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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불멸의 자각』
‘2018 서울국제도서전’ 열린 서울 코엑스에서 6월23일 저자 진경 강연회 가져
기사입력: 2018/07/04 [09:0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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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서울국제도서전’ 열린 서울 코엑스에서 6월23일 저자 진경 강연회 가져 

"출판사들 상대로 수익을 올리려 했던 관행을 버렸죠. 축제의 장이라는 원래 목적에 맞게 개편한 것이 주효했습니다."(윤철호)   
"무조건 독자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행사가 돼야 한다고 믿었어요. 독자가 참여하는 여러 이벤트로 책과 사람 사이 다리를 놓았죠." (주일우)

2018 서울국제도서전(6월20~24일) 폐막전날인 6월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주말을 맞아 전시장 입구엔 긴 줄이 늘어섰다. 북새통인 전시장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회장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와 대외협력상무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는 환골탈태(換骨奪胎)한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역이다.

2017년 2월 윤 대표가 신임 출협 회장으로 선출됐을 때 겨우 넉 달 남은 도서전은 골칫거리였다. 2014년 도서 정가제 시행 이전엔 엄마들이 아이 전집 싸게 사러 들르는 '책 떨이 행사'에 그쳤고, 정가제 시행 후엔 존폐의 기로에 섰다. '망해도 우리 책임은 아니다'고 때우고 넘어갈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안 되겠더라고요. 도서전이 안 되니 출판사 사장님들이 기가 죽어요. '역시 출판은 안돼'라는 패배주의? '이건 아니다' 싶었죠."(윤철호)

획기적인 '변신'이 필요했다. 주일우 대표가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등 아이디어 넘치는 출판계 후배들과 의기투합해 머리를 짜냈다. 버튼을 누르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등 문학 작품의 한 구절이 프린트돼 나오는 문학 자판기, 유명 저자가 독자와의 대화 후에 책을 추천해주는 '독서 클리닉' 같은 이벤트가 생겨났다. '재미있다'는 소문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관객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윤 대표는 "할인 혜택에 끌려서가 아닌 책을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마니아로 관객층이 확 바뀌었다"고 했다. 대형 서점은 잘 팔리는 책만 앞세우고, 동네 서점은 주인장 취향에 맞춰 '북 큐레이션' 하는 시대, 어디서도 주목받지 못한 책들이 도서전을 통해 독자를 만났다.     

"대형 마트만 다니던 사람들에게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는 책의 골목을 뒤지며 찾아가는 재미를 안겨준 거죠. 편집자들의 에너지가 독자들을 끌어당겼다고 할까요."(윤철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 관객 수는 전년 대비 두 배 늘며 20만2297명이 입장했다. 올해는 더 발전했다. 지난해엔 주최 측에서 "속는 셈치고 한 번만 나와 달라"고 읍소해 국내 출판사 158곳이 참가했지만 올해엔 자발적으로 참가 신청한 출판사만 173개다. 매출도 성장했다. 출협 측은 "문학동네 매출이 작년 대비 15% 증가했고, 은행나무는 두 배 증가, 북스피어는 300% 올랐다. 올해부터 다시 참가한 민음사도 매우 만족해 한다"고 했다. 도서전에서 만난 Y(29·회사원)씨는 "예전엔 책보다 팬시용품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올해는 책 본연의 모습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해외 출판사들의 관심도 부쩍 커졌다. 주빈국 체코를 포함해 해외 참가 출판사가 지난해 17개국 80개사에서 32개국 91개사로 늘었다. 도서전을 국제적 행사로 성장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이다. "10년 안에 프랑크푸르트, 볼로냐, 과달라하라를 잇는 세계 4대 도서전으로 키울 겁니다."(윤철호) "벌써 러시아와 헝가리에서 내년 주빈국 신청이 들어왔어요. 곧 베이징 도서전부터 앞지를 겁니다."(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에 『불멸의 자각』 부스 설치 및 저자 강연회 열려

2018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내 국제도서전 A홀 ‘책만남 1홀’에 마련된 『불멸의 자각』 부스. 적잖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려 저자 진경(眞鏡)과 대화를 나누고 책을 구입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6월20일부터 24일까지 이 국제도서전에는 국내외 수많은 출판사들이 참여했고, 연인원 30여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러한 곳에 『불멸의 자각』도 참여하여 부스 설치와 함께 저자와의 대화 및 강연회도 성황리에 이뤄졌다. 저자 진경은 전시회 기간 내내 나와서 관객들과 만나 책 출판 배경과 그의 진리관 등을 설명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각(自覺)이다. 인류의 근원적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금세기 최고의 대담록으로 꾸며진 『불멸의 자각』에 관객들의 관심도 높았다. 
            
국제도서전이 열리는 기간인 6월23일 오후 5시 서울국제도서전 A홀 ‘책만남홀 1’ 강연장에서 열린 ‘불멸의 자각 저자 강연회‘ 다수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저자 진경의 강연을 경청하고 질의응답의 시간도 가졌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강연회에는 저자 진경의 진솔한 메시지 전달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불멸의 자각 저자 공개 강연회는 책 출간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다음은 저자 진경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오가고 나고죽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그려내는 幻影에 불과해”    

소위 말해서 이 세상에 알려진 ‘성자(聖者)’라고 알려진 분들을 보면, ‘이 세상이 전부 꿈이 다’라는 한결같고 분명한 증언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왜 이세상이 꿈일까?’ 그리고 ‘꿈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러한 의제(擬題)에 대한 직접적인 견해나 설명은 아직까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단순하게, 누구든지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세상은 ‘꿈’이 될 수밖에 없으며, 꿈이라는 겁니다.

성자들은 이 세상이 ‘꿈과 비슷하다, 꿈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꿈이다’라고 분명하고 한결 같이 단정을 짓고 있잖아요.    

자 보세요.

모든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자면서 꿈을 꾸잖아요. 그리고 그 꿈속에는 반드시 어떤 사건과 관련한 ‘나’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나’는 자기가 마치 그 꿈의 주체인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으며, 일어나는 사건에 연류가 되어서 많은 행위를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지만, 결국 그 꿈을 ‘누가’ 꾸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시라는 겁니다. 정작 꿈을 ‘꾸는 자’, ‘꾸고 있는 자’는 무의식상태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꿈속에서 등장한 ‘나’는 실체로서 ‘나’가 아니라, 무의식상태에서 실체의 ‘나’를 반영한, 즉 ‘더 사실적인 나’를 반영한 ‘나’의 그림자, 즉 자아상(自我相)에 불과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위 예수다, 석가모니다, 마호메트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20세기에 가장 훌륭한 철학가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간주되는 명상가 겸 인도철학자)라고 하는 성자들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깨어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증언을 하고 있어요.    
  
◆‘깨어나야 한다’, ‘깨어 있으라’, ‘깨달음-깨어남-깨어 있음’    
    
수행과 구도의 여정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많이 듣고 많이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깨어난다.’는 말이 가리키는 바가 뭐겠어요?

나는 지금 이렇게 눈을 뜨고 있으며, 이렇게 행동하고 있으며, 이렇게 모든 인식을 하고 있는데, 왜? 깨어나라고 성자들은 한결 같이 말 하겠어요?    

결국 ‘깨어나라’고 하는 가르침은, 지금 인식하고 있으며 지각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 실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꿈속에서 등장하는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자아상’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나’라고 하는 자기는 실체로써의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꾸는 꿈의 주인은 정작 무의식상태에 빠져 잠을 자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한 때는 ‘깨달음이다, 수행이다, 공부다’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느 한 순간에 출근을 하다가 갑자기 ‘내가 누굴까? 나는 무엇인가?’ 라는 뜬금없는 의문이 저를 사로잡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의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어떤 삶을 어떻게 산다는 것이, 저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더라는 겁니다.    

자 보세요.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데, 내가 100년을 살고, 1000년을 살고, 어떤 노력을 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하여, 그 삶이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어떤 삶을 살지, 무슨 삶을 살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삶을 산다할지라도, 아니 차라리 오늘 죽는다 할지라도 먼저 ‘나’를 알자!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폈든 성인들 중에 소크라테스는 오직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다, 신이다’ 그러한 모든 것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앎으로 해서 그 실체가 드러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까지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이 명제(命題)가 인문학이든, 철학이든, 하물며 종교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최종적이며 가장 근원적이며 근본적 명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부는, 불교의 경전에 내용이 이렇고 저렇고, 어떤 화두(話頭)와 공안(公案)이 이런 뜻이고, 저런 뜻이며, 어떤 선사(禪師)가 이런 말을 했고 저런 말을 했으며, 어떤 철학자가 이러했고 저러했다고 하는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기울여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보다 깊은 이해를 하고 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 보세요.

사람이 태어나서 어떤 사람은 이런 종교를 믿고, 또 어떤 사람은 저런 종교를 믿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종교도 믿지를 않아요.

그렇다면 결국 종교는 선택의 의제라는 겁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제는 선택의 의제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의제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은 가장 상식적이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의제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당면한 ‘의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이러한 당면한 의제를 화두삼아 수행의 여정을 걸었으며, 어느 순간 저 스스로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워졌을 때 ‘완전한 자유’에 대한 각성(覺性)이 일어났으며, 각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각성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지(認知)하는 순간과 각성은 동시다발적이었으며, 그 순간 인지의 주체인 ‘지금의 나’는 의식적으로 죽어 사라졌으며, 보다 더 근본적이며 사실적인 ‘나’로 스스로 깨어났으며, ‘나’는 그 자체로 성품이 ‘자유’이더라는 겁니다.    
▲ ‘2018서울국제도서전’(6월20~24일) 폐막전날인 6월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서 강연하는 『불멸의 자각』 저자 진경(眞鏡)    

◆스스로 말미암은 ‘나’    

‘지금의 나’로 인한 태생적 한계와 구속, 그리고 그로인한 번뇌와 망상은 결국 해결할 것도 없으며, 단지 지금의 나만을 ‘나’로 여기는 무지(無知)로 인해서 생노병사(生老病死)이며, 무지로 인한 파란만장 한평생의 삶이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무지는 실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각(自覺)’의 결여에 불과할 뿐이고요.

그러므로 어떤 실체성도 없는 ‘무지’를 해결하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전생(前生)의 업(業)을 해소할 것도 없으며, 삼생(三生)의 덕(德)을 쌓을 것도 없으며, 엄청난 고행과 수행을 해야 할 것도 없으며, 화를 다스려야 할 것도 없으며, 욕구와 욕망을 끊어야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났으며, 태어났기 때문에 산다는 겁니다. 살다보면 늙어도 지고 병도 들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예외 없이 다 죽는다는 겁니다.

태어나 살고 늙어지고 병들고 죽는, 이러한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하나도 예외 없이 ‘내 뜻이고 내 의지이며 내 마음먹기다’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누구든지 태어나진 것이며, 살아지는 것이며, 병들어지는 것이고 늙어지는 것이며, 죽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살해되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불가의 스승이며 교조였던 석가모니가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이다’ 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주창을 했지만 이러한 진리는 위대한 스승의 전유물도, 어떤 조직과 단체만의 전유물도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가장 보편적이며, 이러한 보편성이 가능한 이유는 절대적 주체로서 ‘일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추후에 보충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먹기이다’

태어남도 사는 것도 늙는 것도 병이 드는 것도 죽는 것도 결국은 ‘나’의 뜻이자 ‘나’의 의지이며 ‘내 마음먹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태어남도 ‘나’의 뜻이자 ‘나’의 의지라면 결국 ‘나’는 태어나기 이전에 내가 ‘뜻’하고 내가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태어남이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이미 그 자체로 ‘불생’이며, 그로인해 또한 ‘불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만이 모든 사람들의 근본 정체성이라는 겁니다. 그럼 질문 받겠습니다.    

-진리의 정상(頂上)을 오르기 위해 많은 분들이 도전을 합니다. 진경님이 보는 진리의 정상(?)은 무엇인가요?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나 허공이나, 지금 여기서 바라보는 하늘이나 허공이나 어떤 차이도 없는 것처럼, 진리의 정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절대적 주체로서 ‘일체’이며, 그로인해 가장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일체’로서 어떤 나뉨도 분리도 없으며, 그로인해 임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멸의 실체라는 것을 ‘자각’했다고 할 경우에, 자각함으로 끝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더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빛이 비추어지고서야 모든 것이 드러날 수 있듯이, 자각하지 않고서 무엇이 드러날 수 있겠습니까?

‘자각’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밝아 모든 것을 비춰 드러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밝음과 비춤이 동시다발적일 수 있는 이유는 ‘밝음’이라는 본성에 의한 ‘비춤’은, 본성의 성품으로서 밝음과 일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드러나게 하는 무언가와 드러난 모든 것이 결국은 일체로서 ‘하나’이며, 오직 일체로서의 ‘하나’ 이상의 ‘진리’가 어떻게 더 있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무언가를 더 해야 하며,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자각의 결여, 즉 아직도 ‘무지’의 범주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가에서 이야기 하는 돈오돈수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까?    

단언컨대, 돈오돈수(頓悟頓修: 불교에서 단박에 깨쳐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를 이르는 말)다 돈오점수(頓悟漸修: 문득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에 이르기까지에는 반드시 점진적 수행단계가 따른다는 말)다 이런 논쟁은 아무리 거창하게 표현한다할지라도, 돈오가 무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을 깬다, 잠에서 깨어난다, 깨달음, 깨어남, 깨어 있음은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이며 무엇이다’로부터 깨어난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의 나’가 고행과 수행을 통해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무의식적으로 비추어낸 ‘나’가 깨어나는 것이며, 깨어남과 동시에, 바로직전에 ‘지금의 나’는 꿈과 함께 깨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철학적·종교적 의제에 보면, ‘신(神)은 존재 하는가?’라는 의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의제에 대한 견해는 ‘신은 존재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대부분 양분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신은 존재 하는가?’라는 의제, 즉 질문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스스로 말미암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존재’가 존재하려면,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스스로 말미암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스스로의 뜻과 의지로써 존재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신’으로 본다면, 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게 하는 ‘무엇’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 비존재적인 측면으로서 신은 '존재'한다는 질문을 통해서 답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깨달음’ 또한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 즉 육체적으로 존재하는 나만을 ‘나’로 여기고, 그에 따라서 ‘지금의 나’로서 깨어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은 있다, 없다’로 정의를 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은, ‘있음과 없음’으로 피력되어지는 견해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깨어남-깨어 있음’만이 질문하신 분의 가장 사실적 정체성입니다.    

‘있음의 우주’를 기준으로 보면, 현대 과학에서도 ‘있음의 우주’는 팽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결국 무한의 영역이지만 ‘있음의 우주’가 무한을 지향하며 팽창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없음의 우주’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음의 우주’는 ‘있음의 우주’와 상반된 무엇이 아니라, ‘없음의 우주’가 ‘있음의 우주’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있음과 없음’의 합일(合一), 즉 일체야말로 여러분의 진정한 정체성입니다.

따라서 누구이든지와 상관없이, 예외 없이 자신의 이러한 일체성으로 인해 오고감이 있을 수 없으며, 나고 죽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고가고 나고 죽는 모든 것은 결국 ‘지금의 나’를 포함해서 ‘자기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그려내는 환영(幻影)에 불과합니다.
수암(守岩)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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