/06/08 [10:5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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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 피신…강원 원주, 영월 등에 '최보따리 선생' 해월 최시형의 발자취   

"평생을 산속으로 숨어 다니셨는데 죽어서도 이렇게 깊은 산 속에 계시네요."

일부 지역의 낮 기온이 33도까지 치솟아 올해 첫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 6월2일, 경기도 여주 천덕산 중턱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1827~1898) 신사(神師)의 묘소에 200여명이 모였다. 이곳에서 해월의 후손, 이정희 교령을 비롯해 천도교인, '동학기행'에 참석한 시민과 시민단체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참례식이 열렸다.

2018년은 천도교 2대 교조 해월 순도(殉道) 120주년을 맞는 해다. 해월은 1898년 4월5일 원주 송골에서 관군에 체포돼 같은 해 6월2일 한성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 6월2일 오전 경기 여주 천덕산 해월 최시형 묘소에서 순도 120주년 기념 참례식이 열렸다.    

◆'천도교의 어머니' 해월 최시형

참례식에서 천도교 최고지도자 이정희 교령은 "천도교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인 해월은 전국 200여 곳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면서 곳곳에 진리의 씨앗을 심었다"며 "'사람이 곧 하늘' (人乃天)인 길을 가기 위해 낮은 자세로 임했던 해월 신사가 없었다면 천도교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흔히 링컨을, 비폭력을 말할 땐 간디를 떠올리지만, 해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해월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고 세계에 확산시킬 시기가 왔다"고 덧붙였다.

경주 동촌 황오리에서 1827년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해월은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다. 제지소 등에서 일하다가 화전민 생활을 하던 해월은 35세였던 1861년 천도교 1대 교조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를 찾아가 동학에 입도하고, 2년 뒤인 1863년 2대 교조가 됐다. 관의 탄압을 받던 해월은 체포될 때까지 무려 36년간 첩첩산중으로 숨어 다니며 동학을 이끌었다.

시신은 처형 후 광희문 밖에 버려졌다. 동학교도들이 관군의 눈을 피해 송파에 임시로 매장했고, 2년 후 유골을 수습해 경기도 광주를 거쳐 천덕산에 안장했다.

윤석산 한양대 명예교수는 "겉보기에는 산속으로 떠돈 중늙은이였지만, 해월의 실천적 삶에 감동해 많은 이들이 따랐다"며 "종교를 떠나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귀한지 평생 가르치고 실천한 민중의 지도자로 오늘날과 같은 갈등과 혼돈의 시대에 그의 가르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올라와 참석한 허채봉 씨는 "동학이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 알고자 참례식에 왔다. 오는 내내 마음이 쓰렸는데 막상 와보니 묘소 진입로도 너무 부실하고 접근이 어려웠다"며 "동학의 역사가 새로 쓰이고 재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도교는 해월의 삶과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순도 120주기를 맞아 다양한 활동을 계획한다. 경주 황오리 해월 생가터 복원을 추진 중이며, 학술대회와 순례 행사도 열 예정이다.     
▲ 천도교 이정희 교령이 6월2일 묘소 참례식에서 해월의 사상에 관해 말하고 있다.     
 
◆부조리한 세상 향해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라’는 가르침 멈추지 않아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라(事人如天)’는 해월의 가르침은 강고한 신분질서와 교조화된 성리학을 사회질서의 기반으로 하던 조선에서 수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칼날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자신을 잡아들이려 혈안이 된 관군을 피해 해월은 방방곡곡을 떠돌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외침을 멈추지는 않았다. ‘인시천(人是天)이니 사인여천(事人如天)하라’는 천도교의 핵심 교리를 전한 곳이 이 마을에서였다. 천도교중앙총부 정정숙 사회문화관장은 “아녀자의 말이라도 공경히 듣고,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구체적인 가르침을 포함한 것이었다”며 “함부로 나무를 꺾지 말고, 새소리도 한울님의 소리로 여기라고 했으니 생태계의 중요성을 그때에 벌써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천도교의 역사가 집약된 곳이고, “이런 역사를 잘 알릴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개발해 나가겠다”(이장 윤경섭)고 계획하고 있지만 갈 길은 멀어보였다. 유적비 말고는 마을과 해월의 인연을 알려주는 것이 변변히 없고, 호굴은 말 그대로 산중에 있어 주민들조차 접근이 쉽지 않았다.                     
▲ 해월 최시형이 1년 정도 숨어 살았던 강원도 영월군 직동2리에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곳곳에 남은 피신 생활의 흔적   

해월의 발자취는 전국 각지에 남았다.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의 고산리는 해월의 사상을 계승하려고 한 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고산리 송골마을 버스정류장 옆에는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을 기리며'라고 쓰인 비석이 서 있다.

고산리 앞을 지나는 도로가에 세워진 이 추모비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을 만든 생명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이 1990년 세운 해월 추모비다. 무위당은 천도교인은 아니었지만 해월의 사상을 실천하고 복원한 인물이다.

추모비에는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을 기리며’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작은 보따리를 가지신 행장(行裝)으로 방방곡곡을 찾아 민중에게 겨레의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의 대도(大道)를 설(說)하시고…동고동락하셨기에 민중들이 선생님을 부르던 애칭”이라고 해월의 별명 ‘최보따리’에 대한 설명을 해두었다.

김용우 무위당 만인회 기획위원장은 "장일순 선생은 동학이 전봉준의 혁명투쟁으로만 이야기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해월의 사상을 말씀하셨다"며 "보따리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가 중요하다 하셨는데 아마도 진리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해월은 고산리 추모비 인근에 있던 원진녀씨 가옥에서 체포됐다. 
▲ 1898년 4월 해월이 체포될 당시 머물렀던 강원도 원주시 고산리의 원진여 집이 복원돼 답사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강원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 일명 ‘돌배마을’에도 해월의 흔적이 있다. 이 마을에서 해월은 1871년 10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머물렀다. 동굴에서 13일을 지내다가 박용걸씨 집에 기거했다. 해월이 몸을 숨긴 동굴인 ‘호굴(虎窟)’은 해월이 13일간 지냈던 곳으로, 호랑이가 굴 앞에서 해월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붙은 이름이다. 해월이 피신한 곳답게 산세가 험하다. 고추와 콩 등을 심는 밭은 경사가 심해 농기계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다. 이 마을에 단 한 마리 있는 소가 쟁기질로 모든 밭을 간다.

과거 동학교도들이 관군에 많이 희생돼 이 마을은 '핏골'이라고도 불렸다. 이장 윤경섭씨는 "해월이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을 이곳에서 폈다"며 "36가구 7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동학의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살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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