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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형 범종교시각
‘죽음 표현’ 방식이 삶의 자세-나는 영면(永眠)이 좋다
장례식장과 화장장에서의 하늘소풍길 단상
기사입력: 2018/07/10 [06:5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신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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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 평온의숲 화장장 나래원의 풍경     © 매일종교신문

장례식장과 화장장에서의 하늘소풍길 단상
     

내 일상이 된 숲속 산책에 붙인 별명 ‘하늘 소풍길’은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歸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갈 때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는 구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에게 숲속 산책은 심신의 고통을 깨끗이 씻어주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삶의 소풍길이다. 내게 주어진 일과 생활을 즐겁게 정리하는 시간이자 편안하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명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숲속 산책을 ‘하늘 소풍길’로 명명한 것을 참 잘 했다고 자부한다.     

때론 숲속 산책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하늘 소풍길’이 이어진다. 숲 속에서의 폭넓고 깊은 명상이 생활의 들판에 나와서도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삶을 살 때 죽음에만 몰입하면 어두운 삶이지만 죽음을 언뜻 떠올리는 삶은 폭넓고 깊어진다. 파란만장 구차하거나 허무한 일생에만 시선이 사로잡혀 있다가 인간·지구·우주의 역사를 보는 시선으로 현재의 삶을 관망하면 그저 관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를 찾게될 뿐 아니라 현명한 삶의 자세를 갖게 만드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지난달 말 상주 아닌 상주 노릇을 하며 말그대로 ‘하늘소풍길’을 산책했다. 용인 병원 장례식장 3일장과 용인 평온의숲 나래원서 한줌의 재로 분골되어 뿌려지는 과정을 줄곧 지켜보았다. 장례식장은 고인을 추모하기보다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복잡하게 얽힌 삶의 현장으로 꾸려진다. 입관 등 잠시 죽음을 직면하는 슬프고 엄숙한 시간도 있지만 산 사람들이 교분을 나누고 화해하는 축제마당의 성격이 더 짙다.     

나는 장례식장서 의례를 갖추고 고인과 관련된 사람(엄밀히 말하면 나와 연관된 사람)들을 접하며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소풍길을 걸었다.     

항상 그렇듯이 장례식장에 들어서며 ‘내가 좋아하는 죽음의 표현은 무엇일까’를 떠올렸다. 각종 사고나 의례적으로 대하는 죽음은 아무런 생각없이 ‘죽어 없어진다’는 ‘사망(死亡)’이라는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와 인연이 깊은 사람이나 가까운 친지들의 죽음에 직면에서는 나의 죽음처럼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죽음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바로 죽음의 표현일 것이다.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죽음관이 드러나고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자세까지도 보여준다.     

세상과 이별하고 떠난다는 ‘별세(別世)’, ‘영결(永訣)’은 삶의 아쉬움, 허무함을 주는 표현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고 저승을 두려워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전원이 끊어지듯 생명도 단절된다고 확신하면서도 뭔가 허전해진다.     

천국행을 뜻하는 ‘하늘나라 갔다’거나 ‘하늘이 불렀다’는 뜻인 소천(召天) 등 기독교적 표현은 교인들에게는 참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영혼과 부활을 믿고 천당(天堂)으로 가는 죽음은 축복이기도 할 것이다. 부귀 영화를 누리는 욕심보다 더 큰 욕심일 수도 있을게다.

가톨릭의 선종(善終), 천도교의 환원(還元), 대종교의 조천(朝天), 통일교의 성화(聖和) 등 종교에서의 죽음표현들은 각 종교의 죽음관을 보여주는 한편 기본 교리도 짐작케 해준다. 종교적 표현들은 대부분 죽음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어느 종교인이든 대부분 죽음앞에서는 그 표현처럼 긍정적 자세를 갖지 못하고 여느 사람처럼 두려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상생활의 연장선장인 장례식장에서 간헐적으로 생각해본 죽음 표현은 용인 평온의숲 나래원 화장장으로 이동하면서 더욱 절절해졌다. 시신이 타들어가고 분골되어, 한줌의 재로 뿌려질 때 고인의 죽음에 대한 표현은 바로 추모의 마음이기도 했다. 또한 나의 죽음관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편안히 잠드십시오”    

나는 기독교인인 고인에게 내 방식의 추모를 했다. 그러고 보니 ‘영원히 잠 잔다’는 뜻인 영면(永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죽음의 표현이었다.     

나의 숲속 산책 ‘하늘소풍길’에서 나는 줄곧 영면을 꿈꿨다. 심신이 아픔과 고통으로 일그러졌을 때 나는 숲속 산책을 하며 그냥 숲속에 누워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간혹 삶이 즐거워져 천년만년 살고 싶을 때도 숲속 하늘소풍길에 들어서면 ‘일장춘몽 이순간 지나면 괴로움의 반복일진데 행복한 마음으로 깊고 편안한 잠에 드는 것이 최선’이란 상념에 빠졌다.     

고통과 번뇌의 사슬을 끊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적멸(寂滅)에 드는 불교의 죽음표현 ‘입적(入寂)’이 바로 편안하고 영원한 잠, 영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영생, 불멸, 영혼을 믿지 않는 종교 아닌 종교일 것이다.     

나는 용인 평온의숲에서 한 기독교인의 죽음을 평온하게 ‘영면하시라’며 다시한번 추모했다. 그리고 나의 죽음도 ‘영면’으로 규정 짓고 열심히, 성실히 살다 죽겠다는 상념도 했다. 이 역시 죽음의 공포와 허무감을 벗어나려는 일종의 종교적 추구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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