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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위반’ 단속유예와 개선점

양형모 | 기사입력 2018/06/22 [20:39]
‘주 52시간’ 내년 1월로 6개월 늦춰…현장 혼란 우려 커지자 일부 후퇴

‘주 52시간 위반’ 단속유예와 개선점

‘주 52시간’ 내년 1월로 6개월 늦춰…현장 혼란 우려 커지자 일부 후퇴

양형모 | 입력 : 2018/06/22 [20:39]

7월1일부터 주(週) 52시간 적용을 받는 근로시간 단축이 사실상 내년 1월로 미뤄졌다. 300인 이상 사업장 대상 시행을 열흘쯤 앞둔 가운데 현장 혼란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주 52시간 법 규정을 지키지 않더라도 단속과 처벌을 6개월 유예키로 한 것이다.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6월20일 고위 당·정·청(黨政靑) 협의회를 열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고 현장 연착륙을 위해 6개월간 단속과 처벌을 유예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6개월 동안 단속과 처벌 유예 제안을 했고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산업현장과 학계에선 "당초 계획대로 단속을 강행할 경우 혼란 등 역풍을 우려해 임시 처방으로 급한 불만 끈 셈"이라며 "더 늦기 전에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가 적용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최장 6개월 시정 기간을 주기로 했다.

정부가 이처럼 6개월 처벌유예를 결정한 것은 결국 국회가 졸속 입법을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 근로시간이 세계 최장 수준이라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도 같이 입법했어야 했다는 것이다.지난 2월말 국회를 통과한 근로시간 단축 법안은 노동계 출신 의원들 주도로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 당시 여야 합의안을 마련한 국회 환경노동위 고용노동소위는 11명 의원 가운데 5명이 노조 간부 출신 의원이었고 기업인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소위(小委)는 당시 "근로시간 단축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2주·3개월에서 6개월·1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재계 요구는 사실상 묵살한 반면 노동계 요구는 받아들여 연장 근로 제한을 받지 않는 특례 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대폭 축소했다.

이처럼 법 개정 직후부터 부작용이 우려됐지만 정부는 4개월여 동안 탄력근로제 확대 요구에 대해선 "개정법안 부칙에 규정된 2022년 시한 전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노선버스와 정보통신기술(ICT) 등 특례에서 제외되는 업종에 대한 대책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이후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들 근로자들의 우려와, 추가 채용 인건비 부담에 대한 사용자들의 호소가 잇따르자 지난 5월 정부는 기업·근로자에 대한 지원금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시간 단축 현장 안착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문제가 불거지면 땜질 대책을 내놓기를 되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시행 한 달을 앞둔 6월초까지도 업무상 지인과의 식사가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 여부 등 근로시간 산정에 대한 지침조차 내놓지 못해 현장 혼란을 더욱 키웠다.정부는 6월11일에야 직장 내 회식과 거래처 접대 등에 관한 기준과 사례 등을 담은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고 내용도 노사 협의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 많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지방의 버스 회사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노선을 줄이고, IT 등 업계에선 정부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는 등 제도시행을 열흘가량 앞둔 시점에서 현장 혼란은 점점 커져갔다. 당정청이 근로시간 위반 단속에 6개월 유예기간을 두기로 한 것에 대해 경영계 관계자는 "최근 고용 상황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의 채용 연계를 높이기 위해 대기업 채용 시기인 겨울까지 시간을 번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통과 직후 내놓았어야 할 가이드라인을 뒤늦게 내놓는 등 현장에서 무엇을 애로 사항으로 생각하는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가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며 "기업 준비 부족으로 계도기간을 준다고 하지만 정부의 준비부족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주 52시간’, 보완 立法하지 않으면 6개월 뒤에도 혼란
    

"거래처와 저녁 식사 때 법인카드를 쓴다는 것은 결국 회사가 승인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접대 자리도 결국 근로시간 아닌가요?"(기업 인사 담당자)"현실적으로 그렇다, 아니다고 답하기 어렵네요. 나중에 접대를 많이 한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등 분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경총 관계자)6월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근로시간 단축' 설명회장엔 기업 인사 담당자 100명이 넘게 몰려 빈자리가 없었다. 비슷한 시간,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한국능률협회컨설팅·대한상의 주최 설명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두 경제단체가 설명회를 열만큼, '주 52시간 근로제'를 앞둔 산업현장은 긴장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날 누구도 현장의 목소리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정부가 이날 '주 52시간 근무제' 위반에 대한 단속·처벌을 6개월 유예했으나, 인사 담당자들은 "지금 상태에선 본질적으로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6개월 후에도 똑같은 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경영계뿐 아니라 근로자들도 "시행 시기를 늦추더라도 보완 입법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노사 합의하면 연장근로 늘릴 수 있어야"

직원 수 400여명인 자동차 부품전문 S사 기획·인사팀은 요즘 노조와 1주일에 두세 차례 회의한다. 노조는 주 52시간제 시행 후 줄어드는 수당 보전을 요구 중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근로자들은 더 일하고 싶고, 회사도 일감을 더 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기업인과 근로자들은 5개 업종을 제외하면 무조건 '주 52시간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근로자가 "더 일하겠다"고 해도 안 된다. 설명회 참석자들은 "노사가 합의하면 12시간으로 묶어 놓은 연장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모호한 근로시간, 구체적 가이드라인 내놔야"

경총 설명회장에서 한 참석자는 "출장 중 이동시간은 근무시간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했고, 노무사도 괜찮다고 했는데…"라고 물었다. 답변에 나선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일정 부분 근로시간에 포함해야 한다. 만약 분쟁이 생긴다면 케이스마다 다를 것 같다"고 했다. 설명회장이 웅성거렸다. 이어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해외 출장을 위해 주말에 비행기를 탔으면, 몇 시간을 근무로 넣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강연자는 "모호하다"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한 중견그룹 인사 담당자는 "모든 상황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없지만, 최대한 구체적 사안에 대해 가이드는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범법자만 대거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정호석 노무사는 "근로시간 입증 책임은 회사에 있다. 일단 관련 서류를 철저하게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탄력근무제 등 유연근무제 확대해야"

일부 업종은 일감이 계절이나 시황, 프로젝트에 따라 특정 기간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마다 사람을 더 뽑기도 어렵다. 대신 잔업이나 주말 특근을 통해 물량을 댄다. 한 기계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하는 직원들에 한해서라도 야근·특근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사고 예방을 위해 공장 설비를 두세 달씩 세우고 신속히 정비해야 하는 석유화학·정유·철강 등 장치산업에선 "근로자가 동의하고 노동부 장관이 인가하면 초과근무(인가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한 IT업체 연구개발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데,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한순간 기술력이 처지면 못 따라잡는다"고 했다.

◆근로자 "일만 하고 보상도 못 받는 편법 없애야"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와 정작 일은 하고도 보상조차 못 받는 '무상근로'를 우려한다. 한 대형병원 근무자는 "편법 근무에 대해선 강력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며 "구체적 기준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며 예외 업종을 대폭 축소한 것은 '예외'를 이유로 사측이 근로자에게 불리한 근무를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은 노조가 워낙 강해 근로자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할 수 없다"며 "근로자와 회사 모두가 원하는 것을 법 때문에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미국은 법적 기준 없이 회사와 근로자가 계약으로 정해
영국, 근로자 동의땐 주 60시간…독일, 초과 근무시간 모아 휴가로 쓰는 '저축制'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편이다. 정부가 1주에 가능한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 이유다.앞서 외국도 우리나라처럼 법정 근로시간을 대폭 줄였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보다 노사(勞使)에 자율성을 많이 주고, 연장 근로 등도 업종이나 회사·개인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여러 보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주당 근로시간 규정이 없는 독일은 하루 8시간을 넘겨 근무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6개월 동안 하루 평균 8시간을 넘기지 않으면 하루 10시간까지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 단체 협약으로 평균을 내는 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근로자가 초과 근로를 하면 나중에 휴가와 맞바꿀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연장·휴일 근로를 포함해 1주 48시간이 원칙이지만 연장 근로 한도는 별도 규정이 없는데 근로자가 동의하면 예외적으로 1주 60시간까지 허용한다. 프랑스 역시 단체 협약 등으로 1주 48시간 또는 60시간까지 가능하다. 계절적 작업이나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면 사전 승인을 받아 하루 근로시간 한도를 아예 없앨 수 있다. 법정 근로시간이 1주 44시간인 싱가포르는 1개월 72시간까지 연장 근로를 할 수 있다. 미국이나 홍콩은 근로시간 한도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고 회사와 근로자가 계약으로 정한다.우광호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근로시간을 줄이는 건 맞는 방향이지만 산업별, 근로자별로 상황이 모두 다른 점을 고려하지 않는 발상은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시간의 개념 자체도 모호하고,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바뀌어야 할 근무·인사 관리 관행도 많다"며 "앞으로 6개월간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나올 텐데 이를 잘 살펴 보완적 입법을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단속유예는 ‘정부 대책 보완하라’는 의미    

정부가 20일 국회에서 당·정·청 회의를 갖고 7월1일부터 시행되는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6개월간의 계도기간을 두어 단속과 처벌을 올 연말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단속과 처벌보다는 6개월의 충분한 계도 기간을 부여해달라”고 건의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경총의 건의는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충정의 제안으로 받아들이고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화답했다.정부가 늦게나마 근로현장의 제도적·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한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은 다행이다. 그만큼 정부도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이 가져올 부작용이 만만치 않음을 인정한 것이다. 정부가 경제 전반을 면밀히 살펴보지도 않은 채 의욕만 앞세워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어떤 대가를 치를지는 이미 최저임금 인상의 역풍에서 똑똑히 보고 있다. 의도와 달리 오히려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소득만 줄이고 있지 않은가.근로시간 단축도 이대로 시행하면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당장 버스기사들이 퇴직금 축소를 걱정해 앞다퉈 그만두면서 기사 부족에 따른 버스 대란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근로시간 단축의 대전제가 되는 ‘근로시간’ 기준이 모호해 자칫 노사갈등만 부채질할 개연성이 높다. 제조업 근간을 이루는 뿌리산업과 연구개발(R&D) 부문, 게임, 소프트웨어(SW)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는 업무 특성상 초과·연장근로가 불가피한데도 직군과 직무에 관계없이 근무시간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큰 문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줄게 될 근로자의 반발을 달래는 것도 버거운 일이고, 근로시간을 줄이면 과연 일자리가 늘어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근로시간 단축을 매끄럽게 정착시키려면 유예기간만 가질 게 아니라 다각적인 보완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재량근로제·탄력적 근로시간제·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같은 유연근무제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이구동성으로 원하는 사안이다. 자꾸 마차(일자리)를 말(성장) 앞에 두려는 정부의 인식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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